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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문화의 핵심 개념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과학기술학(STS)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로 현대사회의 과학과 기술에 관한 연구와 관련이 있는 학
제간 분야이다.
그 분야의 선도적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원래 자연과학과 공학에서 훈련받았으며 나중에 과학의 물질적
얽힘이 그것의 규범적 정직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보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 분야가 선호하는
방법들은 사회구성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과학기술학에서 사회인식론은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하나의 규범적인 접근법으로 나타난다.
과학기술학의 특징은 과학과 기술을 모든 사회적 과정에서 전적으로 통합되는 하나의 복합물, 테크노
사이언스(technoscience)로 다루는 것이다.
과학기술학 내부에서, 과학기술학을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맡는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운동으로 바꾸는 데 또는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되는 하나의 분과학문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각각 "저(低)교회파(low church)"와 "고(高)교회파(high church)"가 구별될 수 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과학을 보라.)
저교회파 과학기술학은, C.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가 "군산복합체"라고 부른 것에 대한 동의어로서
사용된 1960년대 "테크노사이언스"의 본래 용법으로 되돌아가는데, 그 체제에서는 과학 연구의 궤적이
자본 팽창과 냉전 전략의 요청에 따라 형성되었다.
이것은, 연구 결과가, 재화든 무기든, 일반 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규모가 확대된 전문
적인 목표중심 연구 문화를 반영한 과학자들의 고용 유형의 견지에서 두드러지게 되었다.
영국인 물리학자 존 데스먼드 버날(John Desmond Bernal)은 1930년대에 이미 과학의 프롤레타리아화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버날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혁명 운동에 동조하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과학자
들을 구성하는 데 놓여 있는―의 일부로서 이런 유형을 관찰했었다.
그렇지만 버날의 친소련 정치가 냉전 시대 동안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더 온건한 판본의 동일한 사유가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작업이 점점 더 중요한 부분이
될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획득하게 하는 데 관심을 지닌 교육자들
사이에서 번성했다.
1960년대 말에 에딘버러 과학학 연구단위(Edinburgh Science Studies Unit)―과학기술학의 최초의
제도화로서 표준적으로 취급되는―가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설립되었다.
같은 시기에 미합중국에서는 전쟁, 착취, 그리고 환경파괴에 대한 과학의 연루에 관한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계획된 "과학과 사회" 프로그램들이 확산되었다.
고교회파 과학기술학은 과학학 연구단위가 과학자들을 위한 "봉사 교육"을 넘어 자율적인 연구 프로그램
으로 진전시키는 데 기울이는 변치 않는 관심에서 파생된다.
이런 포부를 품은 그 연구단위는 토머스 쿤(Thomas Kuhn),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그리고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저작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들 모두는 탐구 행위에 대한 중립
(더글라스가 "순수"라고 부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70년에 그 연구단위 소장 데이비드 엣지(David Edge)는 여전히 주요한 과학기술학 저널인 <소셜 스
터디즈 오브 사이언스(Social Studies of Science)>를 발간했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기술학은 경험적 조사에 견디지 못한 과학의 규범적 구조에 대한 철학적 옹호에 반대
하여 스스로를 정의했다.(과학의 규범적 구조를 설명하기를 보라).
원래 이런 반(反)철학적 입장은 지식사회학을 명시적으로 본받아 탈신화화 정신으로 형성되었다.(비판을
보라.)
그렇지만 고교회파 과학기술학은 과학의 탈신화화의 여파로 과학의 규범적 구조의 재구성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상실했다.
대신에 그 분야는, 그것 자체의 사회구성주의적 제한에 의해 판단된 대로, 그런 설명의 정책적 함의는 전적
으로 개방된 채로 두고, 테크노사이언스에 관한 경험적으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이런 무비판적인 시각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영향의 전형인, 최근 과학기술학의 두 가지 특징
을 설명한다.
한편으로, 진행 중인 과학전쟁에서 과학기술학의 공식 입장은, 그 분야는 과학에게 처방하지 않고 서술할
뿐이고, 그래서 과학의 상태에 관해 전달할 수도 있는 나쁜 소식 때문에 전령이 비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산을 의식하는 우리의 지식사회에서 과학기술학은 과학자들의 성과를 평가할 목적으로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지 기록하는 데(지식경영이라고도 알려진) 매우
유용한 정책 도구일 수 있다.
과학적 기획에 대한 두 가지 구별되는 태도가 대충 고교회파 과학기술학과 저교회파 과학기술학에 해당
한다.
몇몇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은, 과학자들의 훈련이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고, 그리고
대체로 철학자들과 다른 외부 조사자들의 오도된 논평 없이, 그것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을 보증한다는
데 만족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은 덜 만족하는데, 그들 자신이 과학의 내부 작동을 통찰하는 데 성공을
거둔 점을 비전문가들이 어떤 과학이, 그리고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관해 더 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고교회파와 결부된 첫번째 관점은 "깊은 과학(deep science)"이라고 불리고, 저교회파와 결부된 두번째
관점은 "얕은 과학(shallow science)"이라고 불린다.
풀러의 사회인식론은 고교회파에 저교회파 정신을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얕은 과학에 동조하는
지식정책의 한 형식을 택한다.
