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부터 아이웨이웨이까지…국립현대미술관 해외명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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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1840-1926),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20, 캔버스에 유화 물감, 100×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클로드 모네는 자신이 가꾼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을 그리면서 하늘 풍경도 함께 담아냈다. 연꽃 위로 수면 위에 비친 녹색 버드나무 이파리가 어렸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연보랏빛이 어우러졌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은 빛의 변화를 포착한 인상주의의 정수이자 추상미술의 출발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언제 다시 전시하는지 문의와 요청이 많았던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오는 2일부터 2027년 1월까지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 전시를 열고 모네의 작품을 비롯한 해외 명작 44점을 선보인다. 전시명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아이웨이웨이의 ‘검은 샹들리에’ 제작 시기 차이가 100년에 달하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번 전시는 연대기나 사조별 구분을 따르지 않고 작품을 주제와 시각적 요소에 따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이 작품을 오롯이 마주하면서 호기심과 상상력의 폭을 넓히도록 설계됐다. 김유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 공간을 ‘호기심의 방’으로 정의하며 각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가 대화하는 장면을 의도했다고 전했다.
전시에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부터 입체주의의 파블로 피카소, 초현실주의 대표주자인 살바도르 달리 작품이 전시된다. 개념미술을 이끈 마르셀 뒤샹,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도널드 저드, 팝아트의 앤디 워홀까지 미술사 주요 흐름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총출동한다.
특히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소장품이 크게 확대된 뒤 마련된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전시에는 이건희 컬렉션 작품 16점이 포함돼 있으며 모네, 르누아르, 호안 미로, 피카소, 달리, 마르크 샤갈 등의 걸작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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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 1917-191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6.5×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는 화사한 색채와 부드러운 붓질이 특징이다. 샤갈의 ‘결혼 꽃다발’은 푸른색 배경에 붉은 꽃을 가득 차게 그리고 신랑과 신부를 그려 넣어 행복과 기쁨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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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 〈춤추는 사람들〉, 2000, 캔버스에 유화 물감, 185×122cm
사람들을 풍만하게 묘사하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도 즐길 거리다. 그 앞에는 니키 드 생팔의 거대한 조형물 ‘검은 나나’가 놓여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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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1957- ), 〈검은 샹들리에〉, 2017-2021, 유리, 금속 부품, 240×185×185cm, ed. 24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중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쩡판즈, 독일의 안젤름 키퍼, 1세대 페미니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 등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의 ‘검은 샹들리에’는 해골, 내장, 척추뼈 모형으로 샹들리에를 구성해 화려한 삶 이면에 있는 어두움을 암시한다. 키퍼의 ‘멜랑콜리아’는 납을 부어 만든 거친 표면에서 물질성이 강하게 드러나며 독일 전후 개인과 시대의 우울을 함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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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클로즈(1940-2021), 〈알렉스-리덕션 판화〉, 1993, 종이에 스크린프린트, 200.7×153.1cm, ed. 635
척 클로즈가 동료 화가인 알렉스 카츠의 초상을 판화로 제작한 ‘알렉스-리덕션 판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클로즈가 전신 마비를 겪던 시기에 극사실주의 기법을 이어가는 작가의 집념을 보여준다. 판화임에도 인물의 모공과 주름을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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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크루거(1945- ), 〈모욕하라, 비난하라〉, 2010, 비닐에 디지털 프린트, 317×366cm, 유일본
키키 스미스, 신디 셔먼 등 여성주의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크루거의 ‘모욕하라, 비난하라’는 눈에 바늘을 찌르기 직전의 모습을 포착해 대중 매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시각적 폭력을 형상화했다. 스미스의 ‘코르사주’는 노년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며 주름진 얼굴과 처진 몸을 통해 기존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전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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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판즈(1964- ), 〈초상〉, 2007, 캔버스에 유화 물감, 219.5×145cm (1)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집 이후 대중에게 최초 공개하는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내는 물납제가 도입된 후 처음 물납된 쩡판즈의 초상화 두 점이 대표적이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얼음 위를 걷는 사람들’, 존 발데사리의 ‘음악’도 처음 공개된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 작품 소장 비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연간 구입 예산 47억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해외 작품은 1043점으로 전체 소장품의 8.7%에 불과하다. 이 중 절반 이상인 595점이 기증된 작품이다. 이 때문에 기증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으로 해외 작품을 구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증을 유도해서 눈에 띄는 작품을 소장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