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색깔로 성모님을 연상케 하는 꽃들, 수레국화 · 잔대 · 선애기별꽃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색은 주로 파란 색이다. 그런 점에서 꽃들 중에서도 파란 색을 지닌 꽃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성모님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려 왔다. 수레국화, 잔대, 선애기별꽃도 그러한 꽃들이다.
‘성모님의 왕관’이라 불린 수레국화
우리말 이름이 ‘수레국화’인 국화과 수레국화속의 한해살이풀은 서양에서 흔히 ‘학사의 단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콘플라워(Cornflower)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예전에 밀, 보리, 호밀, 귀리와 같이 이삭이 달리는 작물들, 통칭하여 콘(corn)이라 부르는 작물들 사이에서 잡초처럼 자라는 풀이었기에 생긴 이름이다. 유럽 동부와 남부의 농민들은 이 식물을 잡초로 여겨서 보이는 대로 제거하기에 바빴다. 결국 이 식물은 과다한 제초제 사용으로 본래의 서식지에서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의 여러 지역에서는 관상용 식물로 재배된다.
수레국화는 키가 40~90cm까지 자라며, 자연 상태에서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대 끝에서 대개는 짙은 파란색 꽃을 피운다. 더러는 분홍색과 자주색 꽃도 있다. 꽃의 파란색 색소는 프로토시아닌(protocyanin)인데, 이 색소가 장미에서는 빨간색으로 나타난다.
이 식물이 비록 농민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으나, 한편으로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렸다. 사랑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이 꽃으로 사랑의 성패를 점치는 풍습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 남성이 지닌 수레국화가 이내 시들어버리면 그의 사랑은 그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표시로 여긴 것이다. 또한 파란색 수레국화는 20세기 초부터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등지에서 사회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그 뒤로 이들 나라의 나라꽃 또는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파란색 수레국화는 범(汎)독일 국가들의 국가 상징들 중 하나였다. 프로이센의 루이제 여왕이 베를린을 탈출하여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쫓기던 중에 자녀들을 수레국화가 자라는 밭에 숨겼다고 한다. 아이들은 숨어서 자기들의 땅을 지켜 주고 왕국을 위해 싸우는 프로이센 국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레국화 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었는데, 이에 몰두하느라 소리를 내지 않은 덕분에 모두 무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레국화는 프로이센, 독일, 오스트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근에 에델바이스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1백 년 전쯤에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의 왕이던 투탕카멘의 지하 묘지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곳에 약 3500년 전에 수레국화꽃으로 만든, 그때까지도 손상되지 않은 채인 화관이 있었던 것이다.
투탕카멘 왕의 일화에 앞서, 그리스 신화에도 수레국화는 등장한다. 반인반마(半人半馬) 종족인 켄타우로스 족의 한 사람으로 의술, 궁술, 예술에 능한데다 예언 능력까지 지닌 현자로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숱한 영웅들을 가르친 스승인 케이론이 히드라의 맹독을 바른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았으나, 수레국화의 강력한 즙으로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꽃은 ‘보호’와 ‘치유’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다. 그 꽃잎을 끓는 물에 담가 우린 것을 사람의 눈꺼풀에 바르면 숨을 헐떡이는 증세와 피부나 점막이 빨개지는 발적 증세를 완화하거나 진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레국화의 꽃을 보면서 성모님께서 쓰시는 왕관을 연상했다. 그래서 아예 ‘성모님의 왕관’(Mary’s Crow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성모님의 종(鐘)’이라 불린 잔대
흔히 잔대라는 이름이나 사삼(沙蔘)이라는 약명으로 우리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초롱꽃과 잔대속 식물이 있다.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이용되는 여러해살이풀인 이 식물은 약 50여 종이나 되는데, 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두터운 다육질 뿌리에서 줄기가 나와 곧게 자라고, 이 줄기에 종 모양, 깔때기 모양, 관 모양에 끝이 5개로 갈라진 꽃이 달려서 아래를 향해 핀다. 꽃의 색은 대부분 파란색이다.
