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소종숙
7월은 바다가 그리워진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볕을 받으며 숲길에 들어서니 초록이들이 출렁이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바람이 솔솔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언뜻언뜻
보이는 은색 잎이 더욱 매력적이다.
모시는 삼한시대로부터 1500여
년 동안이나 우리의 삶과 함께 해온 나무다. 특히 한산모시는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구전 될 만큼 가늘고 섬세한
세모시로 유명하다. 삼복더위도 아랑곳없이 모시나무에 무수한 하트 잎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앞면이 초록빛이라면 뒷면은 은색이다. 은색 잎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가 인체세포의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있다.
예전 전주 서신동에 살면서
화산공원을 오르내리다보니 헐벗은 산자락에 몇 사람이 밭을 일구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과일나무와 모시나무를 심어놓았다. 지난주에 가보니
모시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모시 잎을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야채실에 넣어놓았다.
고향집에도 모시밭이 있었다.
여름이면 늘 모시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인지 흔한 풀처럼 여겼다. 다시 냉장고를 열고 모시 잎을 버리려고 꺼내다가 순간 무엇에 홀린 듯 하트모양의
은색 잎이 신비롭게 보였다. 나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또 보았다. 이리저리 뒤집어도 보고, 살며시 쓰다듬어도 보았다.
새삼스레 보면 볼수록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몇 십 년을 보면서도 왜 이제야 눈에 들어올까! 신기하고, 희한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만이 간직한 유년시절 고향의
모시밭 추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고향집 앞에 8백 평쯤 되는 밭이 있었는데 그 끝자리에 모시밭이 있었다. 옆에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로가 흘렀다. 모시는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일부지역에만 자란다는데 우리 마을은 조건이 맞았는지 집집마다 모시밭이 있었다. 모시나무가 2미터쯤
자라면 6월부터 수확을 시작하여 1년에 3번 정도 9월 하순이면 수확을 마쳤다. 해질 무렵에 온가족이 모시나무를 베어다가 뒤란 우물곁에 놓고
물을 뿌렸다. 나무껍질을 벗겨 낸 다음에 모시 칼로 초피 층을 벗겨내고 나면 연초록 태모시가 나왔다. 태모시를 천연 표백을 하려면 여러 번 물에
적셔서 넓은 앞마당 줄에 널어놓고 일광욕을 시켰다. 그렇게 손질한 모시는 종이장판방 아랫목에다 깔아놓았다.
우리 집은 한산에서 모시 장수가
오면 모시로 교환하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굵은 모시, 가는 모시’ 구별하여 옷을 만들었다. 꼿꼿하게 풀을 한 모시옷을 속옷부터 겉옷까지
입고 여름을 지냈다. 모시는 거칠어진 피부에 휴식을 준다는데, 나는 고마운 줄 모르고 살을 찌른다고 싫어했었다. 모기를 방어하기 위해 모시이불을
돌돌 말고 잠들기도 했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모시옷보다 다른
옷을 더 좋아했었다. 여름방학 때 오빠는 모시남방을 입고 나는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큰언니네 집에도 갔었다. 우리 집에는 폭염에도
여름방학이면 손님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모시 잎을 따다가 송편과 모시개떡을 만들어 온가족이 함께 먹었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모시옷은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달그림자도 스며들었다. 또한 간식을 만들어 먹는 재료가 되었다. 모시나무는 요술쟁이였다. 모시의 고귀함을 이제야 알게 되어
미안하다.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을까? 왜 이제야 눈에 띄었을까? 인생행로도 그런 인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처럼 쓰르라미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면 큰할머니 생각이 난다. 베를 짜려고 태모시를 입에다 물고 이빨로 짼 다음 무릎에 대고 손으로 비벼서 한 가닥 한 가닥 길게
이어 예뿐 종이상자에 담아 놓으셨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다.
모시옷은 여인들에게는 애환이 담긴
옷이기도 하다. 조그마한 키에 백발에 백모시옷을 입으시고 뜰이 높은 안채와 사랑채로 다니셨다. 빨강색, 노란색, 진분홍, 흰색으로 핀 채송화
사이로 마당을 아장아장 거닐던 어린아이를 연상케 했다.
모시는 생이 시작되면서부터 생을
마치는 수의까지 우리의 삶과 함께해온 한민족의 전통을 이어온 나무다. 나무껍질은 의상을 책임져주고 잎은 떡과 차로 건강을 챙겨준다.
<한국식품연구원분석결과> 6~8제철 모시 잎은 우리
몸속에 쌓여있는 찌꺼기들을 분해시켜서 몸 밖으로 빼내는 이뇨작용을 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보니 <본초 강목>
<현대 실용중약> 등 문헌에 나온 기록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모시 잎은 카페인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알카리성’식품으로,
모시잎차를 꾸준히 섭취하면 막혀있던 혈관을 청소해 주고, 마비증상과 치매에도 좋다고 한다. 천연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어 배변에 도움이 되어
변비와 ‘다이어트‘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시는 <원산지가 동남아시아
열대지방과, 온대북부지방에 분포하는 쌍떡잎 여러해 살이풀>에 속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에서 생산되는 한산모시는
전통옷감으로 역사적가치가 높아 <1967년1월 국가 한산모시 짜기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한산 모시는 ‘한산 세모시’라는
고유명사가 생길정도로 유명해졌다. 최근에 영부인 김정숙 여사께서는 미국 방문 및 <G20국 정상회담> 때 한산모시로 만든 한복을 입고
세계시장에 선을 보였다. 모시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모시풀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에게는 애환이 담겨있는 풀이기도하다. 모시옷을
만들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를 해야 된다.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뿌리에서부터 나무와 잎까지
아낌없이 주는 모시나무! 모시잎차를 마시고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무야 고맙다. 모시나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린다.
내 농속에는 아직도 아버지가
혼수로 해준 세월의 때가 묻은 모시속옷이 농지기로 남아있다. 글을 쓰려니 왠지 고향이 더욱 그리워지고 가족의 얼굴들, 어머니의 세모시 옥색치마가
떠오른다.
지금은 다들 무엇을 하며 사는지
그때 놀던 고향 동무들 생각이 난다. 오늘따라 쓰르라미소리가 유난히 요란스럽다. 오늘은 모시잎차를 만들어 고향을 그리며 마시고 싶다.
(2017.7.28.)
-쓰르라미소리 유난히 들려오는 삼복더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