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즉 알마와 베툴라 논쟁 차이점은, 과연 예수가 처녀 잉태였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점 입니다 -
// §.1 ▶ 답 안 1 : 정의 ◀ bada : 아 놀랍도다 임마누엘의 그 이름이여, 사7:14 상식분별지혜
2007/01/04 14:10
http://blog.naver.com/haabbu/90012732923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있고 선지자는 그들에게 구원에 대한 한 징조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메시야는 태어나야 한다. 여기서 구속자가 언급되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실로 중요함임은 온 민족의 구원이 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제안에 대한 아하스의 불신앙적 거절에도 불구하고 정하신 계획을 따라 마침내 메시야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다윗의 온 집 즉 유다 백성 전체에게 놀라운 임마누엘을 징조로 선포하실 때에 이 특별한 약속을 확증하고자 구원자를 일으키심으로 약속의 근거를 제시하셨다.
왜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이 대변 되는가? 이는 현실 역사와 관련이 있는 사건으로서 아하스 왕의 믿음 없고 정치적 실패로의 왕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이사야의 결별 선언이다.( 아하스는 716년까지 통치)
여기서 징조란?
적의 연합 공격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죽음과 사망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속사적 사실을,
이중적으로 오묘하게 예언하고 있는 복합적으로 성취될 위대한 징조를 말했던 구속장이다.
7:14에서는 임마누엘에 대하여 어떤 설명도 완전히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데 이는 이 아이인 임마누엘이 다음 장에서 다시 두 번이나 나타난다는 사실로 분명해진다. 8:8,10에서 그 이름이 번역되었긴 해도...신비롭고도 중요한 한 아이가 9:6, 11:1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하기에 7:14절에서 임마누엘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두 구절 9:6, 11:1에서 거의 모든 주석가들은 일치되게 메시야라는 점을 인정한다. 거듭 언급되는 이 아이는 임마누엘이라 불리운 그 아이로 바로 이런 이유로해서 7장~12장은 임마누엘書로 불린다.
여기서 Almah는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인으로 성경 용례 중 6번(시편 표제에서 복수가 사용된 곳은 고려치 않겠다.)에 걸쳐 나타난다.
- 창24:43에서 리브가에 대해 사용되는데 모든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거기서 그 소녀는 분명히 처녀였으며,
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 출2:8에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에 대해서도 이 점이 동일하고,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 시68:25에서 성소에서의 장엄한 종교 행렬들에 나타날 가치가 있는 존귀한 여성을 가리킨다.
25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25 앞에서는 합창대가, 뒤에서는 현악대가, 한가운데서는 소녀들이, 소구 치며 찬양하기를
- 아가서 1:3의 용례를 고려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분명한데 이는 솔로몬이 사모하는 자는 처녀가 아니고 부인이었겠는가? 이는 왕비들과 첩들과 대조되는 젊은 숙녀를 가리킴에 사용됨으로 처녀란 뜻이 함축돼 있다.
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3 임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사람들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3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럽고 임의 이름, 따라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끝으로 잠언30:19에서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라는 표현에 여러 해석이 가해졌으나 이는 음녀의 대조적인 행실의 한 문맥인 20절에로 언급됨을 보아서 이 여자는 순결한 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19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9 곧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와,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이다.
20 간음한 여자의 자취도 그러하니, 먹고도 안 먹었다고 입을 씻듯이 "나는 아무런 악행도 한 일이 없다" 한다.
Almah는 청년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로 결코 결혼한 여자를 가르키지 않고 순결성을 지닌 '처녀'를 가르키는 단어가 분명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처녀인 여자' 라고 할 때 ' naAla Almah'(신22:23)라고 하는 복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통하여도 알 수 있다
이같이 Almah는 처녀라는 내외증이 충분하며 알마의 용례를 세밀히 고찰할 때 이는 분명 기혼 여성에게 사용되기에 무리임이 증명된 것이다. 또한 여성명사 Almah와 같은 어근인 남성명사 Allam도 모두 결혼 전의 소년에게 쓰여졌으며 삼상17:56,20.22, 고고학 비문에서 Almah와 동근어인 고대 우가릿어 gimnt가 오직 결혼 전 여자에게 사용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고찰할 때 Almah란 정결한 결혼 적령기의 숙녀를 뜻함이 자명하며 이런 자를 처녀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치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어에서 순결한 처녀를 가리키는 Betulah를 본문에서 사용하지 않았음으로 본문의 강조점이 처녀성보다는 신체상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이 부여돼 있다는 사실로서 Almah(어근 알람은 감추다. 숨기다 뜻)라는 표현이 Betulah와는 달리 일반적인 처녀가 아닌 남자와는 격리되어 자라온 성숙한 처녀 즉 동정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음임을 알 수 있다.
