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의 길거리나 식당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넴쭈어(Nem Chua)에서 벗겨낸 바나나잎들이다. 넴쭈어란 다진 돼지고기에다 마늘과 야채, 양념 등을 섞은 다음 바나나잎에 싸서 숙성시켜 먹는 베트남식 소시지다.
길거리나 기차 내에서도 판매할 만큼 베트남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음식은 생돼지고기가 재료지만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호주 로열멜버른공과대학(RMIT)의 연구팀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덥고 습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아무데서나 팔리고 있는 이 국민 간식에 주목했다.
베트남식 소시지인 넴쭈어에서 천연 식품방부제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합물이 발견됐다. ©RMIT University
그 결과 연구진은 넴쭈어에서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제균 화합물을 발견했다. ‘플랜태시클린(Plantacyclin) B21AG’이라는 박테리오신이 바로 그것. 박테리오신은 세균이 경쟁 세균을 파괴하기 위해 생산하는 물질이다.
단백질로 구성된 박테리오신은 다양한 종의 세균에 의해 생성된다. 새로 발견된 박테리오신은 표적 세균의 막에 구멍을 형성해 세포의 내용물이 밖으로 새어나가게 함으로써 제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존의 박테리오신 물질들은 이미 식품 방부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박테리오신이 한두 종류의 세균에만 작용하고, 특정 환경 조건에서 안정적이지 않다는 단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20분간 90℃까지 가열해도 안정된 상태 유지
대표적인 예가 1960년대부터 시판된 니신이다.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에서 자연 생성되는 니신은 세균의 세포 성질을 변화시켜 무해하게 만든다. 현재 식품 방부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5억 1,3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니신은 온도 및 pH(수소이온지수)에 매우 민감하다.
이에 비해 넴쭈어에서 새로 발견된 화합물은 니신보다 안정적이다. 또한 식품 가공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 후에도 광범위한 세균에 대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20분 동안 90℃까지 가열된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높고 낮은 pH 수준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화합물은 냉동 상태에서도 살아남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리스테리아균처럼 음식에서 흔히 발견되는 질병 유발 미생물들을 파괴할 수 있다.
왼쪽은 세포막을 가진 살아 있는 리스테리아균이고, 오른쪽은 플랜태시클린 B21AG에 노출된 후 세포막이 파괴된 채 죽은 리스테리아균이다. ©Dr Elvina Parlindungan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식품전문잡지인 ‘프로세스 생화학지(Process Biochemistry)’ 최신호에 게재됐다.
특히 이 화합물은 음식물 쓰레기와 식중독이라는 두 가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기존보다 안전한 천연 식품 방부제를 개발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1년에 약 13억 톤에 달한다. 산업화된 국가에서 이를 처리하기 위한 비용만 해도 연간 약 758조원에 이르며, 농업에서 사용되는 물의 약 1/4을 소비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식중독 문제의 해결책
또한 여기에서 배출되는 탄소 역시 엄청나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담당한다. 유연환경계획(UNEP)의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음식물 쓰레기 발생의 주요 원인은 미생물 오염으로 인한 부패다. 리스테리아나 살모넬라 같은 세균이 일으키는 식중독은 매년 수백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며 임산부와 노인,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연구진은 넴쭈어에서 발견한 새로운 화합물이 음식물 쓰레기와 식중독 문제를 효과적이면서도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올리버 존스(Oliver Jones) 교수는 “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 우리는 넴쭈어 화합물을 산업 규모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올바른 성장 조건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RMIT의 연구원들은 이 화합물을 더 잘 정제하기 위한 방법을 실험하기 시작했으며,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산업 파트너들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MIT에서 박사학위 연구의 일환으로 이 연구에 참여했던 아일랜드 코크대학 APC 마이크로바이옴연구소의 엘비나 파린둔간(Elvina Parlindungan) 박사는 “미래에 이러한 화합물들은 인간 의학의 항생제로도 유용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