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자의 영원한 혼용을 위하여
글 박희진/시인
漢字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글전용>의 추세를 야기했고, 급기야 어쩌면 나라와 겨레를
막다른 窮地에로 몰아갈지도 모를 元兇일진대,묵과 못할 일이로다.
내가 먹는 쌀밥과 된장은 내 것이듯, 내가 먹는 빵과 버터는 내 것이다.
내가 입는 저고리 치마는 내 것이듯, 내가 입는 브라우스 스커트는 내 것이다.
그것을 아니라고 우길 사람 있겠는가?
내가 사는 집은 한옥이건 양옥이건, 내가 신는 신발은 짚신이건 구두이건, 그것은 다 내 집이요,
내 신발, 그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겠는가?
무릇 모든 文明의 器具에는 임자가 따로 없다.
갖는 자, 쓰는 자가임자인 것이다.
전화기, 자동차, 냉장고, TV, 콤퓨터 따위에
무슨 인종이나 국적에 의한 所有의 제한이 있을 수 있겠는가?
文字도 마찬가지 .갖는 자, 쓰는 자가 임자인 것이다.
로마字를 자기네 문자로 삼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허다 한가.
유럽은 거의 전부가 아닌가?
영국이나 프랑스 국민이 자국의 고유한 文字가 없다하여
새로 發明해 쓰자는 말 못들었다.
만약 어느 新生 아프리카 獨立國에서 한글을 자기네 文字로 삼겠다면,
그것을 안된다고 간섭할 자격과 권리와 까닭이 이 나라에 있겠는가?
한국인은 자고로 漢字를 써왔다.
무려 이천수백년 동안이나 사용해 온 것이다. 그리하여 찬란한 文化를 꽃피웠다.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文字,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血肉,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歷史,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傳統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山河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의 精神,
그런데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다.
漢字는 우리 것이 아니라니?!
그것은 마치 우리의 모가지를 우리 것 아닌 오랑캐의 것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칼로 베어버리려는 짓과 같다.
漢字 배려의 愚擧로 말미암아
보라, 지금 우리, 배달겨레는
얼마나 위축되고 쇠약해져 있는가를.
얼마나 빈혈로 허덕이고 있는가를.
만약 끝끝내
<한글전용>이 現實化 된다면, 다음의 가공할 엄청난 결과를 우리는 自招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국의 歷史는
도저히 半萬年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한글전용>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歷史와 傳統과 文化를 斷絶해 버렸나니.
우리는 뿌리없는 떠돌이 신세로다.
우리는 골이 빈 허수아비 꼴이로다.
족보는 무슨 빌어먹을 놈의 족보, 그것은 한낱
불속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휴지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신생국가.
한국의 역사는
이제 겨우 근백년을 헤아릴 정도.
2
哲學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國史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괄호 안 漢字가 얼마나 많은가.
經濟學事典을 펼쳐 보아라.
社會學事典을 펼쳐 보아라.
法學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人名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宗敎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國語大事典을 펼쳐 보아라.
괄호 안 漢字가 얼마나 많은가.
또 무슨 사전, 무슨 사전, 무슨 사전 사전이란 사전은 모조리 찾아 보라.
괄호 안 漢字가 얼마나 많은가.
괄호 안 漢字가 그토록 많다는 건 결국 漢字廢止는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한자 없이는 개념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漢字없이는 학문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漢字 모르고는 수박 겉 핥기란 것.
결국 漢字모르고는 눈뜬 장님 된다는 것.
., 새삼 여기서 엄숙희 묻노니, 괄호 안 한자는 누굴 위해 있는가?
이 나라의 모든 사전이란 사전은
누굴 위해 있는가?
누굴 위해 있는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선가?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
이 나라, 이 겨레의 미래를 좌우할, 이 땅의 젊은이들,
우리의 新世代를 위해서는 아니리라.
한글 밖엔 모르는 新文盲世代를 위해서는 아니리라.
한글 世代를 위해서는 아니리라.
3
여기 한• 중 •일 세 나라의, 대단히 똑똑하나,
각자 제나라 말밖엔 모르는,
세 청년이 한 자리에 모였것다.
그런데 이것 봐라.
中 • 日 두 청년은 한자를 매개로 대뜸 意氣 상통했다.
자못 심각한 표정도 지었고 會心의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서로 찬탄의 시선도 던졌고 우애를 다지는 악수도 나누었다.
한국 청년만이 벙어리 냉가슴 한국 청년만이 개밥의 도토리
그는 漢字를 몰랐기 때문.