구약 헬라어 70인역 LXX에서 이를 처녀를 가리키는 헬라어 파르테노스 παρθενσs를 사용하였으며,
마태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동정녀 탄생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RSV의 난외주에 위치한 처녀라는 말은 본문으로 옮겨지고 오히려 젊은 여자가 난외주로 옮겨져야 타당하다.)
여기 Almah 논쟁에서 선지자가 만일 남자와 교제하여 어린아이를 잉태한 젊은 여자를 말해야 했다면야 과연 무엇이 신기하였을까? 선지자가 신기하고 비상한 징조나 기적을 말해주겠노라고 선언해 놓고서 달랑 한 젊은 여인이 잉태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이 얼마나 어이없으며 멸시스런 일임을 누구나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도 안됨에서 벗어나 연속된 임마누엘의 제시에서 읽을 수 있었음같이 7:14에서 이는 자연의 질서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의 은혜로운 힘에 의하여 잉태하게 될 한 처자를 말하고 있음임이 아주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실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셨다(딤전3:16)라는 고상한 말로 찬양하는 그 불가사의다.
선지자가 바로 이 동정녀 탄생의 징조야말로 사건의 위대성을 묘사하는 ``주께서 친히``, 그리고 ``보라``라는 강조적이고 감탄적 수사어를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그 처녀는 이사야의 아내도 아니며 당시대의 어떤 미지의 젊은 여자도 아닌 바로 메시야의 육신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를 가리킴이었다.
여기서 태어날 히스기야가 임마누엘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 아이가 신적이라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이사야의 다른 자녀들의 이름들이 그 당시의 중요한 사실들을 반영해 주듯이 이 이름도 위기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단순히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궤변으로 이 이름이 히스기야에게 주어졌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손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 그 나라를 구원했던 모세나 여호수아도 그렇게 불려지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이 임마누엘은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사람보다 우월한 이름으로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과 그 후에 나타날 모든 자를 능가한다.
이 아이가 언제 태어나는가? ... 2년 안에(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예언후 2년 수리아와 아람은 망했다. 732년 721년) 이는 새 왕이 태어날 것을 제시하므로 후임 유대왕 히스기야를 임마누엘로 지칭하였는데,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이같은 표징으로 메시야를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버터와 꿀은 왕들이 먹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어린이가 태어나면 젖을 먹이기 전에 버터와 꿀을 맛보게 하는 관습이란 그리스도가 가진 참인간성을 예시하는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선과 악을 분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또는 철든 나이가 될 때까지.. 어린이로서 자라나시게 될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가는 말하기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증거했다.
이렇게 7:14에서 이 아이가 하나의 희미한 모형으로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으며 이 임마누엘을 문자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었기에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해서 그 실제적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를 가리킴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가 가진 본성을 취하심으로서 자신을 우리와 연합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 또는 우리와 연합하시는 하나님으로 불린다. 이렇듯 임마누엘은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신적 호칭이요 죄 많은 인간들을 그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름인 것이다. 마1:21
<본 글은 다음,네이버,야후에 공동 게제한 글로서 네이트에서도 검색됩니다. >
------------------- 윗 글은 아랫 안티분의 제기로 촉발됐던 문제입니다. ----------------------
▷ 문제 제기 1◁ AsPre : 광신도 bada를 위한 성경 강의 [0]
96745 | 2007-01-03
추천 : 4 / 신고 : 1 | 조회 : 62 | 스크랩 : 0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임신하였다고 한다. (마태복음)
여기서 성경적인 근거는 이사야서이다. (7:12)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아하스 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전체 맥락을 다 보면 다음과 같다. (3줄 요약 있음)
질문: 아람왕과 사마리아 왕이 유대를 계속 괴롭힌다. 어쩔꺼야?
