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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紫鬚)
이 종 환
애초부터 무슨 제법 장돌뱅이 노릇을 해볼 양으로 대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공습도 공습이려니와 무엇보다 서울에 있다가는 당장 굶어죽을 것만 같애, 한챵 찌는 듯한 삼복 더위에 바알갛게 익어드는, 돐도 채 멀은 갓난 것을 업은 위에다가 임신 칠 개월의 배를 내민 아내가 영등포도 못다 가서 발이 부르터 어우적거리는 것을 몰다시피 채쭉질하며 피난이라고 시골로 내려가보기도 했다.
발이 부르트기는 아내보다 문철이 오히려 더한 것 같았다. 담뇨, 기저기, 냄
비에 쌀 한줌, 옷가지 두어 벌, 이렇게 필수품 중에서도 하루라도 떼놓을 수 없는 것들만 추리고 또 추려 짐빠를 해 쳤는데도, 어찌된 셈인지 도시 눈알이 뚝 불거져나오고 목줄띠가 빠지는 것 같은 데다가 발이 아파 스무 걸음을 못 가서 행길가에 나둥그러지곤 했다.
그래도 계몽운동을 한다고 가끔 내려가던 K동리까지만 가면, 설마 어느집 신세를 지든지 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하다면 막연한 희망이지만, 한뎃잠을 자가며 기진맥진 기어들다시피 오산서로 십 리길을 갈려들어간 K 동리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도착한 다음날 밤에 그는 일종의 인민재판엑 회부되어 참으로 아슬아슬한 고비를 가까스로 빠져넘어, 죽어도 서울서 죽어야겠다고 부풀어터지다 못해 희끗 불깃하게 뭉그러친 발을 질질 끌고 날이 새기 바쁘게 도망치듯 되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
서울의 식량 사정은 여전히 코에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기관에 출입하는 열성분자에게나 몇됫박의 배급이 있을 뿐, 그러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리쌀 한톨 변통이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순전히 인공 영양으로만 길러오는 어린것이 가엾어 못 견디었다.
공산군이 들어온 후로는 그 흔하던 우유가루가 씻은 듯이 싹 없어져서, 어떻게 하든지 암죽이라드 쑤어 먹여야 할 텐데, 가뜩이나 바아싹 마른 것이 점점 맥을 못 추고 배틀어져가는 것을 보고는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손가락처럼 홀쭉해진 목이, 유난히 굵어보이는 제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였다. 단 삼분간을 쉬는 일없이 낮이고 밤이고 줄창 울음으로만 지새는 것이었다. 분명히 영양이 모자라는 탓이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것이었다.
아내의 옷가지를 들고 시장으로 나간 것이 시초였다. 사나흘을 이러면서 생 각해보니, 이렇게 한 가지 두 가지씩 곶감 빼먹듯 팔아먹다간 몇푼어치 되지 않는 것 며칠 안 가서 봉이 빠지고 말 것이 빠안한 노릇이었다.
―—이왕이면 있는 대로를 한꺼번에 팔아가지고 하다못해 넝마장사라도 해보자……
엄청난 염을 내고 만 것이다.
밑천이 장만해진 첫날 첫장사로 걸린 것은 까만 손가방이었다. 어떤 여인네가 들고 나온 것인데 윤이 반지리 흐르는 새 가방이었다.
“얼마 받으실라구 그럽니까.”
문철 입에서 나온 장사꾼으로서의 첫마디였다. 행주치마를 두른 여인네가 손가방을 들고 마악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붙잡은 것이다.
“글쎄요, 삼천 원 받아오라고 그러던데요.”
문철은 도대체 이 가방이 얼마짜리나 값나가는 것인가를 알 수가 없었다. 양곡값이 최고로 올랐음을 알 뿐 다른 일반 물가가 어떻게 변동되었는지 짐작이 가지를 않는 것이다.
“거기 들어서지 못해? ”
누군가의 호통소리가 갑자기 난다.
공습이 온 모양이다.
수많은 장꾼들을 보고 어디로 들어서라는지 알 수 없었다. 시골사람 차림의 몇이 가게 쪽으로 비켜서는 게 보일 뿐 동요하는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영감! 아 썩 들어서지 못해?”
어느새 왔는지, 눈알이 유난히 부리부리한, 얼굴이 시커먼 사나이가 문철의 목덜미를 잡아 낚아채는 통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면서 길 한녘으로 비켜섰다. 언뜻 문철이 제일 만만한 영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공습도 하루 이틀 말이지 밤낮없이 왱왱거리는 제트기와 B29를 무엇으로 감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다가 시민들이, 더우기 장꾼들은 공습이 와도 하늘을 쳐다볼 뿐 눈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게 약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문철이 그동안 몇 차례나 시장걸음을 했었지마는 누구나 다, 아무리 공습이 와도 시장에 우굴거리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탄을 던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실상 시장에 폭격이 있었다는 소문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문철은 고무신가게 처마 밑으로 쫒겨들어서면서도 가방은 놓치지 않았다. 여인내도 한 손으로 가방 한쪽 귀퉁이를 잡은 채 따라들어왔다.
“영감님, 장살 할라거던 시장감독 주의하셔야 해요."
고무신가게 주인인 상싶어보이는 할머니가 문철 귀에다 대고 소근거려주었다.
“오, 저사람이?”
문철도 새삼스레, 저만큼 지나가는 시커먼 얼굴을 한 사나이의 굵은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인민위원회에서 파견된 시장감독이랍니다.”
문철은 가슴이 선뜨금해졌다.
혹 저런 친구에게라도 잘못 걸려, 대단치 않은 본색일망정 드러난다면! 하는
공포에 오싹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만두는 게 옳지 않을까 역시!
