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창세기 17:1~10)
우리 고유 명절 설날이다. 올 한해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올해를 계묘년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 베트남에 갔더니 토끼띠가 없고 토끼 대신에 고양이가 있었다. 토끼는 예로부터 지혜와 꾀가 뛰어난,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토끼는 다산과 풍요, 번영 등을 상징한다. 토끼 두 마리가 일년이 지나면 200마리가 된다고 한다.
‘검은 토끼’는 깊은 지혜와 영리함, 장수, 풍요 등 여러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흘간 굶은 호랑이가 있었다. 먹이를 찾아 다니다가 검은 토끼를 보고 한발에 낚아챘다.
이때 토끼가 위협하면서 "이거 놔 임마!" 순간 호랑이는 얼떨결에 토끼를 놔 주었다. 토끼가 한말 이거 놔 임마! 하는 황당한 말에 호랑이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다음날... 그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채로 방황하던 호랑이는 어제의 그 토끼를 발견하고, 역시 한발로 낚아챘다. 그러자 낚아채인 토끼가 큰 소리로..."나야 임마!" 또다시 충격을 받은 호랑이는 그 토끼를 얼른 놔 주었다. 그리고는 다짐을 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음날 또 토끼를 잡았다. 이번엔 그 토끼가 아니였다. 그 토끼가 한말······야 임마 소문 다 났어! 하는 바람에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는...자신감 넘치는 지헤가 있으면....
사람들은 설이 되면 보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새해 인사로 근하신년 이라는 말을 쓴다. 근하신년이라는 근(謹)이라는 글자가 진흙과 말씀이 합한 단어로 말의 흉년, 말을 적게 하라는 것,
하(賀)는 재물을 뜻하는 조개 패 자에 더할 가, 돈 많이 벌어라는 것, 새해에는 ‘말은 흉년처럼 적게하여 설화를 입지 말고 돈은 많이 벌어서 행복하세요.’ 라는 뜻이다.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12:1-3) 이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떠나서 척박한 광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가정불화도 있어서 어려웠다. 아브라함은 내가 이러려고 고향을 떠나왔나? 의기 소침하고 우울하고 힘도 들고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세가지를 부탁하셨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은 오늘 우리들도 듣고 받아야 할 말씀이다.
첫째,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7:1)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흠없이 살아라는 말씀이다. 실수하지 말고 사소한 죄라도 짓지 말고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말고 완전하게 살아라고 하셨다.
교회는 온 세상에서 모여 큰 강이 되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도 있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시내도 있다. 시냇물들이 모여서 강물이 된다. 모두 맑은 물이면 좋겠지만 곳곳에서 흙탕물이 흘러 들어오면 강물이 더러워진다.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맑고 깨끗한 시내처럼 흐르면 강물이 되어서도 깨끗한 강이 될 것이다. 욥이라는 사람을 평가할 때 완전한 사람이라고 한다. 욥은 어떻게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욥이 사소한 죄나 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죄를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이 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있다. 1982년 제임스 월슨과 조지 켈링이 자신들의 이론을 발표하면서 이름붙인 범죄학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건물주인이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지나가는 아이들이나 행인들이 또 돌을 던져 그 유리창의 나머지 부분까지 모조리 깨뜨리고, 나아가 그 건물에서 절도나 강도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날 확률까지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깨진 유리창 하나가 무법천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작은 깨어진 유리창 하나 같은 사소한 죄를 방치하면 신앙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혹시 깨진 유리창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셨다.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사래는 사라로 바꾸어 주셨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바꾼다는 말이다.
아브람이 본래 이름인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셨다. 아브람은 큰 아버지(Big Father) 이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큰 아버지는 한 가정의 아버지, 한가문의 아버지라면, 열국(all nations)의 아버지는 모든 나라 모든 민족 온 세상, 만민의 아버지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야를 돌려라.. 푸른 바다.. 블루오션, 온세상을 바라보라, 시야를 넓히라, 안목을 넓히라, 온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너의 비젼을 바꾸어라, 너의 인생의 목표를 바꾸어라, 너의 비젼을 나의 비젼에 맞추어라,’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셨다. 사래는 영광, 존귀의 뜻이고, 사라는 여주인, 여장부의 뜻이 있다. 영광만 받지 말고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어라 는 뜻이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비젼을 가지라는 것이다.
개인의 영광과 존귀 대신에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로 품어주고 돌보는 어머니의 심성을 가져라, 하갈까지도 구박하지 말고 보듬어 주는 어머니가 되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 이름에 담겨 있다.
우리 속담에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깨끗한 물에 사는 송어라는 물고기가 있다. 송어는 다 자라면 60-70cm 정도 된다. 알에서 깨어난 송어는 바다로 내려가서 2년 정도 살다가 다시 고향의 개천으로 돌아오는 회향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송어 치어가 어떤 연유로 바다로 내려가지 못하고 그냥 개울에서 자라게 되면 제대로 자라지를 않는다. 이렇게 자라지 못한 물고기를 산천어라 한다. 산천어는 다 자라면 15-20cm 정도로 좀팽이가 된다.
지금 아브라함은 송어가 성장하지 못한 산천어처럼 되었다. 송어 치어는 푸른 바다, 블루오션으로 나가야 한다. 푸른 바다에서 자라야 송어가 된다.
송어가 푸른 바다, 블루오션으로 나가야 하듯이 아브라함도 좁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민의 아버지가 되어라 하시며 주신 이름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사라, 하갈, 이스마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책임지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라는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를 나타낸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삶의 스타일,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하신 것이다. 변해야 한다고 하신다.
1992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전 사원에게 모든 것을 바꾸자고 했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자고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삼성은 일본의 소니와 내셔날을 제치고 세계1등의 전자, 반도체기업이 되었다.
소니의 하청업체 정도였던 삼성이 자신을 바꾸고 더 큰 비젼을 가졌더니 세계1등이 되었다. 우리 만민 성도들도 더 큰 비젼을 가지시기 바란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잊지 말라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하셨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 일꾼이나 종이나 다 할례를 받으라 하셨다. 할례는 13절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약속이 될 것이라’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살아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육체에 뭔가를 새기신 것은 잊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나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가 폐결핵에 걸렸던 흔적을 확인한다. 폐는 숨을 쉬는 기관이다. 사람의 생명은 그 호흡에 있다. 폐가 망가지면 생명은 끝이다. 나는 나의 폐사진에서 폐결핵의 흔적을 확인한다.
‘결핵성 늑막유착’이라는 이 진단은 내가 결핵을 앓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 증거로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확실히 믿게 한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향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십자가는 할례와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언약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새 언약을 기억한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찢어 큰 흔적을 내셨다. 십자가를 통한 새 언약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12명의 제자들을 키웠다. 별로 배우지도 못했고 잘나지도 못한 변방의 청년들 몇을 키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열두 명은 주님의 위대한 비젼 ‘너희는 온 세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의 큰 비젼을 가졌을 때, 불과 300년 만에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주님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이 비젼, 새로운 사명을 받았다. 그의 생전에 그 꿈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다만 말씀을 받을 때 믿음으로 받고 그 꿈을, 그 비젼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