이사야의 대답: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찌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3줄 요약:
처녀가 임마누엘이란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은 버터와 꿀 먹고 사는 귀하신 몸으로 자란다.
그 아들이 철 나기 전에 (선악 분별하기 전에) 아람과 사마리아 둘 다 망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 예언은 수백년 후의 예수 탄생이 아니고, 당장 유태 왕가에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게다가 버터와 꿀을 먹고 자라는 아이라는 표현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강조에 또 강조가 되어 있는 예수와 어울리지 않고, 신이라는 예수가 철이 난다는 것도 우습고, 아람과 사마리아 왕이 망한다는 것도 전혀 얼토 당토 않은 이야기이다.
결정적으로, 예수는 임마누엘이란 이름이 아니었다!!!
즉, 이사야서의 예언을 억지로 끌어다 예수 탄생의 예언으로 쓴다는 것은 구약을 잘 아는 사람에게도 먹히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게다가 "처녀"라는 단어도 문제이다.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Almah, 즉 젊은 여자, 후궁 정도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신약 성서의 마태복음에서는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슬쩍 "Parthenos"(숫처녀)로 바꾸어 놓았다.
Almah가 숫처녀인지, 젊은 여자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아티클 참조: (영어임)
http://www.geocities.com/paulntobin/virgin.html
참고로, 유전학적으로 보아, 인간의 처녀 생식은 가능성이 극히 낮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처녀 생식으로 태어나는 아이는 절대로 남자가 될 수 없다. Y 염색체가 올 곳이 없으므로.
// §. 2 ▷ 반 론 2◁ secretsamadhi : 바다님에게 [0]
99833 | 2007-01-23
추천 : 1 / 신고 : 0 | 조회 : 46 | 스크랩 : 0
님이 쓴 아 놀랍도다 임마누엘이시여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글의 요지가 잘 파악이 안되더군요.
님이 제시한 예문들이 성교를 안한 처녀들인건 맞을지도 모릅니다.그당시 유대민족은 여자의 순결에 대해 엄격했기 때문에 젊은 여자라 하면 거의 다 처녀였겠죠.
그러나 분명 히브리어 알마(alma)가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처녀는 베툴라아입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보라 처녀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말의 처녀는 젊은 여자(alma)가 성교를 해서 아이를 낳을거라는 말이고 (문맥상으로 아하스왕이 새로 맞이한 젊은 왕후가 아이를 가질 거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처녀가 잉태한다는 구절은 정말 성교도 하지 않은 순수한 처녀마리아(베툴라아)가 아이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김용옥이 쓴 글의 요지는 마태복음의 기자가 예수의 탄생이 동정녀(즉 성교를 통하지 않고 예수를 잉태한것)를 통해서 탄생한것을 강조한것이고 이것은 전혀 이사야서의 문맥과 맞지 않은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당연히 구약의 예언을 들먹어야 예수의 가오가 서지요. 그러다 보니 전혀 엉뚱한 이사야서의 임마누엘을 예수와 메시아로 연결시킨 것이죠.
구약의 사본에 대해 아실란가 잘 모르겠는데 초대기독교인들이 본 구약은 70인역에 바탕하고 있죠. 70인역의 번역이 희랍어 번역인데 희랍어로 젊은여자(네아니스)이고 처녀는(파르테노스)입니다
이 70인역에는 처녀(파르테노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다른 희랍어 번역본인 아퀼라,심마커스,데오도숀 역본에는 모두 네아니스로 되어 있습니다.