그러나 그런 망설임에 오래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공습경보가 해제되는 사이롄 소리와 더불어 대갈장군 같은 굵은 머리를 못 이겨 하는 어린것의 배짝 마른 모습이 꽈악 가슴을 누르며 떠올라오는 것이었다.
고개를 한번 흔들었다.
줄어들려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서 여인과 맞잡곤 있
는 손가방에 눈을 주었다.
“이천 오백 원만 하시지요.”
근사하게 나오는 장사꾼다운 태도와 목소리에 문철은 저으기 마음을 놓았다.
아무리 일반 물가시세는 볼 나위 없다손치더라도 저렇게 윤이 나는 새 가방이면 설마 그만 값이야 없을라구 싶었다.
흥정은 되었다.
돈을 치르고 나서 가방을 들고 이모저모― 뜯어보는 문철 가슴이 큰 모험이나 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아무래도 큰 손해를 볼 것만 같았다. 바보처럼 알지도 못하고 비싸게 주고 산 것만 같았다.
——만약 돈 천원 시세밖에 못되는 거라면?
―—한 삼천 원쯤에 팔린다면!
연신 가슴을 두근거리며 섰는데,
“영감, 그게 팔 거요?”
몹시 약빠르게 생긴 친구가 하나 쑥 나선다.
산 자리에서 금방 작자가 나섰다는 흥분으로 “네!” 하는 대답소리조차 흔들리며 나왔다.
“얼마요.”
제 것이기나 한 것처럼 후딱 가방을 빼앗아들고는 속을 들여 만져보며 묻는다.
“삼, 삼천 원만 주슈.”
얼마 달래야겠다고 미처 생각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더듬거리며 나온다.
“이냥반이, 삼 삼천 원이면 육천 원이란 말이요 구천 원이란 말이오.”
하고 한번 힐끗 문철을 걸떠보더니,
“이천 원 줄가요?”
한다.
“이천 오백 원에 산 걸 어떻게 이천 원에 팔겠어요.”
“흠, 〈나까마〉구만, 그럼 백 원 한 장 붙여주지.”
흥정이 다 된 겻처럼 돈을 꺼내가지고 침을 텍! 뱉더니 세기 시작한다.
문철은 처음 듣는 소리였지마는, 〈나까마〉란 〈장사군끼리〉라는 말로 직각적 으로 해석되었다.
서툴게 굴다간 안될 것 같애서,
“아무리 〈나까마〉라두 백 원 남기고서야 어떻게 팔겠소.”
“아아니, 이 영감이, 〈나까마〉끼리 그만하면 됐지 얼말 붙이라는 거요 원 참.”
문철은 이천 오백 원에 샀다는 소리를 공연히 했구나 후회하면서,
“삼천 원은 내야지 그러잖구는 못 팔아요.”
하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상대방도 못 이긴 듯이,
“원 흥정이 이렇게 빡빡해서야 어디 해먹을 수가 있나, 자 기분상 문제다!”
하면서 세었던 돈에 백원짜리 두 장을 더 뽑아 얹어 내밀며 가방을 가지고 달아나버린다.
첫장사의 성공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어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오래 간만에 거뜬거뜬 가벼웠다.
그러나 이튿날은 라디오를 구백 원에 하나 사가지고 저녁때가 다 되도록 안고 다니다가, 가까스로 칠백 원에 그것도 땀을 빼며 팔아 밑지고 말았지마는 이리하여 문철은 장돌뱅이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보리쌀이나 감자라도 사다가 끼니를 어떻든 이을 수가 있었고 어린것에게 쌀 한줌씩 가지고라도 암죽을 쑤어먹일 수 있는 것이 신기스러울 만치 다행스러웠다.
――혹 낯익은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해방의 감격에, 학생운동이다, 청년운동이다 하고 지난 사오 년 동안을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다닌 문철이라, 만약 좌익계통 분자에게 발각만 된다면 당장에 올데 갈데 없을 것은 말할 나위초차 없는 노릇이다. 구태여 좌익계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돌변했기 때문에 아뭏든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문철은 이미 사변발발 전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유달리 많은 수염을 두 달 넘도록 그냥 내버려둔 채여서, 더구나 길러놓고 보니 문철 자신이 놀랄 만큼 노랑이기보다도 새빨간 수염이라, 채알 넓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노라면 아는 사람도 예외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거게다 시골로 피난갔다온 덕분으로 얼굴이 새까맣게 타 있는 것은 한술 더 다행일 수 있었다.
한창 밤낮없이, 집에서 거리에서 의용군 붙들어갈 무렵에도, 엄청나게 연령초과자로 보여주는 수염 덕분에 문철보고는 한번도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러기에 옆에서 장사하는 친구 하나는,
“영감님은 참 좋겠어요. 의용군 걱정 없어서.”
하며 진정 〈영감〉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실상은 그 친구가 오히려 대여섯 살은 위였을 것이므로 문철은 속으로 고소를 금하지 못하며 새삼스레 흡족한 마음으로 제 수염을 한번 쓰담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눈과 콧등만을 뻬끔히 내놓고는 왼통 무성한 홍인종 같은 빨간 텁석부리의 몰골은 오십을 두셋 넘었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논 한 마지기 없이 꼴난 수염만 물려줬어.”
이것이 어머니의 넋두리였으나, 문철은 진정 천석짜리 전답보다도 무성한 빨
간 수염을 전해준 선친에게 알뜰한 감사를 드리고 싶은 충심이었다.
종로 사가에서 동대문까지의 청계천을 끼고 서던 장은 점점 삼가를 거쳐 이가 쪽으로까지 뻗어나갔다.
그러나 안장을 싸전가제, 식료품, 음식점, 과일가게 등속이 차지하고 있었지마는 그 외에는 대부분이 옷장사로 들어차 있었다.
