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한바탕 빗줄기가 쏟고 지나간 숲속의 아침이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나뭇잎 뒤에서 비를 피하던 매미와 집게벌레는 물론 뭇 미물들은 찬란한 태양이 빚어내는 일출에 가슴이 쿵쾅거려 이른 잠을 깬 것이다.
“어이! 좋은 아침!” “이 짜식이 어디다 대고 어이라니” 도토리거위벌레의 인사말에 젖은 날개를 비비던 매미가 쏘아 붙인다. 그렇잖아도 날개를 부비니 찢어진 장구 목 쉰 소리 내 듯 갈라지는 소리 때문에 속이 상하던 참이었다.
“야 임마! 날도 더운데 어디다 대고 반말이여? 도토리나 어장내는 주제에......” 매미의 시비에 긴 주둥이를 쳐들고 빤히 올려보던 거위벌레는 부아가 치밀어 버럭 한마디 내뱉는다.
“어이! 나는 도토리 몇 개 잠시 빌려 후대를 기약하네만 자네는 참나무 진액을 빨아 그야말로 참나무를 죽이려는 셈 아닌가? 그리고 자네나 나나 어차피 이 여름 지나면 떠날 몸 아닌가?”
“임마! 그래도 나는 7년을 땅속에서 살아왔단 말이여!” 그러고 보니 기껏 일 년을 도토리 알 속에서 지낸 거위벌레보다는 매미가 어른이다.
‘이렇게 더운 날은 참는 것이 상책이여’ 거위벌레는 작업하기 좋은 도토리를 찾으러 이 가지 저 가지로 아침 산책을 나선다. 그들의 다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신갈나무는 피식 웃으며 나뭇잎을 팔락거려 땅속으로부터 물을 뽑아 올려 목을 축이며 중얼거린다.
‘그래! 너희들은 길게 살아야 한 철인데 몇 십 년을 사는 내가 너희들에게 그까짓 도토리 몇 개 내준다고 죽기야 하겠느냐?’
아침 일찍 관악산에 올랐다. 산은 아침이든 한 낮이든 편하게 맞아주는 어머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산길에 널브러진 도토리 가지가 많지 않다. 아마 도토리거위벌레도 개체 수를 조정하는 모양이다.
(열심히 구멍을 파는 도토리거위벌레)
도대체 도토리 거위벌레라는 놈은 어찌 생겼을까? 어쩌면 톱질하듯 정교하게 도토리 줄기를 잘라낼까? 항상 궁금해 하며 그를 만나기 위해 기웃거렸지만 아직 본적이 없다. 바삐 살아오다보니 차분하게 녀석을 찾아 나서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멀리 연주암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 땀을 식히며 신갈나무에 눈을 돌리자 회갈색 벌레가 도토리 위에서 열심히 구멍을 파고 있다. 아직 도토리거위벌레를 본적이 없지만 녀석의 행태로 보아 틀림없는 도토리거위벌레다. 코끼리처럼 기다란 주둥이를 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행여 녀석이 도망갈세라 조심조심 카메라를 들이대자 구멍에서 주둥이를 빼고 경계를 한다. 송곳 돌리듯 몸을 돌려가며 구멍을 파는 녀석의 지혜는 신기하기만 하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대부분 두서너 개의 도토리가 붙은 줄기를 골라 각각 구멍을 파고 도토리마다 알을 실은 후 톱질하듯 재빨리 줄기를 잘라 땅으로 떨어뜨린다. 녀석도 1타4매를 아는 고습톱의 명수가 아닐까?
그런데 도토리거위벌레는 왜 줄기를 잘라 땅에 떨어뜨릴까? 녀석의 하는 짓에 넋을 놓고 바라보니 어디선가 말벌 한 마리가 날아와 구멍을 노린다. 줄기를 잘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고 생명의 온상인 대지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함이리라.
(도토리거위벌레 알을 노리고 있는 벌)
사유하는 인간과 생각 없이 한 철을 살다가는 미물이 비록 사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종족번식을 위한 사랑은 똑같을진데 우리는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바람 한 점 없이 찌는 듯 더운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싶다.
숲속의 여름은 이렇게 작은 생명체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어떨 때는 개체수를 조정하여 스스로 삶의 터전을 보존하는가 하면 먹이사슬에 의해 평형을 유지해나간다.
후두둑 빗방울이 듣는가 싶더니 금새 폭우가 되어 쏟아진다. 뇌성이 울리고 산길은 물길이 되어 물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옷 젖을까 우산을 꺼내 들었지만 등산화도 물에 잠겨 철벅거린다.
비를 피할 것이 아니라 맞짱뜨는 심정으로 흠뻑 맞으며 걷다보니 젖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 좋고 더 이상 젖을 것도 없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 내가 힘들고 남들이 가진 것만큼 차지하려들면 그것 또한 힘들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신경질 부리던 매미는 화병나지 않았을까? 도토리거위벌레는 공사를 중단하고 어디서 어떻게 비를 피하고 있을까? 10.8.7(토) |
출처: 춘식아! 놀자! 원문보기 글쓴이: 창강
첫댓글 빼앗길 거 많이 없어서 참 좋은 사람 여기 있어요^^
그래도 밤손님이 가져갈 건 있데요..ㅎ
비 맞으며 산을 오르다보면...세상사 참 다 부질없다는...
정말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산하면 도로아미타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