깊은 과학은 오래된 분과학문적 전통에 대한 적응을 요구하고 과학적 실천의 상세한 현상론에 의해 가장
잘 연구되는 대체로 비언어적인 기예이다.
이런 이미지에 대립되는 것이 얕은 과학의 이미지인데, 그것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게
과학/사회 경계를 협상하는 능력으로 구성되는 대체로 언어적인 기예이며, 과학자들의 솔기 없는 수사학을 그런 수사학이 은폐하는 활동의 혼란을 드러내기 위해 해체함으로써 가장 잘 연구된다.
깊은 과학의 전형적인 학자들은 많은 실험역사가들인데, 그들은 마이클 폴라니를 쫓아 일상적인 과학적
실천에서 이론 구성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얕은 과학의 학자들은 사회구성주의자와 담론 분석가 대부분을 포함한다.
이 진영의 다른 대부분의 구성원들과는 달리, 풀러는 과학에 대한 확고하게 규범적인 접근법이 얕은
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사실상 그것에 의해 촉진된다―고 주장한다.
규범 탐구자들 가운데 가장 규범적인 사람들인 실증주의 철학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비과학자들이 과학
이 자체의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게 하는 만능의 방법론적 수법(구획짓기 기준으로도 알려져
있는)을 탐색함으로써 얕은 과학 시각을 창안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깊은 과학의 학자들은 그들의 포부에 있어서 순수하게 서술적인 경향이 있으며, 과학
자들이 불평하지 않는 한 과학은 작동한다고 암묵적으로 상정한다.
놀랍지 않게도, 깊은 과학은 실험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얕은 과학은 사회 전체에 확산되어
퍼져 있다.
이런 두 이미지―깊은 과학과 얕은 과학―는 개별 과학자의 인지 능력에 대한 양극화된 태도를 규정한다.
깊은 과학 쪽에는 과학자들이, 그들이 받은 훈련 덕분에, 실재의 특질을 나타내는 데 특별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있다.
얕은 과학 쪽에는 과학자들이 실재를 나타내는 데 문외한들보다 더 적절하지는 않다고 하는 생각이 있
는데, 이것은 과학자들이 그들 자신의 실천을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의 기본적 한계를 문외한들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적 판단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는 인식적 비용이 특별히 비싸기 때문에 드물게 인식
되는 생각이다.
물리학의 판단이 근거가 없다면 공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러나 얕은 과학 시각이 이의를 제기하려고 노력한 것은 정확히 과학과 기술 사이의 이런 편한 관계이다.
깊은 과학과 관련된 기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것에 관한 그것의 관념이 과학을 과학자들 자신 외의 사람
들에게 책임지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를 국소적 지식, 또는 전문성의 관할구로 지방화하는 관념인데, 그 지식의 권위는 주어진 관할
구 밖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잠재적인 결과에 상관없이 신뢰를 얻게 된다.(다문화주의를 보라.)
과학기술학은 과학과 기술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상당히 진전시키기도 했고 지체시키기도 했다.
확실히 그것은 과학의 내용에 관한 더 미묘한 관념을 만들어내게 했다.
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과학의 내용을 과학적 작업의 규범적인 잠재력, 즉 근거가 충분한 명제들을 산출
하는 실험실 활동, 특히 실험의 능력과 동일시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기술학은 과학의 내용을 자신들의 작업의 기술적 특성과 동일시하는 과학자들
자신의 경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그 작업 가운데 시험할 수 있는 명제들의 체계로 증류되는 것
은 상대적으로 아주 조금밖에 없다.
철학자들은 철학적 진리 탐구와 연속하는, 정화된 판본의 과학을 제공하는 체하는 반면에 과학기술학은
많은 과학자들, 특히 비이론적 과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관점에 발언권을 주었다.
즉, 철학은 과학의 언어학적 표면으로부터 추상한 다음에 이런 추상에 대하여 과학적 실천을 판단한다
(합리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렇게 할 때, 과학기술학은 이십 세기 철학의 주요한 반(反)철학적 특징의 옹호자들, 특히 루드
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그리고 마르틴 하이
데거(Martin Heidegger)에게 호소했는데, 그들 모두는, 두드러지게 다른 방식으로, 철학적 이론이란
국소적으로 근거를 둔 실천에 대한 불필요한 부가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접근법과 일관되게, 과학기술학은 근거 이론(grounded theory) 방법론을 채택했는데, 그럼으로써
과학기술학 연구자는 자신의 개념적 장치를 조사받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
하는 것에 한정한다.
라투르가 서술하는 대로, 그 연구자는 행위자들을 쫓아서 그들의 행위를 기록할 뿐이며, 과학자들이 그들
자신의 실천을, 오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잘못 표현한다는 이차적인 이론적 주장의 형식으로
그들의 활동에 전혀 저항하지 않는다.
과학기술학의 근거 이론 방법론은 쿤,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비롯한 근대 과학철학과 대단히 어긋
날 것이다.
