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오후 울진전시컨벤션센터 101호, 대한 조선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장.
학회 산하 해양안전위원회 위원장인 인하대 정준모 교수가 기획센서의 시작을 알렸다.
첫 순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묵념이었다.
발표자와 청중 모두 고개를 숙이자 평소 공학학회에서 접하지 못했던 무거운 공기가 흘렸다.
발표장 뒤편에는 학회 회장인 서울대 이신형 교수도 자리를 지키며 해양안전위원회의 연구에 관심을 표했다.
정준모 교수는 해양안전위원회가 그동안 '사실과 멀어진 일들을 바로잡는 활동'을 해왔으며
이날은 그 결과물을 모여주는 자리라고 했다.
그가 말한 '사실과 멀어진 일들'이란 지난해 9얼에 종료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를 뜻했다.
특히 사참위가 잠수함 충돌로 인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시나리오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것이 조선공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첫 발표자인 울산대 조상래 명예교수는 '제가 국어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그 결론을 읽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애둘러 이를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사참위에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기각하는 공식의견서를 제출했던 해양안전위원회는
그동안 수행한 추가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그 입장을 재확인했다.
총 다섯 건의 연구발표는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세월호 침몰 시나리오에 잠수함이 등장할 여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었다.
급선회 항적과 잠수함 충돌 시뮬레이션을 한 한국해양대 이상갑 교수는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외부 물체가 퉁돌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세월호가 2014년 해저면에 가라앉을 때나 2017년 인양되는 중에 외판이 손상됐을 가능성을 연구한 정준모 교수는 배
가 가라앉아 바닷속 땅에 닿았을 때와 인양할 때 상당한 구조 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손상 구역은
사참위 조사관들이 잠수함 충돌을 의심했던 곳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잠수함을 상상하지 않고도 세월호의 항적과 선체 손상 상태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종합토론에서 카이스트 한순홍 명예교수는 이제 잠수함 충돌설은 배제할 수 있겠다는 논평했다.
이날 발표된 연구들은 깜짝 놀랄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조선공학자들이 3년째 꾸준하게, 정차 더 많은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2021년 11월 전북 군산에서 열린 학회에서 조선공학자들은 당시 진행 중인 사참위의 조사 내용을 처음 접하고
그 방법과 방향에 우려를 표명했다.
사참위가 애매한 결론과 함께 호라동을 종료한 직후인 2022년 10월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공동 포럼을 열어
잠수함 충돌은 합리적인 가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시 한해가 흘러 조선공학자들은 자체 연구를 통해 사참위의 잠수함설 조사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연구하는 공학자의 끈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조선공학자들이 공학자 특유의 절제된 방식으로 '잊지 않겠다'는다짐을 실천하는고 있다고 느꼈다.
세월호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시뮬레이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이들은 세월호를 공학적으로 기억했다.
2년 전 학회 떄와 달리 조사위원회 관계자도, 유가족 대표도, 방송 카메라도 없었지만, 이들은 무게중심, 마찰계수,
첨단 재료손상 모델 같은 용어를 써가면서 세월호가 잊히지 않도록 했다.
나는 국내 여러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이날 학회에서 발표된 세월호 시뮬레이션과 분석을 수업 조별과제로
지정하고 중간고사 문제로 출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국 모든 조선공학과 학생이 문제를 풀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다.
토론을 마무리하고 세션을 끝내기 직전 정준모 교수가 이날 발표한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을 소개했다.
조선공학 대학원 진학을 앞둔 인하대 4학년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꾸벅 인사하자 선배 공학자들은 큰 박수로 격려했다.
새월호에 탄 단원고 학생들보다 몇살 아래일 이들이 세월호 선체 분석을 통해 연구의 방법과 실제를 배우면서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지루하고 반복적인 계산의 결과가 연구실 문을 통과해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배 조선 공학자들의 용기와 끈기를 배웠을 것이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