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던 바울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 ” (갈 5:1) 바울의 사상은 로마서에 잘 정리되었고 그 로마서를 다시 응축시킨 것이 갈라디아서이다. 갈라디아서를 자유의 대 헌장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그는 왜 자유에 모든 핵심을 두었을까? 그것은 자유라는 주제가 당시 그리스철학의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그 옛날에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인간으로서의 살아있음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그리스인들의 사상적 욕구에 대하여 인간을 해방시켜 자유하게 하는 예수의 복음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기독교의 신학과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복음의 세계를 더 풍부하게 하는 자원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라는 에픽테토스(50-130?)의 말과 그의 사상은 교부들의 영성과 성서의 해석에 있어서 영향을 크게 끼쳤다. 노예생활을 했고 심하게 맞아 다리를 절었던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 최후에 가서 당신은 노예생활에서 풀려난 인간처럼 머리를 쳐들어라. 당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고 감히 아뢰어라. ‘지금부터 저를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제 생각들은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좋게 보시는 것은 무엇이나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당신 맘에 드는 옷을 제게 입혀 주십시오’”
“우리가 땅을 파고 호미질을 하고 먹을 때에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가를 노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훌륭한 분이시다. 우리가 땅을 경작하기 위해 이 도구들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훌륭한 분이시다. 우리에게 손, 목구멍, 배를 주셨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를 노래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선사하신 사물을 이해하고 질서있게 사용하는 능력을 찬미하는 가장 장엄하고 거룩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야 한다. ”
그는 본질적으로 나그네의 삶을 사는 인간의 죽음에 이르는 자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당신께서 저를 지으셨기에 당신과 당신의 하사품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호의를 즐겼던 시간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신께서는 제가 참여했던 큰 잔치에서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떠나갑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큰 잔치에 참여하게 한 것에, 그리고 저를 당신의 질서에 넣어 주신 것에 무조건 감사드립니다”
이와 같은 에픽테토스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건한 말을 보면 왜 교부들이 성서를 해석하면서 그의 생각을 반복해서 강조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부들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 에픽테토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에 보냄 받은 인간의 소명은 하나님의 현존과 정의와 자비를 힘입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증언하는 데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밝혀주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권력자에게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말씀으로 박해 받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믿음은 참혹한 외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적 자유를 잃지 않고 누리며 사는 데 있음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다.
성서의 목적은 인간 구원이고 해방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과 고통에도 좌우되지 않는 자유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자유인이다. 세상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인간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 태어난 사람은 자유인이다. 세상이라는 알 껍질에서 깨어난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은 성서의 기본 복음이다.
하나님을 체험할수록, 그 분과 하나 되면 될수록 더 큰 자유를 얻게 된다. 그것은 나를 가두고 있는 틀(죄)을 깨는 일이요, 대상을 왜곡되게 바라보고 반응하는 시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유는 자유를 찾고 누릴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참된 자유는 외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누리는 자유를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피어린 역사는 로마의 강력한 억압에서도 내적 자유를 잃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역사를 일구어냈던 복음의 힘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