그들의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철학자들은 모두 과학적 탐구가 정의상 이론과 가치연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과학기술학은 과학자들의 실천 속에서 분명히 예증되지 않으면 그런 제약을 전혀 상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과학기술학은 일반적으로 이런 점을 자체의 탐구에 적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 분야의 전문화, 즉 분과학문의 경계 구성과 유지(지식정책으로도 알려진)의 사회적 차원들에
대한 어떤 비판적 심문도 포기하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정책을 반영한다.
대신에, 과학기술학은 훨씬 더 대상중심적인 태도를 채택하는데, 그것으로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은 자신
이 조사하는 행위자를 향한 자기 자신의 위치에 의해 방해받지 않은 채 자신의 고객의 준거틀로 시작할
뿐이다.
이것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와 같은 더 비판적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에게 우려의 원천이
었다.
그것은 앎에 대한 은유들의 대조에서 전형적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독립적인 비판적 시각에 필요한,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 또는 여성주의의 고정된 입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활동이 점점 더 고객에 의해 추동되는 계약 기반 연구로 넘겨지는 분야에 알맞는, 과학기술
학의 명시적으로 유목적인 특성이 있다.
전자의 은유에서 후자의 은유로 전환하면서 과학기술학은 그것의 저교회파에 동기를 부여했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버린 듯하다.
이제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는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개념은 과학기술학에게 개념적 난점과 실천적 난점의
가장 큰 원천을 제공한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긴장은 보편주의 대 상대주의 경계선을 따라 당겨진다.
"테크노사이언스"는 현대사회의 과학과 기술의 미(未)분화된 특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학적 진보에 관한 이십 세기 철학들에서 점점 더 두드러지게 된 강한 과학-기술 구별에 반대한
다고 여겨지는데, 이십 세기는 기술이 과학의 수행에 점점 더 중추적으로 되고, 그리고 확대된 규모의
이런 "빅 사이언스"가 사회의 물질적 하부구조와 합병된 바로 그 시기이다.
그렇지만 과학기술학은 이런 전환을,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는 약간 다르게 개념화한다.
과학과 기술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통합된 것으로 보는 대신에 과학기술학은 테크노사이언스를 사회의
나머지 것을 자체의 연구와 통제를 위한 대상으로서 재생산하는 자기조직화의 원리로 여긴다.
따라서 테크노사이언스의 위대한 영웅들은, 정치인들이 말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과학과 기술로
성취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같은 사람들이다.
아마도 과학자들을, 그리고 특히 기술자들을 추켜세울 것이지만, 이런 이미지의 테크노사이언스는, 그것
들의 내적 장점이나 주장차들의 의도와 전적으로 독립적으로 어떤 테크노사이언스의 혁신들에 촉진
모멘텀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그리고 흔히 지속적인 권력관계를 무시한다.
동시에 과학기술학은 테크노사이언스를 매우 특수주의적인 견지에서, 이른바 확장된 행위자네트워크
(extended actor-network)로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한 사회가 구성적 행위자네트워크에 관련되지 않은 채 자체의 문화적 목적을 위해 과학이나 기술을 전유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서양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과 비서양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 사이의 논쟁점인 것
으로 판명된다.(다문화주의를 보라.)
이 점은, 1998년에 영국의 경제사회연구위원회(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의 후원 아래
조직된, 대중의 과학이해에 관한 첫번째 전지구적 사이버학술회의에서 발표되었다.
비서양인 연구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서양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은 "일본 과학" 또는 "이슬람 과학"
의 성공을 보편적 지식의 전유라기보다는 국소적 지식의 혼성화의 문제로 간절히 다루고 싶은 듯했다.
"혼성화"는 비서양인들의 창의적 노력에만 주목하는 반면에, "전유"는 그들도 그렇지 않았으면 그것을
공유하지 않았을 서양인들로부터 관련 지식의 통제권을 억지로 얻어내야 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사회인식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과학기술학이 전유보다 혼성화라는 말을 선호한다는 점이 그것이 연구
하는 사람들에 관한 지식을 과학기술학 자체가 부분을 이루는 더 넓은 인식적 우주에 포함시키기를 거부
함으로써 그 분야가 과학과 기술의 행로에 대한 자체의 책임을 포기한다는 점을 가리킨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더 읽을 책
J. D. Bernal, The Social Function of Science (1939).
S. Fuller, The Philosophy of Sciene and Technology Studies (2006).
S. Fuller & J. Collier, Philosophy, Rhetoric and the End of Knowledge (2004).
N. Gilbert & M. Mulkay, Opening Pandora's Box (1984).
B. Glaser & A. Strauss, The Discovery of Grounded Theory (1967).
D. Haraway, Simians, Cyborgs, Women (1991). 다나 J. 해러웨이,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S. Harding, Whose Science? Whose Knowledge? (1991). 샌드라 하딩,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
B. Latour, Science in Action (1987).
B. Latour, The Pasteurization of France (1988).
B. Latour, Pandora's Hope (1999).
B. Latour & S. Woolgar, Laboratory Life (1986).
P. Mirowski, The Effortless Economy of Sciene? (2004).
A. Pickering (ed.), Science as Practice and Culture (1992).
M. Polanyi, Personal Knowledge (1957). 마이클 폴라니, 개인적 지식
J. Ravetz, Scientific Knowledge and Its Social Problems (1971).
사회운동으로서의 과학(Science as a Social Movement)
과학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서 가장 흥미로울 것이다. 과학에 대한 네 가지 일반적인 이해를 먼저 고려한
다음에, 이와는 대조적인 다섯 번째 것을 정의하고자 한다.