中 • 日 두 청년은 은근히 눈짓으로,
또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한국 청년은 골이 비어 있어 상대가 안된다는 斷案을 내렸다.
韓 • 中 • 日 세 나라는 자고로 漢字文化圈에 속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유독 韓國만이 그 文化圈에서의 逸脫을 선언했다.
<한글전용>의 그릇된 고집으로 본의 아닌 愚民化를 이룩한 꼴이다.
본의 아닌 鎖國을 초래한 꼴이다.
극동의 이름난 세 마리 호랑이 중 두 마리는 여전히 호랑이인데,
한 마리만 슬그머니 고양이로 바뀌었다.
文化圈 밖의 국제 孤兒로 轉落하고 만 것이다.
오오 불쌍한 우리의 한글 世代!
4
漢字는 表意文字, 글자 하나하나에 세계가 들어 있다.
사물의 構造와 魂이 들어 있다.
天에는 하늘이, 笑에는 웃는 얼굴이 보이고,
水에서는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薔薇에선 장미꽃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마저 풍기는 듯.
仙은 사람이되 내에서 사는 사람.
詩란 言語의 寺院임을 알 만하다.
왜 우리는 錦繡江山인가 ?
자구상에서도 특별히 이 나라는
山紫水明의 絶景을 숱하게 지녔기 때문,
神들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
예컨대 이 나라의 山 이름들만이라도
음미해 볼 일이다.
白頭山,金剛山,妙香山,道峯山,水落山,
雪獄山,青籠山,鳳凰山,瑞雲山,俗離山,
萬壽山,太白山, 天馬山 望海山
(더 늘어놓을 필요는 없으리) 글자만 보아도 절로 神仙이 되는 것 같구나야.
命名의 신비로움,
漢字가 지닌 含蓄性과 表現美.
그것은 다음 寺刹의 이름들을 보아서도 알만하다.
法住寺,海印寺,華嚴寺,佛國寺,月精寺,禪雲寺,松廣寺,白蓮寺,無為寺,定慧寺,傳燈寺,倒彼岸寺,圓覺寺,開雲寺,
(더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글자만 보아도 홀연 開悟하여 解脫할 듯 싶구나야.
그런데 이것들을 만약 表音文字, 한글로만 표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뜻은 달아나고 소리만 남는다.
魂靈은 빠지고 껍질만 남는다.
神秘는 증발하고, 빛깔은 퇴색하고, 감동은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기호만 남는다.
意識은 닫히고, 聯想은 끊어지고, 高次元에 노닐었던
想像의 날개는 무참히 부러져서, 二次元으로 추락하고야 만다.
5
道峯山 아래 방학동 주민들이 신선이 되자면, 鶴을 놓아주는 동네라는
放鶴洞의 漢字를 되찾아야 되는 건데, 방학동 주민들은 관심이 없다.
어찌 방학동 주민들 뿐이랴. 서울 시민 전체가 의식이 없다.
한글 간판에만 둘러싸여 살아선지, 한글 인명, 지명, 공문서에만 익숙해져서인지
한국민 전체가 무감각인 것이다.
비록 시멘트 콘크리트로나마
복원된 景福宮 正門에다 ‘光化門’ 아닌
'광화문' 편액을 달았을 때도 또한 여태껏 그 꼴인데도,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은 무심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라
서울에서도 제일로 치는 자리,
人旺山을 옆에 두고 남산을 바라보는 北岳山 아래, 오백년 朝鮮王朝 社稷을 상징하는 景福宮이 있는 것을,
그런데 꿀꺽 이 땅을 삼켜버린 간악한 日帝가 景福宮 正門인 光化門을 헐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侵略의 牙城, 日本 日자 모양의 朝鮮總督府 청사를 지어, 景福宮을 완전히 차단해버렸다.
생각해보라 그 끔찍한 伏魔殿이 해방후엔 중앙청이 되더니, 오늘날엔 중앙박물관으로 둔갑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6• 25때 大破 안 된 것이 恨이로세)
각설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나마 광화문을 복원한 건 대단히 잘 한 일.
하지만, 아뿔사, 그는 어이없이 汚點을 남겼다.
景福宮 正門에 편액을 다는데, ‘光化門'이 아닌 ‘광화문’이 무엇인가?!
그렇게 되면
그걸 復元이라 할 수는 없나니, 祖上의 얼굴에다 먹칠을 한 셈이다.
