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 105년 07월 22일 수요공부방 <교사 한반도의 종교>.hwp
원기 105년 07월 22일 수요마음공부방
<교사: 한반도의 종교>
설법 : 박세훈 교무님
타이핑 : 한지훈
반갑습니다. 오늘은 원기 105년 수요공부방 전반기 마지막 시간인데, 제가 마지막 수요공부방 준비하면서 느낀 점이 시간이 빨리 가는 구나, 그리고 알면은 재밌다, 라는 생각입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요공부방 하시는 분들은 같이 제 강연을 듣기도 하지만 같이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이 공부할 것은 원불교 교사 중에서 ‘한반도의 종교’ 즉, 한국의 종교 역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전개는 이렇게 됩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같이 공부하고, 한달 뒤에 방학이 끝나면 그 종교의 창시자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입니다. 그러면 훨씬 더 원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태양 숭배를 알맹이로 하는 민족적 종교]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_
- 환웅의 아버지이며, 단군의 할아버지로 하늘나라의 신
- 석제환인의 약자-인드라신 (힌두교 최고의 신, 불교수호의 신)
- 한자의 차용과 불교문화라는 융성이라는 시대적 배경
- ‘환하다(光明), 환인-한님-해님
- 남신, 하늘 또는 태양숭배 민족, 유목민족 (농경, 지모신앙민족과 결합-곰)
한반도 교서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민족은 태양숭배를 알맹이로 하는 민족적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제일 먼저 나온 분은 단군입니다. 우리나라의 신앙은 원래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 있었어요. 그것이 단군시대 때부터 있었는데, 환인이라는 말 속에 ‘환하다’, 광명이라는 뜻이 있었고, 역사 학자마다 해석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그 환인을 ‘환님’, 그리고 ‘해님’으로 변형이 된 것이죠. 우리의 한 민족의 시조를 단군으로 보고, 단군의 아버님이 환웅, 환웅의 아버님이 환인이잖아요. 우리나라를 부르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조선이죠. 조선의 뜻도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가 있거든요. 그리고 백의 민족에서 백색은 빛의 색이고, 태양을 상징합니다. 즉, 백의 민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이라는 뜻이죠.
환인은 석제환인의 약자입니다. 석제환인은 불교 용어로, 제석, 또는 석제라고 하는데 인도의 인드라신을 말합니다. 인도의 최고의 신인데 모든 종교의 문헌의 영향을 받아요. 인드라신이 불교로 넘어오면서 불교의 수호신이 됩니다. 그 당시 가장 영향력이 가장 큰 불교 문화권,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받죠. 그래서 하늘에 대한 신앙, 태양에 대한 신앙이 됩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가서 다스리고 싶다고 해서 3000명을 이끌고 내려가죠. 보통은 이렇게 해석돼요. 태양을 숭배하는 유목민이 한반도로 내려와서 곰을 숭배하는 민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족을 만납니다.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족은 동화되지 않고, 곰을 숭배하는 민족은 동화가 되어서 나온 것이 단군이 되겠죠. 그것이 전반적으로 교사에 처음으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국 종교는 유불선이다? 이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긴 합니다. 공교육에서 보통 이렇게 배우지 않나요? 한국의 종교는 유불선이다. 제가 좋아하는 학자 분 중에서 이화여대 한국학 전공하신 최준식 교수님이 계세요. 저는 사대주의나 민족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최준식 교수가 한국의 종교는 유불선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종교는 유불선이라고 처음으로 정의한 사람은 신라 말기의 최치원입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 이렇게 썼어요.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런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라는 역사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유불도 삼교(三敎)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안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과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근본 사상과 같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와 같다.”
- 최치원 (신라말기 문신,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 “난랑비서”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에요. 최치원은 보면 당나라에서 관료생활을 한 사람이에요. 중국적인 사상이 익을 수밖에 없었겠죠. 중국에서 자기 종교를 유불선이라고 해서, 그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에요.