1. 근대 시대에 거의 모든 것에 스며드는 추리 양식으로서의 과학. 그것은 막스 베버(Max Weber)의
"합리화" 과정―지방 풍속과 전통을 공식적인 관리로 냉혹히 교체하는―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전지구적 식민화를 향한 과학의 역사적인 경향을 올바르게 강조하는 반면에, 과학적 추리
양식들이 사회적 과정과 얽히게 된 균일하지 않는 가역적인 방식들을 은폐한다.
2. 진화 과정 동안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이 번성할 수 있게 한, 자의식이 된 공통감각으로서의
과학.
이 관점은 미합중국 실용주의자들, 특히 존 듀이(John Dewey)와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자연 환경을 통제―그리고 사실상 개조―하고자 하는 과학의 목적을 올바르게 강조하는 반면에,
세계 내 이런 존재 방식의 자연성을 과대평가(그것을 "생물학적"으로 만들 정도까지)하고, 그래서 우연히
과학적인 세계가 된(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우리 세계의 역사적 우연성을 은폐한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과학과 비과학을 구획짓기 위한 특정한 실증주의적 전략들의 수용가능성과
무관하게, 과학의 관할구역을 경비하는 것에 대한 실증주의적 경계심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3. 오늘날 어떤 다른 종류보다도 더 빨리 퍼지며, 전에는 종교적 믿음를 위해 유보된 권위를 즐기곤
하는, 과학적 믿음의 내용으로서의 과학.
이 점은 오늘날 의료과학에 의한 건강의 식민화에서 가장 생생하게 예시되는데,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 지를 알기 위해 의사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이런 인식론적 측면은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Serge Moscovici)에 의해 연구되었다.
그것은 과학이 어떻게 과학자들과 비과학자들을 막론하고 모두가 고수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는지를
올바르게 강조하는 반면에, 과학적 믿음의 내용보다는 절차와 방법의 견지에서 존재하는 과학의 독특
함을 경시한다.
사실상 과학적 믿음은 흔히 그것이 이미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전통적으로 비과학적인 다른 사유 형식
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런 믿음들이 과학적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이다.
4. 활동하는 과학자들의 기풍으로서의 과학. 객관성의 규범들이 그 정도이므로 과학자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작업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규칙적으로 말한다.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에게 과학의 규범적 구조 설명하기는 그런 신앙 고백과 같다.
이 개념은 확실히 많은 과학자들의 자기이해를 포착하고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전형적으로 대중들
이 과학을 유일하게 직접 접하게 되는)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공개적인 수사학을 구성하곤 하는
반면에, 동일한 공개적인 수사학이 매우 다른 실천들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매우 단순한 규범성 관념을 전제한다.
5. 그들이 미래에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두도록 세계가 그들의 집단 의지에 굴복하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불완전한 추리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원리들의 집합으로서의 과학.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수사학적이기도(수사학을 보라) 하고 실험적이기도 한데, 그것은 특정하게 변경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추리자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고도로 규율된 사회운동이며, 베버의 기억할 만한 어구로 표현하면, '소명'에 헌신
하는 종교 교단과 유사하다.
스티브 풀러는 패러다임이란 하나 이상의 이익집단들에 의해 포획된, 그래서 "규율된", 체포당한 사회
운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학제성 대 간학제성을 보라.)
이 교훈은 과학기술학의 설명 부담의 반전을 의미한다. 쿤의 발자국을 쫓아, 이안 해킹(Ian Hacking),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그리고 선도적인 과학기술학 연구자들 대부분은 과학적 실천과 기술적
실천에서 넓은 범위의 시간과 공간에 걸쳐 안정성이 어떻게 획득되고, 그리고 재획득되는지 연구했다.
그런 연쇄적인 "정상과학" 체제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풀러는 패러다임이 어떻게 지적 역동성과 정치적 역동성을 구속하고 억압해 내는지를 강조한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상과학은 탐구 과정을 탈정치화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
가치 정향의 이런 반전이 사회운동으로서의 과학이라는 관념을 특징짓는다.
최소한 이것은 과학의 진보성에 대한 판단이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역사를 언제 그리고 어디서 시작하느
냐에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을 사회운동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한 모형이 기독교의 종교적 변화를 비슷하게 다룬 사회학자
로버트 우드나우(Robert Wuthnow)에 의해 제공된다.(종교를 보라.)
여기서 표준적인 역사적 에피소드는 십육 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지 십칠 세기의 과학혁명이
아니다.
따라서 초점은, 연구를 종교적 논란으로부터 격리한 왕립학회와 같은 기관들을 설립하는 것보다 가톨릭
의 문자와 실천으로부터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는 것에 맞추어진다.(합의 대 거부와 비판을 보라.)
종교개혁은 복음주의, 영지, 그리고 개인적 계시를 강조한 반면에 과학혁명은 공손함, 방법, 그리고 상호
신뢰를 강조했다.
