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토)~9일(일) 양일간, 환경운동연합(http://www.kfem.or.kr)이 10년차 회원들을 위한 감사행사로 진행한 전북 새만금 일대의 변화된 생태환경 관찰과 전주 한옥마을(http://tour.jeonju.go.kr)체험 여행을 다녀왔다.
8일 아침 8시에 종로구 사직공원에 집결한 회원 35명은 버스를 타고 달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군산시 비응도(飛鷹島)를 관통하는 군장(群長)산업도로 위에 차를 세웠다. 33.9km에 이르는 새만금(萬金) 방조제 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우선 철새들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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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지역의 갯벌 새만금의 초입이다. 철새가 많지 않다. 먹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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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배꼽에 해당하는 새만금 유역에는 보통 이맘 때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철새가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며 일주일에서 보름정도 쉬어가던 곳이다. 하지만 방조제 건설로 물의 흐름이 좋지 않아 바다가 거의 죽은요즘에는 수천 마리의 새들만이 먹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전북의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새만금 유역은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하구에 전국 제일의 곡창 가운데 하나인 김제(金堤), 만경평야를 이루었고, 두 개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라 물고기 등의 먹을거리가 풍부한 갯벌이라 매년 300만 마리 이상의 새들이 찾던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였다.
여기에 전복에 버금가는 고급 패류로서, 궁중연회에 쓰였으며, 껍데기는 약품 용기 또는 바둑의 흰돌로 이용되며 회, 죽, 탕, 구이, 찜 등에 주로 쓰이는 백합(白蛤)조개가 지역 특산품으로 아주 많이 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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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방조제 통수를 위한 통문이다. 30미터 짜리가 10개 있다. 이런 통문은 두 곳에 위치하고 있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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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칼슘, 철, 인, 비타민 B2가 풍부하며, 담즙의 분비를 촉진하고 간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 예로부터 황달 치료 및 피로해소, 숙취제거 식품으로 애용돼 서민 음식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는 바지락이 많이 잡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새만금에 찾아오는 새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조개도 많이 잡히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987년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저개발 상태인 전북 지역에 개발 공약으로 제시했던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한 농지조성계획 때문이다.
현재 당초의 계획과는 별개로 굴러가고 있는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은 농지보다는 공업단지와 신도시 개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내부의 담수화 계획 및 바닷물과의 해수유통의 한계 등으로 올 초 '쇠돌고래(살괭이)' 100여 마리가 폐사할 정도로 물이 썩어가고 있고, 갯벌이 사라저 조개도 거의 잡히지 않고 새들도 찾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이에 고향과 생업의 터전을 잃은 어민들은 이웃한 변산반도 아래의 '곰소만' 등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출이 많지 않고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아 심각할 정도의 생계적 고통에 빠져있다.
또한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2~3년 전부터 관광객이 많이 오기는 하지만, 지역의 관광기반부재와 판매할 농수산물이 없는 관계로 그저 스쳐지나가는 해변관광명소로 전락한 것도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너무나 터무니없이 개발된 새만금 방조제와 내부의 바다를 둘러 본 우리들은 두 개의 통수관문을 추가로 둘러 본 다음, 부안군의 변산반도로 30km를 더 달려 변산면 대항리에 위치한 변산명인 '바지락 죽'집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갔다. 작은 마을에 대략 10곳은 되어 보이는 죽집이, 회집 많은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바지락으로도 죽을 만들어 먹는구나! 바지락에 녹두와 인삼 등을 넣어서 정성스럽게 끓인 죽은 참 별미였다. 단식을 일주일 정도했던 나는 보식을 위해 며칠 동안 죽과 선식만을 먹고 있었는데, 원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죽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새만금에서는 거의 바지락이 잡히지 않아 이곳의 바지락은 현재 곰소만에서 채취한 것을 주로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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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찰 갯벌에 위치한 매향비 향나무를 묻는 것을 표시하고 있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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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는 이웃한 해창 갯벌로 갔다. 이곳은 지난 2001년 환경운동연합이 중심이 되어 천년 후 후손들을 위해 향나무를 묻고 비석을 세운 매향비가 있다. 작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교회와 성당, 70~80개는 되어 보이는 장승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새만금을 반대하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만든 성지와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웃한 해창산을 전부 밀어 바다를 메우고 있어서 그런지 황량한 분위기에, 장승과 찬바람, 생태계가 파괴된 황폐한 갯벌이 내 머릿속에서 '이곳이 새만금의 무덤이구나!'라는 슬픈 생각을 되내이게 했다.
서해안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갯벌은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해안, 북해연안, 아마존 유역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의 갯벌은 높은 산소투과율과 퇴적층이 다채로워 다양한 수생 생물이 생존하며, 오랜 시간 동안 갯벌에 기대어 생활한 어민들이 많다는 것이 남다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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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2000년 환경운동연합 등이 조성한 장승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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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변산반도(邊山半島) 동부는 광활한 곡창지대, 중서부는 노령산맥 자락으로 숲이 우거진 산과 계곡이 모래, 암석해안과 어울려 뛰어난 경승지를 이루고 있는 국립공원지역이다.
이런 변산반도의 북부인 해창 갯벌은 새만금 개발로 갯벌이 모두 사라져 모래 바람만이 강하게 부는 사막 같은 느낌이 드는 황량한 토지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의 장승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시대의 아픔을 전부 안고 서 있는 모습같이 처량했다.
난 장승 사이를 거닐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두 눈이 아프도록 눈물도 나고 마음도 아팠다. 모두가 노란 리본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새만금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적어 장승의 허리에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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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들 해창 갯벌에 서 있는 장승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 리본을 달았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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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새만금 수문의 완전개방'을 크게 쓰고는 리본을 큰 장승의 허리에 달았다. 그리고는 '이 땅의 위정자들이여, 제발 백성만을 생각하는 정책을 입안하는 착한 사람이 되라!' 고 기도했다.
눈물로 장승들을 살핀 우리들은 다시 계화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쌀인 '계화미(界火米)'와 백합, 바지락, 굴, 새우 등이 나는 계화도로 갔다. 원래 섬이었던 이곳은 1960년 후반 간척 사업으로 육지화 되어 농업과 어업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지금도 백합과 바지락을 손으로 캐는 맨손어업을 하고 있는 주민을 만나 지역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4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줄곳 살고 있다는 아주머님은 새만금이 생기기 전에는 어업만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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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화도에서 계화도에서 살고 계신 맨손어민으로 지역의 갯벌 파괴로 어려운 삶을 토로하고 계신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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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은 멀리 곰소만까지 가서 일을 하고 있는 관계로 때론 차비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때꺼리를 걱정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두가 아주머님의 어려운 현실에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 아파했고, 나 또한 가슴이 쓰리고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하루 1만 원의 차비를 주고 트럭을 빌려 타고 곰소만까지 가서 백합이나 바지락을 캐는 작업을 하는데, 본전인 1만 원 벌이도 못할 정도로 조개가 없는 날이 많다'고 말하는 소리가 아직도 두 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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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화도의 갯벌 풀들이 자라고 마구 개발되고 있는 황무지가 된 갯벌의 모습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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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둘러 본, 계화도 갯벌도 물고기와 조개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돼 있었다. 개발을 위해 중간 중간 대형 트럭이 오가는 모습이 마치 사막이나 황무지를 촬영하는 영화세트장처럼 보인다.[펌: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