이 식물은 서양에서는 캄파눌라(Campanula)라고 불리는데, 이는 ‘작은 종’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또는 꽃의 생김새가 종(鐘)처럼 생겼다고 해서 ‘종꽃’(Bellflower)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비너스의 거울’(Venus’s-looking-glass)이고 불리기도 한다.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만을 비춰주는 마법의 거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울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거울이 가난한 소년 목동의 눈에 띄었다. 목동은 자기가 주운 거울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미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비너스는 큐피드를 보내어 그 거울을 가져오게 했다. 돌려주기를 거부하는 목동을 보고 다급해진 큐피드가 목동의 손을 쳤다. 그 순간 거울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떨어진 곳마다 아름다운 캄파눌라가 돋아나와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 모양으로 생긴 이 꽃을 보고는 ‘성모님의 종’(Lady Bell)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성모님의 눈’이라 불린 선애기별꽃
선애기별꽃은 캐나다 동부와 미국 동부 등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꼭두서닛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이 식물은 우리말로 푸른삼백초라고 불리기도 하고, ‘산지에서 파란 꽃을 피우는 식물’임을 뜻하는 ‘마운틴 블루잇’(Mountain Bluets), ‘하늘빛 파란 꽃’이란 뜻의 ‘애주어 블루잇’(Azure Bluet), 꽃의 모양이 퀘이커 여성 신도들이 쓰던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다거나 또는 꽃의 옅은 색깔이 퀘이커 여성 신도들이 흔히 입는 드레스 차림에서 드리우는 그늘의 색과 비슷하다 해서 붙였다는 ‘퀘이커 여성신도들’(Quaker ladies)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식물은 그늘진 곳의 축축한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며, 20cm 정도 높이로 자란 줄기에서 한 줄기에 한 송이씩 꽃을 피운다. 꽃의 색은 흰색이나 분홍색도 있지만, 대개는 단아한 느낌의 파란 색이다. 그리고 지름 1cm 정도 크기로 노란색인 꽃의 중심부는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꽃잎은 4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꽃을 보면서 성모님의 눈동자를 연상했나 보다. 그리하여 ‘성모님의 눈’(Madonna’s Eyes)이라고 불렀다.
전례 탐구 생활 (14) 말씀을 듣고 빵을 나누기 전에 해야 할 일
성찬례는 참회하는 사람이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고 그를 회개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주님의 현존 선언 다음에,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기에 앞서, 잠시 침묵 가운데 우리가 죄인임을 자각하고 고백하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 참회 예식은 신자들이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기에 합당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자기 죄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세리(루카 18,13)와 같은 마음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사실 꼿꼿이 서서 스스로 죄인들과 같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루카 18,11)은 주님의 식탁에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은 벌이 아니라 새로운 깨끗함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고백은 우리의 죄에서 출발하여 영원히 변함없는 하느님의 자비라는 목적지로 가는 기차입니다.
참회 예식은 보통 세 가지 양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거행합니다. 첫째 양식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제 탓이요’ 기도(고백기도)인데, 이 기도는 죄로 인한 낙담으로 할 말을 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향한 희망과 감사로 변화될 수 있도록 교회가 우리 입에 넣어 주는 말입니다. 또 이 기도는 마리아와 성인들께 우리를 위한 전구를 청하고, 아주 옛날부터 전해오는 몸동작(몸을 가볍게 숙이며 가슴을 치는 동작)을 지금도 똑같이 취한다는 점 때문에 천상 교회와 지상 교회의 일치, 교회 전통 안의 일치를 더 강하게 표현해 줍니다. 참회 예식의 둘째 양식은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바룩 3,2; 시편 85,8 참조), 잘 사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간결함이 참회 예식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고 전례 흐름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참회 예식의 세 번째 양식에는 주님 또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바치는 다양한 형태의 청원 기도가 등장합니다. 이 기도문들은 꼭 사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또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습니다. 또 그날 전례나 축일에 맞게 바꿀 수 있습니다.
