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村鑑三와 맹인 秋元梅吉의 만남
'계간 무교회' 86호에서
이시와타 겐타로(石渡 健太郞)
'도쿄 빛의 집' 이사장
'도교 빛의 집'은 1919년에 창립되어 107년의 역사를 써오고 있는 시각장애자 종합복지 시설입니다. 이번 '장애인 구제와 무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원고 의뢰를 받았는데, '도쿄 빛의 집'의 창립자 秋元梅吉(아키모토 우메기치)과 무교회의 우치무라 간조 선생의 만남에서 비롯된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창립자 아키모토 우메기치(秋元梅吉) 씨는 맹인이었습니다. 秋元 씨는 우치무라 선생과 만남으로 인해 성서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만남이 있은 후 秋元 씨는 스스로 이렇게 공표하였다고 합니다.
"낡은 나는 죽었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불평과 불만 속의 나는 죽었고, 희망과 감사의 내가 태어났다."
사실 그는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배우면서 인생관이 180도 바뀌어, 자기 자신의 일은 모두 그리스도께 맡겼고, 자신 이외의 일 즉 일본 맹인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였습니다.
'결국 맹인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신앙, 성서, 복음을 일본 맹인들에게 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
오직 이 일을 목표로 정하고, '맹인기독교 신앙회(도쿄 빛의 집 전신)'를 설립하였는데, 그때가 1919년 4월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맹인기독교 신앙회는 점자도서의 출판, 맹인의 직업 진로지도, 맹인의 수용보호 사업 등 시대의 필요에 따라 사업을 계속해 왔고, 현재의 '도쿄 빛의 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 '도쿄 빛의 집'은 우치무라 선생을 비롯하여 무교회 선생님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실 아키모토( 秋元梅吉 ) 씨는 성서의 복음을 받아들이자 마자, 즉시 노도와 같이 성서에 달려들었고, 온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우치무라 선생의 '聖書之硏究' 잡지를 처음 읽은 후, 이 책이야말로 위대한 서책이라 생각하여, 매월 정성을 다해 읽었습니다. 이때가 1914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렵 아키모토( 秋元梅吉 ) 씨는 아직 우치무라 선생을 만나기 전이어서 中野(나카노) 동맹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스즈키 조노스케(鈴木 錠之助)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즈키 씨는 무교회 인물인 난바라 시게루(南原 繁) 씨의 친구이며, 우치무라 선생 제자들의 모임인 가시와기(柏木)의 백우회(白雨會) 멤버였습니다. 이분의 소개로 우치무라 선생의 성서집회에 들어갔고, 성서의 진리와 더 깊이 만났던 것입니다. 우치무라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된 秋元 씨의 신앙은 마치 사도 바울의 다메섹 회심을 방불할 만큼 급회전하였습니다.
우치무라 선생의 책들을 하나하나 점자로 제작하고, 2015년에는 '信光(후에 신앙으로 고침)'이라는 소책자를 직접 발행하기에 이릅니다. '信光'에는 우치무라 선생의 글이 태반'이어서 '점자판 聖書之硏究'라 할만 했습니다.그런데 당시, 이 소책자는 맹인들에게 널리 읽혔고, 맹인식자층에 우치무라 선생의 신앙이 강력하게 침투하여, 신앙에 들어온 분이 정말 많았다고 이시하라(石原 兵永) 선생이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우치무라 선생의 사후에도 '도쿄 빛의 집'은 다수의 무교회 분들과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다 돌아가셨지만, 독립전도자 쓰카모토(塚本虎二) 선생, 노보리토학원을 창립하신 구로사키(黑崎幸吉) 선생, 도쿄대 총장이셨던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 선생과 난바라 시게루(南原繁) 선생, 秋元 씨의 부인과 친했던 사이토 슈지로(齊藤宗次郞) 선생, 秋元 씨의 장례식을 주재하셨던 마사이케 진(政池仁) 선생, 그 외에도 미타니 타카노부(三谷隆信) 선생, 이와시마 토오루(岩島公) 선생, 이시하라 헤이나가 (石原 兵永) 선생 등등 모임의 강사로, 찬조금 기부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이사장또는 후원회 활동으로 일해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도쿄 빛의 집'은 무교회의 역할이 있어 탄생하였고, 100년의 역사를 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업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1919년에 설립되었던 '맹인기독교신앙회'의 첫째 목적은, '일본의 맹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리고 점자 성서를!'이었으며, 실제로 이 대사업을 하나하나 추진하였습니다.
1923년 11월, 구약성서 창세기 1장 1절부터 점자화 작업을 개시하였습니다. 이 작업은 전맹(全盲)이었던 이토(伊藤福七) 씨가 온전히 담당하였습니다. 이 이토 씨도 우치무라 선생으로부터 신앙을 배운 분입니다. 원래는 침술의 대가였습니다. 秋元 씨가 이 점자 작업을 밑기면서 이토 청년에게, "군의 생명을 성서 속의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는가?" 하는 말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토 군은 점자 제판을 해본 적이 아예 없었고, 기술도 지식도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청년 이토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장인의 솜씨를 익혔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일 자체가 장애인의 구제라 할 수 있지 않겠는지요?
이렇게 하여 2년 후인 1925년 12월에 드디어 점자 구약성서 완성을 축하하는 감사회가 열렸습니다. 이 모임에는 우치무라 선생이 직접 참석하여, 완성된 점자 성서 위에 손을 얹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 그 자리에 계시던 이시하라(石原 兵永) 씨에게, "이로써 일본 맹인의 교육과 사회복지는 영원히 반석 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자 성서로 인하여 많은 맹인들이 신앙에 눈을 떴고, 전국 각지에서 복지사업 이상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저 역시 성서의 점자 번역 사업, 우치무라 선생의 저서 점자 번역이 일반적인 복지 이상의 대사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秋元(아키모토) 씨는 최후에, "나는 맹인이었던 것에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맹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만일 내가 눈이 밝았다면, 죄송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秋元 씨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삶의 방식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 삶의 태도야말로 신앙에 의한 장애인 구제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선생을 존경합니다. 한 사람이 변회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발생했군요. 그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주어진 소명에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생각하니 부끄럽네요. 주여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