---------------------
(김용옥의 절차탁마 대기만성중에서)
예를 들면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마태복음 기자가 예수의 처녀탄생설화에 원용해 쓴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마태 1:22-23)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해석학적 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급박한 역사적 위기에 직면하여 초조와 불안 때문에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까지한 아하스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이사야가 한 예언인데 이때 700년 이후의 예수탄생을 표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우리 성경번역 자체가 신약에 맞추기 위하여 잘못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서 처녀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알마아(alma)이며 알마아는 젊은 여자(young woman)의 뜻이지 "성교를 경험하지 않은 여자"의 뜻이 아니다.처녀라는 특정된 히브리말은 "베툴라아"다 ▶ 답 안 2 ◀ bada : secretsamadhi /LXX와 -- 아퀼라,심마,테오... 저작시기면서 [16] 99862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84 | 스크랩 : 0 님의 말을 이어서, 님의 게시 글은 좀 더 살펴 볼 문제가 있다고 여깁니다. 구약 히브리어원문을 헬라 70인역 LXX의 채택 번역어인 처녀 파르테노스와, / 그리고 서기 130년후 헬라어번역본인 아퀼라,심마쿠스,테오도루스 역본에서의 네아니스(젊은여자)로의 채택 문제에서... ``마태복음의 저작 시기가 AD 70년경으로 복음서 시대는 LXX (BC 2~3세기)를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인 역본인 아퀼라역본은 랍비 아키바의 지도를 받으면서 AD 130년경에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직역하였으며 오리겐(A.D.254)의 '헥사플라'(Hexapla-6개언어대조성서)에서 대조 차원에서 그 단편을 넣어 남아 있음이고요.... /테오도루스의 개정본은 2세기 후반에 테오도루스라는 사람이 개정했음이며, /심마쿠스의 역본은 2세기말 심마쿠스가 번역으로...단편만이 알려져 있구요. 아시듯이... LXX는 서기 전2~3세기 번역본이고, / 유대인의 아퀼라역본, 테오도루스개정본, 심마쿠스역본은 서기후 130~2세기 말이 번역 시기입니다. 즉 마태복음(AD 70 년경)이 권위로 인용하고 있는 LXX에 대하여, 서기후 130~2세기말에야 번역된 유대인 헬라어구약판이 시기적으로 무슨 견줄 가치가 있는가고 의심이 가는군요. 혹시 연대가 동시대에 상존했던 번역본이라면 몰라도? 즉 더구나 복음서 시대에도 아퀼라역본, 테오도루스개정본, 심마쿠스역본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히브리어 원문과, LXX 헬라어역을 권위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는 없었으며 부정하고 말고도 없지요. 즉 아무것도 없었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헌데 무슨 하자가 있다는 것이죠? -------- bada 사본학 문제에서 학자들 간에 가장 먼저 주고받는 것은 바로 저작 시기이더군요. 01-23 secretsamadhi 바다님 그럼 70인역은 아무런 원본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단 말입니까? 70인역도 분명 어떤 히브리 사본을 보고 희랍어로 번역했겠죠. 01-23 secretsamadhi 위에 님이 말한 사본들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예수에게 끼워맞출려고 하자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기독교에 대항해 만든 사본들이죠 01-23 bada 쿰란사본의 발견으로 히브리어 필사원본이 발견됐잖나요. 01-23 secretsamadhi 사해사본은 오히려 기독교에서 채택한 70인역보다 마소라사본이라고 유대랍비들이 만든 사본에 더 가깝습니다 즉 판본적으로는 마소라텍스트가 더 정통에 가깝다고 할수 있죠 01-23 bada 사해사본이 맛소라사본이라구요? 맛소라사본이 어떤 것인데요??? 즉 맛소라사본이 히브리어 입니까 헬라어입니까? 맛소라사본을 맛소라학자들이 유대인헬라어사본에서 번역해 간 것입니까??? 님의 고견을.... 01-23 secretsamadhi 제말은 70인역보단 맛소라 사본이 훨씬 구약의 원전에 정통성이 있는 번역이라는거죠 01-23 bada 맛소라사본이 히브리어니까 구약히브리어원문의 필사본이죠? 그러니 이는 번역본이 아닙니다. 그러구 LXX는 맛소라본 필사전의 히브리어원문의 헬라어역이니까 번역본이죠 필사번역본이라고 말을 써요. 