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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의 특별한 사랑 고백을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
요한계시록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는 그리스와 로마가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졌었습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며,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 행사가 늘 있었기 때문에 '작은 아테네'로 불려질 정도로 이방 종교가 흥황했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도시는 서기 17년에 있던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지진들이 잦았기 때문에 지진은 빌라델비아 도시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불안정의 요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도시가 대지진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을 때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빌라델비아에 세금을 면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여 도시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빌라델비아 시민들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도움과 사랑에 감사하여 도시 이름을 황제의 이름을 따서 “네오가이샤라”라고 칭하였습니다. 즉, ‘새 황제’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 도시는 그 칭호로 30년간 불리다가 서기 70년 경에 황제 베스파시안을 기리기 위해 다시 “플라비아”라고 새롭게 칭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빌라델비아 교회는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오직 칭찬만을 들은 교회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배워야 합니다.
먼저 7절을 보면, 주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시며 진실하신 분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표현으로써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인 사실을 나타냅니다. 또한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라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은 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신 참 메시아로서 다윗 왕국의 영원한 왕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시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셨고, 동시에 구약에서 예언하여왔던 참 메시아로 입증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님은 다윗에게 언약된 영원한 왕국의 열쇠를 취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을 얻고 그분의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배경은 빌라델비아에 자칭 ‘유대인’들이라는 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던 자들로서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을 지닌 자들이 다윗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하며, 주 예수님을 믿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열쇠를 지니신 분은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린양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을 통해 다윗 왕국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에 우리 주 예수님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는 백성을 그분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혈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부모의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력으로도, 선행으로도, 잘 생겨서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8절을 보겠습니다.
‘볼지어다’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이 선언은 주 예수께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청중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볼지어다’의 뒤에 나오는 내용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에게 메시아의 왕국의 문이 닫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영광을 얻으신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그리스도의 왕국의 문을 열어두었다고 말합니다. 그 문은 하나님의 도성과 성전으로 이어지는 문입니다. 천국의 문입니다.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천국 문을 여셨으니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 교회야 말로 주께서 천국 문을 열어두신 교회이기에 그 교회에 몸담은 자들마다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가 주께서 문을 열어두신 교회라면, 아무도 그 문을 닫지 못할 뿐더러 계속 이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 말이 너무 중요하기에 ‘볼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9절을 보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보라. …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 3:9).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신부가 남편에서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받을 때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찬 순간이 언제이겠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고백을 받아낸 교회입니다. 이에 주 예수님은 ‘볼지어다’로 시작하여 온 우주 앞에서 ‘보라’라고 말씀하신 후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셔서 구원과 거룩함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두신 그러한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교회는 이 우주에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로 인정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러한 주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8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시고 열린 문을 두신 이유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켰으며, 작은 능력 밖에 없음에도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작은 능력’과 ‘내 말을 지키며’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작은 능력’과 ‘배반’이 대조됩니다. 즉, 작은 능력을 가질 경우 일반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작은 능력 밖에 없으면 주님을 배반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이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서 신앙을 저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허락하심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으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감동을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능력'이란 세상적으로 볼 때 신분이나 지위나 돈이나 세력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초라하고 돈이 없고, 사람수도 많지 않았고, 배우지도 못하였고, 또한 재능 있는 자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한편 사탄의 회당인 자칭 유대인들은 빌라델비아 사회에서 다수였고 사회적인 세력과 돈과 성공과 인기 등,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따돌림 및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진리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수호하고 또한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게 된 요인입니다.
성경에는 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주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26-31).
즉, 주님만을 최고의 사랑과 자랑으로 삼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된 참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적으로 볼 때 명예나 돈이나 권력도 없었고, 또한 사람도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사랑하며 감사했는데, 이를 주께서 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빌라델피아 교회는 세상의 조건 때문에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큰 능력을 얻기 위해 주를 따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 예수님이 좋아서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끝까지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함으로서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9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향해 충성하였으나 자신의 의를 향한 충성이 됨으로써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주범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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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10:2-3; 살전 2:15-16)
바울도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며 옥에 가두는 등, 괴수처럼 행동할 때는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의를 세우려고 최선을 다할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의를 가장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는 자기 의는 복음을 주신 하나님의 의와 가장 원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말씀을 이용해서 내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의 끝에서는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노골적으로 대항하면서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바벨탑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를 두둔하며 위대한 지도자가 한명 등장할 것입니다. 그가 바로 불법의 아들인 적그리스도이며 또한 그 짐승입니다.
사탄의 회당인 자칭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어리석음에 빠져 참 유대인은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인 것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롬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러한 신학적인 싸움에서 끝까지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을 수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의 간섭하심으로 결국 사탄의 회당에 속해 있던 유대인들 중에 몇이 복음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계 3:9).