고물장사도 가끔 끼어 있었으나, 싱거 미싱 한 대에 고작해야 이만 원이고 양복장 한 벌에 칠팔천 원 불러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유독히 괘종만은 시세가 났다. 전기시계 하나에 오륙백 원 해도 작자가 없는데 비겨 괘종은 웬만하면 팔구천 원에 만원을 후딱후딱 넘어섰다. 갑자기 부유해진 시골사람들이 다투어 사들이기 때문이었다.
소두 한 말에 만 이삼천 원씩이나 하는 쌀 두어 말만 지고 나오면, 모시 치마저고리 뉴똥 치마 양복 한 벌, 괘종 하나, 비단 이부자리 한 채, 이렇게 한짐씩 잔뜩잔뜩 사들여갈 주 있었다. 쌀을 내고 난 빈 마대에 두둑히 돈뭉치를 잘라매고 나타날라치면 “아저씨! 아저씨! 이 외투 보세요, 이거 아주 소가죽 같은 외툽니다.” “아저씨! 양단 치마 좀 보세요, 이거 아주 진솔인데 팔천 원이에요!”
——농촌 사람들은 시장의 총아섰다. 참으로 농촌 경기는 극도로 좋아, 어느집이고 비단 요 이부자리에 괘종소리를 듣지 않고는 잠이 안 온다고들 했다.
이와 반대로 잔류 시민들은 한보따리나 될 만큼씩 옷가지를 골라 나와가지고는, 의논이나 한 것처럼 〈비단이 한끼지.〉를 땅이 꺼지는 한숨과 함께 뇌이며 〈한끼〉의 쌀이나 보리쌀 한두 되를 사들고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문철도 날이 갈수록 차차 이력이 늘어갔다. 되도록 좋은 물건을 싸게 잡아 되도록 비싸게 파는 것이 장사의 요령이었다. 이 요령을 쫓아 물건을 잘 사고 잘 팔려면 그만큼 연극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했다. 얌전하게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는 물건을 잡을 수도 없었고 팔수도 없었다. 떼로는 부품하게 허들감을 떨기도하고 떼로는 맞붙잡고 싸우기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빨간 수염 덕분으로 완전히 영감이 되어버린 거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장사꾼으로 보이자는, 말하자면 일조이석을 노린 것이었다.
개천가에 좌판을 깐 위에 보재기를 펴놓고 앉아 하루종일 싱강이를 하고 나면 평균 돈 천원씩은 떨어지는 셈이었다.
그날은 아직 물건을 하나도 잡지 못하고 팔다 남은 헌 모본단 저고리, 모시 치마, 이름도 모를 속것 등 구진한 것들을 펼쳐놓고 앉았는데 젊은 부인이 하나 말끔한 남색 보따리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양편으로 늘어 앉은 남녀 장사꾼들이,
“아주머니! 아주머니! 거 팔 거 아녜요? 네?”
손을 내밀며 쫓아오며 서둘러대야 걸떠보지도 않고 오는 것이었다. 얼른 보아도, 여인의 차림 차림새나 보따리의 맺음맺음이 돈암동보따리 같아 보였다. 돈암동보따리란, 돈암동에서 나오는 보따리가 제일 쫄쫄한 것이 많기 때문에 장사꾼들 사이에 그렇게 불리어지고 있었다.
“거 실례지만 파실 거 아닙니까?”
문철도 자기 좌판 앞을 지나가려는 것을 기다려 엉뎅이를 일으켰다.
제각기 빼앗을 것처럼 악을 쓰고 덤비는데 비겨 문철의 좀 점잖은 듯한 음성과 어조가 이 젊은 여인의 주목을 끌었든지 지나치려던 발걸음을 멈칫하면서 힐끗 고개를 이리로 돌리는 것이었다. 하얗게 핼쓱한 얼굴이었으나, 새침 한 속눈썹이나 야무지게 다문 입 언저리가 얕지 않은 양가집 며느리품을 보여주었다.
잠간 주춤하던 여인은 문철의 좌판 쪽으로 다가서면서 보재기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얼씨구나 하며 마악 받아들려는데 아랫배에다 네모난 국방색 돈주머니를 늘어뜨리고 달려온 장사꾼 여자가 잽싸게 보재기를 잡아 낚아채는 것이었다.
“얼말 더 달래문 더 달랠 게지 와 암말없이 가지고 가는 거요 기분 나쁘게시리!”
문철은 내밀었던 손이 부끄려웠다.
물건 임자는 이 왈패 같은 장사꾼 여자를 아무말 없이 노려만 보았다.
“우리는 아침에 들어온 물건을 잡디 않고 놓디믖, 하루 왼종일 재수가 없이요! 그러니까니 얼말 달래라는 게 아니오! 자꾸 나보구만 얼마 주겠느냐고 하니까니 만원 본 게 아니오? 말해보시구래! 얼마든!”
장사꾼 여자는 손에 침을 퉤! 뱉더니, 최근 새로 나온 천원짜리 붉은 지폐를 신나게 세기 시작한다. 이 붉은 지폐는 항상 말썽거리였다. 못 쓴다고 하다가는 봉변 당할까봐 사용을 하기는 하면서도 때로는 받는다 안 받는다 하고 싱강이를 일으키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아직도 싸전가게에서들은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싸전가게에서 받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매우 위험스러운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한참 설겆어대는 것을 듣고 섰던 여인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그 보따린 누구 거예요.”
다 맥이 빠진 소리였으나 또록또록한 어조였다. 실컨 떠들어놓은 수다를 단
한마디로 억압해버리는 야무진 위엄이 서려 있었다.
