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패는 누구 목에 걸어주어야 하는가 ?
남민일/자유기고가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오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패를 여러개 따냈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날마다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바람에 한 동안 온누리 가 떠들썩했다. 더구나 대회 마지막 날 벌어진 오래 달리기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금패를 얻게 되니 무슨 나라잔치나 벌여 놓은 듯이 모든 사람들 가슴마다 기쁨으로 술렁대는듯 했다.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번에 금패를 열두개나 얻어 세계에서 일곱번째 가는 "체육 강국"으로 떠올랐다느니, 여섯 해 동안 맺혀 있던 한을 풀었다느니 하며 제각기 열을 올려 떠들었다.
황영조가 오래달리기 경기에서 금패를 얻던 1992년 8월 9일, 이 날은 우연하게도 손기정이 같은 경기종목 에서 금패를 얻던 1936년 8월 9일로부터 꼭 쉰 여섯 해가 되는 날이었다. 바르셀로나까지 날아간 손기정은 후배가 금패를 목에 걸올 때 깃대에 오르는 태극기를 보며 옛날 백림 오륜대회에서 일본기 휘장을 가슴에 달고 서있던 자기 모습이 생각나서, 그 쉰여섯 해 동안 맺혀 있던 한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신문보도 가 있었다.
이 신문보도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올까? 그가 백림 오륜대회에 나갔던 식민지 시대를 다시 돌아보며 그가 흘린 눈물의 뜻을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1936년은 과연 어떤때였던가? 그 무렵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일제가 일본 독점자본을 군수산업으로 바꿔놓고 중국을 들이치려는 침략자의 이빨을 드러내 놓고, 미쳐 날뛰던, 그야말로 칠흙 처럼 어두운 때가 아니었던가. 그 무렵 일제는 우리땅에 군사파소 체제를 세워놓고 민중이 가진 것을 모조리 닥치는대로 빼앗다 못해 그 넋과 말까지 빼앗고 나서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마지막 남은 몸뚱이 마저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포밥으로 끌고가려고 이른바 "황국의 충량한 신민'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던 때였다. 그래서 저들은 바로 그해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을 만들어놓고 큰 도시마다 "보호관찰소"를 두었으며, 비밀고등경찰, 헌병끄나풀, 경찰보조기관인 경방단 따위를 만들어놓고 수많은 민중과 애국자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넣던 때였다. "조선소작 조정령"(1932년). "조선농지령" (1934년)을 내놓아 지주 등쌀에 허덕이던 가난한 농민들을 마침내 아주 쓸어버리자고 독을 품던때였으며, 소작쟁의와 파업투쟁에 나선 농민들과 노동자들은 식민지 역사가 걷는 무거운 발자취를 피눈물로 적셔가던 때가 아니었던가.
그 무렵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은 또 어떠 했던가?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한 항일투사들의 총소리가 만주벌 곳곳에서 쓰러진 겨레얼을 일으켜 세우고, 항일통일 전선체인 "조국광복회"가 민족해방의 볼을 들던 때도 바로 그 해였었다.그런데 손기정은 그 무렵 무엇을 했던가? 일본인이 이끄는 일본선수단에 들어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본기 휘장을 가슴에 달고, 나치독일이 판을 벌여놓은 배림오륜대회에 나간 것이다. 손기정이 경기장에 달려들어올 때, 콧수염을 단 파쇼미치광이 히틀러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이 "일본선수의 어깨 위에 화살범의 피가 붙은 저주스런 손으로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손기정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으나 결국 승리의 영예는 일본이었다.
그게 아니다. 그 튼튼한 두 다리로 나치 깃발이 드리운 베를린 거리를 달릴 게 아니라, 일제침략자를 몰아내는 용감한 항일투사가 되어 총을 쥐고 만주벌판을 달렸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의 심장에는 뜨거운 피가 없었으며 그의 가슴에는 항일의식이 없었다.
