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9:37 공주야! 믿음은 욕망을 만들어낸다. 거룩한 욕망도 있고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도 있다. 욕망은 사랑이고 갈망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갈망하는 바를 따라서 진행 된다. 제자의 그릇된 욕망과 교만의 원인은 무엇인가? 누가 크냐는 논쟁은 왜 예수님에게서 책망을 들어야 했는가? Princess! Faith creates desire. There are holy desires and greedy and selfish desires. Desire is love and longing. Our lives go along with what we crave. What is the cause of the student's misguided desire and arrogance? Why did the argument about who was big be blamed by Jesus? - 영광의 산을 내려온 직후에 인자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알려 주신다. 그것이 예수의 정체성이고 또한 제자들의 정체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자의 수난과 죽음과 동떨어진 채 그와 제자들을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말할 수 없다. He foretells the death of the Son of Man immediately after coming down the glorious mountain. They tell me firmly that I should never forget. This is because it must be Jesus' identity and also the identity of his disciples. I cannot explain him and his disciples, far from the suffering and death of the Son of Man, nor speak of the kingdom of God. - 하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 충분한 의미를 숨기셨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묻기도 두려워했다. 그것이 문제다. 자신들의 기대와 예수님의 행보가 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던 것인데, 오해한 채로는, 동상이몽으로는, 같이 있어도 따르는 게 아니다. But the disciples don't realize. You can do that because you hid enough meaning. However, the disciples were afraid to ask. That's the problem. They were afraid that their expectations and the anxiety that Jesus' actions could be different would become a reality, but misunderstood, frostbite dreams do not follow even if they are together. - 질문하라. 그래서 확인하라. 그것은 내 욕망을 향한 질문이다. 주님의 대답보다는 나의 대답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인자의 죽음을 가르치시는 길 위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을 벌였다.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제자로서는 더욱이 그렇게 주님과 전혀 다른 맘을 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남을 죽여서 남을 섬기고 울리는 나라라며, 하나님 나라는 나를 죽여서 남을 섬기고 울리는 나라다. Ask questions. So check. It's a question for my desire. My answer may be a more important question than the answer of the Lord. On the way to teach the death of the Son of Man, the disciples argued who was big. It's something you shouldn't do. As a disciple, he must not have such a different heart from the Lord. The world is a country that serves and rings others by killing others, and the kingdom of God is a country that serves and rings others by killing me. - 같은 악한 존재인 어린아이를 영접하듯 누구든 영접하는 곳이다. 스스로 가장 작은 자로 여기고 남을 섬기면 가장 큰 자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진가를 알아주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면, 그런 사람을 더욱 업신여기고 이용하는 곳이 세상이다. 더 크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곳은 적어도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It is a place where anyone welcomes a child who is the same evil. If you consider yourself the smallest and serve others, you will be treated as the greatest. If it is the kingdom of God that recognizes the true value of such a person, it is the world that despises and uses such people more. At least it is not the kingdom of God who argues that it is bigger. - 진리를 따라 공동체로 모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는 늘 배타성과 독선, 배제의 위험이 있음을 스스로 의식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이를 금하자고 한 요한의 제안은 ‘주의 이름’이 자신들만의 요술 방망이인 줄로 아는 착각이고 오만이다. It is good to gather together as a community along the truth and to clarify one's identity. However, such efforts should always be aware of the dangers of exclusivity, self-righteousness, and exclusion. John's proposal to ban ghosts from being driven out by the name of the Lord is an illusion and arrogance that he thinks the name of the Lord is his own magic bat. - 예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자의 기도는 그가 누구든지 들어주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게 하신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은 아니다. 더욱이 특정한 그룹만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도 아니다. The prayer of the man who trusts Jesus' name is heard by whoever he is, and the prayer in God's will is answered. Jesus' name itself is not an ability. Moreover, it is not a property that can only be used by a particular group. - 주님의 탄식은 제자들만을 위한 탄식인가, 나를 포함한 탄식인가? 어린아이 비유의 의도가 무엇인가? 최근 내 키 재기 논쟁은 무엇인가? 제자들의 무능력과 어리석은 논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Is the Lord's sigh only for his disciples, or is it including me? What is the intention of comparing children? What is my recent height re-argument debate? What caused the students' incompetence and foolish controversy? -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37-43a) 예수님의 두 번 째 수난 예고(43b-45) 누가 큰 자인지 논쟁하는 제자들(46-48) 큰 자의 권위를 행사하고 싶은 요한(49-50) -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37a) 큰 무리가 맞을 쌔(37b)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 질러(38a)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38b) - 이는 내 외아들이나이다(38c)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39a)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39b)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39c) -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40a)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40b)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41a)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41b) -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41c)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41d) 올 때에(42a)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42b) -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42c) 아이를 낫 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42d)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느니라(43a)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 쌔(43b)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43d)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44a)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리라. 하시되(44b)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45a) -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45b)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45c)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46)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47a) -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47b) 저희에게 이르시되(48a)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49a)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49b) -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49c) 요한이 여쭙되(49a)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49b) -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49c)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50a)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50b) - 묻기도 두려운 말_Words that you're afraid to ask. 해서는 안 되는 변론_an argument that should not be made 금해서는 안 되는 존재_an indispensable being - 예루살렘 행을 결심하신 주님,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그릇된 욕망을 낳았고 그릇된 믿음으로 이어졌나이다. 그리하여 해서는 안 될 경쟁을 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쫓아야할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소개하신 하나님나라는 능력의 나라인 동시에 겸손한 희생의 나라입니다. 주님 내 욕망과 적대감을 멈추게 하시어 어린아이의 교훈을 적용하게 하옵소서. 인자의 죽음을 예고하였사오니 속히 엑소더스를 실행하게 하옵소서. Lord, who has decided to go to Jerusalem, Perhaps a false understanding of Jesus gave rise to false desires and led to false beliefs. So they competed against each other, did not do what they had to do, and did not drive away the ghosts they had to pursue. The kingdom of God, which the Lord introduced, is both a country of ability and a country of humble sacrifice. Lord, let me stop my desires and hostility to apply the child's lessons. Let Exodus be executed as soon as possible, as we foretell the death of the Son of Man. 2021.1.29.fri. C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