“누구 보따린 누구 보따리야! 누가 이까진 보따리 떼먹을 줄 알우? 원 별소리가 다 있구만! 누가 가지고 뛴담데까?”
“이리 주세요. 십만 원을 준대두 싫어요, 팔구 싶지 않아요.”
빈틈없는 결정적인 명령이었다.
장사꾼 여자도 더 할 수 없는 눈치를 알아채자 보따리를 문철 좌판에다 훌쩍 내팽개치며, ˙
“원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보겠네, 아침부터 재수 없을라니까 별게 다 걸려가지구 지랄이야!”
여인은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우 둘러서 있는 데서 창피를 당했다 싶은 모양으로 장사꾼 여자는 연방 서슬이 퍼런 욕지거리를 하면서 멀어져갔다.
“풀어보시지요.”
한참만에사 물건 임자는 문철에게 다시 입을 뗐다.
문철은 계면쩍은 손으로 보재기를 끌렀다. 노란 반호장 양단 저고리에 분홍 뉴똥 치마와 역시 양단 두루마기가 하나고, 안은 연두, 겉은 분홍 비단으로 꾸민 누비이불 한 채가 들어 있었다. 모두 거의 눈이 바새는 진솔들이었다.
문철은 공연히 신혼 초야가 연상되었다. 신혼한 지 얼마 안되는 신부인가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며 젊은 여인을 바라보던 문철은 ‘아!’ 하고 나오려는 소리를 황급히 삼켰다. 그리고,
“이거 모두 해서 얼마 받으시렵니까?”
이렇게 얼버무리며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라고 바라보았다.
“글쎄요, 저야 많이 받두룩새 좋지요…….”
여인은 잠시 말을 끊고 문철이 풀어헤쳐놓은 저고리 치마 두루마기들을 차곡차곡 어루만지듯이 개어놓더니,
“쌀 두어 말 못 팔가요.”
하고 말끔히 쳐다본다.
팔년이 지났으면서 그 맑은 눈이 그대로였다.
문철은 처음, 속으로, 한 만 팔천 원쯤으로 구구를 대고 있었으므로, 쌀 두 말이면 이만 사천 원이니까 약 육천 원의 차이가 있는 셈이었으나 본전은 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달라는 대로 돈을 세었다. 정말 돈이 있으면 좀더 보태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만원짜리 두 뭉치와 또 사천 원을 세어주는 것을 받으며 여인은 오히려 의아스러운 표정이었다.
생각 같애서는 곧 뒤를 쫓아가고 싶었으나 물건임자가 돌아서기 바쁘게 둘러섰던 〈나까마〉들이 왁작 덤벼드는 통에 겨를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문철은 그 물건들을 팔고 싶지가 않았다. 이만 사천 원에 사는 것을 보고 섰던 〈나까마〉들이 당장 삼천 원을 붙여준다 오천 원을 붙여준다 했지마는 무턱대놓고 팔지 않는다고 보재기를 쌌다.
“아니, 이거 머, 나까마가 붙여주겠다는데 안 판다는 건 무슨 소리야!”
〈나까마〉끼리 어면 풍속이 있거나 규칙이 있거나간에 하여간 그 물건들을 당장 팔아버리고 싶지가 않은 심정이었다.
두루마기는 확실히 그때 효정이 결혼 직후 E서점에서 만났을 때 입고 있던 그 두루마기 같애보였다.
효정은 서울서 가까운 P읍에서도 첫째 둘째 가는 부자집 맏딸로서 R보육에 다니던 학생 때에 문철과 알게 된 사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남들처럼 화려한 연애는 가져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직접 만났다는 것은 삼년 교제에 불과 너덧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 편지로써
만 그칠 새 없이 사귀어왔을 따름이었다. 그들 편지 사연에는 한번도 〈사랑〉이란 말이 적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실상 어떤 연인들끼리보다 뜨겁고 애절한 애정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일제 말기가 가까워온 어느 겨울, 온양온천에서 요양하고 있던 문철의 여관으로 예고도 없이 효정이 나타났을 때, 그때가 가창 호젓이 가장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즐거움인 동시에 또한 오랜 나중까지 있을 슬픔을 심어준 날이기도 했다.
이윽고 효정은 부모의 의사를 따라 고문 패스한 수재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어 달인가 지난 무렵, 안국동 E서고에 기대서서 신간서적을 펼치고 있는 문철 옆으로 비단 소리가 스쳐가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당황히 눈과 눈이 마주치자,
“서울 계셨어요?”
안면신경이 굳어지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상냥스럽게 허리를 굽히는, 가로마를 한가운데로 하고 쪽진 머리에 양단 두루마기 차림의 효정이 자꾸만 딴사람같이 여겨졌다.
“네…….”
문철은 대답을 하면서도 제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 같지가 않았다.
효정은 다시 잠깐 머뭇거리다가,
“안녕히 계세요. ”
하고 하얀 버선에 흰 고무신 자국만 안막에 남기고 사라져갔다.
이 두루마기가 그때의 두루마기같이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팔년이나 옛날인데 유족한 집 사람이 그런 걸 여태도 새것처럼 두어두었을 리가 만무할 것이다.
아뭏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보낸 것이 언짢아 못 견디었으나, 그러나 만약 문철을 알아본다면 얼마나 창피스러운 꼴일 것인가. 차라리 몰라보아준 것이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흑 저쪽편에서 알은 체한다더라도 딴전을 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문철은 이날 곧 좌판을 걷어치우고 말았다. 장사하고 앉았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짐을 늘 맡기는 밥집에다 맡겨놓고 일찌감치부터 집에 들어가 하루를 쉬
기로 했다.
시장은 싸움으로 서기 시작한다.