그러니 필사와 직역의역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죠. 01-23 bada 그러구 저 위에 아퀼라,심마쿠스,테오도루스 역본은 히브리어필사본이 아닌 헬라어 개작 필사본이야요.이것을 구분해 주셔야...재밋으시죠?ㅋㅎ~ 01-23 bada 맛소라사본이란 히브리어사본으로 본래 히브리어 원문이 자음뿐이므로 이에 모음의 발음을 덧붙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맛소라필사본이 맛소라 학자들이 유대인 헬라어필사본에서 히브리어로 가져온 게 아니란 겁니다. 다만 모음만을 붙인 것이죠 이를 맛소라본이라고... 01-23 secretsamadhi 그렇담 어느 사본이 더 이사야서에 나오는 처녀의 의미에 부합하겠소? 번역된 70인역이요? 아님 히브리어로된 마소라사본이요? 제말은 그러니 마태기자가 잘못 번역된 70인역으로 구약을 해석해 예수에게 적용했다는게 문제란 말이요 아 그만합시다. 제말의 요지부터 파악하? 01-23 bada 쿰란 히브리어필사본이 발견 전에는 어떤 학자는 LXX헬라어본에서 맛소라본을 번역해 오지 않았나 주장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쿰란사본의 발견으로 이는 허위가 판명된 것이구요. 히브리어필사본이나 맛소라사본은 거의 차이 없읍니다. 모음뿐이...알마에 대해선 당연히 ? 01-23 bada 히브리어본(쿰란,맛소라)....외에 다만 LXX와 개작헬라어본이 이 문제에 대해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 이는 그 필사본의 연대 추적으로 이 문제는 이미 종결된 문제라는 말입니다. 토인비가 어리석게 속아넘어 간 것이죠. 01-23 bada 왜 토인비가 그랬을까요? 토인비의 시대에서는 다윈 진화론이 역사학이던 생물학이던 인류학이던 정치학이던 신학이던 맹주였습죠. 그래서 토인비도 진화론세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금일의 우리가 아니죠. 01-23 bada 구인류학들은 신유전학자들에 신임을 잃고 추상으로 판명된지 오래잖나요. 01-23 bada 누가 맛소라 학파가 히브리어 자음을 집어넣었다고 하죠 ?????????????? // §. 3 ▷ 반 론 3 ◁ secretsamadhi : 70인역과 마소라 사본 [6] 99873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40 | 스크랩 : 금 지 70인역과 마소라 사본 사이에 나타난 의미론적 차이들 마뉴엘 M 진바키안 70인역 번역은 그간 수많은 연구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 연구들은 70인역으로 번역된 원본(Vorlage)에 관한 질문, 번역 철학과 “번역 기술” 뿐만 아니라 언어학적 차원에서는 문자에 관한 질문, 수준, 그리스어 지식,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사된 그리스어, 표준적 코이네(koine)와 히브리어의 융통성(versatility); 번역의 플러스 요소들과 그리고/혹은 마이너스 요소들을 다루었다. 또한 원본에 충실함, 문법구조의 일관성 있는 번역, 제공된 의미론적 정보의 양과 어원학적 분석의 종류도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번역의 다양한 양상이란 차원에서 우리는 바른 균형을 필요로 한다. 마소라 사본과 관계된 70인역의 연구를 위해 우리는 또한 유대사막에서 최근에 발견된 사마리아 오경, 시리아역, 불가타, 70인역의 파생역본들도 보아야 한다1). 오늘날 성서번역자인 우리들이 주석, 용어색인, 문법, 어휘집 그리고 첨단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작업들을 당시 70인역 번역자들은 이런 도구 없이 하였으며, 그들은 또한 언어학이나 번역이론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 없이 번역에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어떤 기술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사용했다기보다는 직관적이고 비의식적이었다고 그 성격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2). 누구도 70인역의 특징이 문자적 번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같은 책 안에서도 문자적 번역과 의역의 경우를 함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또한 70인역이다. 그들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의역을 하였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그 의미가 불분명해질 정도로 지나치게 문자적인 번역을 고집하기도 하였다3). 