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었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는다고 해서 그는 자기의 호를 다석(多夕)이라고 하였다. 저녁 석 자를 세 개 합친 것이다. 내가 맨처음 그에게 경탄하여 따라 다니게 된 것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도대체 한 끼만 먹고 어떻게 살까, 얼마나 먹나 한번 가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밥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소식(小食)에 주로 채식이었다. 그것을 먹고도 당일로 개성에 다녀오고 인천에도 당일로 걸어서 다녀오곤 하였다. 유 선생이 한 끼만 먹는 것은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한 끼만 먹는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빛을 십자가에서 본다. 부자유친의 극치를 십자가에서 본다. 그는 요한복음 13장 31절을 그 나름대로 이렇게 번역한다. “이제 아들이 뚜렸하고 한웋님도 아들 않에 뚜렷하시도다. 한웋님이 아들 않에 뚜렷하시면 한웋님도 한웋님 않에 아들을 뚜렷하게 하시리니 곧 아들을 뚜렷하게 하시리라.” 그는 십자가를 환빛이라고 하였다. 영광이라는 말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십자가 그것은 임금 왕(王) 자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를 천명지위성(性)이라고 하고 십자가의 보혈을 꽃피라고 하였다. 꽃피는 꽃이 핀다는 것이다. 꽃이 피는 것이 견성이요 천명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꽃피를 본다. 그는 일제를 초월하여 천명(天命)이 된다. 그는 세상의 집착을 끊어버린다. 식(食)을 끊어버리고 색(色)을 끊어버린다. 지(知)를 끊어버리고 명(名)을 끊어버리고 일식 일언 일좌 일인을 하는 하나의 천체가 된다. 그것이 천명이다. 천체는 스스로 궤도(軌道)를 가진다. 이것이 도(道)이다. 매일 해가 떠서 환빛을 드러내듯이 도인은 또 다시 빛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것이 교(敎)이다.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 성(性)이요 궤도를 돌아가는 것이 도이다. 공자는 ‘오도는 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다. 하나로 꿰뚫는 거이 도이다. 일식 일언 일좌 일인 하나로 꿰뚫는 것이 도이다. 동양의 특징은 도이다. 궤도를 가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나무에 달리는 것이요 하늘에 달리는 것이요 천체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자유친이다. 부자유친이 될 때 땅의 집착은 끊어지고 일식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성만찬이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사는 것이다. 땅을 떠나서 하늘에서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사는 것이 일식이다. 유 선생은 일식이 성만찬이요 일식이야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짜 제사요 산 예배라고 한다. 그는 성만찬으로만 살았다는 성녀 젬마를 좋아하여 젬마 전기를 사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일식은 동양의 오랜 전통이다. 소강절(邵康節)도 일식을 하였다. 소강절이 67세를 살았다고 하여 유 선생도 67세를 살고 가겠다고 말할만큼 그는 소강절을 좋아하였다. 소강절은 서화담(徐花潭)이 사숙한 스승이다. 석가가 일식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석가가 일식하기 전에 인도에는 일식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식은 불교 이전의 힌두교 전통이다. 간디도 일식을 하였다. 그는 인도의 근본이 바가바드 기타의 핵심이 일식인 것을 알게 된다. 바가바드 기타는 신의 찬양이요 그 핵심은 단식인전생심소(斷食人前生心消)라고 유 선생은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