날이 채 밝기 전부터 장소 다툼으로 장사꾼끼리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날 어드메서고 이 싸움이 없는 수가 없었다.
먼저 나와 봇짐을 내려놓고라도 잠시 용변을 보고 올라치면 짐과 거적자리가한데로 걷어치워지고 딴사람이 시치미를 뚝 따고 앉았기가 일쑤다. 돈 주고 샀나 먼저 앉으면 임자지 하는 배짱이다. 그러기 때문에 장사하던 자리에다 거적을 깔고 그냥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철은 부피가 얼마 안되는 보따리를 밥집에다 맡겨놓으면 새벽 일찌감치 자리를 깔고 짐보따리를 내다놓아주어서 언제나 자리에 변동이 없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문철은 문철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나오곤 했다.
이튿날도 문철은 역시 식전바람에 시장으로 와보니, 다릿목과 길목마다 새끼
줄을 쳐놓고 시장길을 막고 있었다. 일찍 온 장사꾼들이 웅성거리고 섰기만 하지, 어떻게 된 영문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왜, 오늘 무슨 일이 있읍니까?”
동(洞) 인민위원회 완장을 하고 다릿목께를 지키고 섰는 빨간 유자코 친구더러 물었더니,
“오늘부터 장 못 봐요.”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도대체 장을 봇 보다니 이유가 어디 있던 간에 되지 않을 말이었다.
“왜 그럽니까, 무슨 일로 그럽니까?”
문철의 묻는 말에 다른 장사꾼들도 궁금한 얼굴을 모아댔다. 당장 사활에 관
계 되는 중대문제이기 때문이다.
“못 본다면 못 보는 줄 알 게지 무슨 잔소리오!”
억압적으로 나오는 것이 불쾌했다.
“잔소리가 아닙니다. 왜 못 보는지 알기나 해얄 게 아니오.”
문철은 이런 대화를 이런 사람들과 주고받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종의 의분 비슷한 것에 끌려들어가는 것이었다.
“김 일성 장군의 명령이오!”
유자코 사나이는 단호한 태도로 호통을 쳤다.
여기에는 더 대항할 용기를 잃었다.
아뭏든 일단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 짐을 저기 법집에다 맽겨두었는데 그거나 찾아오게 해주슈.”
“안되오!”
한마디로 거절 이다.
“아아니, 짐을 내오겠다는데 것두 안된단 말이 무슨 소리요!”
이때 갑자기,
“머야, 머야!”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장감독이 나타났다.
“멀 그래!”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에 시커먼 얼굴을 쑥 내밀어왔다.
“짐 맽겨놓은 걸 찾아오겠다고 막 뻣디잖아요?”
유자코 사나이는 신이 나서 덤빈다.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 게지 무슨 잔소리야! 장사꾼들을 모두 시골로 전출 보내도록 정책이 결정 됐으니까!”
감독은 〈정책〉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하하, 전출을 보내려고 하는구나!’ 문철이는 이미 시골 사정을 보고 왔기 때
문에 시골로 가면 모두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고 전출을 장려하는 당국의 시책이 완전히 허튼수작임을 뻔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뭏든 전출을 가더라도 내 짐이나 내와야 할 게 아니냔 말입니다.”
문철은 아니꼬운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장감독 앞에 어성은 수그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저리 가요. 이 새끼줄 안으론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이라는데, 자꾸만 정책비판을 하려거든 인민위원회에 가서 해보란 말이야!”
고함을 빽 지르며 감독은 문철의 팔을 잡아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여게서 안 가겠다고 사정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끼줄 안으로 끌려 들어섰다.
“인민위왼회로 데리고 가슈 동무!”
유자코 사나이에게 넘기고 시장감독은 저쪽으로 가버린다.
군중 속에서,
“갈 것까지 머 있소. 여기서 얘기하지.”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유자코 사나이는 의기양양해서 문철을 앞세우고 바로 안골목에 있는 종로 오가 인민위원회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벌써 너덧 명 눈만 반들반들 악이 오른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이동무가, 장사 그만두고 전출가랬더니 반항하길래 데려왔읍니다. 김 일성장군의 명령이라는데도 듣지를 않고 군중 앞에서 모욕을 주었읍니다.”
이 보고를 듣자 모두들 문철을 주목하는 중에 하나가,
“반동이군그래, 어디 인민공화국 정치를 비판해볼 작정 인가?”
하고 눈을 뚝 부릅뜬다.
“반동은 총살이다!”
따발총 멘 친구가 총대를 한번 꺼떡 제낀다.
“전출이 정책이라면, 잔류시민들과 농민들과의 물물교류를 시켜주는 상인두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말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누그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히 소용없는 만용을 부리는 것은 이런 경우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국은 혁명전쟁 중이오! 장사가 다 머 말라죽은 거냐 말이야! 전출을 가겠느냐 안 가겠느냐 말이오! 대답하오!”
문철은 이 몸서리치는 자리를 한시바삐 빠져나가고 싶기만 했다. 혹시라도 만나서 안될 아는 얼굴이라도 나타난다면! 하는 겁이 더렁 났다.
“그렇잖아도 사실은 전출 나갈 준비를 다하고 있읍니다. 밥집에 맽겨둔 짐이나 찾아갈까 해서 그랬지요.”
“그럼 동무부터 솔선해서 전출가시오!”
인민위원회 문을 나서면서, 머리에 내리누르는 비굴감에 이가 갈렸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왔다. 전밑천이 들어 있는 장사 보따리를 잃어버렸다 쟁
각하니 앞이 캄캄해왔다.
“아, 어떻게 됐읍니까, 봉변이나 당하지 않았읍니까.”
유자코 친구의 감시를 받으며 새끼줄을 넘어서니까 몰려섰던 사람들이 제가끔 한마디씩 보내주는 인사말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이 근방에 어물거리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하 다리를 건너가려고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데,
“아, 저…….”
