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5부 8
자유로워진 몸으로 속히 건강을 회복하던 그 첫 시기에, 안나는 죄스러울 정도로 행복했고 삶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남편의 불행에 대한 반추도 그녀의 행복을 망치지는 못했다. 한편으로 그러한 기억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남편의 불행은, 그로 인해 뉘우치기에는 너무나 크나큰 행복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병이 난 뒤로 그녀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들, 남편과의 화해와 불화, 결렬, 브론스끼의 소식, 그의 출현, 이혼 준비, 가출, 아들과의 이별까지 그 모든 기억이 열에 들떠서 꾼 꿈만 같았고, 브론스끼와 외국으로 왔을 때에야 비로소 깨어난 것 같았다. 남편을 향해 치미는 악의는 그녀 안에서 일종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사람을 뿌리쳐 버릴 때 느끼는 심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물론 이는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유일한 구원책이었으며, 그 무시무시한 세부 상항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위안을 삼을 만한 생각이 결별 직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들어 지난 일을 전체적으로 돌이켜 볼 때마다 그녀가 떠올리는 유일한 생각이기도 햇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그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아. 나 역시 고통받고 있고, 고통을 받게 될 거야.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었잖아. 내 명예와 아들을 잃었다고.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난 행복도 이혼도 원하지 않아. 그저 치욕으로 인해, 아들과의 이별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뿐이야.’ 그러나 아무리 진심으로 고통받기를 원해도, 안나는 도무지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치욕스러운 일도 전혀 없었다. 그들 두 사람은 타고난 풍부한 기지를 발휘하였으니, 외국에 있는 동안 러시아 귀부인들을 피해 다님으로써 거짓되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가는 곳에서마다 그들의 입장을 그들 자신보다도 더 사려 깊고 완변하게 이해하는 척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 그것마저도 처음에는 고통스럽지 않았다 .브론스끼의 자식인 딸아이가 안나 곁에 남아 그녀에게 너무나 사랑스럽게 굴며 몹시 애착을 갖게 만들었기에 아들 생각을 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삶에 대한 욕구는 너무나 강렬해졌고, 삶의 조건은 너무나 새롭고 흡족하여 안나는 죄스러울 정도로 행복했다. 브론스끼를 알아갈수록 그녀는 그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브론스끼라는 사람 자체로 인해, 그리고 자신을 향한 그의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를 완전하게 소유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항구적인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가 가까이 있는 게 즐거웠고, 갈수록 새롭게 드러나는 그의 성격과 기질이 형언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평복으로 탈바꿈한 그의 외모 또한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에게 느껴지듯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과 생각, 행동, 그 모든 것이ㅔ서 그녀는 특별히 고결하고 고상한 무언가를 발견하곤 햇다. 그에게서 느끼는 황홀한 감정은 종종 그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에게서 뭔가 좋지 못한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브론스끼에 비하면 자신은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감히 티를 내지 못했다.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곧바로 자신을 싫어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럴 만한 어떤 동기도 없었음에도, 그의 사랑을 잃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그녀에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그이 태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이 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브론스끼는 공직자로서 천품을 타고났으며, 그것을 통해 남다른 역할으 수행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을 위해 공명심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애석함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는 예전보다 그녀를 더 정중하고 극진하게 대해 주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거북하게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토록 남자다운 사내임에도 그녀의 의사에 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자신의 의지는 뒤로 한 채 오로지 그녀의 바람을 헤아리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그런 점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따금씩 그토록 긴장된 그의 주의 깊은 관심과 주변에 둘러쳐진 염려의 분위기가 그녀를 부담스럽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편 브론스끼는,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온전히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행복하지가 않았다. 소망했던 바의 실현이 기대했던 행복 가운데 겨우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임을 그는 이내 절감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행복을 소망의 실현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영원한 과오를 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처음에 그녀와 생활을 함께하고 평복을 입었을 때는 전에는 몰랐던 자유와 또한 사랑의 자유가 지닌 매력을 만끽하며 만족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마음속에서 욕망에 대한 욕망이, 권태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 순간 뒤바뀌는 기분을 소망이자 목표라고 여기며 그것들에 매달렸다. 무슨 일이든 하면서 하루 중 열여섯 시간 가량을 보내야 했다. 뻬쩨르부르끄에서 소일거리를 제공해 주던 사교계의 관슴적 틀을 벗어나 외국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외국 여행을 다닐 때 탐닉햇던 독신 생활의 향락은 생각조차 못 할 일이었다. 한번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 지인들과의 늦은 저녁 식사 자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안나의 우울증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지역의 사교 모임이나 러시아인들의 회합에 드나드는 것도 그들의 처지가 애매한 관계로 삼갈 수밖에 없었다. 명소를 구경하는 일도, 이미 볼만한 건 다 봤다는 점은 차지하더라도, 영리한 러시아인인 그로서는 영국인들이 으레 갖다 붙이는 형언할 수 없는 의미 따위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굶주린 짐승이 먹을거리가 있기를 바라며 굴러 들어오는 건 뭐든지 붙잡고 늘어지듯, 브론스끼 역시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때론 정치에, 때론 신간 서적에, 때론 그림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젊어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가진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판화를 수집하기 시작하다가 그림에 뜻을 두고 배우게 되었고, 충족을 요하는 여분의 욕망을 그렇게 해소하였다.
무술에 대한 이해력,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 작품을 모방하는 취미를 가진 그는 스스로에게 화가로서의 자질이 보인다고 생각하여, 종교화나 역사화 혹은 사실주의 회화 중 어떤 종류를 선택할지 한동안 망설인 뒤 그림 그리기에 착수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회화를 이해했고 어떤 그림에서든 영감을 받곤 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회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그리는 것이 기존의 어떤 유파에 속할지도 유념하지 않은 채 마음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쪽으로는 감이 없는 데다 직접적인 삶 대신 이미 미술로 구현된 삶에 의해 간접적으로 영감을 얻었으므로 그 과정은 아주 빠르고 쉬웠으며, 따라서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모방하고 싶은 화풍과 매우 흡사해지는 경지에 쉽게 도달하였다.
다른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프랑스의 우아하고 인상적인 화풍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런 화풍으로 이탈리아식 의상을 차려입은 안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브론스끼 자신은 물론 그 초상화를 본 모든 사람이 그것을 성공적인 작품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