미사 전이나 도입부에서 다른 예식이 거행될 때 참회 예식은 생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일(특히 부활시기)인 경우에 성수 예식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성수 예식을 통해 우리는 세례 때 시작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곧 하느님과 이웃을 우리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미사 시작 때 물을 축복하고 뿌리는 예식은 세례와 성찬례가 이루는 이러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참회 예식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거행되고, 또 가끔 생략된다고 하여 그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에 예물을 바치기에 앞서 형제들과 화해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권고(마태 5,23-24)와 성체성사에 참여하기 전에 각자의 양심을 성찰하라는 바오로의 경고(“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1코린 11,28].)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러한 참회의 차원이 없는 성찬례는 그 가장 심오한 차원들 가운데 하나가 빠진 성찬례입니다.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자아 연민의 태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앞에서 진리 안에 머무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를 고백하게 되고,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찬미와 감사의 자세를 갖추게 되고, 마침내 올바른 양심성찰의 도움으로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성전 개념의 신학 작업과 성경 언어의 변화
3. 성전 개념의 신학 작업
성전이 구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면,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예수님에게 집중되었으며, 바오로 사도에 의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믿는 이로 확대되고 이 믿는 이들의 집회 공동체인 ‘교회’로 발전한다. 이러한 신학 작업 과정은 참된 성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구약의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은 그분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곳으로, 성경에서는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 의식과 기도의 중심지였고 그들의 신앙에서 강력한 상징적 구실을 했다. 구약의 예배 체제에서 성전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며 그분과 만남의 장소로서, 인간은 희생 제사로써 하느님께 다가가며 하느님께서는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고 기도에 답하신다(탈출 25,22; 2역대 6 참조).
성전을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으로 강조한 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한 충실성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유일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를 드러내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성전의 성격은 예수님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성전은 공간이 아닌 예수님의 몸으로 바뀐다
성전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비유적으로 쓰인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요한 복음사가는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2,21)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새롭고 결정적인 성전으로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이로써 옛 성소는 그 신성한 성격을 잃어버려 더는 하느님 현존의 상징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더는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이 아니며 이제부터 믿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요한 4,21-24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 하느님과 인간을 영원히 화해시키는 희생 제사를 지내셨고 그리하여 그분 스스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성소가 되셨다(히브 9-10장 참조).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를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로서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으로 해석하는 신학 작업을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자 각자도 성전이다(1코린 3,9.16-17; 6,19; 2코린 6,16 참조). 예수님께서 몸소 세우셨고(마태 16,18 참조) 그분을 모퉁잇돌로 하여 세워졌으며(에페 2,20 참조), 그리스도의 몸 자체인 교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다.
또한 믿는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1코린 6,15; 12,27 참조)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서 믿는 이들 각자의 살아 있는 인격은 돌로 만든 성전을 대신한다(1코린 3,16 참조). 그리고 교회는 주님을 위한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해 간다(에페 2,21 참조).
어떻게 보면 요한 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했던 예수님의 선포가 교회를 통하여 실재가 되었다고 하겠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4,21).
4. 성경의 언어 변화
현재의 구약 성경은 유다교의 경전인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에서 유래한다. 히브리어로는 ‘토라’(Torah), ‘너비임’(Nebiim), ‘커투빔’(Ketubim)이라고 하고, 줄여서 ‘타낙’(TANAK)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율법서인 토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곧 오경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경이 현재의 모습으로 되기까지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기원전 13세기 무렵에 활동한 모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집트 탈출 사건, 광야에서의 사건들, 시나이 계약 등)이 기원전 10세기 무렵(다윗, 솔로몬 시대)에 글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다양하게 문서화되다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 중에 집중적으로 집대성된다. 토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때는 기원전 5-4세기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0년 정도의 오랜 유배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인은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구어(口語)의 지위를 상실하여 점차 제관들이나 학자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되고, 오히려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히브리어와 함께 사용되던 아람어가 일상어가 된 현실을 맞이했다.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칠십인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이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서부까지 망라한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기원전 2세기 중반까지 헬레니즘 문화가 지중해 지역에 꽃을 피웠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일상어는 아람어였지만, 공식 언어는 그리스어였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화 정책 속에서 헬레니즘화되어 대다수가 히브리어 성경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알렉산드리아의 유다교 지도자들은 기원전 250년 무렵부터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을 위해 그리스어로 성경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세 오경을 번역하고 100년(또는 150년) 동안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 번역 작업을 했다. 이를 ‘칠십인역’(Septuaginta, LXX)’이라고 한다.
로마 제국의 등장으로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된 신·구약 성경 ‘불가타판’
382년 성 다마소 1세 교황(재위 366-384년)은 예로니모 성인에게 신·구약 성경을 쉬운 라틴어, 곧 평민들이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 ‘불가타판’(Vulgata)이 405년 무렵 완성되었다.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는 성경의 언어 변화는 전례에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와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전례 탐구 생활 (13) 주님은 우리와 함께
십자 성호를 그으며 교우들과 함께 성호경을 바친 다음 사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향해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같은 일상의 인사 대신에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성경에서 가져온 세 가지 표현 가운데 하나를 골라 말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2코린 13,14)
·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로마 1,7 등)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판관 6,12; 룻 2,4; 루카 1,28 등)
주교님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대신에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합니다. 이 인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건네신 말씀입니다(요한 20,19 등). 12세기 인노첸시오 3세 교황께서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분명히 하고자 주교와 주교 아닌 사제의 인사를 구별하였습니다.
