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2005년 5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80일 동안 혼자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한 이
야기이다. 미국의 동쪽 끝 버지니아주 요크타운부터 서쪽 끝 오리건주 플로렌스까지 몰튼 자전
거에 40킬로그램의 짐을 싣고, 6400킬로미터의 길을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따라 달린
이야기이다. 저자가 택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멀리 돌아가
는 길로,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길을 생각해 개척했고, 그해 라이더들
2000명이 함께 횡단했다. 총 길이 6400킬로미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두 번을 왕복해야 하는
거리이다. 여행 중간 ‘어드벤처 사이클 어소시에이션’에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만든
그레그를 만나기도 한다. 저자는 약 2000여 명의 라이더들과 함께 ‘국립 자전거 여행 초상 컬
렉션’에 사진이 올라간다. 왜냐하면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타고 미국을 횡단한 최초의 한
국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여행의 의미를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
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했다.
"자전거는 다리의 연장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안장 위에서 보는 세상은 차 안에서
보는 네모 속 세상과 다르다. 미국을 횡단하는 동반자로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가 지향하는 가치로 미국을, 그리고 내 자신을 보고자 했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
하는 것은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와 속
도에 압도돼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한 바퀴마다 의미를 두고 앞으로 나
아가려고 노력했다. 자전거타기는 자신이 페달로 밟은 몇 미터의 거리에도 성취감을 느끼게 하
는 삶의 한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일주일만 버텨보는 것”이라는 동료 라이더들의 충고를 새기면서, 아메리
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함께 갈 혁명동지를 구하기 위해 ‘어드벤처 사
이클링 어소시에이션’에 광고를 내기도 했으나 결국 혼자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된
다. 하루 평균 80킬로미터를 달렸으며, 초반에는 여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달리고 밤에는 번역
을 했다. 걷는 것보다 자전거 타는 것이 더 느리기도 했고, 빗줄기를 헤치며 11시간 동안 자전
거를 타기도 한다. 지도를 열심히 보면서 가다가도 길에서 벗어나기 일쑤였고, 예상했던 것보
다 높은 고개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하고, 길을 잘못 알려준 라이더를 원망하기도 한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아메리카를 달리다
엄청난 무게의 짐으로 여행을 시작한 그는, 두 번 정도 크게 짐들을 줄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여행이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뿐 아니라 필요한 것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짐
이 주니까 짐의 무게와 몸무게도 같이 줄었고, 배도 홀쭉해졌다. <그날이 오면>의 가사가 헷갈
려 여행 내내 돌림노래로 부르기도 하고, 비록 짧은 시간 동안 함께 달렸지만 아주 특별한 동
행남 데이비드도 만났다. 동네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태워주기도
하고, 하루 170킬로미터를 달려 하루에 가장 멀리 간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아칸소강에서 수
직으로 316미터 위에 놓인 다리,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계곡 현수교를 건너고, 로키 산맥의 후
지어 패스(3463미터)를 넘고, 펑크 난 자전거를 고치는 맥가이버 라이더가 되기도 한다. 험난
한 여정 끝에 오리건주 플로렌스에 도착, 자전거 앞바퀴를 바닷물에 담근다. 2005년 8월 13일
오후 5시 51분. 그는 결국 6400킬로미터를 주행한 라이더가 된다.
저자는 전혀 연습을 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해놓는 방법으로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주행
연습 중에 힘줄을 뚫고 왼쪽 쇄골이 뛰어나오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이 끝난 뒤 뭘
할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럽기도 했다. 왜 자전거로 횡단하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냥 좋
기 때문에,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 된 그는, 미
국 횡단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께는 어떻게 여행 준비를 해야 하는지 찬찬히 방법을 알
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자전거와 라이더, 자전거 수리 기술자가 삼위일체로 이뤄진 진정한 바이크 라이더가 되
는 과정에 있다. 자전거 혁명을 꿈꾸는 사회를 꿈꾸는 그. 그의 또 다른 꿈은 한반도의 해변을
한 바퀴 도는 ‘판 코리아 트레일’을 만드는 거다. 혼자 꿈꾸면 몽상이지만, 같이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사진_오자크 고원지대에 난 길.
