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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숭아는 왜 下品입니까?
성균관 홈페이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창에 문의를 하고
어쩌다 답변자와 감정 싸움한 내용입니다.
○ 이이록 (2010-07-07 11:29:38)
[우리 민족은 금기시하는 祭羞가 있습니다.
속설에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 하여 제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중국도 복숭아를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과일 중 가장 낮은 것” 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孔子家語; 果屬有六而桃爲下祭祀不用]
복숭아는 왜 과일 중 제일 낮은 것으로 여기는지요?
△ C
아래의 말씀은
유가(儒家)에서 복숭아(桃)를 제물(祭物)로 쓰지 않는 근거가 된 말씀(가어)의 전부입니다.
복숭아가 과속(果屬)의 하품인 까닭은
설과(雪-拭식-果) 즉 씻어야 먹는 과일이라서 인 것 같습니다.
▲家語子路初見篇孔子侍坐於哀公賜之桃與黍焉哀公曰請食孔子先食黍而後食
桃左右皆掩口而笑公曰黍者所以雪桃(註雪拭之也)非爲食之也
孔子對曰丘知之矣然黍者五穀之長郊宗廟以爲上盛(註在器曰盛)
果屬有六而桃爲下祭祀不用不登郊廟丘聞之君子以賤雪貴未聞以貴雪賤今以五穀之長
雪果之下者是從上雪下臣以爲妨於敎害於義故不敢公曰善㦲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첨언; 위 말미 口의 표시는 哉의 속자입니다.
△ 이이록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숭아를 하품으로 치는 이유를
씻어서 먹는 과일이기 때문에 하품으로 한다는 것인데
복숭아는 겉에 잔털이 무수히 많아 그대로는 먹지 못하고
물에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고
사과. 배. 감 등과 비교하면 수긍이 갑니다.
아래의 글은
성호 선생의 글로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려도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 담긴 글로
참고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2권 인사문(人事門) 에서
[내가 일찍이 어느 집을 갔더니 창문 밖에 복숭아가 한창 익었고
때는 마침 세속 명절이었는데
주인이 “복숭아도 사당에 올릴 수 있느냐?” 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어(家語)》에 공자가
‘과일의 품종이 여섯 가지가 있는 중에 복숭아가 하품이어서 제사에 쓰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궤사(饋食)의 변두(籩豆)에 올리는 과일이
대추ㆍ밤ㆍ복숭아ㆍ마른 매실ㆍ개암나무 열매 등인지라,
복숭아가 제물이 되는 것은 옛날에도 그러하니《가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중략) 복숭아 또한 노(魯) 나라에서 쓰지 않아
이 좋은 복숭아를 천대하기 때문에 성인(공자)께서 세속을 들어 말한 것이니,
(중략) 주송(周頌 《시경(詩經)》의 편명)을 본다면,
‘자가사리ㆍ피라미ㆍ메기ㆍ잉어로써 향사를 지낸다[鰷鱨鰋鯉以享以祀].’고 했는데,
당(唐) 나라 사람은 그 잉어의 이(鯉)가 국성(國姓)인 이(李)와 음이 같다 하여
이(鯉)를 바꾸어 적혼공(赤鯶公)이라 하고,
잡아먹는 자에게는 곤장 60대를 때리기도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인해 풍속이 되어서 제사에 쓰지 않으니
이러한 유례를 어찌 이루 다 따르겠는가?
더구나 지금 사람들이 심는 복숭아는 과일 중에도 아름다운 품종이니,
제사에 쓰기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
- 성호 선생께서는
궤사(饋食- 옛날 吉禮. 숙식熟食을 올리던 것)의 변두(籩豆- 제사그릇- 대나무와 목기)에는
복숭아를 올렸는데
가어(家語)에는 복숭아를 제사에 쓰지 않는다고 하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노나라에서는 복숭아를 천대하여 제사에 쓰지 않으니
성인(공자)께서 당시 노나라의 세속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주송(周頌) 시경(詩經)의 편명을 보면
‘잉어로써 향사를 지낸다[鯉以享以祀].’고 했는데
당나라 시대에는 잉어의 이(鯉)가 국성(國姓- 당 왕조의 성)인 이(李)와 음이 같다 하여
이(鯉)를 바꾸어 적혼공(赤鯶公)이라 하고,
잡아먹는 자에게는 곤장 60대를 때리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세 사람들의 풍속이 되어서 잉어를 제사에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유례가 어찌 이 뿐이겠으며 다른 것도 연유가 있을 것이다.