사제의 인사에 교우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여러 공동체에 보낸 편지의 끄트머리에 이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2티모 4,22, 갈라 6,18, 필리 4,23, 필레 25), 거기서 사도는 주님께서 자신의 편지를 받는 이들과 함께해 주시도록(감상적인 호소가 아닌) 영적인 호소를 하였습니다.
성경의 문맥으로 보건대, 사제가 건네는 인사말과 교우들의 응답은 그 의미가 똑같습니다. 둘 다 “주님께서 당신/여러분의 영과 함께.”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인사와 응답 사이에 대칭과 변화를 주고자 둘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한국어 「미사 통상문」은 “영”을 생략해서 단순히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영”(靈, spiritus)이라는 단어는, 이 인사가 성서적 뿌리를 지니고 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말고도, 그리스도교 전례 역사에서 뚜렷한 용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5세기 어느 저술가에 따르면, 백성의 응답에 나오는 “영”은 사제 개인의 영혼(anima)이 아니라 사제가 안수를 통해 받은 성령(Spiritus)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서품받은 부제나 사제를 향한 대화에만 쓰도록 한정되었고, 「미사 통상문」을 우리말로 새로 번역하면서 이 단어를 그대로 살려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가 언제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이들의 “영”과 함께 있기를 빌어 주었고, 라틴어 「미사 통상문」도 이 단어를 늘 소문자로(spiritus) 표기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해석과 번역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께서 마치 천둥과 번개, 지진이나 폭풍처럼 화려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 ‘침입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 예언자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것처럼(1열왕 19,11-12), 우리는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어 함께 모이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말할 때, 우리는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계신 곳, 곧 하느님의 마음 바로 그 안에 우리도 함께 있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인사로 회중의 진정한 정체성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자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부활을 상기시키는 꽃들, 수선화 · 달맞이꽃 · 개나리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시켜 주는 꽃, 수선화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여느 식물들보다 일찍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식물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수선화다. 수선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스페인과 알제리 등 지중해 연안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생한다. 서양에서는 이 식물을 한때는 대포딜(Daffodil), 나르시서스(Narcissus), 존퀼(Jonquil) 등의 이름으로 부르며 각기 별개의 꽃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교배와 교잡을 거쳐 통칭 수선화라고 불리는 품종이 11가지 주요 범주에 무려 5000가지 이상이나 될 정도로 다양해졌다.
수선화의 학명은 라틴어로 나르키수스(narcissus)이다. 이 이름은 ‘무감각해짐, 멍해지게 만듦’이라는 뜻이 있는 그리스어 나르케(νάρκη)에서 유래한다. 어떤 이들은 이 이름이 수선화의 마약성 향기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수선화를 놓아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머물면 그 향기로 말미암아 이내 두통이 유발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알뿌리의 독성과 관련되어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말한다.
수선화는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 관련되어 전해오는 속설들이며 일화들도 많다.
