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산재라는 이름으로 매년 수십 척의 세월호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제범죄학회에 보고된 반사회적 인격들 유형 가운데 윤욱허와 같이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로 법률을 이용한 사례는 손꼽을 만큼 희귀하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에 관한 실증적 고전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본문 中에서]
일개 노무사인 윤욱허는 그의 오랜 친구 김슬기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동업약속에 따라 사전지식 없이 김슬기는 다니던 공직을 사직했다. 애초부터 그는 법률사무소에 관심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과 같이 썩 내키지 않은 낯선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된 사실에 김슬기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해조차 안 됐다. 몹시 의문스러웠다. 윤욱허가 자신과의 관계를 깰 하등의 이유가 없었고, 굳이 자신이 실수를 했다면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신뢰했던 것이다. 비로소 감쪽같이 윤욱허에게 속은 사실을 김슬기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돌이킬 수도 없었다. 산산조각 난 현재의 상황을 마냥 쳐다만 봐야 했다. 말 그대로 눈뜨고도 윤욱허에게 멍하니 당했다. 막연한 심리적 위안마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데 대해서 김슬기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자해적 실수를 저지른 것은 윤욱허 자신이었다. 옆에서 희희낙락하던 김슬기가 의심의 눈초리를 가질 때면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자신의 비밀을 단박에 간파할 수 있는 오랫동안 단련된 수사관 종사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그의 오만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제 목을 찔렀다.
(홍설아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344쪽 / 46판형(127*188mm) / 값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