역사만이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역설로, 이른바 "개혁"은 유럽 대부분을 뒤덮은 삼십년 전쟁으로
귀결된 반면에, 이른바 "혁명"은, 갈등을 끝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싸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한 공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운동과 패러다임은 유기적인 탐구가 사회 변환의 기술로서의 이력에 있어서 거치는 세 단계 가운데 앞의
두 단계로 간주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데올로기이다. 운동―패러다임―이데올로기의 연쇄가 표 3에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활성화, 공고화, 그리고 소산의 서로 겹치는 단계들의 끝없는 순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관념들이 사회적 변화 일반의 추동력을 구성하고(운동), 그 다음에 그 관념들은 그것
들을 구체화하고 그것들의 후속 확산을 통제하는 집단에 의해 포획되며(패러다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사회 전체에 의해 흡수됨에 따라 마르크스가 "상부구조"라고 말하곤 했던 것이 된다(이데올로기).
표 3. 인식적 구성체의 순환
인식적 구성체 | 운동 | 패러다임 | 이데올로기 |
지식의 정치학 | 시민공화주의 | 공동체주의 | 자유주의 |
말―행위 관계 | 환원주의 | 기능주의 | 제거주의 |
시간적 정향 | 미래 | 현재 | 과거 |
수사학적 기능 | 동기부여 | 수행 | 정당화 |
과학-정치 관계 | 과학과 정치는 함께 산출된다 | 정치는 응용과학이다 | 과학은 여러 형태로 정치적이다 |
암묵적 논리 | 지식은 권력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 지식은 권력의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 지식은 권력의 충분 조건이지만 필요 조건은 아니다 |
이 단계들을 정의할 때 중요한 관계는 말과 행위 사이의 관계이다.
여기서 철학의 정신―신체 문제에 대한 경쟁하는 접근법들에 의해 이루어진 구별짓기가 유용한 선례를
제공한다.(과학의 인지적 내용 설명하기를 보라.)
정신―육체 문제는, 부분적으로, 우리 육체 또는 주변 환경을 대체로 참조하지 않은 채 우리 정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슷하게, 사회물리적 매체 또는 수용 맥락을 대체로 참조하지 않은 채 관념들의 흐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협의의 심리학적 사례와 더 일반적으로 지적인 사례 둘 다에서 이것이 좋은 것인지 물을 수 있다.
뒤이어 강조되는 세 가지 철학적 접근법―환원주의, 기능주의, 그리고 제거주의―은, 관념의 생성과
확산에 관한 거시적 수준의 이해를 위한 미시적 모형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관계를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정신을 물질로 환원시키는 것은, 일종의 심적 상태가 항상 같은 종류의 물리적 상태를 나타내도록 우리의
언어 사용을 규율하기라는 명시적으로 규범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환원주의 기획은 어떤 종류들의 행동이나 신경 패턴이 어떤 심적 상태의 적절한 조작화에 포함되
어야 하는가 그리고 배제되어야 하는가에 몰두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적당한 방식으로, 예를 들면, "초원에 말 한 마리가 있다는 믿음"을 형성했는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운동 담론은, 균일한 정치적 반응을 불러내기 위해, 이론적 개념과 일반적으로 관측가능한
경험적 사실 사이의 연결에 집착함으로써 말의 위력을 예시했다.
놀랍지 않게도, 운동 담론은 앞으로 제도화되어야 하는 법률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판사들의
특성―일종의 유토피아적 해석학―을 나타내곤 한다.
이것은 신의 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수 있다는 견지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관심뿐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지배 담론이었던 1880-1980년대의 사회주의 운동도 서술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착취", "잉여가치", 또는 "계급의식"에 관한 적절한 분석에 대한 의견일치가 혁명을 위
한 초석을 마련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개념적 명료성이 집단행동을 모으는 데,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언어적 조직화(존재론적 평등화로도 알려진)와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운동은 환원주의에 의해 고무된다.
근대 시기에, 십구 세기 말 독일의 생물학적 환원주의, 이십 세기의 다양한 형식의 문예 모더니즘, 그리고,
아마 가장 두드러지게, 논리 실증주의[I. A. 리처즈(I. A. Richards)에 의한 "실용비평"으로의 통속화와
알프레드 코르지브스키(Alfred Korzybski)에 의한 일반의미론 운동으로의 통속화를 포함한] 사례에서
이런 고무가 명시적이었다.
정신에 관한 "기능주의적"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관념들은 체계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특수한 뇌
상태 또는 물리적 사건들과는 우연히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점은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서 명백하다. 더 형이상학적으로 고무된 시대에 그것은
이원론, 즉 정신과 육체가 본원적으로 다른 종류의 존재자라는 관점을 낳는다.
오늘날 기능주의는 대부분의 인지과학 연구를 보증하는 철학이다.
패러다임은 기능주의적 정신관과 유사한 과학관을 전제한다.
과학이 정치경제적인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은 채 과학 연구의 내적 논리는 그것을 참조
할 필요가 없다(예를 들면, 실험 작업은 이론 시험으로 유형화된다).
