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1-5 야곱이 들은 즉
본문은 야곱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결심하게 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본문 1-2절은
“①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 지라
②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입니다.
1) 야곱은 자기 고향을 열렬히 동경하며 자나깨나 귀향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야곱에게 있는 인내심은 감탄할 만하였습니다. 그 인내는 새로운 계기와 상황이 나타날 때까지 자기 목적을 연기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미덕에도 다소 불완전한 점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좀 더 서둘러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 육 년 간이나 귀환을 연기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성이 다소 보이고 있습니다. 라반이 끊임없이 계약 조건을 변경할 때 마땅히 하직을 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 정도 라반가의 완력과 그로 인한 공포에 싸여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남몰래 도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이제 야곱에게는 자기 퇴거를 요청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였습니다.
야곱이 모은 재산이 라반과 아들들에게 선망 대상이면서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공연하게 그들의 미움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눈을 피해 도주하려고 합니다. 그의 미온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아마 그런 특별한 일에 대한 게으름과도 얼마간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신자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을 선택할 때 전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배경으로 한 나태가 우리를 지체케 할 때마다 우리는 심령의 열성에 부채질하여 온 정열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종에게 있는 나약함을 교정하시고 그 종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길로 진행할 때에 그분께서는 매우 온화하게 재촉하셨을 것입니다. 라반이 만일 친절하고 즐겁게 대접했다면 그의 마음은 편안히 잠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3) 그러나 이제 야곱은 그 반대되는 모양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때때로 자기 백성을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기보다는 악인의 증오와 시기와 악한 의도에 그대로 내어 맡겨 줌으로써 그들의 구원을 더 잘 확보하여 주십니다. 야곱의 장인과 그의 아들들은 야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반대하였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야곱에게는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 더 유익하였습니다.
그들이 야곱을 총애했더라면 그가 하나님의 복을 빼앗겼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에서 땅에 대한 애착과 안일의 위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땅에 속한 것이 풍부하면 하늘에 속한 복에 대한 망각이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경에 빠지거나 세상사람에게 총애를 전혀 받지 못할 때는 그것이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일깨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증오와 위협과 수치와 비방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 갈채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한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4) 또 우리는 라반과 그 아들들이 야곱에게 행한 몰인정도 주목해야 됩니다.
그들은 마치 야곱에게 약탈이라도 당하듯이 내내 불평합니다. 이들같이 하나님과 하늘 보화에 희미한 자들, 곧 인색하고 욕심 많은 자들은 자기들이 다 누리지도 못하는 온갖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망상증으로 스스로 항상 괴로워합니다. 그들이 가진 탐욕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번영하면 그들은 공연히 자기들이 그들 때문에 궁핍해지기라도 하는 듯이 괴로워 하게 됩니다.
그들은 야곱이 재산을 정당하게 획득했는가 부당하게 취했는가는 깊이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것이 자기들한테서 유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화를 내고 시기합니다. 라반은 앞에서 야곱이 옴으로써 자기가 부유하게 되었고 심지어 야곱 때문에 여호와의 복을 받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여기서 불평하며 라반 자신도 야곱이 동일한 복에 동참자가 된 것을 보고 상심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5) 여기서 우리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탐욕이 갖는 맹목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사람이 지구를 다 차지했을 경우에 지구 하나를 더 갖고 싶어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탐욕을 만 악의 뿌리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을 삼키고 싶어하는 자들은 표리부동하고 잔혹하고 은혜를 모르며 모든 면에서 부정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라반의 아들들은 혈기 방장한 연륜 때문에 성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참지 못하고 속상한 것을 폭발시킵니다. 거기에다가 그 아비는 좀 더 노련하여서 마치 교활한 늙은 여우처럼 침묵을 지키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본문 3절은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입니다.
여기서는 경건한 사람 야곱이 겁 많고 약한 모습이 보다 잘 드러납니다. 야곱은 자기 장인이 모종의 악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새로운 계시로 힘을 얻기까지는 한 발도 내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몇가지 사건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그에게 촉구하십니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비록 주께서 역경을 통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에 전념하도록 우리를 유도하시더라도 직접 말씀을 통해서 자극이 수반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유익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점에서 버림을 받은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 악에 마비가 되거나 맹렬히 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외면적인 일을 통해 전달되는 가르침에 의해서 유익을 얻으려면 우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분이 쓰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비춰 주시기를 간구 해야 합니다.
모세의 의도는 주로 야곱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 아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려주려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땅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주신 기업으로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야곱은 하나님 음성을 통해서 훈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말씀하신 그 음성은 비록 이삭이 나그네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 땅의 상속자요 주인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땅에서 묘지밖에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소유라고 굳이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 나타내시는 비유방식으로 선언하시는 의미입니다.
3. 본문 4절은
“야곱이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 있는 들로 불러다가” 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내들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자기 의도를 설명하고 자기를 따라 도주하도록 권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좋은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의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기 계획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사실상 야곱이 추진하는 계획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로 맹목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아비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인들을 먼 곳까지 호송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알지 못하고 또 그 여행은 미지의 여행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기 보호를 추구하느라고 남편을 원수들에게 밀고할지도 몰랐습니다.
야곱은 이런 점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럿이 모이면 용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너무 예상 밖으로 생겨난 일에 당황한 나머지 우선 자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부부간에 있는 신의도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주 초지일관으로 행동하여 좋은 남편과 가장의 의무를 못다 하느니 스스로 위험을 선택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만일 아내들이 그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쩔 도리 없이 혼자 떠나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주 바람직한 일들을 허락해 주셔서 온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항상 싸움질로 온 집을 요란하게 하던 아내들은 이제 거리낌없이 그와 함께 길을 떠나겠다고 동의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야곱 가문에 내리신 은총의 한 부분입니다.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의무를 모두 이행하고 그가 명령하신 것이면 무엇이든지 피하지 않을 때 우리로 하여금 극히 의심스러운 일에서도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야곱은 아내들을 자기가 있는 들로 불러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그가 얼마나 불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자기 아내들과 편안히 집에 거하는 것은 인생의 주요한 즐거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도 연만했고 많은 노동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내의 봉사를 받을 필요성이 더 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떼를 감시하기 위해 가설한 오두막 집에 만족한 체 아내와 따로 떨어져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라반과 아들들에게 조그마한 공평심이 있었다면 시기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4. 본문 5절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식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 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입니다.
특별히 5절 중에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 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먼저 야곱은 자기가 순전한 사실을 말합니다.
② 또 한편으로는 장인이 했던 불성실을 탓합니다.
③ 그런 다음에 야곱은 하나님만이 자기를 번영케 하신 장본인이라고 증언합니다(5, 7, 9).
이렇게 말한 것은 라헬과 레아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함으로써 보다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짧은 기간 내에 매우 부유하게 된 데 대해서 말하여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의심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가 부지런한 자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 아내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을 호소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증인으로 요청하고 함께 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가는 게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