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로회 서신- 나비야 감옥가자
■ 서울역 광장에서 신분 노출을 겁내지 않고 '김일성 만세'를 부를 만큼 '서울의 봄'이 무르익어가던 '3김 전성시대'의 1980년 5월 16일, 김대중은 최규하 정부에 선전포고를 한다. "최규하 정부가 내각을 해산하고, 계엄령을 철회하겠다는 약속을 5월 19일까지 김대중에게 통보하지 않으면 5월 22일 정오를 기해 전국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국장급 간부들과 부장 경호원, 의심을 받을만한 요원들은 서빙고 보안사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요원들은 출근 후 하릴없이 남산 밑 아스토리아 호텔 뒷골목 아리랑탕을 접선지 삼아 몰려다니며 고스톱이나 치면서 이제나 저제나 업무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개 월, 돌연 5월 17일 18시를 기하여 전원 집합이라는 김근수 수사국장의 긴급소집령을 받게 된다.
5월 18일 0시를 기해 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확대 선포되면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라 임무를 부여받은 수사관은 수경사 병력 1개 분대를 지원받아 대상 목표를 체포 압송하되 '반항할 시에는 총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하달 받는다.
보안사 주축으로 수사 주도권을 쥐고 있던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는 김대중을 비롯한 40여 명의 정치인, 종교인 등에 대해서는 신원 자료가 축적된 남산에서 수사를 담당하게 하고, 이미 부정축재 혐의가 언론에 보도된 김종필을 비롯한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은 그런 자료만으로도 보안사 요원들이 조사하는데 무난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서빙고로 압송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5.17 내란 혐의는 자인서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뒷담화로는 함세웅은 야식 때 수사관들에게 술 좀 마시게 해달라고 따리치고 질척대어 눈치를 받았지만 김동길과 최형우는 의연한 태도를 보여 존경을 받았고 김옥두는 체포 과정에서 수경사 헌병에게 '총살' 대신 개머리판으로 한방 맞은 후 남산 지하실에서도 자인서를 안 쓰겠다고 충성심을 보이다가 수사관이 치켜든 침대 각목을 보고 겁에 질려 제발 살려만 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남산에서는 물리력을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다.
■ 43년의 세월이 지났고 법으로까지 왈가왈부가 금지된 5.18이 7월 19일 오전 10시 정동의 프란시스코 교육회관에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가짜유공자 때문이다. 일부 양심적인 진짜 유공자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 5.18단체에서 비주류로 취급되고, 현장에 없었으면서도 인후보증 등을 통해 유공자가 된 가짜 유공자들이 진짜 행세를 하기에 이를 바로잡아 달라 하소연을 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었다.
사실 유공자의 정의는 무엇인가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극히 상식적인 문제다. 윤봉길 의사처럼 직접 행동을 하거나 함께 모의, 또는 최소한 도시락 폭탄을 만들 때나 홍구공원 현장답사 때 보조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장에도 없었으면서 서울역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고 유공자로 등록된다면 장기표처럼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아야지 이해찬처럼 어찌 일국의 총리까지 지낸 자가 뻔뻔스럽게 신고하여 수당으로 국민의 혈세를 받아 먹을 수 있을까.
당시 경찰 등 모든 공권력이 철수해 버린 광주는 무법천지였다. 안기부는 대공 용의점이 없는지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호남 출신의 베테랑 수사관을 급파하고, 쌀장수로 변신한 그는 짐바리 자전거를 끌고 금남로와 도청, 충장로 일대에서 첩보를 수집하며 불타는 MBC방송국과 북한 방송이 실시간으로 확성기로 뱉어내는 광주의 해방공간을 은밀히 배회한다.
이후 5월 27일 계엄군이 광주를 완전히 접수한 후 공식적으로 파악하여 기록된 안기부의 '광주사태 백서'를 비롯해 검찰과, 계엄군 수사기록부, 대법원의 최종 판결문은 대동소이한 것으로 결론은 이러했다.