한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운동은 실제 응용의 전 범위를 좌우하는 개념들을 설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반면에, 운동의 시각에서 보면 패러다임은 지식과 권력의 공(共)산출을 과학과 정치의 개별적 연쇄
로 나누려고 시도한다.(인식적 정의를 보라.)
쿤(쿤,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보라)과 다른 사람들이 일차적 패러다임 투쟁으로 묘사했던, 과학사
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과학이 어떤 종류의 인식적 구성체이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이차적 논쟁으로 더
잘 이해될 수도 있다.(진리, 신뢰성 그리고 지식의 종말을 보라.)
일반적으로 말해서, 운동지향적인 과학자들은 인식적 관심과 실제적 관심을 병합하는 현상론적 접근법에
끌린[예를 들면, 조지프 프레스틀리(Joseph Priestley),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빌헬름 오스트발트
(Wilhelm Ostwald)] 반면에, 패러다임지향적인 과학자들은 윌프리드 셀라스(Wilfrid Sellars)가 "과학적"
이미지라고 부른 것과 "자명한" 이미지라고 부른 것을 예리하게 구별하는 서열을 나타내는 더 계층화된
존재론에서 피난처를 구했다[예를 들면, 앙트완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막스 플랑크(Max
Planck),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과학변동에 관한 쿤의 이론에 의하면, 패러다임지향적인 과학자들이 운동지향적인 과학자들을 항상 패배
시키는데(규율한다라고도 알려진), 그 결과 운동지향적인 과학자들의 추종자들은 나름의 자율적인 탐구
영역을 지닌 한 패러다임으로서 다시 모이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더 넓은 사회에 걸친 이데올로기적
구성체들에 용해된다.
과학기술학에 남긴 쿤의 유산은 패러다임을 운동으로 바꾸려는 시도들을 설명하기가, 또는 기록하기
조차도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계속 진행 중인 "과학전쟁"을 특징지워온, 문화를 과학으로 읽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뿐 아니라
"유전자 이야기"가 공론장에 유입된 사실을 고려하자.
쿤주의자는 이 사례들 모두를 지배적인 패러다임들의 이데올로기적 퇴화로 다룰 것인데, 그래서 전문가
들은 자신들의 말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
정신―육체 문제에서 유사한 입장은 "제거주의"인데, 여기서 심적 개념들은 물리적 개념들에 부수적인
현상이고, 이것은 모든 사유 행위가 신경 무늬들의 어떤 집합에 상응하지만 어떤 집합인지는 경우마다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로의 전회는 과학용어들의 의미를 확산시키고 은유적으로 만든다.
현재의 공적 논쟁에서, 예를 들면, "진화" 또는 "복잡성"에 대한 호소는 이루어진 논증에 어떤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기로 되어 있는 반면에, 논증자의 정치적 정향 또는 그 논증에 대한 과학적 증거의 적실
성조차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한 점들은 정확히 운동 접근방식에 의해 명시화되고 논란의 문제로 바뀌게 될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진화"와 "복잡성"을 둘러싼 현재의 담론 구성체들을 각각 운동과 이데올로기의 사례로서
구별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비평가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복잡성"을, 모호하게 반(反)패러다임적이긴 하지
만 어떤 긴박한 정치적 또는 과학적 의견 차이에 이르지 않는 꽤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화를 둘러싼 공적 논쟁은, 특히 최근의 생명공학의 발전에 비추어 보면, 과학 개념들
의 사용을 최소한 원칙적으로,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한, 예를
들면 "우생학적", 정책과 막 결부시켜려 하고 있다.
탐구에 대한 운동 정향에서 기대되듯이, 실험실 안과 밖 둘 다에서 일어날 것이 동시에 관련이 있다.
운동―패러다임―이데올로기 연쇄는 인식적 구성체들의 한 주기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운동으로 되돌아가는가?
간략한 대답은 패러다임적 개념들의 이데올로기적 전유는 실재에 관한 지식을 자칭 전문가 집단에게
한정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된 긴장에 대한 의식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단계와 운동 단계는 각각 보편적 지식의 "보편적"(보편주의 대 상대주의를 보라)
특성과 "지식" 특성에 관한 자의식에 해당하는데, 패러다임에 한정된 지식은 먼저 사회 일반으로 퍼지고
난 후에 가능한 지배 원리로서 재정초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발명과 재발명 속에서, 대학은 사회 일반이 분산된 관념들을 체계적인 어떤 방식으로
편입하기 위한 현장을 제공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운동으로의 전환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루된 기관이었다. 그 현장은 교과과정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인민들을 자의식이 있는 계급으로 조직하기 위한 역사적 기회를 꿈꾸지만, 대학은 항상 그런 목적을 위해 이용가능한 것이는데, 비록 엘리트에게만 그랬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강단에 감금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학의 계몽주의적 사명의 주요한 옹호자들에 속했다는
사실은 거의 놀랍지 않다.
