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겠지 싶었을 때는 여름 날씨 같다가 짧은 봄 덧없이 가버리는 모양이라고 마음을 비우자 다시 봄날 같아지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순환 속에 오가는 계절조차도 마음이나 바람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강녕하시지요. 오랫동안 안부 여쭙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움을 키웠습니다. 스님에 대한 불가근불가원 같은 대단한 소신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마음에 담은 이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수줍음을 나이 들어가면서도 버리거나 바꾸지 못한 채 살고 있는 탓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뒤 제게 바뀐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작금에 불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느낌이 왜 이리 담담한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황당한 소식을 처음 들은 날, 제가 한 것이라고는 쯧쯧 혀를 몇 번 찬 것뿐이었는데요. 폭로한 사람은 물론, 폭로의 대상이 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까지도 미움이나 원망, 더하여 욕설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그들 모두에게 단지 ‘못났다’라거나 ‘안됐다’ 같은 마음이 들 뿐이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참이나 늦게 만난 저한테도 인과의 이치가 이렇게도 분명한데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겠다고 다짐한 이들의 삶이 그리 무지스러웠다는 것에 대해 차마 욕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이고 일이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말 섞으며 종단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았고 발 없는 사람에게 부처님 한 분 모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며 사는 사람에게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들 속에 짐작할 수 있는 일들은 차고 넘치게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다치지 않았습니다. 따르기로 다짐한 가르침이 있고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가르침 주는 벗들이 있고 드러내 자랑한 적 없었지만 마음속에 여러 스승님도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말들도 많고 걱정도 많고 더러는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실망이 너무 커서 더는 불자라는 이름으로 살지 못하겠다고 차라리 불자라는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싶다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제 생각은 온통 그 말 한 마디에 묶여있었고 낮부터 어지럽혀진 생각들을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한 점에 모을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때는 수행자 몇 사람의 말이나 행위에 마음이 움직여 불자가 되는 것이 이상할 것 없지만 불교에 대한 배움과 이해가 이뤄진 뒤에 수행자 몇 사람의 말이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자이기를 포기하려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불교에 대한 배움과 이해를 바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이 생겨났고 그것은 분명 아니라는 믿음 같은 것이 뒤이어 생겨났습니다.
한 위대한 깨달은 이의 공덕으로 불교가 일어날 수 있었던 만큼 한 사람의 비할 바 없이 큰 악행으로 불교가 스러질 수도 있을 터이지요. 그러나 저는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 그만한 위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어지러운 바람이 불어 바다에 파도를 일어나게 할 수는 있어도 그리하여 바다를 건너려는 이들에게 한때나마 불편을 안겨줄 수는 있어도 깊고 넓은 바다 전체를 뒤집거나 말려버릴 힘이 하찮은 바람에게 있을 리 없고 더하여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고 있는 부처님 가르침 따라 바르게 살아가려는 불자들의 힘은 웅혼할 테니 말입니다.
충격이라면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바람직스럽지 않은 시기에 터진 것일 뿐, 없는 일이 있는 일로 둔갑해서 터져 나온 것도 아니고 모르고 있던 일을 말 그대로 맑은 날 벼락맞듯 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은 불교의 쇠락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각성과 쇄신을 꿈꾸기에 알맞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기는 기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때이기도 할 테니까요.