이로 보면 복숭아도 과일 중에도 아름다운 품종이나
성인의 나라 노나라에서는 풍속에 의해 제사에 쓰지를 않으니
이것이 오늘날까지 제사에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듯하다.
그러나 복숭아를 제사에 쓰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이렇게 글을 올렸더니 아래와 같이 답변자가 심한 말투로 반격을 한다.
△ C
제찬에 대하여 사전에 많은 연구를 하고 계셨습니다.
본인이 위 답을 달까를 망설이다 聖言인 [桃爲下祭祀不用不登郊廟]
이 말씀의 훼손을 막고 강조하기 위하여 늦게나마 답으로 달았던 것입니다.
물론 성호선생도 대단한 유학자이시나 孔夫子와는 비견이 되지 않지요.
유학인이 공부자의 말씀을 거역하면 변절자로 오해 받기에 충분합니다.
기왕에 그와 같이 결론을 얻으셨다면
본 홈 게시판에다 개인 소견으로 본 건에 대하여
성호선생께서는 이러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고 소개하셨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복숭아뿐만 아니라 갱이나 김치에 고추 가루로 범벅하여
젯상에 올리고 않고는 개인들의 처지에 따라 자유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孔夫子의 聖言을 소수 학자의 설로 뒤집으려는 시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안뜰 묘당에 공부자의 위패를 비롯 선지자 많을 분을 봉안하고
그 뜻을 거역치 않겠노라 다짐하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이록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기에 협박성(?)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요?
답변자의 말씀이 느끼기에 시비조입니다.
[제찬에 대하여 사전에 많은 연구를 하고 계셨다.
유학인이 공부자의 말씀을 거역하면 변절자로 오해 받기에 충분하다.
기왕에 그런 결론을 얻었다면 개인 소견으로 본 건에 소개하셨어도 되었을 것이다.
孔夫子의 聖言을 소수 학자의 설로 뒤집으려는 시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들이 삐딱하지 않습니까?
유학에 유자도 모를 만큼 유학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의문이 있기에 순수하게 문의를 한 것입니다.
성균관 홈페이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창인지 ‘무엇이 궁금하세요.’의 창인지
글을 읽다 보니 문의의 내용과 공자 가어에 복숭아의 하품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왜 복숭아는 하품인가를 물었습니다.
답변이 없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마침 인터넷에서 복숭아의 제사상 올리는 데 대한 성호 선생의 글이 있기에
답변자의 답변에 감사를 표하고 소개삼아 올린 것입니다.
이는 복숭아의 하품에 대한 말이 아니고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는 내용에 대한 글이기에
잉어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이유가
당태종의 이름에서 피휘하는 유래가 있는 예를 들어
복숭아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연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였습니다만...
그러나 복숭아를 하품으로 한다는 내용에 대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물은 것은 복숭아의 하품에 대한 물음이지
제사상에 올리는 유무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복사하여 올린 글은 저의 문의와는 별개로
성호 선생의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려도 좋을 것이라는 글이었고요.
복숭아의 하품에 대한 답변으로
물로 씻어 먹는 과일이기 때문에 하품이라고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으로 본인도 복숭아는 겉면에 잔 털이 많으니 꼭 씻어 먹어야 하니
과일 중에 하품으로 하는구나. 라고 인정하고
성호 선생님의 글을 곁달아 올린 것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숭아는 왜 하품으로 여기는가?’ 의 문의에
‘물로 씻어 먹어야 하는 과일이기에 하품으로 한다.’ 라는 답변을 주셨고
본인은 인터넷에서 얻은 글인 문의와는 별개의 내용인
성호 선생의 제사상의 복숭아에 대한 글을 복사하여 참고로 올린 글에
[유학인이 공부자의 말씀을 거역하면 변절자로 오해 받기에 충분하다.