더 읽을 책
J. D. Bernal, The Social Function of Science (1939).
R. Bhaskar, Scientific Realism and Human Emancipation (1987).
J. A. Campbell & S. Meyer (eds.), Darwin, Design and Public Education (2003).
R. Collins, The Sociology of Philosophies (1998).
E. Eyerman & A. Jamison, Social Movements (1991).
P. Feyerabend, Science in a Free Society (1979).
M. Foucault, The Order of Things (1970). [미셸 푸코, <<말과 사물>>(이광래 역, 민음사, 1987).]
S. Fuller, Thomas Kuhn (2000).
R. Giere (ed.), Cognitive Models of Science (1992).
A. Gouldner, The Future of Intellectuals and the Rise of the New Class (1979).
T.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1970).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B. Latour, The Pasteurization of France (1988).
R. K. Merton, The Sociology of Science (1977). [로버트 K. 머튼, <과학사회학>(석현호 등 역,
민음사, 1998).]
J. T. Merz, A History of European Thought in the Nineteenth Century (1964).
A. Pickering (ed.), Science as Practice and Culture (1992).
R. Procter, Value-Free Science? (1991).
J. Ravetz, Scientific Knowledge and Its Social Problems (1971).
Z. Sardar, Postmodernism and the Other (1977).
T. Sorell, Scientism (1991).
R. Wuthnow, Discourse Communities (1989).
자연주의(Naturalism)
자연주의의 정확한 함의들은 자연과학이 정통적 지식 형식으로 간주되는지 또는 이단적 지식 형식으로
간주되는지에 의존한다.
전자의 경우에, 1960년대에 저술한 W. V. 콰인(W. V. Quine) 이후에, 자연주의는 철학적 질문들을
자연과학의 질문들로 변환시키는 것으로서 정의되곤 한다.
이런 종류의 자연주의자는 뇌의 구조를 들여다봄으로써 지식의 문제들을 다루고, 인류의 생물학적 유산
을 검토함으로써 도덕의 문제들을 다룬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존 로크(John Locke)가 자신의 친구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서술했듯이, 세계에 관한 적절히 과학적인 이해에 대한 개념적 장애물들을 치우는 "청소부" 역할
을 수행한다.
앨빈 골드먼(Alvin Goldman)과 필립 키처(Philip Kitcher)와 같은 분석적 사회인식론 학자들이(분석적
사회인식론을 보라) 스스로를 "자연주의자"라고 서술할 때, 그들은 자연과학에게 이런 층위의 인식적
특권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자연주의'는 삼 세기 전에 스피노자(Spinoza)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서, 신은 물질적 실재와
일치하며, 그리고 창조는 이런 단일한 통일적 실체의 자기실현일 뿐이라는 점을 함축한, 그의 이단적
성경 해석을 가리키는 데 처음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레싱(Lessing), 괴테(Goethe), 그리고 십팔 세기 독일 계몽주의 다른 지도자들은 "자연주의"
에, 인류를 자연 진화의 지적 선봉으로 삼는 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런 시각은 십구 세기와 이십 세기 초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칼 마르크스
(Karl Marx),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그리고 실용주의자들에 의해 열렬히 채택되었다.
또한 그것은 풀러 판본의 사회인식론에도 존재한다.
자연주의의 이런 더 긴 역사로부터 서로 관련된 두 가지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i)일차적으로 자연주의는, 보통의 인간 역량을 넘어서는 정신적 능력이나 지식 대상들을 가정하고,
그럼으로써 능력이나 전문성에 기반을 둔 계층화된 사회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지식론이라는 의미
에서의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에 대립한다.
(ii)자연주의의 뿌리는, 십구 세기 초 무렵에 기독교의 실정적 소명을 사회과학의 견지에서 세속화했던
(예를 들면, 마르크스) 그리고 십구 세기 말 무렵에 자연과학 자체가 새로운 국가 종교로서 제도화되는
것에 대해 경고했던(예를 들면, 마흐) 역사비판적 신학에 있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실재론(realism)"으로 알려진 과학철학은, 특히 수용된 이론들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때, 초자연주의의 세속적 후예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
자연주의의 긴 역사가 사회인식론과 맺는 관련성은 삼중적이다. 아래에서 논의되는 각 측면은, (데카르
트와 스피노자를 "합리주의자들"로서 함께 묶는 일반적인 교육적 관행과는 대조적으로)초자연적 신관을
고수했던 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고전인식론의 전통과 연관된 교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연주의자는 탐구란 정신이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외부 실재로부터 소외된 정신에서 시작한다고
상정하지 않는다.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대상들과 방법들 사이에 어떤 견고한 구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우리가 보는 구별은 두 분야 집합 사이의 상호침투의 실제 정도와 잠재적 정도를 은폐해 온
제도적 차별화의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다.
인간적인 것들이 실험적 방법들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그리고 받아왔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질학과
생물학이 여전히 "자연사"의 갈래로서 간주되고 있었을 때 그것들에서 흔했던 것처럼)자연적인 것들은
해석적 방법들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그리고 받아왔다).
물리적 공간과 물질적인 것들의 동원이 사회생활의 영위에 필수적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인간들의 조직
화는 물리학의 수행에 필수적이다.
