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49신]'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이야기
10년 전 ‘또 다른 사랑’을 알려주었던 띠동갑 후배에게.
자네를 만났던 게 찾아보니 2012년 6월이었으니,
10년이 다 되어가는군. 참, 달구름(세월) 한번 빠르네.
작년에 한번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 테지.
뜽금없이 자네가 생각난 것은,
이번주 <인간극장-넷이 딱 좋아>를 봐서이네.
제주도에 사는 40대초 상남자같은 친구가
아들 둘을 낳은 후
딸 둘을 입양하여 정말 재미있게 살더군.
12, 10, 8, 5살. 보배, 샘물, 딸들의 이름도 예쁘데.
그 엄마의 이름은 ‘나루’이고.
‘아, 저렇게 날마다 행복을 가꾸고 느끼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다가 불쑥 자네가 생각났네.
자네는 인터뷰차 찾아간 나에게
대뜸 "가족이 되는 3가지 방법을 아시느냐?"고 묻더니,
머뭇거리는 나에게 "결혼·출산 다음에 입양"이라 해 놀랐네.
얼마든지 생산生産할 수 있는데도 남편의 집요한 요구에 굴복했다는 제수.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세 명을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하다니? 믿기 어려웠었지.
‘가슴으로 낳은 아이’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허나, 연애시절에도 “한 아이는 낳고 한 아이는 입양하겠다”했다지.
양가 부모님들의 “가짜손주는 싫다”는 반대도 뚝심으로 이겨내고.
‘참 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의외로 그런 ‘고귀한 인간’들이 많은 것같더군.
미국의 어떤 ‘입양 전문’인간은 장애아동들만을
서너 명 입양하여 정성껏 키운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었네.
사람이 얼마나 수양을 하면 그렇게 이타적利他的일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그 입양·양육의 철학哲學을 갖고
험난한 세파世波를 헤쳐나오고 있으리라 믿네.
나도 참 남의 애기들조차 무지 예뻐하는 편인데,
친손자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니
한마디로 예뻐 환장하겠더군.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귄’이 좌아좍 흐르는 것같고. 흐흐.
그런데, TV나 신문 뉴스를 보면
왜 이렇게 ‘아동 학대’가 많은 걸까?
양부모는 물론이고 친부모들도 왜 아이들을 학대하다 못해
비참하게 죽게 만드는 걸까?
나는 그런 뉴스 첫머리만 나오면 채널을 얼른 돌려버린다네.
도저히 못봐줄 뉴스이지 않은가.
신문도 그런 제목만 보면 덮어버리네.
정말로 외면하고 싶은 뉴스들이 시도때도없이 등장하는데,
이거야말로 생활의 스트레스이고 공해이지 무엇이겠나?
국회에서도 시끄러웠다는 ‘정인이법’의 내용을
나는 솔직히 전혀 모르네.
아니, 21세기 ‘동물 학대’가 논란이 되는 판에
‘아동 학대’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마음 속에 ‘악마惡魔’가 들어있지 않다면 그럴 수가?
그런 사람들이 ‘인간 망종亡種’(말종末種이라고도 하지),
인두겁(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의관금수衣冠禽獸라는 단어도 있더군.
대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면수심人面獸心, 철면피鐵面皮에 다름 아닌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아예 귀 막고 눈 감고 사는 게 수이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아무튼, 오래 전 자네의 인터뷰기사를 찾아내 읽어봤네.
지금 봐도 그 감동이 여전한 듯하여 첨부하네.
전라고6회 동창회 | [전라인열전 18/201206]이득신동문(18회, 365홈케어팀장) - Daum 카페
그때 자네의 맑고 선한 얼굴이
이번 <인간극장> 주인공 엄마와 아빠 얼굴과 겹치더군.
착한 생각을 하면 얼굴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는 모양이지.
위에 아동학대 관련한 말도 안되게 못된 부모들보다
자네같은 착한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겠지.
아무렴, 그렇겠지.
이 편지가 옛 이메일주소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카톡이 되면 곧바로 보내겠네.
고향 내려오는 길, 우리집은 일반국도 17번 주변에 있으니
한번 들러주면 고맙겠네.
자네의 ‘가슴 가족’이야기도 들려주면 더 좋겠고.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춘삼월이네.
자네가 뜻하는 일 순조로이 풀리고,
가족 모두 건강을 빌면서 이만 줄이네.
3월 12일
임실 우거에서 선배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