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사람들은 우직하며 소박하다.
구형왕 돌무덤의 돌들처럼 울퉁불퉁하지만 변치 않는다.
성철 스님은 산청군 단성면 묵곡 출신이다.
그의 생가 터엔 겁외사(劫外寺)가 있다. ‘시간 밖의 절’이다.
산청도 시간 밖에 있다.
단속사(斷俗寺)처럼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땅’이다.
그러나 겁외에서 속세와 인연을 끝는다는 것은 얼나나 힘든 일이련가?
성심원 – 아침재(2.3km) –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 점촌마을(6.4km) – 탑동마을(1.5km) – 운리마을(0.7km) <총13.4km>
성심원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성심원은 오늘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언제쯤이나 마스크를 벗게 되려는지....?
그래도 우리 회원들의 표정에는 그윽한 행복이 어려있고,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나루터(1962~1987)
1988년 현재의 성심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경호강을 건넜다
성심원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서 묵묵히 흐르는 경호강을 바라보고 있다
경호강을 따라 가다
경호강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 매우 쾌적하였다
경호강은 국도 3호선과 진주에서 함양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흐르고 있다
강폭이 넓은데다 큰 바위가 없고 급류가 없어 레프팅 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아침재
거치른 시멘트길을 따라 30여분 걸어서 아침재에 다다랐다
아침재는 어천마을과 풍현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다
숲의 아침은 투명하고 엄숙하며 경건하기까지 하다.
쉽게 풀어낼 수 없을 마음의 갈등도 숲은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이 고개가 아침재란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닐까?
웅석사
길가에 웅석사(熊石寺)란 작은 사찰이 나타났다
절 이름은 웅석봉이란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절마당에는 가을날의 따사로운 햇빛만 가득차 있었다
코스모스길
웅석사의 축대 밑으로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었다
코스모스 꽃길로 신산회의 대표적인 미녀 세 명이 걸어가고 있다
이분들의 건강한 미소와 따뜻한 가슴은 신산회의 든든한 원동력이다
이제, 산길이다
그동안 걸어온 시멘트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나니 거친 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웅석봉 턱밑 800m 고지까지 올라가야 하는 다소 힘든 구간이 시작된다
신산회의 상징
웅석봉으로 가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신산회의 리본을 달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면서....
에구, 힘들다
길은 지그재그로 편하게 나있었지만 여간 힘들지 않았다
계절은 가을이지만 온몸에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많이 뒤쳐진 사람도 생겼지만 믿음직한 회장님께서 든든하게 받쳐 주셨다
쉬어가자
길 가운데 주저앉아서 쉬어갔다
옷에 땀이 젖어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보일 것이다
드디어 끝이다
드디어 웅석봉 턱밑에 있는 안부에 다다랐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아담한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6명이 남아 뒤에 쳐진 모니카 자매님과 회장님을 기다리고, 선발팀은 출발하였다
이 벅찬 감동을...
오랜 시간을 기다리 끝에 모니카 자매님이 나타나셨다
끝끝내 하산하지 않고 전라도 특유의 오기와 끈기로 이루어낸 쾌거였다
만세를 부르는 모니카 자매님의 얼굴에 벅찬 감동과 희열이 넘쳐흘렀다
웅석봉 입구
정자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우비를 걸쳤다
웅석봉은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으로, 백두대간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다
여순사건으로 지리산으로 향하던 남부군의 사령관 이현상 일행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누리장나무
누리장나무는 5번 놀라게 한다는 말이 전해온다
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누린내 나는 냄새가 고약해서,
어린 잎을 나물로 먹으면서 맛이 있어서,
열매가 흑진주처럼 예뻐서,
전체를 한약재와 염색재료로 사용해서.......나는 흑진주같은 열매에 반했다
지루하다
장대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쳐서 우비를 벗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멘트길이 여간 지루하지 않았다
돈보스코 형제님의 음주운전과 관련된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으며 걸었다
성불정사(成佛精舍) 갈림길
여기저기에 차량 진입을 막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불정사는 신흥종교로 보이는데 깃발의 모양이 야릇하였다
정사(精舍)는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절'을 뜻하기도 한다
산딸나무 열매
빠알간 산딸나무 열매가 먹음직스러워서 따먹으며 내려왔다
열매가 딸기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산딸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것이 도깨비 방망이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 같기도 하였다
청계(淸溪)저수지
이름 그대로 맑은 시내가 흘러드는 청계저수지가 멀리 보였다
청계저수지 주변의 운리, 점촌마을은 거의 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동네는 펜션 또는 전원주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길이 없다
점촌마을을 지나자 길가에 공사중이라 길이 없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순간 우리는 당황했지만 사람이 지나길 구멍은 있으리란 기대로 직진하였다
수해복구 공사가 진행중이었는데, 심하게 파헤친 공사 구간을 조심조심 통과하였다
운리(雲里)마을
비에 씻기운 운리마을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았다
운리(雲里)는 탑동, 본동, 원정 등 3개 동네를 말한다.