하고 알은 체를 하는 여인이 있었다.
효정이었다. 반색하는 얼굴이었다.
큼직한 보퉁이를 이고 서 있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손이라도 붙잡고 싶
은 충동이었으나, 역시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것이 문철인 것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저……·옷을 몇 가지 더 가져왔는데요.”
효정은 에누리도 없이 후히 물건 값을 준 〈영감〉을 다시 찾아온 모양이었다.
문철은 눈을 감았다.
보퉁이를 이고 섰는 효정을 뜬눈으로 더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밑천이나 있었으면, 어쨌든 물건이나 사주었으면 싶었으나 어제 물건에 다 잠기고 불과 몇푼
밖에 수중에 돈이라고는 없었다.
영감은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눈물이 맺히는 모양이다.
“장사, 어제로 그만두었음니다.”
눈을 감은 채 지껄이고 얼른 다릿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대여섯 발자국을 옮기지 않아서 무슨 〈와아〉 하는 함성 같은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문철은 깜짝 놀랬다.
새끼줄 안으로 뚝이 터진 물살모양 사람들이 밀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어디서 먼저 시작해서 어떻게 밀려들어가는지 보를 일이었다.
효정이 눈앞에 그냥 서 있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래 놓고 문철은 사람들 틈에 끼어 밥집으로 달려갔다. 워낙 많은 장꾼들이라 몇군데서 말려본다든가 한댔자 헛일일 것이다.
혹시나 유자코 같은 사람이 빨간 수염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설사 알아본다손치더라도 그런 한두 사람을 붙잡고 싱강이를 걸고 있을 경황이 아니었다. 짐을 찾아 둘러메고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리로 가시죠. 여긴 좀…….”
효정은 금방 어제부터 장사를 그만두었다던 영감이 짐보따리를 메고 와서 저리로 가자는 건 무슨 소린가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하여간 이야기는 나중 하기로 하고 다리 건너편 을지로 쪽 개천 가에 있는 아무 담밑에나 문철이 먼저 짐을 내리고 나서,
“이리 내려놓으시지요.”
효정의 보퉁이를 받아내렸다.
여인은, 효정은 여전히 의아해 하는 얼굴로 문철을 바라본다.
“사실은 장사 보따리를 빼앗길 뻔했었어요. 그래 부득이 장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자꾸만 무안스러워지는 표정이 되면서 문철은 설명을 했다.
“아이! 큰일날 뻔하셨구만요.”
효정인 줄 알고 보니, 맑은 얼굴, 그 눈, 그 코, 그 입다뭄다뭄이 근 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만 두 볼이 홀쪽 빠진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연륜의 새김인 듯싶었다.
덥석 달려들어 ‘나 문철이오!’ 해주고 싶은 충동에 손이 얼찐얼찐해지는 것이었으나 그런 때가 아니다 하고 참았다.
“누가 왜 뺏어가요, 남의 짐을!”
효정은 의분과 동정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출을 가라고 장사를 그만두라는군요. 그렇지만 저래서야 어디 막을 수 있겠어요? 장사꾼보다도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장을 이루곤 할 텐데.”
사실 아무리 장을 못 보게 한다더라도 군대라도 풀어서 막는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몇사람의 감독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길은 없을 것이었다.
“그럼요, 우리두 옷가지라도 있어서 바꿔먹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음 어떻게 살 뻔했겠어요. 그렇지만 비단이 한끼라고 하지만, 정말 양단 치마 저고리 한 벌 가져나와야 쌀 두어 되밖에 팔 수 없으니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이렇게 야금야금 팔아먹다간 며칠이나 갈는지!”
효정은 “휴우” 한숨을 내뿜었다.
효정의 태도나 말로 미루어보아, 사상적인 위험성은 없어 보였다.
“오늘두, 어제 하두 후하게 사주길래,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길이었어요.”
문철은 할아버지라는 말에 고소를 금하지 못했다.
“네, 그런데 정말은 저, 그렇게 밑천이 없읍니다. 사실은 어제 산 물건도 아직 팔지 않고 있읍니다만…….”
“그럼 어떡해요, 왜 팔리질 않나요.”
“아니에요. 어제는 좀 사정이 있어서 안 팔았읍니다만.”
“그럼 어떡허세요, 장사를 하시긴 하셔야지요.”
“해야지요. 그런데 여기선 얼굴을 아니까 다른 데로 옮겨얄까봐요.”
“어디로요?”
“글쎄올시다. 갑자기 생각이 안 납니다만 저쪽 위로, 동대문 쪽으로 올라가면 괜찮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러시면 할아버지, 수고스러우신 대로 제 물건을 좀 팔아만 주세요. 그럭 허구서 절, 절반만 주세요. 그래두 장사꾼한테 팔기보다는 저한텐 이익일 테니까요.”
문철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즐거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효정의 물건을 가지고 이익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효정을 옆에 두고 효정의 물건을 팔아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인가!
그들은 곧 동대문 쪽으로 짐을 지고, 이고 갔다.
어디라고 빈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이불가게 옆자리에 돈을 얼마 주고서 틈을 비집고 보재기를 폈다.
워낙 쫄쫄하고 좋은 물건들이라 해지기 전에 절반 이상이 팔렸다.
절반만 가지겠다는 것을 판 돈을 다 주었다.
“아이 미안해서 어떡해요. 그러시면 나머지 물건, 내일 팔리는 대로 사례드리도록 하겠어요.”
효정은 나머지 물건들을 아무 의심 없이 문철에게 맡기고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돌아갔다.