[한국 종교사에서 도교는 실체가 없었다]
- 민간신앙과 혼합 (성황신, 조왕신, 칠성각(신))
- 사제 또는 수도자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거의 없음
- 교단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
- 모화적慕華的 지식인(최치원)의 시각
사실 한국 종교사에서는 도교가 별로 없었어요. 여러분 한국 종교사에서 도교 기억 나요? 우리가 도교라고 한다면 민간신앙과 많이 혼합되어 있어요. 최근에 인기 있었던 영화에 성황신이라고 나오는데, 이것도 도교의 영향을 받았어요. 성황신은 마을신, 다시 말해 도시신이에요. 성북구신. 조왕신은 부엌의 신이고. 절에 가면 칠성각이라고 아세요?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것인데, 불교 절에 가면 제일 안쪽에 있어요. 이렇게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이 혼합된 것인데 이것은 각자 그렇게 부르기에 애매해요. 도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혼합된 거라서 도교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아요. 또, 도교에는 사제가 없어요. 한국의 도교는 교단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이고, 모화적 (중국의 사상을 책으로 치는 사람들) 지식인의 시각인 것이에요. 최치원은 훌륭한 분이시지만, 중국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국에 적용했기 때문에, 유불도 삼도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최준식 교수님의 의견이고, 제 생각에요 그래요. 그러면 유불선이 아니라면 뭘까요?
내부보다 외부에서 본 사람들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서양 선교사가 쓴 글을 보았어요.
[조선후기의 종교상황 – 선교사 헐버트]
조선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으로는 불교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떤 때에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신적 미신을 믿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이다.
어때요? 공감이 되세요? 저는 공감 되던데. 우리는 사회적으로 유교도죠. 직장생활할 때 그렇잖아요. 철학적으로는?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말 많이 하죠. 고난을 당할 때에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점집 많이 찾아가요. 고난을 당할 때는 무교, 사회생활 할 때는 유교, 철학적으로는 불교. 그러면 유불선이 아니라 유불무인가요? 사실 무교가 제일 먼저니까 무불유 아닐까요? 최준식 교수님 말씀이 이렇고 저도 동의합니다.
[한국읜 무교와 함께 역사를 시작했다]
- 단군은 제사장(무당): 최고의 샤먼을 지칭하는 텡그리(tengri)
- 신라의 박혁거세 (사후 몸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떨어졌다): 시베리아 무당
- 박혁거세의 아들 차차웅 (신라말로 무당)
- 고려 인종 때 관청이 주도한 기우제에 동원한 무당 300명
- 무당을 관리하는 관청: 성수청, 활인서
- 조선의 무교 (무라야마 지준, 조선총독부): 1만 2,380명 / 대한경신:10만
단군의 호칭도 무교라는 뜻이에요. Tengri는 몽골 단어인데, 하늘이라는 뜻도 있지만 최고의 무당이라는 뜻이에요. 신라에서 박혁거세에 대해서도 이러한 내용이 있어요. 시베리아 무당에 이렇게 죽고나서 몸이 흩어지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박혁거세의 아들 차차웅도 신라 말로 무당이라는 뜻이고요. 옛날에는 신정일치였죠. 다른 기록들을 보면, 고려 인종 때 기우제를 지냈는데 무당을 삼백명이나 동원했다고 해요. 정식적으로 무당/종교를 관리하는 관청도 있었고. 일제 시대 때는 무라야마 지준이라는 사람이 무교에 대해서 조사를 했는데, 1만 2,380명이 있었고, 1950년대에는 대한경신 협회 (무당협회)의 회원이 10만 정도고 사실 가입 안 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주 옛날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있어서 무당은 사제계급이죠. 저 같은 교무처럼 성직자. 우리 원불교 성직자가 몇 명일 것 같아요? 1500명이라고 해도 우리보다 거의 열배가 많은 숫자에요. 한국의 역사는 무교와 시작하였고, 무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무교가 한국 문화의 뿌리]
-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산조음악, 판소리, 살풀이는 모두 시나위라는 굿판에서 나온 것.
