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49편 1 - 9절
1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성도들의 모임 중에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2 이스라엘이 그들을 지으신 분을 기뻐할 것입니다. 시온의 백성들이 그들의 왕으로 인해 즐거워할 것입니다.
3 그들이 춤추며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소고와 수금으로 주께 음악을 연주할 것입니다.
4 여호와는 주의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겸손한 자들에게 구원으로 왕관을 씌우십니다.
5 성도들이 이러한 명예를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의 침대 위에서 기쁨으로 노래할 것입니다.
6 성도들이 입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드리게 하십시오. 양날을 가진 칼이 그들의 손에 있게 하십시오.
7 이방 나라들에게 원수를 갚게 하시며, 이방 백성들에게 징벌을 가하게 해 주소서.
8 그들의 왕들을 쇠사슬로 묶게 하시고, 그들의 귀족들을 쇠고랑으로 묶게 해 주소서.
9 그들을 향해 기록된 판결대로 집행되게 해 주소서. 이것이 주의 모든 성도들의 영광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묵 상>
본문은 ‘할렐시’로서 내용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심에 대한 승리를 선언합니다. 이 시편 역시 누가, 언제,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할렐루야 시편과 동일하게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무너져 방치되어 있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후에, 영원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며 지은 시입니다.
1.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양(1-5절)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성도들의 모임 중에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새 노래’는 갓 만들어진 노래, 처음 불리는 노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노래는 1차적으로는 ‘구원의 노래’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24장로들이, 성도들이 드린 기도를 담은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양 이신 주님 앞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내용이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사람들을 사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때, 그 노래가 ‘새 노래’라고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새 노래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새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드리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찬양을 한다고 합니다. 즉 신앙공동체가 함께 찬양을 드리는데, 그것이 새 노래입니다. 그렇게 암울했던 바빌로니아의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기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함께 부른 노래가 새 노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지으신 분을 기뻐할 것입니다. 시온의 백성들이 그들의 왕으로 인해 즐거워할 것입니다."(2절) 시인은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것보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요.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십시다.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온의 백성들이 그들의 왕으로 인해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아니라 ‘시온의 백성들’이라고 표현했겠습니까?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산, 언덕이지만 거기에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정치나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들이 춤추며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소고와 수금으로 주께 음악을 연주할 것입니다."(3절)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를 밝혀줍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표현하는데 노래만으로는 부족해서 ‘춤’과 ‘악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춤과 악기를 더하여 올려드리는 찬양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주의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겸손한 자들에게 구원으로 왕관을 씌우십니다."(4절)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서로가 기뻐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을 주셨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는 이유가 그들이 예물을 많이 드렸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순전한 기쁨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왕관을 씌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왕관'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즉 겸손한 자들을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로 인해서 자신을 의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은 그의 삶에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하나님의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이러한 명예를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의 침대 위에서 기쁨으로 노래할 것입니다."(5절) 여기서 '명예'는 '영광'을 뜻합니다. 성도들이 영광 중에 기뻐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깁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어가며 출산을 하였는데,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한 여인이 영광이 떠났다고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 있었음을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또한 침대 위에서 기쁨으로 노래를 한다고 합니다. 침대 위는 ‘잠자리’를 뜻합니다. 사람은 잠이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침상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림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잠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6-9절)
"성도들이 입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드리게 하십시오. 양날을 가진 칼이 그들의 손에 있게 하십시오. 이방 나라들에게 원수를 갚게 하시며, 이방 백성들에게 징벌을 가하게 해 주소서."(6-7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손에는 검을 들고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지속해야 하지만,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들, 세속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야 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지키기 이전에 먼저 그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를 살펴야만 합니다. 해야 할 일인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인가를 살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하면서도 정의와 불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 면이 많습니다. 대충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 즉 불의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죄와 싸우라고 합니다. 싸워도 보통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 12:4).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삶 중에 하나가 ‘도전과 싸움(응전)’입니다. 개신교인들을 영어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합니다. 개신교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면을 불의에 대한 항거로 삼고 있습니다. 긴 것은 기라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는 것, 옳지 못한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아니하고, 타협하지 아니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왕들을 쇠사슬로 묶게 하시고, 그들의 귀족들을 쇠고랑으로 묶게 해 주소서. 그들을 향해 기록된 판결대로 집행되게 해 주소서. 이것이 주의 모든 성도들의 영광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8-9절) 바빌로니아에 유다가 망할 때,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인 시드기야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 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유다의 귀족들도 거의 몰살시켰습니다. 시드기야의 눈을 뽑았습니다. 그 후에 놋으로 된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로니아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그와 같은 모습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등지고 산 사람들,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산 사람들에게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미 승리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의 승리를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고슴도치의 몸은 바늘 투성이입니다. ‘고슴’은 ‘가시’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슴도치의 바늘은 다른 짐승이 공격해 올 때에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자기 새끼를 ‘함함하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함함하다’는 '보드랍고 반지르하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낳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심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십시다. 날마다 나의 삶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의 찬송이 되게 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나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처음부터 내 삶은 주님의 손에 있었음을 고백드립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나의 삶으로 드리는 찬양이 늘 새 노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를 나의 소원대로 놓아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크신 뜻과 광대하신 계획 안으로 이끌어 주심게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내가 잠시 받는 고통의 경한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영광의 약속을 나로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생애를 내가 고백하고, 찬송하는 신앙의 내용대로 지켜 내는 힘을 주옵소서. 고슴도치와 같은 나를 품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