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에 뎀님께서 소개해 주셨던 책을 바로 구입했다가 겨울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그렇듯 욕심대로 책을 샀다가 한켠으로 밀쳐진 책들 가운데 가끔 보석을 만나기도 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장송>이란 책은 워낙 쪽수가 많다보니 진도가 통 안나갑니다.
하긴...주말이면 역마살 풀어내기 바쁜 형국이니 책읽기가 쉽지는 않을겁니다. ㅎㅎㅎ
Prologue 첫 장을 읽으면서부터 느낌이 좋다.
첫 느낌이 좋다는건 즐거운 책읽기를 예고 한다는 점에서 기분 좋다.
이렇듯 좋은 느낌은 작가가 결코 쉽게 쓴 책이 아니라는 점과도 선이 닿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좀 더 풍부하면서 사실적인 이야기 전달을 위해,
작가는 아마존 밀림을 직접 답사한끝에 생생하게 현장성을 살려 냈으며 ,
수많은 자료와 사료를 수집하고 분석한끝에 쓰여졌기에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저자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서양 열강의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하던 18세기...
남아메리카 아마존 밀림에서 고립돼 극한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사벨 고댕' 이라는 여인의 실화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다.
사선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남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18세기 유럽의 과학계에서 열띤 논쟁을 벌인 '지구의 정확한 크기와 모양'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과 함께 지구의 모양에 대한 최초의 의문을 가졌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까지도
만나게 된다.
당시 뉴턴 주의자들은 지구가 적도 부근은 약간 더 부푼 공모양을 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반면에 데카르트 주의자들은 극지 부분이 길고 적도 부분이 찌그러진 모양이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바로 이같은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1734년 프랑스 과학자 열 명으로 구성된 탐험대(일명 라 콩다민 원정대)가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 페루 부왕령 내의 키토라는 안데스 산간 마을로 길을 떠나게 된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적도 지방에서의 위도 1도의 실제 길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원정대가 탐사를 떠난 바로 그 해,
식민지령 페루에서 상류층 소녀들은 예닐곱살이면 수녀원에 격리 시켰는데,
당시 여섯살이던 페루 소녀 이사벨 역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온갖 전설과 소문으로만 떠돌던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선 원정대는,
무려 8년여 동안의 생사를 건 고생끝에 뉴턴의 주장대로 '지구는 극지로 향하면서 평평해 지는
타원체' 임을 증명해 냈으며, 안데스 산맥에서 아마존 밀림 깊숙한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물과
식물을 조사하고 이 지역을 지도에 그려 넣는데 성공한다.
한편, 이사벨은 수녀원에서 나온 그 해 13살의 나이로,
라 콩다민 원정대의 보조대원 이었던 28살의 장 고댕과 결혼을 한다.
원정대가 임무를 완수하고 프랑스로 귀환한것과 달리 장 고댕은 페루에 남아,
갖가지 사업을 벌였으나 모두 실패하자 이사벨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남아메리카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장 고댕은 이사벨을 남겨두고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따라 먼저 답사를 한 뒤
이사벨과 동행할것을 약속하고 떠나지만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땅에 대한 정치적 알력
때문에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그로부터 자그마치 19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고,
그들 부부의 유일한 자녀인 카르멘이 천연두로 사망한 뒤,
이사벨은 남편을 찾아 여성의 몸으로는 그때까지 전례가 없었던 아마존 밀림을 통과하는
무모하기까지 한 머나먼 장정의 여행길에 오른다.
18세기 페루의 다리
짐꾼 인디언 30여명과 오빠와 남동생 등 친척을 포함해 모두 41명이 출발한 이사벨 일행은,
리오밤바를 떠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아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화산의 산비탈을 지나 협곡을
건너야 했으며, 열대 우림에서는 밤이면 시끄럽게 짖어대는 긴수염 원숭이들의 소음과 털복숭이
흡혈박쥐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으며, 급류가 흐르는 보보나사 강을 카누로 건너야만 했다.
돌풍과 강물의 범람으로 모래톱에 고립된 이사벨 일행은 흩어지게 되고,
이사벨과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조카와 함께 아마존의 밀림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각종 해충과 모기에게 시달리는 가운데 밤의 공포에 사로잡혀 지내던중 결국
이사벨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굶어 죽는다.
하지만 이사벨은 살아 남았다.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누워있던 이사벨은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기운을 차린 뒤,
벌거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밀림을 해맨끝에 인디언 부부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구조된다.
아마존 원시림
영국 작가 윌프리드 노이스는 <그들은 살아 남았다:삶의 의지에 관한 고찰>에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도의 갈증과 굶주림에 직면하게 되면 "겉으로 보기에 강한 사람들이
오히려 마지막에는 잘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 단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는 내적인 정신력인데 이는 목표와 희망,
그리고 영적인 믿음에 의해 커진다. 이사벨 고댕은 이런 점에서 누구보다 강했고,
노이스의 지적대로 거의 모든 생존자들이 실천했던 겸허한 행동 즉 기도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노이스가 지적하기를, 기도는 절망에 빠진 사람을 확실히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이 점은 시련이 닥치기 전까지 신앙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는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확인해
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신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준다.
다시말해, 기도란 절박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을 밖으로 돌리게 한다. -본문 중에서-
21년만에 남편과 해후한 이사벨은 장과 함께 그토록 염원하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고,
키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망을 선언했던 이사벨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후로는
그동안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던 남편 장의 일도 순조롭게 풀린 가운데,
남은 여생을 비교적 평탄하게 살다가 1792년 3월 장 고댕이 먼저 사망하고 같은 해 9월에
예순 다섯살의 나이로 이사벨도 사연 많은 생을 마감한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사벨은 아마존 밀림에서의 공포스러웠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처음 남편과 해후 했을때 들려준 이야기를 장 고댕이 라 콩다민
원정대장에게 보낸 편지에 상세하게 기록한 내용이 전부이다.
책을 덮고...
책을 읽는내내 시간의 흐름이 빠른건지 느린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라 콩다민 원정대의 8년간의 남아메리카 탐험이 그랬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답사차 떠난 장 고댕의 19년 세월이 그랬고,
남편을 만나기 위해 무모하게 길을 떠난 이사벨의 여행길이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미션>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럽 열강의 식민지 패권 다툼에 유린 당한 원주민들의 비참한 삶에 많이 착잡 했지만,
저자의 땀과 정성으로 쓰여진 좋은 책을 읽었음에 충분히 흡족하다.^^
<이사벨 고댕, 지도 제작자의 아내> / 로버트 휘터커 지음 / 조선일보사
첫댓글 다시 보는 반가운 책 한권에 설렙니다.. 서재 거풍날을 길일로 잘 잡은 듯해서 웃습니다..이사벨 고댕,..특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기에 이렇게 후세 사람들은 많은 것을 얻습니다..사람은 가고 없는것이 아니라 다만 사라질 뿐이란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