번역작업에 있어 그들은 의식적인 번역철학이나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의미 전달”에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의미 전달”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규정짓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들은 그들 이전에 존재했던 사본을 이해하지 못했고, 잘못 읽기도 하였으며 틀린 모음을 붙이거나 히브리 원본(Vorlage)의 단어들을 잘못 분할하기도 했다. 우리는 오늘날 그 번역자들의 초기 번역본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소유한 70인역 사본들과 번역가들이 살던 시대와는 6세기 정도까지도 차이가 나는 시간적 공백이 있다. 설사 확실한 독법(reading)까지 일치하는 다수의 사본들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이것이 잘 보존된 원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사본복사와 전달과정에서 서기관들에 의해 발생한 수많은 변질들이 - 본의 아닌 파손과 의도적인 “향상”으로 볼 수 있는 - 70인역 본문에 침투했을 것이다. 마소라 사본과 70인역을 비교하면서 그 양과 정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대 사막의 사본들이 나타나기 까지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70인역에 대해 두 가지 상치되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는 70인역은 신뢰할 만한 번역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다고 여기나 BHS의 편집자들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70인역을 탁월하고 가치 있는 번역으로 인정하여4) 본문비평의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우리는 유대사막의 사본들이 70인역의 평가에 핵심적인 방향전환을 초래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소라 사본과 다른 히브리 사본들이 발견됐고 그것들은 70인역의 원본(Vorlage)에 더 가까워 보인다 - 4Qsama, 4Qjerb,d - 이 사실은 학자들의 마소라 사본 배후 연구를 가능하게 하였고, 원문의 진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필자가 보기에는 더 연구해야 할 다섯 가지 주요 분야가 있다. 1) 원본(Vorlage)에 따른 다른 점들, 2) 번역 기술들, 3) 번역 기술의 부족, 4) 목표 언어의 어색함들, 5) 내적 그리스 텍스트 전달(Inner Greek Text Transmission). 이중 처음 네 가지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이며 이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문장의 전달을 다루는 문제는 비록 똑같이 중요성을 띈다 할지라도 이 논문의 범위를 넘어간다. --------- bada 펌 기술은 좋은데 이게 어떻다는 거죠? 주장이 머요?? 01-23 bada 헉 빨랑 급패요오오^^* 01-23 bada 화장실 갖나? 그럼 할 수 없지만 뇌를 식히기도 해야 하니까...ㅋㅋㅋ 너무 급히 하면 부서져버릴라,,,ㅜㅜ 01-23 secretsamadhi 내글의 요지는 구약을 유대역사만의 상황과 그당시의 역사기술로 이해해야지 무슨 예수가 메시야임을 곳곳에 예언했다는 식으로 보면 안된다는 뜻이오 01-23 bada 구약 LXX는요 복음서의 예수와 예수제자들만이 인정한 권위본이 아니라... 구약의 중간기 유대인과, AD130년 이전의 유대인 전부가 인정한 헬라본이야요. 복음서 새대의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구요. 01-23 bada 즉 토인비가 비판하는 바의 근거 자료는 맛소라본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 LXX의 개작헬라어본에서 비판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석학으로서 그런 근거도 하나 구분을 못하느냐의 어리석음에 대한 금일의 비판이랍니다. ▶ 답 안 3-1 ◀ bada : 토인비도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 99869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39 | 스크랩 : 0 ▶▶1. 유대인들이 예수를 달아 죽이고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군병들에게 돈을 멕여 시체를 훔쳐갔다라고 거짓말로 얼버림도 모자라서, 구약 원래의 히브리와 LXX 경전은 모조리 기독교인들한테 빼앗겨 버리고... 이에 메시야인 예수를 거짓이라 조작하기 위하여 혈안이 돼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LXX사본을 버리고서는, 이후 변개한 것을 저들 경전의 일부로 삼았음이 안보인단 말인가요? ▶▶2. 