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사도들의 편지글은 오류가 있어야 오히려 정답
세상엔 많은 경전들이 있지만 그 중에 과연 "성경" 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이 지상에서 인간의 영원무궁한 "영생" 을 약속해준 생명책이다.
약속해준 때가 있으면 그 약속이 성취되는 때가 있다.
영생을 (본격적으로) 약속해주신 때는 예수님이 오신 이래 그분의 말씀과
행적이 기록된 신약성경의 때이고, 그 이후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은
그 영생의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하는 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초림때는 영생의 약속을 해주신 시점이고,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때는 마침내 그 영생의 약속이 성취되는 시점으로써, 인류는 전무후무한
새 창조의 새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것을 일컬어 “천지개벽” 이라고 한다.
물리적 세계의 천지개벽이 아니다.
사망의 인간이 영생의 인간으로 일대전환되는 인간개벽이요,
처음 창조였던 사망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새 창조가 시작되는
영생의 새하늘과 새땅으로 유월하는 인간세상 제도가 바뀌는 인문개벽인 것이다.
지금은 개벽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으로써 과도기에 있다.
인간의 짧은 수명이 확연히 길어지고 있고, 절대빈곤으로 굶주림에 시달려온
인류는 웰빙식품을 찾아 고급스러워지고 있고, 밤을 낮과 같이 밝히며
광속으로 달려가는 정보통신의 문명을 자랑하며, 인권존중으로 말미암아
낮은 자(여자)는 높아지고 높은 자(남자)는 낮아져서
음양동권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등등의 숫한 개벽의 과도기에 있다.
천지개벽, 그것은 "새 창조" 를 뜻한다.
새 창조를 맡으신 분은 오늘의 새 이름이신 재림 예수님이다.
새 이름의 그 한분이 천지개벽장이로 오신다. 천지개벽장이란 모든 옛것을
다 뜯어 고치시는 분이다.
그 분이 우리 앞에 그 영광의 몸을 드러내실 때 인류는 그 앞에 부복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왜일까?
그 분은 처음 하늘 처음 땅에서 있던 모든 재난과 해악들을 도말하시고
모든 난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셔서 해결해 주시는 권능과 권세자로
오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상처를 고쳐 주시고, 결정적으로 사망을
없애주시는 등의 "살려주시는 영(모든 산자의 어미 창3:20)" 으로 오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새 이름이신 그분은 어찌하여 살려주시는 영이 되시며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성경을 알면 영생이라고 했다.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그리스도를 알면 영생이라고 했다(요17:3).
하지만 성경 신구약은 모두 비유비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 자는 아무도 없고
오직 마지막 때 다시 오시는 새 이름이신 그 한분만이 아버지로 오시기 때문에
성경의 비유문자를 깨달아 우리에게 알려주심으로써
살려주시는 영이요, 모든 산자의 어미 노릇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성. 로고스. 형이상학)이신데,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물질계 사물을 들어 말씀하신 기록이므로, 감추어진 비유라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를 잡고 정직한 자기백성을 불러내시기 위한 모략과 전략으로써
비유로 깊이 감추신 것이 성경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기록되도록 그 주인공으로 오신 초림예수님 조차도
구약 성경 한줄 풀어주신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은 언제나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깊이 감추시고 떠나가실 때 쯤에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도무지 감당치 못하므로…"
라는 말씀으로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신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 때는 물론이거니와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까지는 모두 비유로 감추어져
있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전략전술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우리죄를 사해주신다고 하는 대명제가 붙은 예수님이 흘려주신
육체의 혈액이야말로 만입을 봉하고 있는 "비유의 피, 의문의 피로만 성립된다.
육체의 혈액은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를 티끝만 치도 사해주시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정직한가, 혹은 정직하지 못한가를 시험하시는
수수께끼의 피였을 뿐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비유만 잔득 베풀어 주시고 떠나가신 것이다.
떠나가셨지만 그 천국비유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신 이 때 보다 바로 한발 앞서 먼저 온
적그리스도들이 창궐하여 "내가 성경의 비유문자를 풀었노라" 라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주장들이 난립하여 야단법석이 벌어지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참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 가만히 도둑같이 오셔서
정한 때를 아시고 목소리 높이지 않고 들레지 않고 조용이 진리의 새말씀을
전하시지만, 메뚜기 떼같은 자칭 메시야들은 천하에 이름을 날리며
천둥벌거숭이로 덤벼들고 사람들은 미혹되어 인산인해로 모여든다.
그런데 이같은 자칭 메시야들과 그들에게 구름떼로 사로잡혀가는
기성교단은 둘 다 난형난제 같은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신약성경 중에 사도들의 편지글을 빼곡히 인용해서 자기들의 논리를
억지로 꿰어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의 사도들의 편지글은 사실 오늘날도
기성교단의 신도들 간에 말씀을 공유하며 서로 주고 받는 사사로운
서신에 불과하다.
다만 시대적으로 신약성경에 편입된 사도들의 편지글은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서신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인은 예수님 말씀 그 이상으로 떠받들어
신봉하고 인용한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다 깨달았단 말인가?
어림도 없다. 그들은 깨닫지 못한 가운데 횡설수설을 야기시킨 오류투성이다.
그 오류들을 어찌 다 지적할 수 있으랴!
