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 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4-29)”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직접 보고, 직접 만져 보아야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겠다는 토마스 사도의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1)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그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같은 분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것.
(이것은 수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른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따로 하늘에서 영적으로 오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2)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유령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것.
루카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제자들이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루카 24,36-37).”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만져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루카 24,38-40).”
(그때 그 자리에 토마스 사도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요한 20,20).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직접 보아야겠다는 토마스 사도의 말에는,
“당신들이 직접 본 것처럼 나도 그렇게 직접 예수님을 보고 싶다.”
라는 뜻이, 즉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의 성격이 특이하거나 의심이 많은 것은 아니고,
다른 사도들보다 믿음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또 토마스 사도의 말은, 예수님의 부활보다는 다른 사도들의 말을
믿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당시에 사도들이나 신자들은 누구나 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토마스 사도만 못 믿은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과 신자들은 안 믿으려고 해서 못 믿은 것이 아니라,
믿고 싶지만, 믿기에는 너무 놀라운 일이어서 못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토마스 사도에게 당신의 상처 자국을 보여주신 일은,
그 상황에서는 토마스 사도에게만 보여주신 일이지만,
사실은 다른 사도들에게 보여주신 것과 똑같이
‘토마스 사도에게도’ 보여주신 일입니다.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는 말씀은, “증거가 있어야만 믿는 사람이 되지 말고,
증거가 없어도 믿는 사람이 되어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이미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보여주지도 않으시면서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내가 지금은 너를 위해서 이렇게 증거를 보여준다.
그러나 앞으로는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너는 지금은 증거를 보고 믿지만,
앞으로는 증거를 보지 못해도 믿도록 하여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한 첫 번째 인물로서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도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토마스 사도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행복하다.’ 라는 말은 ‘복되다.’, 또는 ‘복 받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보지 않아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인데, 하느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과 생명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도 직접 보지 못하고,
사도들의 증언만 믿고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연상됩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2-34).”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5-36)”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물증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말입니다.
(물적 증거라는 것이 아예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증언을 믿든지 안 믿든지 무시하든지,
그것은 각 개인이 스스로 해야 할 선택과 결단입니다.
믿으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얻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