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시장
서면 칼국수· 돼지국밥집
필자의 학창시절,서면은 우리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격동의 7~80년대를 살던 억눌린 청춘들이,젊음의 열정을 맘껏 분출했던 곳.
여러 다양한 극장들이 있었고,디스코나이트 클럽이 성업했으며,싸고 맛있는 먹거리들로 넘쳐 나던 곳.
때문에 밤이 되면 젊은 날을 노래하는 남녀들로 서면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시절 서면의 골목골목을 삼삼오오 몰려다니다 보면 쉬이 배가 고팠다.
'쇠도 집어 삼킨다'는 그 젊은 뱃속을,따뜻한 정으로 든든하게 채워주는 곳 또한 많았다.
그 중 유명한 곳이 서면시장의 칼국수집과 돼지국밥집들이었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에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던 곳.
특히 학생들에게는 곱빼기로 얹어주는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던 곳이었다.
이 서면 시장을 찾았다.
판자촌의 가설시장을 현재의 건물로 지은 것이 1969년도이니,시장 개설 36년째가 되는 셈이다.
칼국수와 돼지국밥은 그 이전 가설시장 때부터 장작불에 가마솥 걸어놓고 팔았으니
시장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
칼국수집이 40여년,돼지국밥집이 60여년째 영업을 하고 있어,음식에 배어있는 세월의 맛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시장건물 안에 위치한 칼국수집들은 아직도 목로의자에 앉아 먹게끔 되어있었다.
그 옛날 학창시절의 향수를 물씬 떠올리게 한다.
스무여 집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성미집,자야집,가야집,왔다집들이 그 원조인 셈이다.
우선 칼국수를 한 그릇 시킨다.
"옛날 맛 그대로지요?"하고 물으니
"하이고, 그라먼요. 내가 이 장사를 40년을 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가 앞에 놓인다.
양은 옛날처럼 푸짐하다.
그런데도 모자라면 더 먹으란다.
구수한 멸치국물 냄새와 참기름이 조금 들어간 양념장 냄새,향긋한 파 냄새가 어우러져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한 젓가락 집어 올려 훅훅 분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와 닿는다.
한 입 우겨넣는다.
당면도 섞여있어 씹는 맛이 일품이다.
오동통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영락없이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손칼국수 맛이다.
국물을 그릇째 후후 불어 마신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오히려 시원함을 전해준다.
멸치국물의 깊고 시원한 맛에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땀을 닦으며 시장 건물을 나오니,시원한 장대비가 쏟아진다.
시장골목으로는 돼지국밥집들이 쭉 들어서 있다.
3대째 내려오는 돼지국밥집은 원래 10여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5집만이 영업을 하고 있다.
비는 쏟아지는데 무쇠솥에서는 한창 뽀얀 육수가 끓어오르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고기를 준비하랴 구수한 국물에 밥을 토렴하랴 분주하기만 하다.
순대와 섞어 수육 한 접시를 시킨다.
수육의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가 구미를 당긴다.
양념장에 살짝 찍어 한 입 넣는다.
야들야들한 수육이 씹기도 전에 그냥 녹아내린다.
순대도 한 입 베어 문다.
찹쌀을 넣어 만든 탓에 구수하면서도 끼니가 되는 음식이다.
뽀얀 국물을 떠먹는다.
유백색의 국물이 입안에서 착 감긴다.
고기 육수의 단 맛에 새우젓의 개운한 맛이 더해져 그저 그만이다.
그래서 부산의 돼지국밥은 시원하니 좋다.
칼국수에 수육까지 먹고 앉아 있자니 그 시절의 순박했던 시장 정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래 이제 서면에 가면,서면 뒷골목의 인정스런 사람들을 찾아보자.
그들이 아직도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있음도 기억해 두자.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