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서(別墅)에 오는 손님들
김정호
손님이 오면 반갑다.
공자는 논어에서 즐거움의 하나로 벗이 먼 데서 찾아와 주는 것을 꼽았다.
즉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远方来 不亦乐乎]’라 했다.
성서에도 ‘손 대접하기를 힘써라.’했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근래에 가정에 손님들이 잘 오지 않는다. 오는 손님도 망설이고 받는 주인도 그렇게 환영하지 않는다. 시대의 변천이라 생각한다. 특히 여름 손님은 호랑이 보다 무섭다고 한다. 여름에는 덥기도 하고 옷을 짧고 얇게 입고 지내니 손님이 오면 서로 조심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별서에도 사람 손님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파트 보다는 제법 손님이 온다. 나는 사람 손님이 오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채에 손님이 자주 드나들었다. ‘손님 덕에 이밥이랄까?’ 맛있는 반찬이 있었다.
별서에는 사람이외에 손님들이 청하지 않아도 늘 오는 객(客)들이 즐비하다. 가장 자주 오는 손님이 길 고양들이다. 늘 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퇴비를 만들려하는데 녀석들이 먼저 와서 시식을 한다. 나는 일부러 길고양이들을 가까이 하지 않지만 눈치가 빠르다. 주인이 자기들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빨리 알아차리고 주인이 조금 가까이하면 더 자주 온다. 하지만 싫어하면 눈치를 본다. 아내는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별서 건너편에 사는 이웃은 녀석들을 집주인이 대단히 가까이 해서 암수를 불임 수술을 해서 먹이를 주고 집고양이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다르다면 방에 들이지 않는 것이다. 길 고양이 개체가 많으니 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뱀도 잡아먹는다니 좋은 점도 있다. 우리별서에 길 고양들이 몇 차례 새끼를 낳았다. 한번은 완전히 실패했다. 내가 군불 때는 부엌문을 열어 두어서 암놈이 들어가서 박스를 쌓아둔 곳에 보금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은 것을 까맣게 모르고 문을 잠가버려서 어미가 죽는 소동이 있었다. 한동안 마음이 서늘했다. 올해는 길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 낳았는데 모두 성공한 것 같다. 어디서 새끼를 낳았는지는 모르지만 자주 별서에 나타난다. 아마 부근 어디에선가 출산을 성공한 것 같다. 아내 몰래 먹을거리를 음식물 쓰레기에 보태서 내어 준다.
별서에 초봄에 찾아오는 손님은 벌과 나비다. 벌은 꽃이 어디서 피고 있는지 가장 빨리 안다. 새벽부터 날라 와서 잠자는 꽃을 깨우고 화장을 시켜주고 꿀과 화분을 가져간다. 벌은 반경 2km 직경4km가 활동무대다. 한번에 0.14g의 작은 꿀을 모아서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 고마운 영물이다. 나는 재직 시에 양봉을 해봐서 꿀벌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다. 가끔 나비 암수가 사랑 춤을 추는걸 보면 귀엽다. 봄이 나비 등을 타고 온다고 한다. 나비가 꽃을 보고 이리저리 날라 다니면 봄은 저 만큼 와 있다.
나비와 벌들이 오기 시작하면 모기와 파리들도 등달아 극성을 부린다. 둘 다 귀찮은 불청객들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친하게 지내지는 않지만 박멸은 불가능하다. 방에 들어온 모기 한두 마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 시골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면 좋다.
나라 새 국조[國鳥]까치도 자주 온다. 까치는 눈 설미가 대단하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보이면 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한번은 초봄에 옥수수를 심으려고 씨앗을 밭둑에 두고 다른 편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까치란 놈이 휘익 날라 와서 옥수수 씨앗을 쪼고 있었다. 멀리서도 먹잇감을 알아본 것 같았다. 까치는 과일이 익어 가면 어느새 눈치를 채고 찍어먹는다. 성 가시는 존재다. 나라 새 까치가 언제부터인지 해조류(害鳥類)로 분류되어 가끔씩 엽사들이 다니면서 개체를 줄이기도 한다.