- 사물놀이-농악(풍물)-도앙굿(마을굿)
- 굿판: 문화적 복합체 (즉흥연극, 의상, 음식, 무신도)
- 도교의 도사가 했던 일과 무당이 담당했던 일이 많이 겹침
우리의 정신적인 뿌리에 무교가 있지만, 문화적인 뿌리에도 무교가 있어요. 시나위는 재즈처럼 즉흥음악인데, 굿을 할 때 연주되는 즉흥음악이에요. 그 굿의 분위기에 따라서 나오는 음악이에요. 거기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음악들이 나왔어요. 사물놀이도 결국은 농악인데, 도앙굿이라는 마을 굿에서 나왔습니다. 굿판이라는 것은 종합예술이에요. 무당이 즉흥연극하고, 화려한 의상 입고, 음식 있고, 뒤에 무신도같이 그림도 걸어놓고. 다 있는 문화적 복합체입니다. 무교는 우리의 문화적, 예술적 뿌리가 될 수 있어요. 무당이 담당했던 일과, 중국에서 봤을 때 중국의 도교 도사가 했던 일과 비슷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도교가 힘을 못 썼던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종교는 이렇게 다시 정의 되어야 해요.
한국 종교는 (시기적, 내용적): 무교, 불교, 유교, 신종교, 기독교
시기적으로 이런 순서로 되어야 해요. 신종교는 우리 원불교 같은 종교.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득세한 것은 신종교보다 늦긴 합니다. 한국종교는 무불유신기. 도교는 빠져야겠죠. 한국의 종교에서는 무교가 중요하고, 모든 종교의 바탕에 깔려있다.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에도 무교적인 요소가 조금씩 있어요. 신앙체험할 때. 불교에도 칠성각처럼 무교적인 요소가 있죠. 이것이 제가 생각 했을 때 한국 종교의 시기적인 순서입니다.
이런 한국 종교사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바로 외신 종교의 유입이에요
- 불교의 유입 (372년): 인도 + 중국
- 기독교의 유입 (200년 전, 100년 전)
- 유교의 국교화 (조선조)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가 아니라 수입 종교에요. 우리나라는 상당히 불교를 빨리 흡수하였어요. 왜냐면 불교는 종교 이상으로 문화였거든요. 우리 한류가 급속하게 퍼진 것처럼, 불교는 그 당시 최고의 수준높은 문화였어요. 중국에서도 그 문화를 빨리 받아들였고, 우리나라는 중국을 거쳐서 빠르게 받아들였죠. 불교는 세계 4대 문명중 두 개인 인도와 중국 문화가 결합되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천주교는 200년전, 개신교는 100년전에 들어왔고, 유교는 건국 때 1300년도에 들어왔어요. 이럴 때마다 종교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어요.
불교가 들어왔을 때는 어땠을까요.
[불교 문화의 영향]
- 이판사판, 인연, 야단법석, 공부 (스님들이 참선을 하는 것)
- 어머니, 언니 (비구와 비구니)
- 쌀, 밥, 벼 (주식과 관련된 단어)
- 아궁이 (불의 신 아그니)
- 건달 (노래와 춤을 잘하는 신 간다르바 -> 건달바)
- 비봉, 비로봉 (비로자나)
제가 여러 가지 중에서 언어만 모아보았습니다. 이런 단어들 다 불교에서 온 단어들입니다.
[유교 국교화 영향]
- 가부장제의 정착 (가정의 효, 나라에 충성)
- 서열 중심 권위주의, 가족이기주의 (국가, 종교가, 관가)
- 우리주의 -> 울타리, 내집단, 배타성, 지역감정
- 종권신수설 – 제사독점권, 장남 우대 재산 상속
- 제사권 독점 (1700년대 초엽), 재산 상속권 (1700년대 중엽) 정착
- 가부장제도는 300년밖에 안된 제도
그 다음에 유교가 국교되면서 온 것인데, 유교 하면 가부장제가 제일 유명하죠. 사실 가부장제는 정착된 지 300년 밖에 안되었어요. 조선 건국되고 1700년이 돼서야 가부장제가 정착되었고, 그 전까지만 해도 여성도 재산이 있었어요. 제사도 첫째만 하는 게 아니라 둘째랑 여성도 같이 했어요. 가부장제는 한국사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것 같지만 300년밖에 안되었어요.
