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소 시즌2]
육군훈련소 라디오 방송 ‘아리오톡’ 진행 황아리 상사
입력 2023. 08. 11 17:17
업데이트 2023. 08. 11 17:41
"훈련 중엔 교관, 일과 후엔 5년째 '황DJ'로 불리죠"
후보생 때 우연히 들은 가요가 계기
5년 전 스마트폰·마이크 하나로 시작
지금은 한 주에 들어오는 사연만 20개
황아리 상사가 육군훈련소 라디오 ‘아리오톡’을 진행하고 있다.
황아리 상사가 육군훈련소 조교들과 함께 핵·화생방 개인보호 교육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렵기만 한 군 생활의 출발점. 좋아하는 음악이 함께라면 소소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군 생활 ‘아마추어’들이 모인 육군훈련소의 일과 후 복도와 생활관에는 따뜻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낮에는 엄격하지만, 일과 후에는 훈련병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선물해 힘을 불어넣는 교관이 있다. 5년째 ‘아리오톡’을 진행하는 황아리 상사가 주인공이다. 글=조수연/사진=부대 제공
엄한 교관의 두 얼굴
“아리오톡 오프닝 곡은 항상 이승철의 ‘아마추어’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마추어라는 가사가 아직 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훈련병들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아서요.”
군 초년생들이 모이는 육군훈련소. 제식·화생방 훈련교관인 황 상사는 일과 후 훈련병들을 위한 라디오 디제이(DJ)로 변신한다.
황 상사가 라디오 진행을 맡은 건 그가 육군훈련소에 전입 온 지 6개월째인 201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이 되기 위해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훈련병들을 보며 어리숙했던 후보생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보생 때 유격훈련이 끝난 후 지친 몸으로 총기 손질을 하는데, 갑자기 생활관에서 흘러나온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큰 위로가 됐어요. 군대에서 군가가 아닌 가요를 들으니 감동이더라구요.”
라디오 방송 초기에는 변변한 장비도 없었다. 훈련병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스마트폰과 훈련소 방송실 마이크를 덜렁 갖추고 단출한 방송을 시작했다. 프로그램명은 황 상사의 이름과 메신저 카카오톡의 뒷글자를 딴 ‘아리오톡’. 매일 사용하는 메신저처럼 훈련병들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이러한 황 상사의 진심이 통한 걸까. 훈련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무 때나 쪽지에 사연과 신청곡을 적어 낼 수 있도록 간부연구실 앞에 상자를 뒀어요. 한 주에 20여 개의 쪽지가 들어옵니다. 진행하는 중간에도 사연을 급하게 적어 책상에 놓고 가기도 하고요.”
라디오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져 버린 훈련병들. ‘황DJ’와 함께하는 1시간은 훈련병과 황 상사가 교감을 나누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친숙한 음악, 훈련소 동기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며 깊은 정을 쌓는 것.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훈련병들이 다 같이 복도에 나와 떼창을 부르기도 하고, 다들 ‘아리오톡만 기다려진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얼마 전엔 훈련소를 수료한 병사가 국민신문고에 ‘아리오톡이 군 생활의 빛’이라는 내용의 민원(?)을 올리기도 했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시간
아마추어들의 긴장감으로 가득한 훈련소지만, 아리오톡이 방송될 때면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온다. 무섭기만 했던 교관·조교와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황 상사의 멘트에 웃고 울면서 어느새 ‘아리오톡’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친한 친구가 됐다고.
황 상사에게는 신세대 훈련병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소대장과 훈련병으로 만났지만 라디오를 진행하다 보면 훈련병들이 사회에서 뭘 했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요. 젊은 친구들이다보니 새로운 용어도 많이 익히게 되고요.”
가장 많이 들어오는 사연으로는 ‘연애 고민’ ‘부모님’ ‘조교 칭찬’을 꼽았다.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들다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낀다는, 조교에게 고맙다는 훈련병까지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부모님 사연을 적은 훈련병의 부모님께 미리 연락을 드려서 스피커폰으로 전화 연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울먹거리며 조용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조교들을 칭찬하는 사연도 많이 들어오는데, (조교) 본인들도 쑥스러워하지만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라디오가 끝나면 ‘훈련병들은 너희를 이렇게 생각한다. 힘내라’면서 사연이 적힌 쪽지를 조교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에도 강인한 워킹맘
교관과 라디오 디제이로 활약하는 그는 결혼 5년 차 워킹맘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면 밤 9시를 훌쩍 넘겨버린다. 늘 자는 모습밖에 볼 수 없는 네 살배기 아들이 눈에 아른거려도 교관 황아리로서의 정체성을 곱씹는다. 힘들지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이유는 아들처럼 소중한 훈련병들이다.
“언제나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출퇴근하는데요. 이제는 대화가 가능해진 아들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훈련병들 역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잖아요. 우리 아이처럼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관 임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군에 발을 디딘 훈련병들에게 엄하지만, 따뜻한 소대장이 되고 싶다는 황 상사. 낯설고 생소한 훈련소에서 우왕좌왕하는 어리숙한 훈련병들을 보면 훈련소가 삭막한 곳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육군훈련소에서 정예 신병을 육성한다는 자부심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맡은 임무를 완수해서 전투형 강군 초석을 다지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황 상사는 훈련병들에게 전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교관과 조교들이 완벽히 훈련·훈육해 군인으로 만들어 자대로 갈 수 있게 도와주겠습니다. 훈련병들이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는 모습을 보는 게 아리오톡을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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