까마귀는 봄날에 자주 온다. 까마귀는 그렇게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까마귀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지능지수가 높다. 도구를 사용 할 줄 아는 새다. 까마귀는 높은 전봇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나는 어렸을 때 까마귀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다. 까마귀가 울면 불길하다느니 재수가 없다느니 그런 말을 늘 들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대마도를 방문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대마도의 도조(島鳥)가 까마귀라 했다. 그 후에 일본 전역을 여행하면서 까마귀가 우리나라보다 많은 것 같았으며 까마귀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비둘기도 가끔 온다. 비둘기는 평화의 메신저라고 했지만 지금은 도시부근에 개체수가 너무 많이 불어났다. 까치와 마찬가지로 해조류(害鳥類)로 분류되어 가끔 엽사들이 개체수를 줄이려고 사냥을 하기도 한다. 흐린 날 비둘기의 울음소리는 조금 서글프게 들린다. 4분의 4박자로 운다. “계집죽고 자석죽고 논밭전지 다팔아먹고 우째살고 우째살고” 옛날 어른들이 서글프게 부르던 노래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한번은 테라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무엇이 탁하면서 유리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비둘기 한 마리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둘기가 창문에 부딪쳐서 즉사했다. 나는 일손을 멈췄다. 큰 유리벽에 여러 종류의 새들이 박치기해서 죽는 일이 허다하다드니 이런 일이구나 하면서 슬픈 마음으로 비둘기를 땅에 묻어주었다.
참새는 거의 오지 않는다. 개체수가 많은 종류인데 별서 부근에는 참새는 수가 적다. 참새와 몸집이 비슷한 새들이 자주 온다. 색깔도 예쁘고 동작도 빠르다. 올해 초봄에 울타리부근 나무들을 전지를 하다 보니 새집 두 개를 발견했다. 지난해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들을 키운 것 같았다. 새들이 집을 짓는 곳은 안전하고 가지가 튼실해야 둥지를 만든다. 아마 무사히 자식들을 키운 것 같아서 좋았다.
별서에 두꺼비가 서식하고 있다. 몇 마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 차례 목격을 했다. 아내는 징그럽다고 녀석들을 멀리 쫒아버리라고 하지만 두꺼비는 아무런 피해는 주지 않는다.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고 복을 주는 동물이라고 한다. 가만히 두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집을 잘 지킬 것이라 생각한다. 아찔한 불청객 손님도 가끔 온다. 뱀이다. 나는 몇 번 목격했지만 아내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한번은 아침에 거실 문을 열고나오니 죽은 새끼 뱀이 한 마리 처마 밑에 있었다. 이상하다하면서 아무 일 없는 듯이 땅에 묻어주고, 낮에 마을 할머니들에게 이야기하니 고양이가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인사는 안 해도 되는 건데. 나는 속으로 웃었다.
불청객 지네는 거실까지 들어온다. 한번은 아내가 화장실에 지네가 있다고 깜작 놀라면서 이야기 했다. 나는 막대기를 가지고 가서 아무 일 없는 듯이 처리했다. 지네에게 물리면 독이 있다. 조심해야한다. 불청객 귀찮은 손님들도 시골의 매력이라 생각하면서 지나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불평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뱀이나 지네를 보면 기겁을 한다면 시골 생활은 쉽지 않다. 반가운 손님이나 불청객도 함께 지내야하는 동반자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하루는 저녁 늦게 대문을 닫았다. 대문이라야 펜스처럼 한 허술한 문이다. 시골에 단단히 대문을 만들 일이 없다. 거의 밤중 쯤 되었는데 동물 발자국 소리가 별서 안에 들린다. 그래도 별것 아니려니 하면서 잠을 청했다. 아침 새벽 같이 일어나서 거실 문을 열고 나가니 이게 웬일인가? 멧돼지 새끼 한 마리가 별서마당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을에 멧돼지가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집에 까지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무 막대기를 하나들고 대문을 열어놓고 녀석을 몰아서 산으로 보내주었다. 그사이 잠자던 아내도 일어나서 보고는 깜작 놀라면서 아니 멧돼지가? 했다. 며칠 후에 그녀석이 또 뒷집에 내려와서 농작물을 파헤치다가 포획되어 동물보호소로 갔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 들었다. 그 후 해가지면 즉시 대문을 닫아버린다.
별서에 오는 사람 손님과 자주 오는 길고양이를 비롯한 불청객들도 별일 없이 잘 지나기를 염원해본다.
첫댓글 이 글은 상록수필 11호에 실린 글입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성서의 가르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