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놈이 나 왕노릇 좀 제대로 해먹고 싶은데
경력이 짧을 적엔 신하놈들 등쌀에 못견뎌서 조용히 징징거리다
뭐 하나 꼬투리 같지도 않은 꼬투리 잡고 숙청질 한거 밖에 안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숙청하고픈 당파가 적폐를 심각하게 쌓았는지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왕놈이 피맛까지 보며 왕권 휘둘러봐야 얻는 의미가 뭔가..
유교사회 어쩌구 정통성 문제 이런건 핑계 같단 말이죠.
어쩔 땐 깡패심리와 유사해보이기까지..
숙청의 명분은 태종 이방원까지만 유효했고
이후 왕놈들은 그냥 애꿎은 신하들한테 왕권무새 지랄하며 태종 흉내내는 수준이랄지..
첫댓글 국왕이 깡패심리로 "애꿎은" 신하들한테 "지랄"했다고 보기엔 그 신하들도 환국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경우도 적잖습니다.
예를 들어서 1680년 경신환국 당시 남인이었던 허적과 유혁연을 숙청하는 데는 서인들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했죠.
사화부터 환국까지를 다룬다면 수백년에 걸친 조선시대 정치사 양상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하시는 것 같네요.
국왕중심이라는 명제에서 어심만 잘읽으면 정치적 이득을 얻는 구조니 뭐.. 단지 기축옥사 같은 경우 충분히 왕놈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었고 적정선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지만 안그러했죠. 경신환국은 언제든 잡아먹기 좋은 세력을 써먹다가 팽했고..
@Erreala 유혁연 처형은 도리어 숙종이 미온적이었고 서인이 강경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당쟁이 격화되는 근본적 이유는 16세기 이래로 확대된 정치참여층의 경쟁을 건설적으로 조정할 정치철학과 방안이 부재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Erreala님께선 굉장히 단순하게 파악하시는 것 같네요.
입신양명의 길이 벼슬자리 딱 하나 만 있는 닫힌 사회라서, 저런 주기적인 숙청은 필연이라고 봐요.
결국 밥그릇 싸움이고 국왕이 거기에 끼어든거죠.
뭐 해석하기 나름인데 그런식의 해석은 세상사 다 가능하지요.
성찬식에 쓰는 빵이나 성호 긋는 방법으로 죽자꾸나 싸운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근대의회제 같은게 동양에서도 서구와 동등한 시기에 발생, 도입됐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