늦은 나이에 불교를 만난 것을 무척 아쉬워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교에 대한 제 앎이 무르익지 않은 것을 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운 부처님 가르침은 어린 날 저를 가르친 어머니의 말씀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지금은 안 계신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처님 못지 않게 제게 큰 가르침 주신 분으로 가슴 속 깊이 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제가 지금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가 어머님께서 제게 가르침으로 주신 말씀처럼 당신이 살아내지 못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님의 삶과 상관없이 어머님의 바른 말씀을 제가 따르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배우고 받아들이고 따라 살 것은 말씀으로 전해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었습니다. 누구의 입을 통해 가르침을 들었는가는 중요할 것이 없었고 가르침을 전해준 이의 삶이 어떠하든 바른 말씀은 언제나 바른 말씀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법등명 자등명의 이치가 비로소 선연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因惑說他佛子過 인혹설타불자과 徒然減損自功德 도연감손자공덕 故於大乘諸行者 고어대승제행자 不道彼過佛子行 부도피과불자행
미혹된 채 다른 불자의 허물을 말하면 얻는 것 없이 공덕만 줄어들고 만다네 대승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려 하는 이 남의 허물 말하지 않는 게 보살행이네 - 톡메쌍뽀 존자의 《불자행삼십칠송》중에서 (필자 졸역)
바른 말씀 전한 것이 어떻게 잘못일 수 있겠습니까. 잘못이라면 듣고 배운 바른 가르침 따라 살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한 가지, 듣고 보고 배운 것으로 바라볼 곳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중생의 업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무엇 하나 홀로 생겨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이 엄연한 진리 앞에서 누구도 등 돌려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즐거워할 일 있을 때 같이 즐거워하고 마음 아픈 일 생겼을 때 함께 슬퍼하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으니 뉘우칠 일 해온 것을 함께 뉘우치고 부끄러운 짓 저질러온 것을 모두 부끄러워하면서 곪아터진 종기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몸과 맘과 말을 맑게 건사해야 할 때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들을 많이 씁니다. 다른 산에 있는 돌도 내 산의 옥돌을 가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말이라는데 무슨 이유로 바른 말과 행위만 바른 가르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바르지 못한 말과 행위가 어찌하여 받아들일 가르침이 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흥하는 집은 식구 하나의 잘못에 가족 모두가 나서서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망하는 집은 가족 중 한 사람의 잘못으로도 모든 식구들이 풍비박산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이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가 실패로 연결되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이는 아무리 어려운 때를 만나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제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계절로는 비할 바 없이 좋은 시절이고 부처님 오신 복된 날도 사흘 앞입니다. 절망했다가도 희망을 갖기에 적절한 때이고 쓰러질 뻔했다가도 바르게 몸을 세워 달릴 수 있을 좋은 때입니다.
할말을 하면서도 말을 아껴야 할 때이고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많아져야 할 때이고 남에게 하라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해야 할 때입니다. 질책의 소리를 전하더라도 욕하는 소리를 자제하고 난도질하려는 쪽보다 꿰매려는 쪽에 힘을 보태고 먼지를 털더라도 벗어놓은 옷을 터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어둔 업을 생각하며 웃어봅니다. 지어갈 업을 생각하면서 또 한 번 웃어봅니다. 깨어난 사람 늘어난 뒤 가는 길은 한결 수월해질 터이지요.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들이 새잎을 터뜨린 게 마치 어제일 같은데 여리고 작았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연둣빛을 지나 초록빛 넓은 잎이 되었습니다. 봄 가면 머잖아 불볕 같은 여름이 찾아오겠지요.
글을 쓰다 나온 말 끝에 곰곰 생각해보았더니 제게 믿는 구석이 바로 제가 순례 동안에 만나뵌 스님들이셨던 모양입니다. 스님들 곁에 머문 시간 길지 않았지만 한 분 한 분 스님의 맑은 음성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스님과 마주앉았던 자리 눈 감아도 여전히 선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 글로 안부 여쭐 때까지 모자람 많은 사람의 믿는 구석으로 변함없이 자리해주시고 일기 고르지 않은 때에 하루하루 청안하시기 기원합니다.
2012년 5월 25일 잠 못 들고 밤을 샌 꼭두새벽에 기운 차린 들돌 올립니다.
춭처-불교포커스 |
첫댓글 미혹된 채 다른 불자의 허물을 말하면
얻는 것 없이 공덕만 줄어들고 만다네
대승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려 하는 이
남의 허물 말하지 않는 게 보살행이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한 가지,
듣고 보고 배운 것으로 바라볼 곳이 자기라는 것입니다.
실수가 실패로 연결되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_()_
할말을 하면서도 말을 아껴야 할 때이고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많아져야 할 때이고
남에게 하라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해야 할 때입니다.
질책의 소리를 전하더라도 욕하는 소리를 자제하고
난도질하려는 쪽보다 꿰매려는 쪽에 힘을 보태고
먼지를 털더라도 벗어놓은 옷을 터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어둔 업을 생각하며 웃어봅니다.
지어갈 업을 생각하면서 또 한 번 웃어봅니다.
깨어난 사람 늘어난 뒤 가는 길은 한결 수월해질 터이지요.
이 글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한 불자 공부인....따뜻한 마음 보살마음 감사이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가시연
누구나 속 마음은 좋은 마음과 좋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여서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냐에
따라서 그 분이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가는길에 묵음으로 하시면 어떻게 생각을 히십니까
가는길에 무행동을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을 해 보시고 한 마디의 말과 행동을 하였으면 매우좋겠습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_()_
빠져들듯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