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버린 구두 끈
(김성한)
“구두를 오랫동안 신지 않았군요?”
역 앞 신기료장수 할아버지가 묻는다. "예" 대강 먼지만 턴 구두를 용하게 알아맞힌다.
오늘아침 바깥나들이 할일이 있어 신발장 속 구두를 찾으니, 하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구두가 끈까지 풀려있다.
40년 가까이 다니던 공직을 퇴직한 뒤로는,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고 풀이 죽은 모양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신세라고 억울해하면서.
투박한 할아버지 손마디에는 세월의 때가 끼어있다. 내가 알기 만해도 20년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할아버지이다. 그것도 줄곧 두어 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만.
주인을 빼닮은 늙은 선풍기가 툴툴거리며 가 뿐 숨을 몰아쉬고 있다.
닳아 해진 구두 굽을 갈기 시작한다.
저 멀리 산협(山峽)을 파고드는 기차 신음소리가 들린다. “철 커∽덕, 철 커∽덕!”
꼭두새벽부터 달려오느라 지친모양이다.
지난 일요일은 가까운 일가붙이 몇이서 선영(先塋)에 벌초하러갔었다. 해마다 이맘때 쯤 하는 연례행사이다. 예초기, 대나무갈퀴에다 과일, 술 ,떡 등 제수용품들로 승합차 뒷주머니가 불룩하다.
올벼가 실바람에 고개짓하는 고향 들녘 샛길을 지나, 산중허리에 있는 산소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벌초작업 분담은 매년 똑같다. 나는 언제나 갈퀴를 든 보조이발사이다. 보조이발사는 갈퀴로 머리때 벗겨내는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낮이 한참 지나서야 끝이 났다. 모두들 얼굴에는 말간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있다.
묘지주위에는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쑥을 캐러다니던 불쟁(대장장이)딸의 영혼이 스며있다는 쑥부쟁이는 산비탈이나, 들녘을 가리지않고 핀다. 낯가림 하지 않는 연보라 빛 미녀들이다.
저 멀리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고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새미골 다랑이 논도 보인다. 그 옛날 보리타작이 끝나기 무섭게 모내기가 시작된다. 맨 위 용식이네 논의 물꼬가 트여, 우리 논에 물이 잡히면 아버지는 써레질을 하신다. 목에 멍에를 매단 늙은 황소가 흙탕물을 튕기며 걸어간다.
“이랴, 이랴, 워∽워∽”하는 소몰이소리에 워낭이 대답한다.
“땡 그랑! 땡 그랑!”
써레질 끝난 무논에는 제비 떼들의 춤사위가 한바탕 벌어진다.
새참으로 먹은 들밥에다 막걸리 한 사발에, 놉 일꾼들의 못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러한 논이 지금은 묵정논으로 변해 버렸다. 논둑도, 물꼬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개 망초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마치 소금을 뿌려 놓은듯하다. 지난가을 문학기행 때 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글 한토막이 떠오른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이, 젊은 시절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여름밤, 성 서방네 처녀와의사이에서……’
산을 내려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한20여 호나 되던 집은 거지반 폐가(廢家)가 되어버렸다. 긴 담뱃대를 허리에 차고 불그스레한 눈을 번뜩이던 용식이 할아버지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마을초입 외숙모네 집은, 지붕이며 흙 담장이 반쯤이나 내려앉았다. 입을 헤벌리고 서있는 모습이 처연하다. 뒤란의 늙은 감나무도 반세기전 풋감 따먹던 까까머리 소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외숙모의 매운 손때로 자르르하게 윤이 나던 부엌 무쇠 솥도, 장독대위의 옹기항아리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저씨 구두 여기 있어 요”
할아버지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반들반들 광(光)이 나는 구두 얼굴에 생기가 돈다. 짝 짝이던 구두 뒤 굽도 말짱하다. 풀어진 구두끈을 조여 맨다.
고향 참새미골 묵정논도, 외숙모네 장독대 옹기항아리도, 눈앞의 구두처럼 생기가 돌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