10절의 말씀을 보니 주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너희는)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의 인내의 말씀’을 보면 인내를 서술하는 것이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시며, 말씀은 주님이 서술합니다. 즉, 주께서 인내하신 것에 대한 말씀을 빌라델비아 교회가 수호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인내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인내하신 주님의 말씀, 즉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복음을 뜻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복음을 지켰습니다. 이미 확인한 것처럼 빌라델비아 교회가 당한 가장 큰 고통은 유대인들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에 대한 시비로 참으로 많은 시련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간의 의를 외치는 자칭 유대인을 향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 즉, 십자가의 도를 붙들고 그들의 협박과 공갈과 회유와 핍박을 견디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수호하면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면류관의 상을 받습니다. 주께서는 복음을 수호하며 외치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주께서는 복음을 수호하는 교회를 재림의 그 날까지 보존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가 주님 재림의 날까지 존재하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설교단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에 대한 복음을 피흘리는 순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선포하게 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내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멈추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그러한 기도를 함께 드리기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을 수호하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되게 하소서.”
10절 이하를 보니 주께서 복음의 말씀을 수호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큰 약속을 하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서 시험의 때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먼저 시험이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2장 2절은 정확하게 시험의 뜻을 알려줍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아노라”(계 2:2)
그런데 주님은 이 시험의 때에 대하여 추가로 설명하시길,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의 ‘때’는 원어로는 시험의 ‘그 시간(hour)’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특정한 어떤 짧은 기간을 말합니다. 그 짧은 기간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의 기간을 말합니다. 대환난은 주의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장치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입니다. 즉, 교회를 향한 엄청난 핍박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는 불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 때는 시험의 때이기 때문에 가짜와 진짜가 확연하게 나뉘게 될 것인데,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전부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바로 이 시험의 때에 진짜와 쭉정이들이 확연하게 구분될 것입니다. 하지만 쭉정이는 시험의 때가 지난 직후에 있을 주님의 재림 때에 하나님의 전 세계적인 심판 가운데 진멸될 것입니다.
성경은 불법한 자인 적그리스도, 즉 계시록에서 그 짐승이라고 불리는 존재의 출현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8-12).
계시록 17장은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계 17:12, 17).
또한 계시록 20장은 주님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에 사탄이 잠깐 풀려나서 만국을 자기 손 안에 넣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1-3).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인류의 역사 끝에 시험의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재림 직전에 온 인류를 향해 ‘시험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마귀가 잠깐 풀려나서 만국을 미혹하여 마치 구약 시대처럼 온 세상을 불신으로 가득차게 할 것입니다. 이때 이 땅의 교회는 존재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수호하고 지켜온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이 참 교회를 완전하게 진멸하는 것을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복음의 교회들은 이 시험의 때를 어떻게 면하게 됩니까? 세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에서 환난전 휴거, 즉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전에 교회가 하늘로 휴거하여 환난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야고보서 1장 27절의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처럼 시험의 때에 그 환난 중에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계시록 12장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복음의 말씀을 수호하고 지키는 교회를 시험의 때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등장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더라”(계 12:6, 14).
우리 주 예수께서는 복음을 위해 주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충성스러운 백성을 향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즉, 복음을 수호하는 교회는 짐승과 음녀가 이 땅을 차지하고 참 교회를 핍박할지라도, 또한 인본주의적인 의를 추구하는 자칭 유대교라는 거짓 교회가 참 교회를 핍박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보호를 받아 보전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재림하실 때 참 교회는 공중으로 끌어올려지게 될 것입니다.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6-18)
이제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께 충성하는 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의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소식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원수 세력들을 파하시고 주께 충성한 자들과 교회를 영원히 신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참 교회는 오직 주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니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이제 주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곧, 이들에게는 이미 놀라운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을 따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을 만나 뵙는 그 순간까지는 안일하여지지 말고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붙들어야 함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따라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달리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끝까지 믿고 충성하여 이기는 자에게 두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당시 빌라델비아 도시에는 잦은 지진으로 인하여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거나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지진을 겪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실감이 났습니다. 즉, 흔들리지 않는 영원하고 안전한 처소를 승리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처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한 처소로서 새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의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은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로 개명되었습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는 약속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이름이 어떤 이름인지 알지 못하지만 승리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이름으로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낼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에 어떤 이름이 주어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이름이 주어지고 승리자들은 그 이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즉, 승리한 자들은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리스도의 새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은 우리에게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분만이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면서 새 이름을 가지신 그분과 온전한 연합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다른 그 어떤 조건보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과 보혈을 다 바치신 복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아 그분을 죽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그분을 세상의 조건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를 향한 진실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복음을 수호하고 그 복음에 따라 순종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는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러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 앞에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구원의 문을 열어두심으로 우리 주님 오실 그 날까지 계속적인 구원과 거룩과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날마다 주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음으로 우리 모두가 영광의 주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영원한 사랑의 고백을 항상 듣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