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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태풍 (2)
배는 좀처럼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라디오 노랫소리가 배 안을 왠지 들뜨게 하고 있었다.
“어째서 배가 떠나지 않을까요?”
게이조는 옆에 있는 상인 차림의 사나이에게 물었다.
“화물선 때문이거나 뭐 그런 거겠지요. 곧 떠나게 될 겁니다.”
사나이는 읽고 있던 주간지를 말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태풍 때문이 아닐까요?”
“태풍은 에사시(江差) 쪽을 지나가는 모양이에요. 걱정할 것 없어요.”
여행에 익숙한 듯한 사나이는 이렇게 말하고 옆으로 드러누웠다.
“그럴까요?”
“아마도 이 배가 아오모리에 도착하고 나서 두 시간쯤 지나서야 태풍이 닥칠 모양이니까요.”
게이조는 태평한 사나이의 말에 이끌려 마음을 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 자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등 모두들 편한 자세로 기다리는 눈치였고, 출항이 늦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그다지 세차게 불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게이조는 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고 드러누웠다.
얼마쯤 잤을까, 멀리서 들려오던 씨름 중계 방송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 게이조는 번쩍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쯤이죠?”
게이조는 아까 그 상인 차림의 사나이에게 물었다.
“아직 배가 출발하지 않았어요.”
“네? 그럼 아직도 하코다텐가요?”
게이조는 불안했다. 갑판에 나가 보니 조금 전의 비바람은 그쳤으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하늘 가득히 붉게 물든 저녁놀이 게이조에게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어딘가 불길하게 보였다. 갑판에는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징소리가 들려왔다. 선원이 징을 두드리면서 게이조의 옆을 재빨리 지나갔다.
게이조는 다시 2등 선실로 돌아왔다.
“겨우 떠나는군요.”
인상이 좋은 그 사나이가 얇은 가죽 꾸러미를 풀며 말했다. 속에는 반들거리는 검은 김에 싸인 커다란 주먹밥 네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 드시지 않겠어요? 나는 원체 배에 있는 식당 음식이 싫어서요.”
아닌게아니라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어 보였다. 간장을 발라 얇게 썬 가다랭이포가 들어 있는 주먹밥이 게이조에게는 무척 맛있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주먹밥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여행의 감상 때문인가 하고 게이조는 생각햇다.
마침내 닻을 내리는 쇠사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게이조는 정신이 번쩍 났다.
“닻을 내린 것 같군요.”
“글쎄요, 어디 한번 물어 볼까요?”
하고 그 사나이가 일어섰다.
‘태풍인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더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선창은 벌써 어두워졌다. 밝은 선실이 창에 비쳐 어두운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지금 해협의 파도가 무척 거세기 때문에 이 배는 항구에 잠시 머물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확성기에서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게이조는 엔진이 움직이고 있는 동안은 그다지 열며할 것이 없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불안했다. 승객들이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눕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이상했다.
다시 확성기를 통해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자기 환자가 생겼으니 의사가 타고 계시면 선원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게이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엄하게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의사는 언제 어느 때나 의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책이나 영화를 보러 갔을 때에도 의사가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도구를 몸에서 절대 놓지 말아라.”
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여행 가방 속에는 언제나 청진기와 혈압계, 주사기, 약제, 소형 회중 전등이 들어 있었다.
게이조는 가방을 들고 선원을 따라 3등 선실로 내려갔다. 복도처럼 되어 있는 3등 선실에는 큰 파도가 선창을 때리고 있었다.
환자는 스무 살 가량 되어 보이는 둥뚱한 아가씨였다. 게이조는 자기 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고 아가씨를 진찰했다. 위경련이었다. 진통제를 주사한 뒤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아가씨는 혼자 여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나기에 돌아보니 한 외국인이 정답게 웃고 있었다. 그는 말끝마다,
“……….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자기는 선교사라고 했다.
환자는 차츰 통증이 가라앉는 듯 게이조에게 부끄러운 듯이 눈인사를 했다. 이윽고 통풍관으로부터 바람이 불어닥치고 바닷물이 흘러 들었다.
‘위험해!’
게이조는 재빨리 가방을 잡아당겼다. 선원이 양동이를 갖고 왔다.
“태풍이 점점 거세어지는군요.”
옆에 있는 승객이 이렇게 말했으나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선원도 침착했다. 게이조는 불안을 억누를 수 없어 가방을 마구 열어 젖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웨터를 꺼내 입고 양복을 다시 걸쳤다. 바지 위에도 다른 바지를 껴입었다.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껴입어야 할 것 같았다. 게이조는 바다에서의 조난도 산에서의 조난과 마찬가지로 옷을 얇게 입는 것은 절대 위험하다는 것을 간호사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었다.
