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보다 진한 명예와 이익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정상 궤도에 올라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쓰일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우리가 관직을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다. 만일 관직에 연연하여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아무 공헌하는 바도 없이 녹봉만 받아먹고 지낸다면 그것이 바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다음으로, 국가와 사회가 정상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 아무 공헌도 하지 않고 녹봉만 받아먹는 것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식인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입니까? 먹고 살 수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인데, 만일 공헌하는 바가 없다면 안정된 사회에서건 어지러운 사회에서건 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이 두 마디 말을 연구하는 데 참고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울 치’(恥)를 면하는 공부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한나라의 광무제 유수(劉秀)와 엄광(嚴光;子陵)은 유년 시절의 학우이자 사이좋은 친구였는데, 뒷날 황제가 된 유수가 옛 친구 엄자릉을 찾고자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엄자릉은 벼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숨어 버렸습니다. 뒷날 엄자릉은 절강성(浙江省) 동로현(桐盧縣)에 있는 부춘강(富春江)에서 모피로 안을 댄 옷을 입고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를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동로현 현령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광무제는 보고서를 보자마자, 그 사람이 틀림없이 옛 학우 엄자릉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광무제는 서둘러 그를 찾아 조정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엄자릉이 여전히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자, 광무제는 “그대는 내가 황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학우이니 오늘밤에도 예전 학우 때처럼 함께 자면서 이야기나 하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엄자릉은 그날 밤을 황제와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잠버릇이 좋지 않아 다리를 황제의 배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객성이 황제의 자리를 범한 것”(客星犯帝座)을 태사공이 발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엄자릉이 낚시질했던 곳에는 후세에 엄자릉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역대 이래 지식인들은 엄자릉을 몹시 추앙하고, 그가 진정한 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지식인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엄자릉의 사당을 지나면서, 그곳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놓아 엄자릉을 추앙했습니다.
그대는 명리 때문에 숨었건만 君爲名利隱
나는 명리를 위해서 왔구료 吾爲名利來
선생의 얼굴 뵙기 부끄러워하며 羞見先生面
깊은 밤 낚시터를 지나가오 夜半過釣台
이와 반대로 청나라의 어떤 사람은 시로 엄자릉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습니다.
한 벌의 양모피 옷 입음 딴 마음 있었는데 一襲羊裘便有心
헛된 명성이 지금까지 전해 오네 虛名傳誦到如今
당시에 도롱이를 걸쳤더라면 當時若著蓑衣去
안개 낀 강 아득한데 어디서 찾았을꼬 煙水茫茫何處尋
이는 엄자릉이 실제로는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일부러 고상한 은사를 표방하여 역사에 고상한 미명(美名)을 남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으로 본 일면입니다.
논어강의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