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애심과 송민도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한류니 뭐니 하면서 세계를 누빈다.
<K-POP>이니, <소녀시대>니, <비>니 하는 가수들이 중국을 위시한 동남아 베트남 태국 일본에선 인기 스타인 모양이다. 프랑스 영국 등 구라파, 미국과 브라질같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들이 파리나 런던 뉴욕 공항에 나타나면 금발의 백인 청춘들이 꺅꺅 기성을 지르며 아우성치는게 뉴스에 나온다.
40여년 전 클립리쳐드 내한공연 때 생각난다. 그때 지금은 할머니가 된 동방예의지국 여대생들이 챙피도 모르고 팬티나 브라지어까지 벗어 던지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최근엔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란 풀래시 한방으로 세계적인 홈런을 쳤다. 요즘엔 흉내 귀신인 일본에선 짝퉁 한류까지 생겼다고 한다. 음악 때문에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놀라운 끼를 숨기고 있었을까. 이쯤에서 우리 가요사 족보를 한번 뒤적거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가 우리의 끼에 놀라는데, 우리만 서산 마애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프랑스에 샹숑이 있고, 이태리에 칸쇼네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 탱고가 있고, 우리나라엔 트롯트가 있다. 미국엔 휘트니휴스턴이 있고, 프랑스엔 이베트지로가 있고, 우리나라엔 나애심과 송민도가 있다.
한류는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닐 터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막걸리 담은 양은주전자에 젓가락 장단치며 두들기며 부르던 옛노래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한류의 원류이다.
나는 고향이 진주라서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추억의 소야곡>을 애창하지만, 여가수 나애심과 송민도를 존경한다.
두 분 다 고급 허스키를 구사한 분이다.
나는 한 때 서양물이 들어 이베트지로와 에딧삐아프를 사랑했다. <장미빛 인생>을 노래하는 에딧삐아프의 부드러운 바이브레이션에 한없이 반했고, <미라보 다리>을 노래한 이베트 지로의 샹숑에 넋을 잃었다.
그러다 신토불이란 말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애심과 송민도 팬이 되었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한번 주목하자.
여기 마지막 대목,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에 나애심의 허스키 바이브레이션이 몽땅 들어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가 저음 허스키라면, 나애심은 고음 허스키다.
그 허스키는 뱃속 깊이 들이킨 숨을 비공과 가날픈 몸 전체를 통해서 소리로 떨려나오는데, 약간 쎅시한 느낌이다. 여인으로서 더없이 매력적 이다.
음역이 벨칸토처럼 끝간데 모를 고음으로 탁 터져 시원하면서도 완벽한 바리브레이션을 구사한다. 상상 초월하는 그 엄청난 성량이 놀랍다. 혀 끝 기교로 노래하는 성량 부족한 가수하고는 전혀 다르다.
목 메인듯 애수 가득 담긴 허스키한 음성, 이 나애심의 매력이 잘 들어난 노래가 <백치 아다다>와 <미사의 종>이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금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별아래 울며새는’ 고음허스키로 치솟는다. 마지막에 가서 ‘검은 눈의 아다다야’ 신비한 저음으로 우리를 애수의 끝 없는 불랙홀에 빠트려놓고 사라진다.
<미사의 종>은 ‘빌딩의 그림자 황혼이 짙어갈 때’부터 고음 허스키로 시작된다. ‘성스럽게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에서 다시 저음으로 시작했다가 ‘걸어오는 발자욱마다’에선 고음으로 올라간다. ‘눈물 고인 내 청춘’에서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는, ‘오~ 산타 마리아의 종이 울린다’에서 비음이 섞인 섹시한 음성으로 끝을 낸다.
이 나애심의 오르락 내리락 저음 고음 맘대로 교차시킨 허스키가 나를 샹숑에서 토롯트로 귀환케 한 장본인이다. 나는 그를 한국의 에딧삐아프로 생각한다.
당시 영화계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듯 하다. 그의 미모에 끌려선지, 신비한 허스키에 반한 것인지, 그를 주연으로 <백치 아다다> <구원의 애정>같은 영화를 제작한 일도 일단 기억해둘만 하다.
나애심
송민도는 알토 허스키 보이스다. 현악기로 치면 첼로 같고, 관악기로는 크라리넷 비슷하다.
화려한 소프라노는 아니다. 그의 음은 한지를 바른 창문 밖에서 듣는 아쟁 소리 같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 중 클래시컬 창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으로 불린다.
송민도의 어머니는 이휘호여사와 이화학당 동기동창이고, 그 역시 이화학당 출신이다.
경기도 수원군에서 감리교 목회자의 딸로 태어난 그는 1947년 단발머리로 한국방송공사의 전신인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하여 1기생으로 발탁되었다.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 그의 고급스러운 창법은, 서구식 음으로 우리 가요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데뷰곡은 <고향초>이고, 그 밖에 <나의 탱고> <캬츄샤의 노래> <목슴을 걸어놓고> <여옥의 노래> 등이 있다.
그의 음성은 비단이 바람결에 부드럽게 스쳐가는 것 같고, 떨림은 옥구슬이 산산히 깨어지는듯 하다.
"초록바다 물결 위에 황혼이 오면, 사랑에 지고새는 서귀포라 슬품인가."
<서귀포 사랑> 첫구절에서, 바다위에 내리는 황혼같이 부드럽게 스러지는 그의 바이브렛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목석일 것이다. 듣는 사람을 물새로 만들어, 짭자롬한 소금냄새와 해조음을 만나게 한다.
애상적인 면에서 송민도 노래는 이베트지로 같다.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면',으로 시작되는 그의 <고향초>는 물새가 날고 동백이 피는 이미지를 그대로 눈 앞에 보여준다.
이 곡은 처음 송민도에 의해 발표되자, 장세정 주현미 이미자 홍민 등 후배가수들이 줄줄이 리바이벌 했다. '후루사토구사'란 제목으로 일본에서 번안되기도 하였다.
그의 <청실홍실>은 대한민국 드라마 주제가 1호이며, 그의 노래 <나 하나 사랑>은 영화화 되었고, <여옥의 노래>는 <산유화>의 주제곡이 되었다.
옛날에는 골방에 있던 민화나 오래된 도자기를 골목에서 엿장수 엿과 바꿔 먹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비싼 골동품 대접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동안 사람들은 우리 가요를 뽕짝이라고 비하했다. 대중가요라는 굴레를 씌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작태를 벗어야 할 때가 되었지 싶다. 우리 가요를 골동품처럼 잘 선별해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아직 조춘(早春)이라 철이 좀 이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에딧삐아프나 이베트지로처럼 나애심과 송민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이화학당 시절 송민도
(동방문학 2014년 3월호)
첫댓글 신인 가요 평론가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꿈보다 해몽이 정말 일품이다.
지음이란 말....노래방 같이 가고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