■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것이 '연고대생으로 보이는' 600명의 정체다. 5월 21일 08시 계엄군 20사단 지휘차량이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의 정보가 20사단 작전참모부에서 광주의 전투교육사령부로 암호로 타전된다. 어떻게 입수하였는지 상기 600명 중 300명이 오직 몽둥이만으로 차량 행렬을 덮쳐 훈련되고 조직화된 정규군의 짚차 14대와 군용트럭 34대를 탈취해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동일 09시에 이들은 또 다른 곳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온 '연고대생으로 보이는' 또 다른 300명과 합류하여 철조망이 쳐진 높은 망루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있던 군납업체 경비병들을 제압하고 375대의 군용트럭과 최신형 장갑차 4대까지 탈취해서 몰고 나간다. 운전할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겁도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운전을 할 줄 안대도 어떤 광주시민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전남에는 총 26개의 시.군이 있다. 아시아 자동차를 나온 600명은 무기가 있는 17개 시.군에 위장된 44개소의 무기고를 정오 12시로부터 오후 4시에 걸쳐 불과 4시간 만에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5,403정의 총기와 8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 뇌관, 도화선을 탈취했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이 어떻게 무기고의 위치를 알아 이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라면 어떤 광주시민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수천 명이 사살되었다는 소문과 달리 광주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총 154명이었다. 문제는 이 중 총상 사망자가 117명인데 75%에 해당하는 88명이 계엄군이 소지한 M16이 아니라 무기고에서 탈취된 칼빈이나 M1 총을 맞았다는 점이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600명의 연고대생이 광주시민의 등을 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광주시민들이 88명의 무고한 생명을 죽였을까.
시민군에 장악된 도청 지하실에는 2,100발의 다이너마이트가 정교하게 조립돼 있었다. 김창길로 대표되는 광주의 온건파 청년들이 은밀하게 소준열 계엄사령관을 찾아와 폭탄을 해체해 달라고 간청한다. 5월 24일 폭탄 전문가인 5급 문관 배승일과 조수 2명이 잠입하여 이틀 동안 목숨을 걸고 해체에 성공한다. 강경파가 사라지고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폭탄 조립이나 해체작업은 공병 중에서도 특수 기술에 속하기 때문에 군 생활을 오래 하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연고대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어떤 광주시민이 계엄군 1만여 명과 80만의 광주시민을 죽이려고 폭탄을 조립했는가.
당시 170명의 간첩을 포함해 총 2,700명이 수용된 광주교도소는 31사단 병력이 경비하고 있었다. 5월 21일 광주 증심사 부지주로 신분을 감춘 손성모 등 암약하는 간첩들에게 교도소 수용자를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이용하라는 평문으로 된 지령문이 계엄 당국에 청취됐다. 후에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정웅 사단장을 사상적으로 의심한 계엄 사령부는 단 2시간 만에 31사단을 철수시키고 정예부대인 제3공수여단을 배치했다. 전광석화였다. 무장시위대는 5월 21 밤 무려 5회에 걸쳐 파상공격을 퍼붓지만 자살행위였다.
■ 2017년 4월 19일 광주의 언론들은 광주시장 윤장현과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의 발언을 대서특필한다.
"광주시민은 절대로 광주교도소를 공격한 적 없다. 교도소를 공격했으면 시체들이 있어야 하는데 시체가 없다." 대법원 판결문은 분명히 광주교도소가 5회에 걸쳐서 공격을 받았다고 명시했는데 그럼 누가 공격했다는 말인가.
역사는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밝혀지고 또 밝혀진다. 방원의 난이 그러하였고, 계묘정란이 그러하였으며, 소련연방 해체 후 비밀이 해제된 6.25남침이 그러하였다. 아니 80년 오월의 광주 또한 이미 그 전모가 다 파악되고 있지만 단지 무능한 위정자들에 의하여 진실이 잠자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는 3년이 지나도록 허튼짓만 하고 있으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총선을 의식하여 출장 간 미국에서 5.18 관련하여 어떤 모임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리지 않도록 해당 의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게 대한민국 정치권 현주소다.
윤석열 정부에서 보수우파가 청산(靑山)이 아닌 감옥을 가야 할 각오를 해야 할것이다.왜냐하면 현하 광주5.18 유공자 운운하는 자들과 그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무소불위 신성불가침 초헌법적 성역으로 군림하며 온갖 특혜를 누리는 붉은 피바다 불의한 최고의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윤석열정부가 이 5.18민주화란 역린을 실사구시 바탕위에 명명백백하게 역사 바로 세우기 엄중한 조치로 5.18민주화란 양두구육의 진위, 정오,선악을 밝혀 바로 처단하지 못하며 박근혜, 이명박처럼 저들의 손에 모두 감옥에 가야할 것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3년 7월 17일 나비야, 감옥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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