그래 오리겐(A.D.254)이 '헥사플라'(Hexapla-6개언어대조성서)에서 신약유대인의 변개필사본을 함께 실었음은 오리겐이 LXX와 유대인 변개필사본을 동등 평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대인 필사본을 반박하는 차원에서의 대조 일환으로 실은 게 단편으로 남아있음인가요? *** 오리겐이 유대교도 입니까???ㅋㅋㅋ*** 그러면 토인비의 논리가 통할지 몰라도~~~ 난 처음 듣네요 귀를 씻어봐야겠습니다다다..!!! 이렇기에 구약히브리인의 히브리어 원문성경과 LXX역본(서기전 2~3세기)의 권위적 영감과, 서기후 130년~2세기말의 유대교도의 개작필사본은 구분될 수밖에 없습니다. 토인비는 후작질로 선작을 까뭉개려는 유대인의 간악한 꾀가 안보인단 말인가요?? 그래서 세계적인 석학인가요???????????????????? ---------------------------- 아 래 ----------------------------- /세계적인 석학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인들이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적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예언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무모하게 구약의 명백한 원뜻을 변형시켰는가 하는 것을 알고 놀라움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 마태복음 기자가 이사야서 7장 14절의 내용을 원용해 쓴 것으로 유명한 마태오 복음1장 22~23절을 보자.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이 말은 불행히도 히브리어판 이사야서 7장 14절에는 '처녀'라는 단어가 아니라 '알마아'(alma)로 되어 있으며 '알마아'는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처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베툴라아'이다. 다른 희랍어 번역본들(아퀼라, 심마커스, 데오도숀 역본)은 모두 희랍어로 '네아니스'(히브리어의 '알마아'에 해당)라고 되어 있고 오직 셉츄아진트만이 '파르테노스'(히브리어의 '베툴라아'에 해당)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사야서의 '알마아'는 성교를 경험하지 않은 예수의 엄마가 아니라 아하스왕이 새로이 맞이한 젊은 왕후로 보아야 마땅하다 ------- 토인비·어반 공저, 최혁순 譯 <미래에의 좌표> p13, 삼중당 ▶ 답 안 3-2 ◀ bada : 맛소라 본문에 대한 상식 [1] 99888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28 | 스크랩 : 0 /맛소라 본문에 대한 상식 현재 기독교에서 쓰고 있는 히브리어성경은 옛날 회당에서 쓰던 두루마리 성경과는 그 본문상 조금 틀립니다. ``자음은 동일하지만, 옛 회당에서 쓰이던 두루말이 성경은 모음과 악센트가 없었습니다.`` /발음을 아예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여서 히브리어 자음에다 모음과 악센트를 고안하여 부여하므로서 금일의 성경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맛소라라고 합니다. (마소라는 AD 500-1000년까지 여러 가문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이중에 가장 권위가 있는 가문이 벤아쉐르 가문이었으며, 지금까지 발굴해 낸 본문 중에 이 벤아쉐르 가문의 본문으로 보여지는 본문은 3가지 입니다.) 첫째는 히브리 대에서 보관하고 있는 알렙포코덱스(모세오경이 소실됨)이고, 두째로 대영박물관에 있는 카이로 코덱스(모세오경만 있음)이며, 세째로 레닌그라드 B19a 사본(유일한 전권이 있는 책)입니다. 현존하는 히브리어성경 중에 가장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알렙포코덱스와 레닌그라드 B19a 입니다. 알렙포코덱스가 레닌그라드보다도 더 정확하다고(이는 내용면에서가 아닌 모음과 악센트에서의 근소한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치만 알렙포코덱스가 모세오경이 소실된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반면 레닌그라드 B19a는 전권이 보존되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장점을 가지고 있씀이며 또 BHS에서 독일학자들이 연구한 본문비평은 히브리성경의 약점을 어느 정도 카버하고 있습니다. bada ) 그렇기에 레닌그라드나 알렙포코덱스나 벤하임텍스트나, 다 회당의 두루마리 히브리어(자음)의 필사본모음본 입니다. 따라서 LXX의 사7:14 히브리어 알마의 파르테노스에 대한, 이후의 신약유대교 헬라어역본의 네아니스에 대하여...... 두루마리인 쿰란필사원본이나 맛소라본이 수용을 못한다는 말인 것은, 회당 히브리어 두루마리 필사원본을 사용하던 중간기나 복음서 유대인들은 LXX만을 공인했었음이니까요. 