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영화 ‘파워 오브 도그’ - 2021년 감독 제인 캠피온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파워 오브 도그’는 시편(22,21)의 한 구절입니다. 가톨릭 성경은 ‘개들의 발’로 번역합니다. 개의 세력이라고 하든, 개의 입이라고 하든 삶에서의 공포, 목숨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이란 의미입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에서 그 개는 주인공 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입니다. 1920년대 미국 몬태나주 서남부의 광활한 목장을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 분)와 함께 경영하는 그는 거칠고, 독선적이고, 강인합니다. ‘삶에 난관이 있어야 열심히 살게 된다.’고 믿는 그는 그렇게 살지 않는 인간들을 경멸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조지와 결혼한 미망인 로즈(커스틴 던스트 분)와 그녀의 아들인 열여섯 살 소년 피터(코디 스밋 맥피 분)도 당연히 그 대상이 됩니다. 작은 식당 겸 술집을 운영하던 가난한 로즈를 재산을 노린 ‘꽃뱀’ 취급을 하고, 종이꽃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창백하고 섬세한 피터를 여자애 같다고 조롱합니다. 두 사람에 대한 증오와 억압은 집요하고 영악합니다. 필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상대에게 잔인한지 알고 있습니다. 상스러우면서도 약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언어, 차갑고 오만한 행동으로 의사였던 로즈 전남편의 자살, 로즈의 음주, 피터의 신체적 허약함을 멸시합니다. 로즈와 피터에게 그는 입을 벌리고 맹렬히 달려드는 개와 다를 바 없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나는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랐다.”는 피터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영화가 피터의 소망대로 ‘엄마의 행복’으로 끝날 것이란 사실을 압니다. 비록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필이지만, 마지막 주인공은 소년 피터가 될 것이란 예상도 합니다. 궁금한 것은 ‘언제, 무엇으로, 어떻게’입니다. 필이 저속한 언어, 노골적인 적대감, 싸늘한 침묵으로 로즈와 피터를 벼랑 끝으로 몰아갈수록 더욱 조급해집니다.
피터의 선택은 ‘억압과 혐오’가 빚어낸 악행에 대한 은밀하고 완벽한 ‘복수’의 여정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때를 위해 피터는 의대에 진학하고, 피터에게 동질성을 발견한 필의 눈빛에 증오가 사라지기를 기다립니다. 피터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의학적 재능과 묵직한 책과 학교에서 배운 사실(탄저병)로 달려드는 개의 먹잇감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감정과 오만과 착각에 빠진 개는 그것을 덥석 뭅니다.
필은 피터에게 “장애물을 없애가는 게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장애물은 동생을 빼앗아 간 로즈이지만, 피터에게 장애물은 사랑하는 엄마의 행복을 빼앗으려는 필입니다. 이제 그 개는 죽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피터가 죽였습니다. 시편에서의 소망대로 피터는 가장 소중한 엄마를 ‘개의 발’에서 구했습니다.
피터는 복수나 심판이 아닌 ‘어떤 희생’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무섭게 들립니다. 과연 그 희생으로 엄마가 실존적 구원과 행복을 찾을까요. 영화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고 뭉뚝한 침묵으로 끝냅니다. 피터 역시 증오와 복수에 매달린 또 다른 ‘개’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로마 12,17.19)
[2022년 10월 30일(다해) 연중 제31주일 서울주보 5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