孔夫子의 聖言을 소수 학자의 설로 뒤집으려는 시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라는 말로 문의자를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 같이 까닭도 모르게 변절자로 몰면 모를까
다행히 본인은 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유학에 대하여 아는 것도 없어 변절자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유학권내에 살다보니 일상생활과 관계가 깊어 관심을 갖는 정도입니다.
있는 글을 펌하여 올렸다고 이렇게 핍박하면 누가 또 글을 올립니까?
답변자가 이러면 안 됩니다.
△ C
본인의 표현이 과하였나요. 과하였다면 사과 합니다.
그러나 선생께 협박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다만 가어를 인용하시려면 그 대목에 대하여 살펴보셨을 터인데
이미 공부자께서 하품인 까닭을 말씀하신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성호 선생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그러나 복숭아를 제사에 쓰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라 가어를 반박하시는 결론을 내리시셨습니다.
선생께서 성호선생이 실학자인지를 모르시고
그 글을 인용하셨다면 거듭하여 사과 드립니다.
△ 이이록
▶ [본인의 표현이 과하였나요. 과하였다면 사과 합니다.]
선생의 표현이 정말로 과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유학인이 공부자의 말씀을 거역하면 변절자로 오해 받기에 충분하다.=
=孔夫子의 聖言을 소수 학자의 설로 뒤집으려는 시도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본인은 유학에 전연 문외한인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는 있습니다.
조금은 서투르고 잘못된 내용이라도 답변자는 용인하는 자세와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답변자의 의견에 반한다고 함부로 유학자의 유식한 표현으로 회원을 대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과하였다면 사과 합니다.]?
본인이 선생께 ‘무슨 콤플렉스가 있느냐?’ .
‘이상한 사람 아냐?‘라는 표현을 하였다면
이 말이 과한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줄도 몰라
’과하였다면 사과 합니다.‘라는 말을 합니까?
=제가 표현이 과하였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유학을 하고 많이 알면 무엇 합니까?
이 기본 적인 자세도 서투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께 협박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그렇습니다.
본인에게 협박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본인이 느끼기에 아니 제 삼자가 볼 때도 위협적인 말이었습니다.
▶ [다만 가어를 인용하시려면 그 대목에 대하여 살펴보셨을 터인데
이미 공부자께서 하품인 까닭을 말씀하신바가 있었습니다.]
선생 같은 한문학에 밝은 경우를
한문에 문외한인 본인과 같이 생각하여 그 대목을 살펴보았느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인은 공부자의 가어를 앞서도 말한바와 같이
성균관 홈페이지의 어느 창에서 본 것이고
한문 실력이 없어 해석은 조금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그러한 본인이
공부자께서 복숭아가 하품인 까닭을 말씀하신 바가 있다고 하며
본인이 그것을 알면서 문의한 것 같이 말씀하시나 본인은 전연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공부자께서
복숭아를 하품으로 한 까닭을 물로 씻는 과일이기 때문에 하품으로 한다는
말을 누가 믿습니까?
물로 씻지 않는 과일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씻어서 먹지-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생각하건데 그 색깔과 모양에서 하품으로 정한 것 같지 않습니까?
답변을 그렇게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는데
문의자가 문의의 내용과는 별개로 올린 소개 글을
자기의 의사와 반한다고 그렇게 함부로 유학자랍시고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 [그런데 난데없이 성호 선생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그러나 복숭아를 제사에 쓰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라 가어를 반박하시는 결론을 내리시셨습니다.]
본인이 문의한 내용은 ‘복숭아가 왜 하품으로 하느냐?’ 였고
선생께서 답변을 주셨습니다.
성호 선생의 글은 제사상에 복숭아를 놓아도 좋다는 글이었고요.
내용이 다른데 왜 그렇게 선생께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는가가 궁금하였는데
아래의 글을 읽고 이해를 하려 합니다.
본디는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복숭아가 귀신을 쫓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호 선생의 글이 새롭게 여겨져서
선생의 답변에 감사하다는 인사에 곁들여 소개의 글로 올린 것뿐입니다.
