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나무를 심고 (창세기21:22~34)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오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란다. 어느 교회에서 신학교 교수님을 모시고 설교를 들었다. 좀 어려운 말씀이어서 그랬는데 예배후에 팔십 몇 먹은 할머니 권사님 한분이 인사를 하면서 아, 오늘 말씀에 은혜 많이 받았다. 목사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어떤 말씀이 재미있었느냐고 하니까, 목사님이 소꼭지 저꼭지라고 자꾸 말했잖아요 그게 재미있고 은혜받았다,, 무슨 말씀이냐니까 아 소꼭지 저꼭지라 했잖아요? 그래 생각해 보니까 소극적.. 적극적.. 이라는 말을 소꼭지 저꼭지로 알아듣고 웃기고 재미나다고 생각했던 것... 웃기면 은헤받았다고 하지 않나? 이 이야기 웃겨요? 그러면 됐지.. 은혜, 벌써 은혜속으로 들어간다..
은혜스런 이야기 하나 하자면 지난해 12월 31일 미국의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흥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2022년 세계강대국(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 순위를 발표했던 것이다.
1위는 작년과 같이 미국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 경제·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하며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 등 대중문화를 주도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2위였고 러시아는 천연자원이 압도적이었다. 4위와 5위는 독일과 영국이었다. 작년과 변함이 없었다.
6위는 한국이 차지했다. 한국은 작년에 8위였다. 일본은 작년에 6위였다가 8위로 내려섰다. USNWR은 한국은 전년 대비 2단계 상승했다며 한국의 첨단기술, 방탄소년단 등, K팝과 문화, 서비스 기반 경제는 성공 사례가 됐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자료를 유심히 보면 일인당 소득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큰 트라우마로 여기고 시간만 나면 일본에게 사과해라.. 배상해라.. 하지 않나? 우리가 더 잘 살면 그것이 가장 완벽한 복수인데.. 우리가 일본을 앞서면 사과해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이삭이다. 이삭에겐 이스마엘 이라는 배다른 형이 있었다. 젖 뗄 무렵 잔치를 했는데 잔치자리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 아이를 내쫓아라...가정불화로 전전긍긍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사라 말대로 해라..결국 이스마엘과 하갈은 가정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생업에 소중한 샘물을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겨 생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얼마 후에 우물을 빼앗은 블레셋 왕과 장관이 와서 사과를 하고 내가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자기의 후손을 선대해 달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우물을 돌려받고 피차 앞으로는 평화롭게 지내기로 합의하여 언약을 맺었다.
가정불화와 생업에 위기를 겪다가 하나님이 해결해 준 후, 아브라함은 에셀나무 한 그루를 우물 옆에 심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오늘의 성경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란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기념으로 나무를 심은 것은 이곳 밖에 없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것이 중요하니까 성경에 기록했다. 나무를 심으면 심은 뜻이 있다.
송강 정철의 한시에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만 한줄기 밝은 달이 빈 가지에 걸려 있네.’
벽오동을 심은 이유는 봉황을 보기 위한 것이다. 벽오동은 봉황이 깃드는 나무이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는 전설속의 새이다. 봉황은 왕을 상징하고 선비들이 벽오동을 심는 것은 임금이 자신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면서 서원 뜰에 심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어떤 영적인 뜻이 있을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에셀나무를 심었다. 가정불화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 빼앗겼던 우물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에셀나무를 심었다.
에셀나무는 위성류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기 어렵다. 이 나무가 가나안과 사막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시골에 흔히 몇백년 된 느티나무를 볼 수 있는데 느티나무의 한자어가 괴목이고 보통 신목이라 한다.
아브라함 때에는 에셀나무가 신목이었다. 거대하게 자라고 사막에서도 죽지 않는 나무다. 뿌리가 땅속 30m나 내려간다. 그래서 땅 밑의 물로 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나무라 생각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은 은혜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몸이 병들고 힘들 때는 울고불고 하나님께 매달리지만 몸이 낫고 나면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오래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돈이 없었다. 생각 끝에 그는 거부(巨富)인 ‘바턴’ 씨를 찾아가서 2천불을 꾸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빌려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바턴 씨의 주위 사람들은 경력도 없는 그에게 담보나 후원자도 없이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바턴 씨는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삼아 2천불을 빌려주었다. 과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그 돈을 갚았다.
이 일이 있는 지 10년이 지났다. 당시 미국에는 대경제공황이 일어나 바턴 씨는 완전히 파산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소문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선생님이 빚진 돈 7만 5천불을 제가 대신 갚아 드리겠다.”고 말했다.
바턴 씨는 깜짝 놀라 “자네가 가져갔던 돈은 이미 갚았는데 무슨 소리야?” 스트로사는. “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선생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평생 갚지를 못 합니다. 그때에 꾸어주신 2천불로 사업을 해서 오늘 제가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돈으로 갚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은덕과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사람이 힘들때 하나님께 매달리고 울고불고 기도하고 응답도 받고 간증거리도 생긴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했다, 감사했다, 기도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살고있는 곳은 가나안의 최남단으로 시내 반도가 시작돠는, 광야가 시작되는 곳이다. 남으로 가면 시내 광야이고 동으로 가면 아라비아 광야이다.
브엘세바는 광야지역이다. 산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다. 광야에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 오직 브엘세바 샘물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샘물이 없으면 생존 할 수 없다. 그 샘물을 블레셋 왕에게 빼앗겼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배는 삭막한 광야, 척박한 땅에서 드린 예배이다. 환경을 보거나 조건을 본 예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예배이다.
옛날 채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김씨 성을 가진 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일꾼들은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다.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밥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김씨는 하나님 앞에 정성껏 기도를 하는데 그 시간이 3분이되기도 하고 5분이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마누라가 그렇게 고맙더냐? 김밥 한 줄이 그렇게 좋으냐?
별의별 소리를 하면서 놀리지만 김씨는 하나님께 진지하게 감사 기도를 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또 웃고 놀렸다. 김씨 빨리 눈 떠봐. 자네 하나님이 김밥 들고 도망을 가네. 보니까 개가 와서 김밥을 물고 도망을 가는 거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김밥을 물고 도망을 가는 개를 한참 따라가는데 뒤에서 와르르~ 소리가 들렸다. 언덕위에 쌓여있는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밑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난리가 났다.
하나님께서 개를 보내서 김씨를 그 돌무더기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이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김씨의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네. 하면서 감히 비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척박한 환경, 초라한 상황, 모든 것이 부족하고 결핍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이다.우리는 광야에 있을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셋째,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미래의 소망을 두었다는 뜻이다. 사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살면서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 살았다. 이것을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라 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집을 짓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헤브류로 에노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어느날인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을 때, 그 나이 적어도 117세 쯤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 다만 유한한 인생이 끝나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소망하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불렀다.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일 죽어도 후회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이 영원한 삶을 바라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 즐거움, 세상의 명예 세상의 자랑으로 산다.
아브라함이 심었던 에셀나무는 아주 작은 나무였다. 큰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다. 그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크게 자라게 될 것이다. 나무가 점점 자라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도 점점 자라서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에셀나무는 아브라함의 희망의 나무였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무엇을 할것인가 라는 말에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절망적이 현실에서도 희망을 심겠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자신은 죽더라도 그 아들과 손자가, 대대손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려는 간절한 희망의 표현이다.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후손들이 믿음의 길을 따르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외에는 축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영원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아야 한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미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우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 부끄럽지 않게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춘향이가 이몽룡을 기다리듯이 곤장을 맞아도 일편단심 절개를 지키고 감옥에 가도 참고 견디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