생각해 보라
세계 어느 곳에 "광화문'이란 문이름이 있겠는가.
"빛이 화해서 된 문'이라니, 세계 어느 곳에 그런 문이 있겠는가.
한국의 수도, 서울을 빼놓고는 세계 어디에도 그런 문은 없는 것을.
光化門,
光化門, 光化門 만세로다.
앞으로 빛온, 세계의 빛온, 어둠과 비참과 분쟁을 몰아내고 평화와 희망을 가져올 빛온,
통일 취보의 황홀한 수도, 서울의 한복판,
光化門에서
光化門에서
온 누리에로 퍼져 나가리라.
이는 결코 말의 비약이 아니라네.
듣기에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네.
한낱 詩人의 환상이 아니라네.
기어이 실현될 우리의 지표라네
要는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들,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한다는 것,.
좋은 時運을 놓치지 말자는 것.
잘못은 과감히 시정해야 된다는 것.
6
우리나라 글자는 본래 둘이기에, 한글과 漢字를 둘 다 배워서
자유롭게 混用해야, 비로소 올바른 語文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한글만 알고 漢字는 모른다면?
漢字만 알고 한글을 모른다면?
그건 다 극단으로 치우친 경우, 한국인으로서는 반쪽에 불과하다.
兩極은 피해서 中道를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사람의 길일진대,
그런 비관적 선택을 마다하고 한쪽에 치우칠 까닭이 있겠는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건 사람들이 저마다 쉽게 글자를 배우고 익혀, 일
상생활에 편하게 쓰도록 결국 弘益人間의 사랑을 실천한 것.
漢字를 몰아내어, <한글전통)의 세상을 이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오히려 混用을 이상으로 삼았었다.
생각해 보라
漢字는 세계의 으뜸가는 表意文字, 한글은 세계의 으뜸가는 表音文字.
그 양자를 우리는 國字로 삼고있으니 한국은 얼마나 축복된 나라인가 !
한 손으론 表意의 如意劍을 다른 한 손으론 表音의 如表劍을
쥐고 휘두를 때,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는 없으리라.
우리가 探索 못할,
우리가 意識 못할,
우리가 表現 못할,
우리가 體系化시키지 못할,
우리가 훌륭하게 創出하지 못할
어떠한 形而上도 形而下도 없으리라. 어떠한 科學도 醫學도 없으리라.
어떠한 鍊金術도 占星術도 없으리라.
어떠한 철학도, 心理도, 예술도, 종교도 없으리라.
어떠한 사회도, 경제도, 기술도, 정치도 없으리라.
한글과 漢字를 적절히 混用하면, 그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우리 글은 이렇듯, 無所不能 神術을 부리게 되어 있다.
7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특히 한글 世代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을 통감해야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病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거늘, 아니 病者라는 자각도 없거늘, 그들을 그 꼴로 만든 자는 누구인가?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면서도 신문에 나오는 한자도 못 읽는다. 머리가 이만저만 퇴화해 있지 않다.
한글만으로는
意味의 파악력이 薄弱해지기 때문.
수박 걸 핥기로 흐르게 되기 때문.
설사 기민하게 머리가 돌아가도, 그것은 매우 제한된 범위내의 그것도 반복된 훈련에 의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들과 對話를 나누어 보면 안다.
思考의 방식이 얼마나 단순하고 直線的인가를
얼마나 二分法, 黑白論理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아량과 해학과 섬세성의 지독한 결여.
한마디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정서도 몹시 메말라 있어, 매사에 저돌적 激烈性을 발휘한다.
오오 가련한 우리의 한글 世代!
그들을 그 꼴로 만든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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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왕좌왕 방황과 실수를 일삼아선 안되겠다.
겨레의 魂靈과 眞理의 이름으로, 겨레의 文化와 創造의 이름으로, 지금은 단호한 결단을 내릴 때.
즉시 漢字 교육을 실시하라. 선택이 아닌, 必須 과목으로, 국민학교부터 중• 고교 졸업까지
千五百字에서 二千子 정도는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의무가 있나니.
즉시 漢字 교육을 실시하라.
선택이 아닌, 必須 과목으로.
한글과 漢字의 적절한 混用으로
한글과 漢字의 영원한 混用으로
우리는 기필 겨레의 活力을 되찾게 되리니,
길이 이 땅에 세계에 冠絶하는 文化를 꽃피우자.
이글은 한국논단19 92년 6월호에 실린 글인 데 본지에 전재합니다.- 편집자 주
199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