일단 그런 해석이 인정받으면, 철저한 자연주의자는 인간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과학으로 환원가능하
다는 단순한 생각을 수용할 수 없는데, 현재 구성되어 있는 대로의 자연과학이 인간과학만큼이나 강화된
분리의 공통 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론가는 원하는 결론에 이르기 전에 표명하고, 변환하며, 그리고 흔히 폐기하곤 하는 편견들을 항상
짊어지고 온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정기적인 노출이 입수가능한 유일한 해독제인 그릇된 선험적 관념들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주장함으로써 포퍼는 데카르트를 뒤집었다.
우리가 고정 관념의 한계―또는, 더 정확히, 그 관념이 우리의 행위 가능성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깨
닫지 못한 채 꽤 잘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때때로 고정 관념의 오류의 원천은 미묘하다.
예를 들면, 서양 문화는 지구중심 우주론이 체계적으로 도전받기 전 이천 년 동안 번성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 오류를 드러내는 관련 경험을 겪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상황이 필요하다.
과학에서 이런 비판적 기능은 실험의 설계와 실행에 의해 수행된다.
게임의 존재론에서만 제일 원리들에서 최소의 가능한 단계들을 거쳐 결론으로 움직이는 순수한 사유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격리된 관찰이 아니라 역사 과정 동안 이루어진 집단적인 인간 노력의 특정한
산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시각은 자연과학의 전례가 없는 힘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과학의 성공이 실재와의 기적적인 일치가 아니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다른
노력들을 설명하는 데 기능할 수 있는 과정들의 결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 또는 과학자들의 구성체가 "합리적"이라고 한다면, 그 술어는 그 과학자가 다른 사례
들에서 나타내는 성질을 가리켜야 하거나 또는 다른 작업자들의 비슷한 구성체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과학"은 그것의 질적인 특징들(합리성이나 진보성과 같은)보다 양적인 특징들(규모와 범위와
같은)의 견지에서 더 독특할 것이다.
요약하면, 사회인식론의 자연주의는 지식이란 그것이 분명히 세계 내에 처해 있지 않으면 세계에 관한
것일 수가 없다는 관념에 해당한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공식적으로 구별지었을 때도 그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을 견지했다.(쿤,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보라.)
따라서 그들은 어떤 관념에 대한 최초의 어떤 형식화―출판된 최초의 표현을 비롯한―도 그것의 평가에
앞서 정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맹목과 통찰의 혼합물로 여긴다.
실증주의자들이 선택한 정화 형식은 포퍼가 반대한 것으로 유명한 논리적 번역이었는데, 포퍼는 필요한
것은 특정한 종류의 인식적 공동체, 추측과 반박의 상호작용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사회인식론은 포퍼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맥락―"시민공화주의적" 과학 정치체―을 구체화
하려고 시도한다.(탐구의 자유를 보라.)
인류가 어떤 인식적 진보를 이루었던 간에 그것은 신의 명령이나 허가 때문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지식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지식을 갖는 사회적 전체들로 인간들을 조직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구성원들의 목적들을 초월하는 목적을 지닌 사회적 존재자를 가리키는 법인이라는 법률적 범주가
대학(대학을 보라), 교회, 국가, 그리고 기업들을 비롯한 이런 전체들의 다양성을 포착한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헤겔적 역사주의, 콩트적 실증주의, 그리고 퍼스적 실용주의의 목적론들은,
고차적인 인간 지식(즉 "과학")이 저급한 인간 지식(즉 "의식")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으로부터 생성된
과정을 특정함으로써 초자연주의를 자연주의적으로 분장하는 시도들이다.
그 결과, 진보란 우리가 실재 전체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우리 자신의 제작에 관한
기준들을 획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매우 간결하게, 합리성에 관한 자연주의적
이론이다.
자연주의는 다음과 같은 통찰에 바탕을 둔, 인간들과 그들의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역동적이고 제힌이
없는 비전을 함축한다.
무엇이든 도대체 어떤 지식을 취득하기 위한 대가는 지식이 그것의 취득 조건에 의해 어떻게든 왜곡될 것
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판이 보편적으로 신뢰할 만한 유일한 방법인데, 이것은 자연주의적 탐구자가 자기초월이라는
영구적인 기획에 참가함을 의미한다.
이 관점은, "물질"이 실재를 계속 구성하는 일종의 원료로서 이해된다면 유물론과 사회구성주의 둘 다와
양립가능하다.
수사학의 변증법적 전통을 논리학의 연역적 전통과 조합하는 가설 시험이라는 정평 있는 과학적 실천은
이런 끝없는 비판 과정의 형식화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식론은 하나의 교정적 가설로서 자체의 우연적 기원들을 무시
하는 보편성을 열망하면 결국 실패하게 되어 있다.
더 읽을 책
C. Degler, In Search of Human Nature (1991).
S. Fuller, Philosophy of Science and Its Discontents (1993).
R. Giere (ed.), Cognitive Models of Science (1992).
A. Goldman, Epistemology and Cognition (1986).
P. Kitcher, The Advancement of Science (1993).
M. Mandelbaum, History, Man and Reason (1971).
W. V. Quine, Ontological Relativity and Other Essays (1969).
P. Singer, A Darwinian Left (1999). 피터 싱어, 다윈의 대답 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D. Sperber, Expaining Culture (1996).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