다만 초림 예수님의 피공로로 이미 죄사함을 다 받았다고 믿고 있고
영원한 생명을 이미 다 받아놓고 있다는 복음서신 필자들의 기록자체가
오류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모두 비유로 말씀을 주시고 그분의 피 또한 비유인데
어찌해서 초림예수님으로 구원을 끝장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잘못된 논리에서부터 일파만파로 오류의 파장은 천지의 시공간에 가득히
넘쳐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초림 예수님으로 구원(영생)을 이미 다 완성해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에 오실 재림 예수님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그 즉시 개별적으로 죽은 영혼들이 천당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손바닥에 난 못자국 만져보며 승리의 금면류관 쓰고 왕노릇 하겠단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으니 그것을 또 꿰어 맞추기
위해선 그분이 마지막 때는 공중재림하셔서 사람들을 살아 있는 육체와 함께
하늘에 들려올라 가게 하는 사도바울의 "휴거사상" 을 복음서신에 끼어놓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같이 다만 하늘로 들려 올라가게 하는 역할만 재림 예수님께 부여해 준다.
이것이 예전의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신앙관이었으며
그것을 지금까지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 오늘날의 기성교단이다.
죄와 상관없이 예수님은 공중재림 하셔서 이미 구원받아 놓고 있는
믿는자들을 몽땅 데려가신단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같은 복음서신에 따라
내노라 하는 기성교단의 지도자들이 다시 오시는 재림예수님의 공중재림의
모습을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여 칠판에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구름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예수님이 흰 도포자락 펄럭이며 내려오시는데,
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올라가겠다고 까치발을 하고 양손을 뻗어
아우성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코메디도 일등 코메디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어가는 천국은 죽어서 개별적으로 영혼만 홀로 가는
천국이었으나 그 천국에는 또 육체와 그 영혼들이 함께 마지막 때
집단적으로 들림받아 들어가는 천국, 이렇게 천국이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전제하고서 죽어 영혼만 올라가는
천국이었는데 왠일로 마지막 때는 육체가 살아서 집단적으로 몽땅 들어가게
되니 천국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육체를 가진 인격체와 영혼만의
인격체들 간의 집단별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기상천외하고 야릇한 천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자칭 메시야들은 여기에 대한 모순점을 잘 활용하기로
착안한 모양이다. 과거에 육체가 죽어서 천당에 들어가 살고 있는 영혼들은
오늘날 자칭 메시야인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인간육체)과 서로 합일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게 신인합일이란다.
그게 천국혼인잔치라고 나팔불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 죽은 영혼들은 한 때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난 못자국 만져보며
천당에서 왕노릇하며 살고 있는 때가 있었는가 하면, 이제 마지막 때는
그 영혼들이 자칭 재림주들의 추종자들의 육체에 들어와 살게 된다는 논리이다.
영혼들은 신랑이 되고 육체는 신부가 되어 그게 천국혼인잔치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땅의 인간들에게 모두 빙의를 걸리게 하는 집단혼인잔치로
만든 꼴이 되고 있으니 끔찍한 일이다.
다시 말해 기성교단이나 자칭 메시야들은 어찌하든 복음서신을
자기들의 논리에 꼬박히 인용해서 오류없음을 위장하고 있는 셈이다.
복음서신을 억지로 꿰어 맞추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이 그들을 망치리라.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심에는 틀림없으나, 초림 때는 천국의 실현이 절대로
아니다. 재림 때에 마침내 천국실현을 목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탐욕으로 이미 초림 때 구원(영생의 천국)을 다 받아버렸다고 믿는
그 성급함이야말로 그게 곧 하나님이 금하신, 보기에 탐스럽고 먹음직했던
"선악과" 였던 것이다.
오늘의 새 이름 외에는 누구든지 그 선악과를 범하게 되어 있다.
그게 하나님의 예언이었고 논리이며 그 예언 성취가 또한 초기그리스도인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선악과는 초기그리스도인 때부터 범하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셨으며 그게 성경의 논리이다.
그러므로 선악과 범법에 의해 초기그리스도인의 복음서신은 오류투성이어야
함이 오히려 마땅한 정답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오류가 없다면
예수님은 다시 오실 필요가 없게 된다.
그들이 재림예수님의 노릇을 이미 다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한 인간들은 어찌하든지 자기 목숨이 죽을까봐
복음서신은 무조건 오류없는 영감받은 말씀으로 믿고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든 인용하여 꿰어 맞추는 게 장땡으로 환성과 탄복과 선망의
대상이라서 기성교단이든 자칭 메시야든 아첨꾼이 되어 누구든지
그 큰 대열에서 거짓 성령의 출세가도를 마구 달려간다.
예수께서는 "아니오" 와 "예" 를 분명히 하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자.
죽을찌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만(정직해야만) 살게 된다.
즉 복음서신(사도들의 편지글)은 오류가 많아서 인용하기에 위험하므로
“아니오” 가 된다.
복음서신을 “예” 라고 한다면 정직하지 못한 거짓말쟁이가 된다.
하나님은 이천년 동안 우리의 정직을 저울에 달아보시는 시험을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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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움켜쥔 행복은 씨앗이지만 나누는 행복은 꽃이고 열매라고 합니다.
오늘도 꽃피고 열매 맺는 행복한 하루 힘차게 만들어 가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