왜 유대인들은 이같이 공인된 바 성경 헬라어사본인 LXX를 버리고 엉뚱한 거를 주장하지요? 정말 엉뚱하군요. ??? 참조 / http://hebrew.pe.kr/spboard/board.cgi?id=main ------------- bada 허걱걱~~ 이젠 다음 아고라 문화방 안티분들의 실력이, 안티개독들의 운영자들과 다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의 그들 까페를 접수하실 수 있을 정도로 급상승하셨음을 축하드립니당요.푸푸푸후후후...&&* 저야 당근 절대적 문화방안티편이죵...저 안안티 맞아용!...ㅋㅎ §. 4 ▷ 반 론 4 ◁ 해피투게더 : 이사야 7:14에 대한 생각 [1] 99893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59 | 스크랩 : 금 지 14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the young woma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 링크: http://www.mechon-mamre.org/p/pt/pt1007.htm 원조집에서 주장하 는것 믿을려구요. 사실 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잘깝니다. Geza Vermes라는 유대학자도 그냥 인간 이렇을뿐이라고 주장하고요 아무튼. 유대이단으로 출발해서 기독교는 이단컴플렉스가 강한듯 하네요. 이단이라고 서로 쳐죽인 유구한 역사도 그런 컴플렉스의 발현인듯도 싶구요. ------------- 남선교회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셨는데 징조로 오셨다 징조란 맞을수도있고 맞지 않을수도있다 ▶ 답 안 4 ◀ bada :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10] 99898 | 2007-01-23 추천 : 0 / 신고 : 0 | 조회 : 49 | 스크랩 : 0 그래 유대인의 뇌를 통해서 통찰해 보십시다요.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비와 긍휼로 오신 메시야가 하나님이 아니고 그냥 인간이어서... 곧 도래할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 유대인들이 기다린다구요? 그래 유대교에서 기다리는 그 가칭 메시야라는 자가 온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림으로 자신이 하나님임을 증명하겠습니까? 아니면 마의 철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려 하겠습니까? 현재의 유대인 그룹들은 바알 섬기는 프리메이슨에 소속돼 있죠. 그 올 바알이 메시야로서 저들을 위해 과연 십자가에 죽어줄까요? ???? 참 의문이군요. 유대인 저들은 지금 사음에나 빠져서.. 세상 권력에 눈이 멀어 소경으로 지내고 있는 겁니다. 마치 해리포터를 원하고 있음이지요. 지금 유대인들이 바알판 프리메이슨에 동승돼 있지만, 저들은 유일신이고 바알은 단신론인데 어찌 이런 구조로서 갈등이 전혀 없을 거라고 보십니까? 유대인의 여호와는 유일신(3.1체계며) 바알은 단신론이기에 반드시 갈라집니다. 이건 추론이 아닌 신관 씨스템에서 본 미래의 확실성입니다. ------ bada 여호와에 배신자 유대인들은 bada의 논설을 깨달아 알지니~~~,,, ;; 01-23 bada 유대인 너들이 바알판에서나 붙어서 대박을 터트리려 하느냐? 그래 그 바알이 너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려드냐?????? 어리석도다 유대그룹들이여 바벨탑이로다. 01-23 『난*그*저*나*일*뿐』 예수도 유대인인데? 01-23 bada 겸손과 겸허로 최대한 낮아지심으로 오신 십자가의 자비와 사랑의 주를 보지 못하고, 사음에나 미쳐설랑~ 바알을 주라 칭하며 마의 통치나 사모하며 끌어당기다니 이는 권력의지가 낳은 남용이로다. 01-23 bada 헉 그래요 그래서 지구환경과학자들이 지금 지구의 상태로는 10년 안에 경을 친다고 하며 수질과학자들이 바다가 산성화된다라고 경고하고 있나요? 01-23 bada 지구환경과학자와 수질과학자를 시한부로 몰기보다는 반성을 해야죠^^....전국 아니 세계의 모든 물고기매니아한테 물어보십시요. 수조의 물이 산성화가 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가를 그 참담성을 확인해 보도록 하십시요. 01-23 bada 바다 산성화란 수조의 물과 바닷물이 ㅅ셈셈이 된다는 말입니다요. 물고기가 죽으면 식수의 폐수화를 뜻함입니다. 정화력의 상실이죠. 물고기가 물을 정화시킨 답니다. 01-23
=============
< 사7:14 ~ 전후의 알마 동정녀 임마누엘의 탄생사에 대한 논쟁이 ....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독인과 일반인 여러분들께서,
질문과 답안의 쌍방간 신랄한 공방전을 엿보심에도 흥미로움이라 생각 들음에,
공방전의 전부를 올려 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