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성서유니온 출판사가 발간한 성경 관련 책이 마음에 든다. 김근주 목사의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는 성경을 '개인적 만족'을 위해 읽지 말라고 강조한다. 개인적인 욕망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읽었던 폐해는 역사적으로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성경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해석하거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나, 내 가족으로 국한하여 적용한다면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특정한 개인, 특정한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바울이 권하는 것은 '변화받는 것'이다. 산 제사로 드려지는 삶의 핵심은 세상의 틀을 인정한 채 그안에서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것이라기보다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틀 자체를 바꾸는 삶은, 모두 열등하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가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골째 해도 상관없으며 뒤쳐저도 뒤쳐진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삶일 수 있다. 감정적인 변화가 아닌 지적 영역에서의 변화야말로 세상의 틀을 극복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게 된다.
사탄을 대적한다는 것은 머리에 뿔 달린 빨갛고 검은 귀신 같은 영적존재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사탄을 대적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분주하게 해서 시간에 쫓겨 성경을 내 삶의 위로와 회복을 주는 책으로만 읽게 만드는 세상을 향한 대적,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기보다 내 삶의 지침을 발견하는 데 몰두하게 만드는 흐름을 향한 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의 의미는 성경을 아무 데나 펼치고 주어진 말씀대로 살라거나 성경에서 발견한 한 글자를 그날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성경읽기가 믿음에 기반을 둔 읽기, 삶을 변화시키는 읽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의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실하고 충실하다는 것은 더더욱 불의한 사회가 기승을 부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이 역시 사회가 돌아가는 틀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인식을 갖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으로 읽지 않으면 우리는 구약 성경이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책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게 되고, 그럴 때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에 집착하게 된다.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을 때 각 책이 지닌 성격을 이해하고 그 성격에 맞는 접근을 모색하게 된다.
비판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욕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집중하려는 노력이다.
신구약성경의 본문을 해석하여 오늘의 현실에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 성경 역사에 대한 공부와 동시에 오늘 우리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빠져도 성경 본문의 의미는 오늘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구약은 옛 언약이라고 이해하기보다 '첫 번째 언약'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구약성경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을 율법이라 여기며 지나간 시절의 법, 우리 안에 죄가 얼마나 가득한지를 보여 주는 법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을 격하시키고 오늘 우리 현실에 지킬 필요가 없고 지킬 수도 없는 말씀으로 여기게 만들 것이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일하게 권위 있는 문헌이 지금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책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기능은 치안을 유지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식민지 상황이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과 구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상황 가운데 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부당하고 폭력적인 정권임에도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여 순종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성경에 따랐다기보다는 권력의 위세가 두려웠거나 독재 권력으로 인해 얻는 혜택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면면히 등장한다. 국가적 차원의 메세지임에도 오늘 우리는 완전히 개인적 차원으로만 표현을 국한시킨다. 구약에 있는 국가적 차원은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켜 읽든지 잘 읽지 않게 되고, 국가적 차원을 다루는 구약 본문 사이에 있는 개인적 차원과 연관된 말씀이 널리 읽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구약 읽기 경향의 단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과 십일조를 지키는 것은 교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데 비해 면제년과 희년은 가난한 자를 위한 구조적 배려임을 감안한다면, 주일과 십일조는 구약에 근거해서 살아 있지만 면제년과 희년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 교회 강단에서 들을 기회조자 거의 없어져 버린 우리의 구약읽기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읽기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예언자의 비판은 온데간데없이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만 들여다보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독재 권력과 부패한 권력에게 최상의 종교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빛으로 구약 제사제도를 읽고 구약의 나라와 구조, 제도에 관한 법을 읽을 때, 구약은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에도 여전히 해당되는 규례와 법도다.
성경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읽고 궁리하고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개신교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목회자의 성경해석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본문의 문자 이면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