문철은 지옥 같던 나날에서 오늘처럼 생생한 보람을 느끼고 하루라도 살 수 있었다는 것이 꿈같이 즐겁기만 했다.
이튿날, 점심 때가 지나서 효정은 나타났다.
조그만 보재기를 끌르더니 밀가루떡을 한 벤또 내놓았다.
“시장하실 텐데 잡숴보세요.”
문철은 효정의, 누구에게나 지성을 다하는 마음씨에 팔년 전에 느꼈던 따사로움을 새삼 맛보았다.
문철이 가루떡을 맛있게 먹는 것을 기다려 무척 어려워하면서 말을 건넸다.
“저, 할아버지. 정말은 저희 집에 아직두 내올 것들이 더러 있어요. 옷가지두 있구 쓸데없는 물건들이 더러 있어요. 이런 세상에 두어둬서 무엇에 쓰겠어요. 애들 배 곯지 않게 해주는 게 젤이지요 머……, 그렇잖겠어요?”
“네·…· 애기가 여렷이신가요?”
문철은 이렇게 물음으르써 가정사정올 요량할 수 있을까 싶었다.
“네, 올망졸망한 것들이 셋이나 돼요.”
―—바깥 어른은 안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 문철 목구멍에 나오려다 말았다. 잘못 어떻게 오해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것들을 다 내다팔았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도 이왕 장사를 하신다면, 저희 물건들을 좀 팔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루이틀에 다 처분 못할 거예요. 열흘이 걸리든 스무 날이 걸리든 상관없어요. 거저 애들하구 하루하루 먹고 살면 되니까요.”
반가운 이야기에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나온 것들로 미루어보아 모두
값나가는 물건들일 테니까, 그걸 팔아주는 동안 그럭저럭 문철 자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대가 효정이라는 점으로 해서 께름칙한 생각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을 아무래도 장사꾼들한테 개값으로 팔아야 할 바엔 문철이 펴놓고 작자에게 팔아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은 또한 사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물건들을 팔아주는 동안 효정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벅차게 뻗쳐오르는 것을 걷잡을 수 없었다.
다음날부터 문철네 가게는 아주 근사한 상점으로 확장되었다. 옆엣자리를 오
천 원 주고 사서 가게를 넓혔다.
물건이 많으니까 사는 사람도 많았지마는 팔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좋은 물건을 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자연히 문철은 효정과 동업하는 터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효정은 이틀만큼 한번쯤 나타나곤 할 뿐이었다.
유엔군의 항공기가 날아오든가 할 때나 주변 산꼭대기에서 뻥뻥 대공포화 소리가 들릴 뿐이던 서울에, 구월 중순에서 하순에 접어들면서부터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포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산을 비롯한 변두리 산꼭대기 포대와 인민군이 들어 있을 만한 중요건물에 대한 로케트탄 폭격도 치열해졌다.
어느 날이었다.
역시 밀짚모자에, 실로 다리를 귀에 걸어맨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하나 문철 가게 앞을 서너 번이나 왔다갔다하는 것을 눈치채렸다.
문철은 훅 겁이 났다.
아니나다를까 중년 남자는 마침 내 문철에게로 다가왔다.
“나 좀 봅시다.”
문철은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 안면 근육에 힘울 주었다.
“왜 그러십니까.”
“잠간만 이리 나오세요.”
마침 이날 옆에 앉아 있던 효정도. 더렁 겁을 먹으면서 후딱 일어섰다. 효정이 더 놀래는 것을 의아스러워하며 문철은 되도록 태연한 태도로 일어서 나갔다.
중년 남자는 사람들이 없는 공터로 앞서 걸어가더니, 나즈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혹, 전에 학생운동에 관계하시지 않았읍니까.”
문철은 전신의 피가 싸악 가시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익 학생운동에 선봉에서 싸우던 것을 알고 하는 소리에 틀림없었다. 드디어 최후의 날이 왔구나 했다.
“왜 그러십니까.”
긍정두 부정도 아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아닙니다: 나도 원래 영화감독입니다. 전에 많이 뵌 일이 있어서 반가워서 그럽니다.”
문철은 아직두 괴이쩍은 경계를 풀지 못하며,
“네에? 그러세요 뱐갑습니다.”
하고 표정을 누그럽혀 보였다.
중년 남자는 좌우를 살펴보고 나서 입을 바싹 문철 귀밑에 가져오더니,
“유엔군이 인천, 김포에 상륙한 걸 아십니까.”
그제사 문철은 사나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입니까!”
“벌써 여러날 됩니다. 저게 유엔군의 포소립니다. 인젠 고생도 며칠 안 남았읍니다. 암만 해도 보던 분 같애서, 하도 반가워서요.”
그러고는 다시 문철의 손을 꽈악 힘 주어 잡고,
“잘 이겨나왔구려!”
하더니 인사도 없이 달아나듯 장꾼들 틈으로 사라져 가버렸다.
“왜 그러섰어요?”
효정이 눈섭을 모으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아는 사람이었어요!”
“……”
그래도 효정의 눈섭은 펴지지 않았다. 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딘가 경계해지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쪽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효정의 지금까지의 동정으로 보아 좌익적인 사상을 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언가 항상 전황이나 시국에 대헤서 초조한 관심과 염려를 기울여오는 품이 아무래두 공산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을 상싶었다.
그런 효정에게 구태여 경계를 살 필요가 없었기에 아까 들은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유엔군이 인천과 김포에 상륙을 했다는군요.”
“어마! 언제요? 정말이에요?”
효정의 얼굴에 쫙 화색이 퍼졌다.
“벌써 며칠 된다는구만요.”
“정말이겠지요? 정말이겠지요?”
가만가만히 하는 이야기들이었으나 감격에 목멘 소리였다.
효정의 눈이 빛나다 못해 눈물이 고인다.
