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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 많이 더웠죠. 오늘도 덥습니다. 우리 찬양대가 찬양대실에서 연습을 하는데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더운 공간이에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찬양으로 섬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개척 이후로 주일 설교 시간에 넥타이를 풀은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풀렀어요. 지난주에 어떤 분이 목사님도 힘드시겠지만 보는 사람도 힘들어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이게 이번 주에는 나 자신과 여러분들을 위해서는 풀러야 되겠다 하고 큰 결심을 하고 푸는 겁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 안 하시는 것 같으네요.
예 감사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은혜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현실은 사실은 냉혹합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보겠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반겨주고 우리를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시험을 치밀하게 꾸며놓고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시험을 만들어냅니다.
군인이 후방 부대에 있을 때는 비교적 안전합니다. 그러나 전방 최전선으로 파병되는 순간 거기는 지뢰밭이고 어디선가 저격수가 나를 조준할 수가 있는 거예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경계를 늦추면 언제든지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곳이 전선입니다.
세상이 그런 곳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어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여러분 이것은 도피성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아무런 고난이 내 삶에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라는 최전선의 나아간 저와 여러분들이 사탄의 영적 방해 공작의 공작을 만날 때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또 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하나님의 통치를 수호하겠다는 그런 결심을 가지고 드리는 마치 전투의 기도고 작전 기도고 전쟁에 나가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삶은 일을 당하지 않았을 때는 다 평안하고 아무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가는 우리 일상은 마치 전쟁터와 같은 거예요. 그 일을 당하는 순간 아이고 이게 전쟁터구나 알게 됩니다. 그전에는 그냥 뭐 세상이 다 평안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음부의 권세가 있고 특별히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집요한 공격과 방해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쟁터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직면하는 시험 그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걸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선교적 삶, 미셔널 라이프라고 합니다. 크리스천은 선교적 인생을 살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 선교적 삶은 세상의 유혹과 시련을 직면하게 됩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테스트로서의 시련이 있어요. 이것은 우리를 강한 용사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잘 감당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던지는 덧 유혹 템프테이션입니다. 유혹하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를 넘어지고 파괴하고 망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이 두 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에게 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시고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그래서 크리스천의 삶이 쉽지 않은 거예요.
특별히 사탄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타락 이후로 이 세상을 자기들이 장악했기 때문이에요.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우리는 그 복음을 들고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게 선교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사단은 집요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립니다.
야 꼭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냐 세상의 방식, 돈, 권력, 쾌락이라는 메커니즘을 잘 이용해서 적당히 살면 되는 거야. 인생이 벼 뭐 별거 있나
하면서 유혹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과 똑같은 가치관에 함몰되어 살아간다면 우리는 금방 맛을 잃은 소금이 될 거예요. 소금이 맛을 잃으면 입에 넣었다가도 뱉어버립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아버리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돈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하고 인생의 즐거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과 가치가 달라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또 구하고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세상처럼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다가 맛을 잃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돼요.
교회의 권위가 어디에 있느냐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세상하고 좀 다르다는 거예요. 똑같이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저 사람들은 조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뭔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야 세상이 교회에 관심을 갖고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또 거친 저항과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마귀가 방해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손해 보게 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거절당하게 하고 선교적 삶을 살다가 이게 제일 선교사님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뭐냐 하면 열심히 사역을 했는데 열매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치고 때로는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리고 그 가운데는 마귀의 방해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서 파송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선교 주일에 아프리카로 가는 우리 단기 팀들도 선교사지만 우리가 이 예배당을 떠나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현장이 선교지예요. 우리 모두는 선교사입니다. 미셔널 처치가 아니라 미셔널이 처치가 돼야 돼요. 당신만 선교사가 아니라 나도 세상 속에서 선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시험이 있어요.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세상 시련에 무릎 꿇지 않고 전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오늘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냥 시험 들지 말게 해주세요. 오늘 누가 기분 나쁜 소리해서 마음 상했어? 그게 시험이 아니에요. 그건 되게 웃기는 거고 유치한 거예요. 오늘 주님이 가르치신 이 시험은 주님의 뜻을 위해서 주님 나라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 나갔을 때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놓은 그 덫과 같은 것을 시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둘째는 이런 겁니다. 시험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시험 들면 선교적 방향성을 잃고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걸 잃게 돼요. 오늘 이 본문을 보면 시험을 아예 없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시험거리가 없도록 도와주세요. 요즘 왜 이렇게 시험거리가 많아요? 그런 기도하라는 게 아니에요. 주님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이라는 환경을 없애달라는 게 아닙니다.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겪어야 되고, 또 이런 무더위가 기도 많이 한다고 내가 사는 우리 시보구만 날씨가 좋을 수 있나요? 없어요. 환경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요. 누구나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유혹을 안 받을 수 없고 고난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 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라는 게 아닙니다. 오늘 누가 만나면 늘 마음이 불편하고 시험이 드는데 그 아무개를 만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하라는 거 아니에요. 그거 되게 유치한 기도예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시험에 드는 것 엔터링 인투 템프테이션 시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뜻이에요.
시험 속으로 걸어 완전히 걸어 들어가서 그 시험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상태. 사람이 살다 보면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시험에 들 수가 있어요. 그렇죠 잠시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운전하고 가다가 아주 요즘 더우니까 막 운전 조금만 늦으면 빵빵거리고 그러면 열이 확 나잖아요. 그래서 열이 날 수도 있고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가 있어요. 인간이니까.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일상이 되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도록 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예요.