그리스 신화에는 어느 나무의 요정 이야기가 나온다. 이 어린 요정 에코는 나르시서스를 본 뒤로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르시서스는 신들에게서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를 받았고, 그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울 따위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되는 처지였다. 나르시서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크나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그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에코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요정들의 부탁을 받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자만심 강한 나르시서스를 물결 반짝이는 호수로 유인했다. 그곳에서 나르시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나머지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신들은 네메시스의 벌이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여겼고, 그리하여 그 벌을 바꾸어 나르시서스가 수선화가 되게 하는 것으로 정했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르세포네는 들에서 나리꽃들을 꺾어 모으던 중에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 세계로 끌려갔다. 그는 하데스에게 끌려가면서 나리꽃 송이들을 떨어뜨렸다. 나리꽃 송이들은 땅에 떨어지면서 수선화가 되어서는 페르세포네의 슬픔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찍이 그리스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수선화를 죽음과 관련된 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장례 기간 동안 흔히 수선화 화환을 걸어 두곤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어떤 사람이 수선화를 바라보는 순간에 그 꽃이 아래로 처져 있으면, 그것을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일러주는 징조라고 믿었다. 그리고 아라비아인들은 이 꽃을 최음제로 사용했다.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를 키우는 사람들은 수선화를 재수 없는 꽃으로 여긴 나머지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 했다. 닭이나 오리가 알을 낳고 또 알을 부화하는 것을 수선화가 방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가 검지로 수선화를 가리키면, 그 수선화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미신도 있었다. 또한 중국에는 새해 명절 기간에 수선화의 꽃이 피면 1년 내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수선화를 영국에도 전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수선화의 수액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그릇되게 믿었다. 그러나 수선화의 수액에는 동물들이 그 꽃을 먹지 못하게 막아 주는 치명적인 독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어쨌거나 영국의 앤 여왕은 수선화를 매우 좋아했다. 양탄자, 태피스트리, 옷가지 등에 수선화 무늬를 짜 넣거나 새겨 넣는 섬세한 바느질 작업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앤 여왕은 수선화를 좋아한 나머지 영국 최초의 공공 정원인 켄싱턴 왕궁 정원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웨일즈에서는 수선화를 나라꽃[國花]으로 여긴다. 웨일즈의 수호성인인 성 다윗의 축일인 3월1일 무렵에 수선화의 꽃이 피는 까닭이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수선화를 영원한 삶을 가리키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거는 수선화가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수선화는 봄이면 일찍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그런데 봄은 내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생 또는 새로운 생명과 삶을 의미하는 계절이다. 그런 점에서 소생과 새 생명의 계절인 봄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의 의미와 상징성을 본 것이다. 또한 교회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뒤에 그분의 무덤에서 수선화가 솟아나오고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러기에 수선화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시켜 주는 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수선화를 ‘성모님의 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러 왔다.
부활의 밤을 밝히는 초,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이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귀화식물로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물가, 길가, 빈터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달맞이꽃은 굵고 곧은 뿌리에서 첫 해에는 원줄기 없이 뿌리잎들이 방석처럼 자라고, 겨울을 지낸 이듬해에 뿌리잎들 가운데서 1개 또는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서 곧게 자라고 꽃을 피우는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인 7월부터 줄기의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주로 노란색 꽃을 피운다. 야생 달맞이꽃은 밤에 꽃을 피우는 데 반해, 최근에 도입되어 정원에 화초로 심는 분홍달맞이꽃과 황금달맞이꽃은 낮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낮달맞이꽃이라고 부른다.
달맞이꽃은 17세기 초에 유럽에 관상용 식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100년 뒤부터는 이 식물의 씨앗뿐 아니라 어린잎과 줄기와 뿌리까지 거의 모든 부위가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그에 앞서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 식물을 식용과 약용으로 이용하였다. 서양 사람들은 이 식물의 꽃이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특성을 보고 흔히 ‘밤에 피는 앵초’(Evening Primrose)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꽃의 같은 특성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밤에 불을 밝히는 초를 연상했다. 그리하여 ‘부활절 초’(Easter Candle)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주님 부활을 찬양하는 관목, 개나리
개나리는 이른 봄에 잎이 돋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운다. 그래서 정원이나 공원 조경에 인기 있는 식물이다.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관목인 개나리는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흔히 개나리라고 불리는 식물에는 한국이 원산인 개나리(학명: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와 동북아시아 내륙(중국)에서 자생하는 의성개나리와 당개나리(학명: Forsythia suspensa (Thunb.) Vahl)가 있다. 한국 원산인 개나리는 의성개나리·당개나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처음에는 이 두 개나리의 변종으로 기록되었다가 나중에 변종이 아닌 한국 특산 식물로 기록되었다.
개나리가 서양에 알려진 것은 17~18세기의 일인데, 서양의 식물학자들에 의해서 유럽에 전해진 것은 의성개나리 또는 당개나리였다. 그래서 개나리의 학명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윌리엄 포시스(William Forsyth, 1737~1804)의 이름을 따서 포르시티아(Forsythia)라고 명명되었다.
개나리는 유럽에 소개된 지 오래지 않아서 훌륭한 정원용 관목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그리스도인들과도 친숙해졌다. 게다가 부활시기와 맞물리는 계절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에, 개나리는 ‘부활절 나무’(Easter Tree) 또는 ‘부활절 관목’(Easter Bush)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개나리의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고 기뻐하는 찬양과 환호를 연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