얼마전 신문보도를 따르면 그가 오륜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1936년 9월 일제는 그를 일본에 데려가 옴반에 녹음을 시켰다고 한다.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사가 만든 이 음반에 실려있는 “우승의 감격" 이라는 녹음에서 손기정은 일본말로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일장기가 나를 응원해 주는 것이 보였읍니다. 두번째 언덕에 이르렀을 때도 역시 나를 응원해 주는 우리나라 일장기가 날리고 있었읍니다.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일본국민의 승리입니다." 그로부터 쉰여섯 해가 흘러간 올여름 바르셀로나 오륜대회 경기장 한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늙은 손기정. 우리는 여섯 해 전이나 오늘이나 진실을 가려보지 못하고 멈춰있는 불행한 역사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번에 황영조가 금패를 얻기까지 그 뒤에 얽혀있는 얘기도 많지만,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느 독점재벌온 우리 선수가 오륜대회 오래 달리기에서 금패를 따게 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지 난 십년 동안 자그마치 30억원, 여기 돈으로 약 3백 85 만 달러나 뿌렸다고 한다. 어디 그것 뿐인가. 북경 아시안 경기 뒤로 이번 오륜대회까지 이태 동안 정부가 나라대표선수단에 쳐들인 돈은 국고 80억8천5백만워, 진흥기금 5억5천만원, 격려금 따위들 4억4천7백만원인데, 이는 모두해서 90역8천2백만원, 여기, 돈으로 무려 1천2백만달러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러 니까 이번에 금패 하나에 평균 7억5천6백80만원, 약 97만달러를 들인 셈이다. 참으로 잘한 짓이다! 오륜 대회에 나가서 금패하나 따내고 체육강국이라는 영예를 얻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서 이처럼 엄청 난 돈을 쏟아붓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체육강국이 된 우리나라 살림형 편은 요즈음 어떤가? 다른 건 그만두고 물가가 하늘 모르고 치솟는 바람에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 쇠고기값은 나성보다 다섯배가 넘고, 배추 한 포기도 서울이 나성보다 3.7배나 비싸며, 그 밖에 감자나 과일, 달걀 따위 먹을 음식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이 우리나라다. 정부가 내놓은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도 물가 높기로 세계가 알아주는 동경을 제끼고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다. 오륜대회에 만일 물가 오르기 종목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금패를 여러 개 더 딸 수 있었으리라. 날마다 치솟기만 하는 물가 때 문에 사람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사람이 겪는 설움 가운데 집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 살림집 보급률은 또 어떤가? 90년 말에 우리나라 살림집은 모두 7백37만4천호인 데 가구는 1천1백35만7천가구나 되니 살림집 보급률 은 64.9%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 견주어 절반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집안에 수도가 있는 집온 76.6%, 물로 씻는 뒷간을 갖춘 집은 51.6%, 목욕탕이 있는 집은 44.6% 밖에 되지 않는다. 이른바 앞선 나라들온 대부분 90%에 이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네 살림형편이 어떤가를 알게 된다. 그런데 집값은 왜 그렇게 비싼지 이것 또한 세계에서 금패를 딸만하다.
이런 세상에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삶이 힘겹고 괴로운 사람온 누구일까?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이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는 모두1천95만1천명이 되는데 그들 가운데서 절반이 넘는 6 백 14만4천명 (56.1%) 온 한달에 30만원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래서 노동자들 가운데 절반은 세금마저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어용단체로 알려진 한국노총이 내놓은 올해 최저 생계비는 65 만2천7백 29원이다.
우리나라 농촌에는 모두 1백70만2천가구가 사는데, 이들 농민들 또한 사람 잡는 농업정책때문에 뼈빠지게 일하고도 빛만 걸머지는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 오래다. 지난 한해동안 살길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옮겨간 농민들은 59만3천 여명이나 된다. 아직 남아있는 농민들 가운데 땅이 한 뼘도 없는 사람들은 10만 9천명이고, 한 정보도 안되는 땅을 가진 농민들은 3백 30만명(54%)이다.
가난이라는 무거운 시술이 노동자, 농민들을 칭칭 얽어매어 놓고 숨마저 조이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나라 현실이다. 누가 과연 민중이 겪고 있는 온갖 괴로움과 불행과 비극을 모른체하고 현대 한국사회를 말할 수 있을까? 서울에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고 독점재벌이 자동차 몇 대 만들어 낸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선진조국으로 뒤바뀌는 건 결코 아니다.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한낱 부 질없는 생각일 뿐이다. 오늘 정권이나 독점재벌은 한결같이 노동자와 농민들을 희생시키지 아니하면 권력이나 자본을 손에 쥐고 있을 수도 없고, 따라서 그들 이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선심"을 쓰는 건 애초부터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오륜대회 오래 달리기에서 금패를 얻었다고 모두들 기뻐하는 때, 우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수 천만 노동자, 농민들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쁨과 행복이 놀고 먹는 몇몇 사람에게가 아니라, 땀흘려 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차려지는 바른 사회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금패는 이런 밝은 앞날을 눈에 그리며 땀흘려 일하는 이름없는 영웅들 목에 걸어주 어야 하지 않을까?
1992년 9월호 미주현대불교 제 29호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