[기독교 문화의 영향]
- 의식주가 바뀜 (옷, 집, 음식)
- 선교의 역점 분야가 교육 (연세대, 이화여대)과 의료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세브란스 병원)
- 무차별적인 사랑 -> 사회약자 배려 -> 사회복지
- 예언자 전통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독재정권 저항)
-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 (신부), 광주미국문화원 방화사건 (교무)
기독교가 가장 최근에 들어왔죠? 그래서 문화가 제일 많이 남아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의식주이죠. 기독교는 어느 지역에 선교를 가도 가장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것 두 가지가 교육과 의료에요. 지금에는 당연해도 과거에는 무차별적인 사랑이 굉장히 새로웠어요. 기독교가 상당히 잘한 부분이에요. 그 전까지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았어요. 문둥병 환자들 치료 안해주고 따로 격리만 시켰죠. 기독교가 들어와서 사회복지가 시작되었어요. 기독교는 예언자라는 전통이 있는데, 이것은 시대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이었어요.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이 독재정권에 굉장히 강하게 저항하였죠. 하지만 이것은 다 빽(믿는 구석)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천주교는 교황이 있었고, 개신교는 미국이 있었죠. 70년 대에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는데, 방화범이 성당으로 피해서 신부가 숨겨줬어요. 정부에서는 엄청 고민하다가 이 신부를 구속하였더니 바로 신문에 실렸죠. 비슷하게 광주미국문화원 방화범을 교무님이 숨겨줬어요. 이번에는 정부에서 고민조차 안하고 바로 교무님을 구속했죠. 기사도 안났고. 이래서 종교가 세력화 된 것이죠. 기독교와 천주교는 이런 배경이 탄탄하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이 될 수 있었어요.
외래의 종교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두 번의 시기?
이제까지는 외부적으로 종교가 미친 영향이었고, 내부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두 번의 시기를 거쳐서 외래의 종교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때 원불교가 등장하죠.
뛰어난 종교가가 외국의 종교를 혁신, 재해석 하거나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는 사건이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신라통일 전후기, 두 번째는 한말/일제강점기 때입니다.
첫 번째로 한국의 종교가 내적으로 발전했을 때는 신라통일 전후기, 원효와 의상에 의해서입니다. 원효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냐면, 원효로 인해서 한국의 불교가 귀족 불교에서 민중 불교로 바뀌어요. 원효가 저작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불교를 전파해서 민중들이 알게 된 거에요. 원효는 교화력도 뛰어났지만 교학도 뛰어났어요. 불교에 대한 학문이 뛰어났다는 것이에요. ‘금강삼매경론’을 썼는데, 자기의 글을 처음에는 ‘금강삼매경소’라고 붙였지만, 중국 스님들이 ‘소’가 아닌 ‘논’으로 격상 시킨 것이에요. 정말 뛰어난 분이었어요. 이 원효의 친구 의상이라는 분도 여러분들 잘 아시죠. 같이 당나라 유학을 가다가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고 유학을 포기하지만 의상은 유학을 가죠. 의상은 중국의 화엄종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화엄종의 이대 최고 지도자가 화엄종의 최고 전통을 의상에게 넘기려고 했어요. 하지만 의상은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 정도로 뛰어난 분이에요. 국제적으로도 당나라 스님들이 인정한 스님들이에요. 이 때 불교가 정점을 달했다고 봐도 됩니다. 하지만 한계라고 하면 불교의 정점이지만 새로운 종교는 없었죠.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님이 한말을 한국 종교의 르네상스기, 즉 종교 개혁기라고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동학, 증산교, 원불교 같이 새로운 종교들이 한국종교의 르네상스를 열었고, 종교가 크게 개혁되었을 때라고 인정됩니다.