“춥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을 때 배가 왼쪽으로 크게 흔들렸다. 선반에서 누군가의 보따리가 떨어졌다. 웬 노파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게이조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열 시 조금 전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원이 연거푸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갔다. 게이조는 방금 치료를 해준 아가씨에게,
“되도록 많이 껴입어요, 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주의시켰다. 배가 다시 크게 흔들렸다. 이상하게 긴장된 공기가 선실에 가득 찼다. 게이조는 문득 병원 일이 생각났다.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
게이조는 등골이 싸늘해져 왔다. 배가 점점 크게 흔들렸으므로 그는 벽에 등을 바짝 대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선내 방송 신호가 들려오자 선실은 잠잠해졌다.
“이 배는 얼마 후 나나에가하마에 좌초할 예정이지만 위험한 상태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모두 구명대를 착용하시고 그대로 선실에 남아서 선원의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선원이 뛰어와서 선실의 천장에 매달린 끈을 잡아당겼다. 구명대가 한꺼번에 밑으로 떨어졌다. 승객들은 일제히 구명대로 모여들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눈과 손과 발만 재빨리 움직였다. 게이조는 왠지 달려가 구명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선교사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배가 30도로 기울자 구명대가 선교사의 무릎 있는 데까지 굴러 왔다.
“먼저 가시지요.”
선교사는 그것을 게이조에게 넘겨주었다. 게이조는 순간 머뭇거렸으나 구명대가 또 하나 굴러 오는 것을 보자 예의를 저버리고 그것을 착용했다.
“끽.”
배는 엄청난 굉음을 내고 모래땅에 좌초했다. 순간 선체가 기울어지고 금세 바닷물이 안으로 흘러 들었다. 사람들은 이미 왼쪽 뱃전 계단으로 일제히 몰려가 있었다. 게이조는 30도로 기울어진 자리를 단숨에 기어올라 계단 입구로 나섰다. 복도처럼 생긴 3등실에 올라가니 배가 다시 90도로 기울어졌다.
게이조는 벽 위에 서 있었다. 한쪽 벽은 머리 위에 있었다. 선창으로 바닷물이 소리를 내면서 흘러 들었다. 금세 복사뼈까지 물이 찼다. 전등이 바닷물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가까이에서 웬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경련을 일으킨 바로 그 여자였다.
“어떻게 된 거지요?”
선교사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여자는 구명대의 끈이 끊어져서 울고 있었다.
“그거 안됐군요. 제 것을 드리겠습니다.”
선교사는 구명대를 풀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나보다 젊어요. 일본은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야 해요.”
게이조는 자신도 모르게 선교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구명대를 선교사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드디어 물이 허리까지 차 올라왔다. 허리까지 물 속에 잠기니 오히려 게이조의 마음은 침착해졌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야광충이 파랗게 빛을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앞에서 야광충은 비정하리만큼 아름다웠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결국 뒤집히고 말았다. 아주 캄캄했다. 물 속에 떠 있던 발끝이 바닥에 닿았다.
머리 위로 물이 흘러 들었다.
‘어쨌든 배 안이다. 코만 밖으로 내놓고 있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게이조는 움직이지 않고 배 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발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는 넘어질 뻔했다. 배 안에 있는 것도 위태로운 일이었다.
깨어진 창틀로 손을 뻗치자 몸이 떠올랐다. 선창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검은 바다가 무서웟다. 발을 배 안에 넣자 또다시 누가 발을 붙잡았다. 게이조는 대담하게 선창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검게 활 모양을 그리고 있는 선체가 눈앞에 보였다.
높다란 파도가 선체를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선체가 흐르는 폭포와 같은 물살에 떠밀려 게이조는 바다로 던져졌다.
돌아보니 뜻밖에도 배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비에이 강에서 수영을 하며 자란 게이조였다. 그래서 그는 물은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이 높은 파도 속에서는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마음 한구석은 이미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체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살 가망이 없는 환자의 임종을 기다리는 심정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살려고 계속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는 되도록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에너지 소모가 두려워서였다. 그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바다에 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파도에 정신이 팔려 심한 바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높이 올려다 보이는 큰 파도가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의 몸은 빙 한 바퀴 돌아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아, 이제 끝장이구나!’
파도가 눈꺼풀을 마구 문질러댔다. 숨이 찼다.
‘이제 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게이조는 바다 위로 떠올랐다.
‘도오루!’
그는 다시 파도에 휘말리면서 이번에야말로 끝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쓰에!’
나쓰에에 이어 무라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무라이와 나쓰에의 얼굴이 파도 사이에 겹쳐서 나타났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갑자기 죽음이 두려웠다. 어느새 그는 냉정함을 잃고 손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에 직면한 지금 그에겐 지위도 의학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다. 지금까지 의사로서 많은 죽음을 보아 왓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죽음이었다. 자기 것으로 본 죽음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완전히 힘을 잃고 있었다.
‘앗!’