▶[선생께서 성호선생이 실학자인지를 모르시고
그 글을 인용하셨다면 거듭하여 사과 드립니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선생께서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 이유를요.
성호 선생은 ‘세상이 변하는 만큼 지식도, 경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조적으로 유교 경전을 해석하는 분위기가 사회를 망친다.’ 고 본 것이네요.
△ C
유교는 한 줄기의 거대한 학문입니다.
각 줄기의 학문에는 거역할 수 없는 독특한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 성원(깨우친 자)들은 자부와 아울러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종교계는 자기 색깔을 변색 없이 유지코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요.
위 말씀 중 답변자 운운하셨는데 이 홈의 관리자는 명륜골선비입니다.
다만 과중한 업무 탓인지 일일이 간섭을 못하고 있을 뿐으로
선생이나 본인이나 유학인 모두가 같은 입장입니다.
얼마 전부터 본인이 시간을 내어 이곳에 출입하는 이유는
현대 실학파(?)가 유교의 본질을 외면하고
왜곡된 속례나 사견의 유포로 근본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미력하나마 단 한마디라도 경서나 선유의 설을 인용 유교의 진실을 알려주려
나섰을 뿐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소견)
문의에 대한 답글이 올라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인터넷에서 본 성호 선생의 글을 곁달아 올린 것이 사건의 시발이다.
성호 선생의 글이 그렇게 답변자를 민감하게 할 줄 몰랐다.
올린 답글의 내용이 삐딱하고 기분 나쁜 투로 변절자 운운.
내가 일부러 답을 구해 놓고서 문의를 한 것이 아니냐? 는 등.
올린자료가 실학자의 글
(성호 선생 글로 공부자는 복숭아는 하품이기 때문에 제상에 올리면 안된다.
라고 하는데 반해 성호 선생은 가능하다고 한 글이다.)이고
답변자는 정통 유학자로 한문학에 관한한 많은 학식을 갖고
봉사차원에서 답변을 해주고 계신 분이시다.
그런데 성호 선생의 글이 상당히 민감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답변자는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답변을 못하면 모를까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유학에 초보인 필자를
유학에 반대하는 사람쯤으로 지레 짐작하고
읽기에 따라서는 혼쭐을 내는 것쯤으로 글을 올렸기에 본인도 좀 세세히 따진 것이다.
마지막 글도 유학자의 긍지를 갖고 말하는 것이다.
실학파가 유교의 본질을 외면하고
왜곡된 속례나 사견의 유포로 유교의 근본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경서나 선유의 설을 인용 유교의 진실을 알려주려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누구나 높이 사 줄만한 정신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라고 해 놓고
언짢은 질문이나 곁가지로 올린 소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변자가 고압적인 자세로 글을 올리면 안 된다.
알아듣는 말로 주장이 있으면 상대를 끝까지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첨언>나무에는 나무들 마다 특별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松' 벼슬을 받은 나무, "柏"잣은 씨앗이 흰색의 의미, 香/棗/柳/桑/藤/檜/...... 등등 나무의 모양이나 씨앗, 나무의 품성 등등의 의미를 갖는 글자로 형성 회의된 글자들이 제자화해 보입니다. "桃" 또한 나무 "木"에 "兆" 로 "조짐이나 점을 친다"는 글자로 형성된 문자 입니다. 그래서 "桃" 또한 "神" 들이 꺼려할 과실이 아닐런지요? 우리말에도 목의 편도선/ 복숭아뼈=복사뼈/복사골=복숭아 도둑골/ 등등 좋지 않은 쓰임. 그리고 꽃이 요염하고 사람의 유혹과 씨는 여성의 성기를 닮았습니다. 이 또한 祭羞에서 꺼려하는 과일을 아닐런지요?
맞습니다. 화려한 살색. 연주황. 붉은 색 등과 생긴모양이 어쩌면 음부를 상기시키는 과일이므로 옛 사람들이 제사 상위에 놓는 것을 꺼려 했을 것이고 그외 수우 종친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내용들도 복숭아를 하품으로 여기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