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준이가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머리감싸고 밤마다 혼잣말과 중국경극같은 소리발성, 불면, 뭐라하면 튀어나올 듯한 반항자세 등 지난 주 집에 갔다 온 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며칠 불규칙했던 수면이 수요일 밤이 되자 안정을 찾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오늘은 좀 나아졌기를 바래봅니다.
휴대폰보기를 중단시키고 커다란 화면으로 TV보기로 대체하기를 계속 고수해왔는데 본가에 갔었던 이틀밤은 분명 종일 엄마휴대폰을 했을 것입니다. 더우기 여행하면서 짬짬히 휴대폰보기를 허용했더니 제주로 돌아와서도 휴대폰 안주나 하는 눈치를 계속 보냅니다. 집에서는 절대 허용하지 않기에 빨리 포기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몇 번씩 방문을 들락거리며 듣기거북한 경극소리를 계속 내곤 합니다. 사실 계속되는 경극소리는 때로 저의 두통유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본가에서 고작 이틀밤이었지만 많은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느낌. 눈이 나아지질 않으니 전정감각 문제가 늘 제자리이고 그렇다보니 전두엽 성장이 더디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은 식탁에 국물이 조금만 튀어도 닦아대는 아주 사소한 강박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갈 길이 요원하긴 합니다. 여행다녀와서 간만의 미술 첫수업에서의 평가에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오늘 수업은 겨울 첫 수업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그리고 눈사람도 그리고 내리는 눈도 그려보았습니다~
태균이는 그림을 급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처럼 눈을 파해서 채색할 때는 너무나 침착하고 정교하게 채색을 잘 마무리해서 놀랐습니다~
서준이는 오랜만에 미술수업 때문인지 안 하려고 하다가도 제가 선을 하나 긋거나 얼굴~ 몸~이렇게 순서대로 단어를 얘기하면 바로 이어서 그려냅니다
두 사람 모두 오늘 수업을 잘해 주었습니다."
사람의 태도와 해결능력, 자조, 열정 등의 덕목들의 핵심이 눈의 문제라는 것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안구가동 각도가 좁아서 아주 가까운 세상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뭔 야망이 생기고 독립성이 생기겠습니까. 이런 무서운 현실이 되기까지 눈의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사실은 비단 우리 아이들 뿐아니라 일반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태도와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년의 위기 Midlife Crisis'라는 토픽과 '중년의 경력변화관리 Midlife Career Change'라는 주제를 놓고 활발하게 조언을 해주는 책자나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살아왔던 긴 생을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직업으로의 변모를 꾀하려는 50-60대의 위기감과 불안감을 잘 다스리면서 실패하지 않는 노년의 징검다리를 만들도록 도와주려는 작업들입니다.
요즘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번뜩이는 많은 토픽들 - 그것이 발달장애 관련되었든 일반인들에게도 해당이 되든 - 이 머리를 헤집고 다니지만 차분히 정리할 자세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앞에 일기에서도 올려놓은 로버트 사폴스키같은 최고의 모델을 만나고도 저의 액션은 갈팡질팡입니다. 좀더 나은 주거환경이 있으면 좋겠다싶은 핑계거리도 넘쳐나고...
너무 엉망이고 방 하나는 보일러도 깔려있지않아 써먹지도 못하는 이 집에서 탈출하는 것이 요망해보입니다. 작지만 그래도 제 공간이 있었건만 이마저도 허락치 않습니다. 어제는 보일러까지 가동이 안되서 집주인과 한바탕 설전을 벌리고나니 지금의 최고 중년의 위기극복은 이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지경임에도 악착같이 못되게 반응하는 그런 사람들과 엮여있는 것을 빨리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푹 자고나서 일어난 준이, 다시 혼잣말 작렬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시작됩니다. 의미도 없고 정상적인 말도 아닌 외계어같은 소리들이 입을 통해 연실 발성되는 것이 가끔 얼마나 큰 고문이 되는지. 아마도 이것때문에 집에서도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왔을텐데요, 겨우겨우 깊은 실행증은 면하게 하고있지만 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할 듯 합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동남아 한달살이!
방학만 되면 제주도로 달려올 진이까지 모두 품고 올 겨울에는 더운 곳에서의 한달살이를 감행해보려고 합니다. 모두에게 변화와 안정이 필요한 때, 그것을 기획하고 실행할 능력이 있으니 다행이고 '중년의 위기'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동남아 한달살이 떠나기 전에 집정리를 최대한 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제 마음이 갈팡질팡에서 확고부동으로 미드라이프 커리어 체인지에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선생님
매번 느끼지만 정말 대단하셔요^^
존경하고 늘 배워갑니다
동남아 한달살이 와우~~ 부럽습니다. 나태해지려할때 카페에와서 자극받고 배우게되네요~
먹을게 풍부하고 쾌적한 곳에 자리 잡으심 한달이 훌쩍 갈것 같습니다.
한달 후 거처도 바꾸시고 문제거리가 소멸되길 바랍니다.
해외 여행에 행운이 따르길 빕니다.🙏🏻💏‼️
하시는 일 다 잘 되시길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