게이조는 자기 키를 넘는 파도가 덮쳐 오는 것을 보았다. 공포가 전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그는 한 조각 나무토막처럼 파도에 휩쓸려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게이조는 숨이 가쁘고 의식이 흐려졌다.
‘이제 끝장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그는 번쩍 제정신이 들었다. 등이 모래에 쓱 닿았다. 그의 몸은 어느새 모래 벌판에 밀려 와 있었다.
‘살았구나!’
게이조는 기진맥진한 마음을 채찍질하여 일어나려고 했다. 그냥 이곳에 있다가는 또다시 파도에 휩쓸릴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물을 먹어 무거워진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신음하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다. 잘 살펴보니 바로 옆에 두 자 정도의 콘크리트가 있었다. 그는 그 건너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허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는 기어서 간신히 콘크리트를 따라 돌아갔다.
‘아, 살았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심한 피로가 그를 덮쳐 왔다.
‘잠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게이조는 어느새 깊이 잠들어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그는 등을 씻어 내리는 싸늘한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두 자 정도의 콘크리트를 넘어서 파도가 밀어 닥쳤던 것이다.
게이조는 어둠 속을 더듬어 보았다. 어둠에 익은 눈에 희끄무레한 것이 2,3미터 앞에 보였다. 흰 구명 보트였다. 그 바로 앞에 발가벗은 새하얀 몸뚱이가 누워 있었다. 여자 같았다.
‘죽었군.’
그러나 가엾거나 두렵지 않았다.
‘잠들어서는 안 된다.’
게이조는 구명대를 풀어 머리맡에 놓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주위엔 사람이 여러 명 쓰러져 있었다. 난파된 검은 화물선이 바로 가까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저 배 있는 곳에 밀려 가 있었더라면…….’
박살이 나서 무참히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게이조는 자신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배 안에서 둘러썼던 보자기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가슴에도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팔의 어딘가가 아픈 것 같았으나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게이조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지 말아야지, 자지 말아야지 하고 눈을 번쩍 떴을 때 그의 옆을 회중 전등을 든 사나이가 지나갔다. 게이조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사람 살려!”
게이조의 목소리에 회중 전등 빛이 그를 확 비추었다. 그 사나이는 가까이 다가와,
“오, 살아 있군.”
하고 게이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게이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기차의 차창 밖으로 단풍이 물든 하코다테 산이 내다보였다. 바다가 은빛으로 평온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가는구나!’
게이조는 문득 눈물이 솟구쳤다. 사고를 당한 지 보름이 지났다. 얼굴과 다리에 가벼운 상처가 있었을 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게이조는 눈에 띄게 빨리 회복되었다. 나쓰에와 외과의 마쓰다가 달려왔을 때, 그는 지칠 대로 지쳐서 혼수 상태로 빠져 있었다. 그러나 외상이 없었던 만큼 회복은 빨랐다.
검진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 출혈이 심해 죽은 사람도 있었다. 세 치나 되는 못이 머리빛처럼 가지런히 박힌 나무판에 찔린 사람도 있었다.
게이조는 주먹밥을 나누어주었던 그 다정한 사나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꼭 살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1,2등실 승객 중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처럼 선량한 사나이도 저 컴컴한 바다 속에서 죽었을 것을 생각하니, 게이조는 자신의 목숨이 무척 엄숙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천 몇백 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데 대해 쓰라림과 동시에 큰 감동을 느꼈다.
‘모두들 살고 싶었을 것이다.’
게이조는 자신이 죽은 사람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아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어쩌면 자기 머리를 찔렀을 못이 극히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찌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행운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없이 엄숙하고 귀중한 목숨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기차 속까지 비칠 듯한 호수와 아름다운 단풍도 지나갔다. 새로운 목숨을 얻어 바라보는 풍경은 숨막힐 듯이 아름다웠다.
‘그 선교사는 목숨을 건졌을까?’
위경련을 일으켰던 아가씨에게 선뜻 자기 구명대를 내준 선교사를 게이조는 침대에 누워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한 그 선교사는 꼭 살아 있어 주었으면 싶었다. 그 선교사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다. 선교사가 살아온 인생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전혀 다를 것이 분명했다.
어느새 기차는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바다 안개가 나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바다 안개는 사방을 우윳빛으로 뿌옇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우윳빛으로 몽롱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곳에 거대한 바다가 있는데도 그에겐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거기 있어야 할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일이 자기 인생에도 있는 것 같아 게이조는 두려웠다.
게이조는 오늘 돌아간다는 것을 나쓰에에게 알리지 않았다. 갑자기 돌아가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그는 아사히가와에 돌아가면 정말 후회 없이 살려고 마음먹었다.
나쓰에를 사랑하고 도오루를 사랑하고 요코를 사랑하고 그리고 무라이와도 사이 좋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히가시무로란(東室蘭)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