[소태산, 수운, 증산이 즐겨썼던 용어들]
제생의세, 상생(보은상생, 상생상화), 사무여한, 일심, 천지신명 공사(천지공사, 음부공사, 명부공사), 척, 교운, 원시반본, 묵은세상 새세상, 혈심가진 사람, 운도(오만년 운도, 후천 오만년), 삼계대권 영육쌍전(성신쌍전, 영육병진), 심고, 선천 후천, 개벽, 음시대, 양시대, 한국은 세계의 중심, 종교회통(종교통일), 입교식(입도식), 법호(도호), 처처불상(사사천, 물물천), 병든사회
[소태산, 수운, 증산 사상의 공통점]
- 후천 개벽사상 (시대인식)
- 종교회통사상 (통합활용)
- 민족주체사상 (한국의 잠재력, 희망적 미래)
- 인본위사상 (인권, 평등)
- 사회개혁사상
여러분들이 생각했을 때 이런 용어들이 원불교 고유 용어같지만, 사실 동학과 증산교에서 같이 썼던 단어에요. 제생의세나 상생, 사무여한 이런 단어들 다 증산교에서 먼저 사용했던 단어들이에요. 이 종교의 르네상스 시대일 때 소태산, 수운, 증산 분들이 이러한 공통점들도 있어요. 후천 개벽 사상 등등.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후천 개벽이 오는 과정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요. 수운, 증산들은 괴질 (큰 병란)이 있고 그 이후에 후천 개벽이 올 것이라고 하셨어요. 또한 자기 이전에 선천시대고, 자기 이후가 후천개벽이라고 해요. 증산님은 내가 옥황상제기 때문에 내가 후천개벽을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천지에 도수를 바꿀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다들 후천개벽 사상을 주장했어요. 두 번째로는 세 종교 다 종교회통사상이 있어요. 최수운 선생님은 ‘나의 도는 원래 유도, 불도, 선도 아니고 유불선 삼합니다. 천도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의 일부이다. 나의 도는 유교 불교 도교가 합쳐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대종사님께서도 모든 종교의 교주들을 통합하려고 하셨죠. 세 번째, 다들 한국이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하였죠. 약간 다른 것은, 수운 선생님은 전투적인 개혁을 주장하셨고, 증산 선생님은 본인이 이미 다 짜 놨으니 관망하라는 입장이었어요. 기다리면 온다. 외세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셨고요. 하지만 대종사님들은 무조건 외세에 대응하는 것보다 내가 실력을 키워서 외세한테 배울 것은 배우고,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네 번째 인본사상. 처처불상, 인내천 다 인본사상이죠. 증산선생님도 남녀평등과 계급철폐를 주장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사회개혁 사상이 있어요. 동학은 좀 더 급진적이었어요. 동학에서는 동학농민운동과 삼일운동으로 나타냈죠. 증산선생님은 평등을 주장했지만 무저항으로 나갔어요. 기다리면 올 것이다. 대종사님은 어떻게 하셨죠? 대종사님은 삼일운동 할 때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하셨고, 더 큰 판을 보고자 하셨죠. 급진적인 사회개혁만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하셨어요.
이러한 맥락으로 한국의 종교가 왔어요. 한국의 종교는 유불선이 아니라 무불유, 신종교, 기독교였다. 그리고 두 번의 과정으로 종교가 내적으로 변화하였다. 세 가지 신종교 지도자 분들은 주장하는 것은 같았지만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달랐다. 이제 다음 시간에 공부할 것은 이런 분들이 과연 어떤 분들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소태산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테니 수운과 증산 선생님에 대해서 더 자세히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교리적인 것을 하다가 오늘은 한국 종교사 공부하는 느낌이었죠? 여러분들이 원불교의 배경지식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이라서 하였습니다.
|
첫댓글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은혜롭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지훈 교우님 감사합니당♥️👍🏻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