“아주머니도?……."
아주머니도 유엔군을 기다리고 있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럼요! 천정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걸요!”
“부군께서?”
“네! 검사였어요!”
둘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말은 끊었으나 지금 이순간 효정과 더불어 이런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것만으로 뼛골에 스며들 듯한 반가움과 감격이 넘쳤다.
이제는 “효정!” 하고 불러서 깜짝 놀래게 해주며 자기를 밝히고 싶은 충동이었으나 역시 아직 때가 이르다 생각하고 꾹 참았다.
그러고부터 효정은 매일 나왔다.
정세를 궁금해 해서였다.
효정의 밑천으로 동업하는 처지라, 효정이 나올 바엔 팔리는 돈은 효정이 가지게 했다. 말하자면 회계원이었다.
포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공습은 최고조에 달한 듯 하늘과 땅을 마구 흔들어댔다. 야간 폭격에서 민가와 시민들의 생명이 희생되어 나오는데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일 많이 우굴거리는 시장께는 본격적인. 공습은 한번도 없었다.
눈에 불을 켠 인민군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장사를 그만두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들어앉았기보다 사람 많이 웅성거리는 시장에 나가 도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이런 어수선한 통에 집에 박혀 있다가는 공연히 어떤 봉변을 당할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짐은 내오지 않고 옷가지 얼마만 펴놓고 앉아 장사꾼 시늉만 내고 있었다.
실상 가게를 펴놓고 앉았을 뿐이지 장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천원짜리 받아선 안되겠지요?”
효정이 물었다.
“그렇지요. 인젠.”
시장 안에서는 슬슬 천원짜리를 안 받으려는 기색이 노골화해갔다. 표면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면서도 액수가 많을 경우엔 무슨 핑계를 대든 피하려고들 했다.
왕십리 쪽에 흑인 군인이 들어온 것을 보았다는 소문이 뜬 이튿날이었다.
대낮이라 시장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복작거리는데 감자기 박격포가 머리 위를 삥! 삥!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셈인지 바로 동대문 시장께로 집중사격이나 하는 듯 마구 퍼부어오는 것이었다.
시장은 벌통을 쑤셔놓은 듯 삽시간에 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아주머니, 어디 피하십시다!”
“네!”
황급한 떼일수록 여자들이 훨씬 더 대담하고 냉철한 것 같았다.
대답은 하면서도 효정은 물건을 걷었다.
문철도 거들어 대강 보따리에 줏어 담았다. 효정은 옷가지 밑에 깔아두었던 돈뭉치를 챙기려다가 문득 따로 간추려놓았던 천원짜리 지폐들을 움켜잡더니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쪽! 쪽!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붉은 지폐한테 보복이나 하듯이 암팡지게 잡아찢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황급히 옆을 지나가다가 획 뒤로 돌아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무심코 얼굴을 들었던 문철은 가슴이 쩌렁했다. 인민군이었다. 눈빛이 달라진 인민군이 돈올 찢고 있는 효정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노려보기만 했을 뿐 다시 돌아서 발길을 재촉해가는 뒷모양을 보고 문철은 가슴을 쓰담아 내리면서 식은땀을 씻었다.
효정은 그런 것도 모르고 보따리를 싸매고 있었다. 다행스러웠다는 안도감에 문철이 한슴을 내뿜는데 “땅!” 하는 총소리가 귀를 멍하게 했다. 훔칫 한 발 반사적으로 물러서는데, 보따리 앞에 효정이 쓰러진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 인민군이었다. 따발총을 도로 메고는 잽싸게 뛰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문철은 효정에게로 달려가 잡아일으켰다. 금방 옆구리인지 다리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서 시커먼 피가 쏟아져나왔다.
박격포는 점점 더 무섭게 퍼붓고 군중의 아우성이 피끓듯하는 속에서 늘어진 효정을 둘러업은 문철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기만 했다.
“사람살리우우!”
산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틈을 빠져나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시장감독이다. 연석 뒤를 돌아보며 달아나오는 것이 필시 우익계통 장사꾼들에게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온통 얼굴이 피투성이었다.
벽돌집들이 왈그락! 쩌러렁! 얼거져 튀었다.
뒤덤비는 사람들 통에 몇번이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면서 문철은 개천을건넜다.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이었다.
아무집이고 튼튼하게 생겼다싶은 집 문을 찼다.
집은 비어 있었다.
방 한쪽에 침대가 있었다.
침대 밑에다가 효정을 눕혔다.
장농문을 제껴열었다. 이불이 있었다. 있는 대로 꺼내어 침대 위를 겹쳐덮었다.
직격으로 맞는 경우엔 할 수 없다손치더라도 파편이나마 막자는 심산이었다.
이불이 양편으로 드리워진 침대 밑에서 문철은 효정의 적삼을 헤쳤다. 가슴에 손을 넣어보았다.
심장이 팔랑개비처럼 뛰고 있었다.
아직 괜찮구나 했다.
그리고 상반신에 이상이 없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아랫두리를 걷어올렸다. 걷어올려서 될 정도가 아니게 피가 엉켜 있었다. 아주 벗기고 말았다. 왼쪽 허벅다리였다. 벗긴 속옷으로 쏟아나오는 핏구멍을 막았다.
그러고는 호흡이 가빠진 효정을 옆에 누워 가만히 껴안았다. 그동안 한결 무성해진 빨간 수염이 효정의 창백해진 얼굴을 탑숙이 덮었다.
쩌렁! 쩌렁! 간단없이 터져오는 박격포 속에서,
“효정! 효정!”
부르며 흔드는 문철의 전신에 오스락! 오스락! 감격이 떨려왔다.
―1956년 2월
118 李 鍾 卞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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