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방황하던 시기의 김익진. |
'댕! 댕! 댕!'
1935년 도쿄의 정월 초하루.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가 은은했다. 아직 날은 어둡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모자와 발에 맞지 않는 신,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모두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철이 들던 때부터 지고 다니던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간의 갈등과 고뇌가 하룻밤 사이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니…….
섣달 그믐날의 들뜬 분위기는 부평초 같은 이방인을 더욱 쓸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내게 도쿄의 거리는 친숙하였다. 어제는 유학 시절 울적할 때면 홀로 찾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를 일없이 거닐었다. 멋들어진 중절모에 반드르르한 양복을 입은 조선 청년은 일본인의 눈에도 부잣집 자제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찌른 채 방향 없이 걷는 모습은 허무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쯤으로 비쳤을지도 몰랐다.
책방에는 퀴퀴하지만 정겨운 내음이 풍겼다. 여느 때처럼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책들을 왼쪽부터 손가락으로 죽 문지르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자석에 쇠가 달라붙듯 손가락이 멈췄다.
'アッシジの聖フランシスコ'(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유교와 불교의 성인들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았다. 하지만 성인들의 삶이라는 게 워낙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별 감흥 없이 지나쳐왔다. 그런데 가톨릭 성인이라니……. 책값을 내면서도 납득되지 않았다.
▲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 청년 김익진. 전쟁 참전 후 일본으로 유학간 그는 삶의 참 진리를 찾아 고뇌하는 시간을 보냈다. |
항일의 일념으로 홍군에 입대해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신념이 내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했다. 귀국 후에는 불교에 심취했다. 불력이 있다는 백양사와 한용운 선사가 머물렀던 백담사를 찾아다니며 마음을 추슬렀다. 청담 스님과 몇 날 며칠을 토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 역시 휑한 가슴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만난 프란치스코였다.
한기가 느껴지는 여관 다다미방 벽에 기댔다. 어스름한 전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모습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부유한 포목상의 맏아들, 용맹한 군인, 포로와 투병 생활, 예수 환시, 걸인과 동거, 나병환자 간호, 벌거숭이 출가…….'
잠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나와 그리 닮았을까. 그 역시 부잣집에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러나 가슴 한쪽은 늘 비어 있었다. 어디에서 갈증을 달래야 할지 몰라 헤매고 다니는 그에게서 나를 봤다. 젊은 날의 그는 영락없는 김익진이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나와 달랐다. 자신이 누리고 있던 모든 걸 버리고 스승 예수의 가르침을 전했다. 아니 온몸으로 실천했다. 평생 청빈한 삶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내놨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찾지 않았던가. 나도 그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밤이 깊은 모양이었다. 멀리서 취한 사내들의 목소리와 여인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내게도 몹시 익숙한 소리였다. 나 역시 주지육림의 흥취를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잠시 후 그 흥겨운 소리도 한겨울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전등 불빛이 흡사 어린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듯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가뜩이나 희미한 방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성에가 낀 유리창에 실루엣처럼 사람 형상이 어렸다. 비몽사몽 간에 눈을 비비며 유리창을 노려보았다. 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짚고, 몸에는 포대 자루와 같은 누더기를 걸쳤다. 맨발로 얼음이 언 차가운 땅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게 늘어져 흡사 유령과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맑은 기운이 흘렀고, 눈에는 밝은 빛이 서렸다.
반사적으로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허리를 끌어당겼다. 무릎에 놓인 책을 접으며 물었다.
"누, 누구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요."
놀라운 일이었다. 꿈을 꾸는 듯했다. 다시 유리창에 어린 그를 바라보며 더듬거렸다.
"다, 당신이 참말로 아시시의 성인, 바로 그 프, 프란치스코란 말이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대뜸 물었다.
"당신이 이 시간에 여기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도대체 벌거벗은 채 집에서 나간 이유가 뭐요?"
엄숙하던 실루엣이 그제야 낯빛을 바꿨다.
"난 떵떵거리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쉬울 게 없었지요.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 보란 듯이 전쟁터에 나가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포로로 잡혀 감옥에도 갇혀봤고, 병을 얻어 죽을 고비도 넘겼지요."
급한 마음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그런 엄청난 결심을 했다는 거요? 나도 당신처럼 남부럽지 않게 호사를 누려왔고, 으스대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유학도 했소. 그리고 내 신념에 따라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싸워도 봤소. 잠시나마 감옥에도 갇혀 봤고요. 그런데도 난 늘 공허했단 말이오."
내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자 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도 당신처럼 온 천하를 손에 쥔 것처럼 두려움 없이 살았지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요."
순간 엉덩이가 용수철 튀듯 뛰어올랐다. 입에서 즉각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천 년 전에 죽은 예수를 봤단 말이오?"
그가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난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주인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종을 섬기겠느냐?'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분은 또한 '네가 내 뜻을 알려면 그동안 사랑하고 탐해온 모든 것을 멸시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
"난 그날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아버지께 상속권 일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요. 그분께 받은 모든 걸 돌려드리고 알몸으로 집에서 나왔거든요. 그때부터 나병환자와 걸인을 친구로 삼아 그들과 함께 생활했지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다시 따지듯이 물었다.
"예수를 따르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소? 재산이 많으면 오히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도울 수 있었을 거 아니오?"
프란치스코가 지팡이를 곧추세우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마태 10,9-10)고 하셨지요. 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분의 가르침을 환하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청빈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지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거예요."
나는 몸을 앞으로 굽히며 다급히 물었다.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난 뒤에 대체 무얼 얻었소?"
그의 미소가 어슴푸레한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내 영혼을 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요."
나는 체면 가리지 않고 철부지처럼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당신도 나처럼 해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구령(救靈)과 영생(永生)이라…….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유리창에는 흩날리는 눈이 달라붙고 있었다. 더 이상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늘 가슴 깊은 곳에서 이글거리던 용암이 온몸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기운이 다다미방에 웅크리고 있던 차가운 몸을 달궜다. 신기하게도 몸은 후끈 달았는데, 타는 듯한 갈증은 가라앉았다. 가슴이 시원했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깨달음의 환희였다. <계속>
▲ 김문태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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