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은 멋대로 살던 남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사랑"
뇌사장기기증인의 유가족모임(도너패밀리)은
자녀사별, 부부사별, 부모사별, 형제사별 같은
4부류의 상실가족들의 모임이다. 외국에서는
부부사별을 인생의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2011년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고 김화석(왼쪽) 씨와
아내 신광희 씨가 1995년 신혼여행 갔던 제주도 사진>
■ 5명에 새 생명 주고 떠난 김화석씨의
아내 신광희씨 [살리고 떠난 사람들]
남편 급히 운전하다 교통사고
뇌에 파고든 뼈 탓에 뇌사 판정
가족,한달 고민 끝에 기증 결정
생전 “장기 기증 의미 있는 일”
꿈에 남편 나온 날엔 장사 잘돼
1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신광희(59) 씨는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의류 회사에서 근무하던 신 씨는 같은 회사
다른 부서의 김화석(사망 당시 46세) 씨를 만나
결혼했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던 남편은
애정 표현을 하는 일이 잘 없었다. 젊었을 때는
이른바 ‘조직 생활’을 했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 나쁘게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신 씨는 “워낙 ‘마이 웨이’
성향이 강해서 결혼 초반에 속을 많이 썩였는데,
제가 ‘사람’ 만들어 놓았죠”라며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성격만큼이나 무뚝뚝하게 세상을 떴다.
2011년 가을, 급히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난
김 씨는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면서 두개골이
부서졌다. 뇌 안으로 파고든 뼈 탓에 뇌사
판정을 피할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외관상으로는 상처가 많이 아물면서
가족들은 깨어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에둘러 말하는 의료진의
표현을 통해 신 씨는 남편의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 달 남짓을 고민한 끝에 신 씨네 가족은
남편이자 아빠 김 씨의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김 씨가 살아 있을 때 딸과 함께 일가족이 장기
기증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던 영향이 컸다. “아직은 살아있다”며
시댁의 반대가 심했지만, 딸 아이의 강력한
의사로 설득에 성공했다. 건강했던 김 씨는
신장·각막·간 등 총 5개 장기를 기증할 수 있었다.
장기기증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남김없이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신 씨는 “젊어서는
주변에 폐도 많이 끼쳤던 남편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도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는
이 세상을 향한 애정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가는 순간까지 세상에 마지막 사랑을 남겨둔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신 씨는 아직도 남편과의 신혼여행을 회상하곤 한다.
제주도에서의 2박 3일, 남들이 부러워할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결혼 생활 중 남편이 가장
부드러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꿈에 나타나는 남편은 신혼 때 모습
그대로다. 수선가게를 운영하며 홀로 딸을 키우는
신 씨는 남편이 꿈에 다녀간 날엔 장사가 잘 돼
두 배로 기쁘다고 했다. “여보. 그곳에선
화내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살아.”
<문화일보, 전수한 기자... 2024.4.11. 기사인용>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유가족모임
(도너패밀리)을 위하여 예우사업과
심리지원상담 등을 후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