지리산의 험준한 산속에 파묻힌 ‘구름에 덮인 마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계사
둘레길은 금계사 방향으로 휘어졌다
탑동마을 위쪽에 위치한 작은 암자 형태의 사찰이었다
주차장엔 아우디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는데....불교계의 씀씀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ㅠㅠ
탑동마을
단속사지에 있는 삼층석탑의 영향으로 탑동이란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돌담으로 이루어진 옛집들은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처마 밑에 걸려있는 곡식단에서 연세 지긋한 할머니의 정갈한 손길이 느껴졌다
정당매(政堂梅)
산청에는 늙은 선비를 닮은 토종매화 '산청 3매’가 있다.
탑동의 정당매, 남사마을의 원정매, 산천재의 남명매가 그것이다
정당매는 고려시대 문인 강회백(1357∼1402)이 젊은 날 단속사에서 공부하며 심었다는 매화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고위직까지 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3개 줄기가 외과수술을 받고 남아있지만 거의 고사 상태라 매우 안타깝다
봄마다 원줄기에서 뻗어 나온 손자줄기에서 꽃망울을 토해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정당매각(政堂梅閣)
정당매 옆에는 정당매각(政堂梅閣)이 세워져 있다.
이 비각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1915년에 건립된 비각 안의 시비에는 비각을 세운 이유를 적은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
통정공 강회백의 시, 강회백 후손들이 지은 시 등 여러 편의 시가 적혀 있다
단속사지(斷俗寺址)
아늑한 마을의 한복판에 단속사터가 있다.
절 이름에서부터 절다운 초연한 아름다움이 풍긴다
단속사가 있던 자리에는 민가가 있고, 민가 앞에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 2기가 남아서 옛 영화를 전해 준다.
'속세와 연을 끊는다'는 뜻의 단속사는 오랜 세월을 지나 이젠 세속의 한복판에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
귀부 등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히 목탁소리 들리는 듯한데
천 년을, 이 땅에 새벽하늘을 연 것은
당간지주 둥근 허공 속에서 바람이 읊는 독경 소리였을 것이다
천 년을, 이 땅에 고요한 침묵을 깨운 것은
풍경처럼 흔들리다가
느티나무 옹이진 무릎 아래 떨어진 나뭇잎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이봉주 <폐사지에서> 부분
단속사 당간지주
단속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106m 떨어진 위치에 있는데, 과거 단속사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이다.
사찰에서는 절의 경계에 깃발을 세우고 법회 의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절의 문 앞에 깃발을 걸어 알렸다.
이때 사용한 깃발을 '당(幢)'이라 하며, 당을 묶어놓는 기둥을 '당간(幢竿)'이라 한다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다물평생교육원
다물민족학교는 구한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잇는 자생적 민족교육기관으로 1990년에 설립되었다.
다물(多勿)은 '되찾는다',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 동명성왕의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회복한다' 는 취지를 본뜬 다물정신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잡초가 무성한채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운리마을 주차장
운리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온 일행들이 많이 기다린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늦게 도착한 후미그룹을 박수로 환영해주니 쑥스러웠다
다음달의 둘레길 8구간과 제주올레길의 희망을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첫댓글 간만에 나선 트레킹~ 땀을 비오듯 흘리며 소낙비에 온 몸이 젖어졌지만
동행한 발걸음에 행복이 뚝~뚝~~즐건 시간이었습니다.
격조넘치는 산행기 즐감하며 한 주 힘차게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산행기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