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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숨겨진 작은 마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서귀포에서 차로 30분 남짓 떨어져 있는 선흘리. 서귀포에서도 일조량이 가장 많은 동네에서 지내다가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넘어가니 역시 공기가 남달랐다. 가는 도중 바람에 날리는 작은 눈발도 만났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의 날씨와 기온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실감했다. 이 추위를 뚫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동네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제주의 유일한 기타 수리점과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카페, 그리고 작은 집. 오로지 그곳이 궁금해서 떠난 여정이다.
한참을 달려 도착 후, 차에서 내리자마자 찬 기운이 몸속 깊숙이 스며왔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있고 고인 물에는 살짝 살얼음이 끼어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가야 함에도 굳이 이 추운 선흘리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다. 기타 수리점 ‘봉기타’와 카페 ‘굿바이 폴리’, 그리고 작은 숙소 ‘타이니하우스’가 모여있다는 이곳이 궁금했다. 봉기타는 남편이, 굿바이폴리는 아내가, 타이니하우스는 두 사람이 같이 운영한다. 너무 추운 나머지 급하게 카페 문을 열었다. 외부와는 현저히 다른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고 반가웠다.
나무 장작을 연료로 쓰는 화목난로가 있었다. 개와 고양이가 난로 주위에서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찾아 누워 졸고 있었다. 이들은 두 주인장의 또 다른 가족이다. 그들이 제주도로 이주해 올 때, 함께 데려온 다섯 살의 개 ‘봉식이’와 제주에서 만난 한 살 반의 고양이 ‘고쟁이’다. 이렇게 네 식구가 하나의 자그만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 카페 이름을 들었을 때, 카페에서 키우는 개 이름이 폴리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지어진 이름이 아니었다. 이곳을 설계하고 짓는데 석 달이라는 시간이 들어간 만큼 카페 이름을 정하는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폴리’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한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폴리에스테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래서 굿바이 폴리는 여느 카페와 달리 테이크아웃 전용 컵 등 일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작년 봄,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카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깊숙이 자리해서 그랬는지, 초반에는 손님이 없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6월이 되고 나니, 하나둘 손님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익숙해지는 단골손님도 생겼다. 주인장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일부러 찾아와 커피를 마시는 손님은 ‘조용한 시간’을 찾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새로운 손님은 갈수록 늘었지만 자주 보던 단골손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래서 굿바이 폴리는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고 온 손님을 위해 하나둘씩 규칙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열 살 이하의 어린이는 입장이 안 된다. 가게 주인에게는 손해일 수 있고 어떤 손님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인장은 소신을 지키며 카페를 운영하고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한다.
기타를 치지 않는 사람에게 ‘기타 수리점’은 참 낯설다. 통기타 붐이 일었던 70~80년대에는 어느 집에나 기타가 놓여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새 그런 풍경은 사라졌고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만이 기타를 친다. ‘봉기타’를 알게 되었을 때,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밤 12시에 문을 열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의 재료가 있으면 만들어주는 식당. 극 중에서 누군가 식당 마스터에게 이 밤에 손님이 오느냐고 물었는데 마스터는 의외로 찾아온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기타 수리점에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건넨 질문이 “이 먼 곳까지 손님이 찾아오나요?” 였다. 의외로 꽤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제주에는 통기타 동호회나 밴드, 인디뮤지션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봉기타를 찾아오는 것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이곳이 제주에서 기타를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기타는 꽤 훌륭한 실력으로 기타 마니아들에게 입소문 나 있다. 기타를 수리하는 방법은 어떻게 배웠는지 주인장에게 물었다. 국내에는 공식적으로 ‘기타 수리’에 관해서 가르쳐주는 학원이 없다. 그래서 그는 기타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했고 기타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카페와 기타 수리점은 이웃에 사는 목수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하지만 숙소는 오로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소재가 나무여서 혼자서 옮기고 집을 짓는 것이 가능했다고. 습한 제주도에서 목조주택 관리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제주도 날씨가 항시 우기인 것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한다. 어쩌다 비가 내려도 그친 후 해가 나면 오히려 콘크리트보다 금방 마른다고 한다. 또한 그는 콘크리트 사용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어 숙소 바닥에도 온돌을 깔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늦가을까지만 손님을 받고 날이 따듯해질 때까지 숙소는 휴식기를 갖는다.
나는 ‘타이니’라는 이름처럼 아주 작은 숙소가 궁금했다. 주인장은 그런 나를 위해 흔쾌히 구경을 허락했다. 숙소 문을 여니 삼나무 향이 가슴 속 깊이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숨을 천천히 쉬며 가슴에 향을 머금고 있었다. 숙소는 복층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위층은 침실이고 아래층은 싱크대 등이 갖춰진 거실이다. 어릴 때 만화를 보며 동경하던 숲 속의 오두막집이 떠올랐다. 며칠 머물고 싶다는 생각에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INTERVIEW] 주인장: 황지민, 곽보은
어쩌다 제주에 살게 되신 거예요?
스무 살 무렵, 제주에 있는 외가댁에서 두 달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제주는 지금보다 더 한적했고 놀 곳이나 문화를 즐길 만한 장소도 찾기 어려웠어요. 너무 무료해서 할머니 댁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그때 만난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함께 보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 기억과 경험이 지금의 제주 생활을 시작하게 한 동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기타를 배우셨나요?
아니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선 작곡을 전공했어요. 대학교 졸업 후, 피아노 학원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30년 넘게 피아노를 일과 일상으로 삼았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피아노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피아노를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변화가 필요했죠.
그래서 선흘리에 정착하신 건가요?
제주로 이주를 결정했을 때, 지금 사는 이 동네에 집을 짓고 카페를 열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2013년에 내려와 처음 지냈던 곳은 제주 시내의 도남동이란 동네였어요. 거기 살면서 1년 동안 우리가 개조할 수 있을 만한 구옥을 찾아다녔어요. 동네 부근에서 집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시내에서 좀 벗어난 한적한 동네로 방향을 바꿨죠. 그즈음 다른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제주도 이주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제주도의 어느 동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오래된 빈집은 오히려 만나기 어려운 집이 됐죠. 마땅한 집이 없어 계속 찾던 중,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선흘리란 마을을 만나게 되었어요.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나무가 많이 심겨 있었고 한참이나 들어가야 드문드문 집이 보였죠. 그러다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빈 땅을 보게 됐어요. 이곳이다 싶었던 거죠.
구옥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 지으신 거네요?
네, 맞아요. 땅을 둘러싼 나무와 숲, 기타 생태환경을 해치지 않고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나뭇집을 짓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웃에 사는 목수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나뭇집을 짓게 되었죠. 집은 대나무에 둘러 쌓여있고 옆집과의 경계는 오직 돌담뿐이에요. 자연 속에서 사는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도 동물과 식물을 벗 삼아 살고 싶어요.
(개)5살 봉식이, (고양이)1살 반 고쟁이
직접 집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어쩌면 누군가의 평생 꿈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그들이 ‘짓는 집’과 ‘사는 집’도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집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설사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부분이 각각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없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두 사람의 소신이 담겨있는 이곳에는 천천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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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꼭 한번은 가보고 싶네유....
감사드려유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