우리가 시험에 빠지면 세상 탐욕이 우리의 주인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원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떠나고 선교적 사명을 잃게 돼요. 왜 사는지를 몰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들면 시험 드는 교회가 많아요. 시험 들면 세상을 치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될 교회가 병들어버려 그래가지고 내부적인 이권 다툼과 서로 주고받은 상처에 매몰돼 버립니다.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내가 아픈데 시선을 밖으로 향해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와 능력이 없습니다. 서로 싸우는 일에 헐뜯고 욕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쏟아 놨으니까 밖으로 쏟을 에너지가 없는 거예요.
그것이 현대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저 모든 관심이 내부의 문제에 쏠립니다. 서로 아웅다웅하는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끼리끼리 집단 또는 하향 평준화, 집단 집단적 확증, 편향주의 그래가지고 우리만 옳다 그다음에 모든 걸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고 우리 교회만 옳고 또 우리 그룹만 옳고 그래서 교회끼리 서로 갈등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 갈등하고 언제 선교하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가서 세상의 유혹을 이기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마귀는 그런 일을 곳곳에 설치해 놓는 거예요. 교회에 가정에 우리 삶의 현장에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그것을 분별하고 그 시험에 들어가서 지배받지 않도록 하나님 오늘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이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시험 들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시험 들었다는 얘기는 마귀의 손에 내가 붙들렸다 그런 뜻이에요. 근데 조금 마음 상한 거 가지고 남편이 한마디 한 거 가지고 어느 집사님이 한마디 한 거 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시험 들었다고 하고 그 무시무시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유치한 얘기입니다. 시험 든다는 것은 마귀의 소나기에 들어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 교회와 그런 사람은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명령하신 그 미셔널 라이프를 살 수가 없어요.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고품격이 돼야 돼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보다는 뭔가 다른 차원이 다른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특별히 그런데 더해 그게 마귀가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에 어떤 영향도 우리가 끼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비결은 따로 없어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적으로 깨어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만이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 깊은 고민, 인간적인 고민에 빠져 들어가셨어요. 너무 힘드셨으니까.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십자가를 생각함으로 너무 고민해서 죽게 됐다. 너무너무 괴로워졌어요. 인간적인 두려움 앞에 그도 서셨습니다.
그러나 극복하셨어요? 어떻게 해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기도함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 기도의 힘으로 거대한 시험을 이기셨어요. 제자들은 그 시간에 잠들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지 않고 깨어 있지 못했을 때 결국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무기력해지셨어요.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아닌데 다 겁나가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간은 별거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와 결단은 너무나 유약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당장 세상을 씹어 먹을 것처럼 갈아 마실 것처럼 용기 있게 뭐 이렇게 힘을 자랑하지만 막상 시련이 닥치면 모두 겁쟁이가 됩니다. 뭐 하나님이 무슨 필요해 나는 내 주먹을 믿어 하는 사람들도요. 턱 암 한 번 걸리면 확 무너져요. 죽을병에 걸리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거예요. 모두 다 겁쟁이가 돼버립니다.
베드로가 그랬어요. 베드로는 여기 제자들이 다 주님 배신해도 저는 안 합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돼요. 절대로 뭐 이런 말 진짜로 왜 우리는 그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든 자신은 끝까지 주님을 지키겠다고 호언잠담하던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부인했어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했어요. 그게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강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강한 체하는 거예요. 용감한 체하는 겁니다. 오늘 아프리카로 떠나는 우리 선교사님들, 주님 앞에 단시간의 지간 헌신하고 나가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3개월 4개월 훈련하고 이제 우리가 아프리카에 가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잘 감당할 거야.
열정을 가지고 나가지만 아마 가서 지내는 동안 많은 어려움들을 경험할 거예요. 몸도 아플 수도 있고 또 막 더 무더운 더위에 옆사람하고 서로 이게 잘 안 맞아가지고 신경 쓸 수도 있고 그런 일에 우리가 휘말리게 돼요. 그래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기도하면 승리할 수 있어요. 기도 안 하고 그냥 나갔다가는 우리끼리 펑펑 넘어집니다. 막상 어려움이 오면 그 열정과 용기는 간데없고 비겁하고 누추하고 주눅든 인생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마귀는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노립니다. 그것을 이기는 길은 결단으로만 되는 게 아니에요.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고 제자들도 기도했고, 이 땅의 2천년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함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가 계속해서 유혹했지만 그들에게 장악되지 않고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희한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요.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고, 또 그때가 가까울수록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역사합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힘으로는 세상을 극복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길 수 있는 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전한 예배당에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풍랑이 일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고 거기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고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낙심하고 타협하고 시험 들었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인생이 끝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드려야 돼요.
주여 오늘도 시험에 들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옵소서.
성령을 힘입어 저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내게 위임하신 내게 명령하신 그 사명을 감당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셔야 됩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시련이라는 시험에 매몰되지 않게 하옵소서 정체성을 지키게 하옵소서.
깨어 기도함으로 시험을 딛고 일어나 오히려 세상 속에 하나님의 통치와 승리를 선포하는 선교적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주에 토그와 카메론으로 나가는, 그리고 3주 후에 m국으로 나가는 우리 단기 선교사님들이나 보내는 저와 여러분, 또 세상에서 주의 복음 들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기도가 이와 같은 기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