6400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미국의 생활과 문화, 사람들을 만나다
이 책에는 미국 횡단 길에서 만난 수많은 라이더들과 미국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
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라이더들이 길을 잘 갈 수 있게 숙소를 빌려주고 도와주는 사람들뿐
만 아니라 욕하는 자동차 운전수들, 먹을 것을 건네주는 사람들, 길 한쪽으로 비켜서주는 사람
들, 동양인이라는 것만으로 경계를 하는 사람들,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
…. 미국의 가장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 소도시 산간 구석구석을 그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달
렸다. 또한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몰튼 자전거를 고쳐 빌려준 버넌 포브스와 연습
파트너로 왕고참 라이더 스튜어트 루리 교수와의 주행 연습 이야기, 혁명동지들의 어머니인 쿠
키 레이디, 젊은 사람들은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산행을 떠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세상을
잊기 위해 걷는다며 640킬로미터를 걸어온 하이커들, 두 발로 카누로 자전거로 3종 횡단을 하
고 있는 데니스와 게리 스튜어트 부부, 미국이 독립할 당시 곰들과 싸우던 켄터키 개들, 자전
거 여행을 ‘우주로의 유영’에 비유한 묘령의 여자 라이더 앨리슨, 체스터 시립공원에서 만난
크레이그 브록하우스, ‘평화를 위한 페달밟기’라는 취지로 미국을 횡단중인 팀과 수 슈락 목
사, 웬들 밀러, 코로나도 퀴비라 박물관, 가시철조망 박물관, 아름다운 부녀의 동반 라이더,
산간 소도시에서 만난 일식집 주방작 선배, 23년 전 딸의 행로를 따라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달리고 있다는 브루스 쉬케르트. 지원차량이
되어준 젊은 노부부 라이더 칩과 캐티, 5000킬로미터를 걸어 미국을 종단하는 콘티넨털 디바이
드 트레일을 종주하는 하이커들, 지구 반 바퀴를 돈 스페인 형제 고르고와 카를로스, 마약을
권했던 ‘특별한 하룻밤의 동행’ 돈과 론 등등 그들과 함께 끝없이 달렸다. 그리고 그는 일상
속으로 되돌아왔다. 이 책은 2005년 5월 20일부터 2006년 4월 14일까지 <한겨레>에 연재한 글
을 수정 보강했으며, 1976년에 미국을 횡단한 당시 바이크들의 추억의 사진도 특별히 실었다.
사진_장대하고 광활한 캔자스 대평원을 달린다.
작가 소개
홍은택_중경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
전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라디오 프로그
램 <글로벌 저널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는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의 편집국장이다.
저서로는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역서로는 《나를 부르는 숲》, 《천천히 달려라》, 《
리틀 비트와 함께한 여섯 번의 여름》, 《102분》 등이 있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이 최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점점 더 좋은 날로 가는 도중의 하루라는 뜻이다. 오늘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그것은 왠지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미래에 대해 갖는
부질없는 희망처럼 들린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더 나은 날들을 위해 바닥에
깔리고 모여지는 것이다. 나는 바퀴를 굴리면서 내 몸의 가능성이 쉬지 않고 이뤄지고 펼쳐지
고 있는 것을 느낀다. 후지어 패스를 넘었어도 여전히 성취해야 할 험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 세상은 더는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교문을 열고 뛰어들어가는 운동장이 된다. 나와
세상의 관계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서 역동적으로 바뀐다.
현재는 미래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수한 디딤돌을 밟고 미래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난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현재가 내 삶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직선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내게는 두 점,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밖에 없었다. 그 두 점을
잇는 선분인 현재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했다.
여행은 매일 이름 모를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낯선 거리를 걸으면 오랜 항
해 끝에 부두에 내린 선원이 된 듯하다. 선원은 정복자가 아니라 마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방인이다. 내일이면 떠날 나그네라는 점에서,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는 점에
서, 호기심만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다.
그 말 속에 답이 있었다. 그냥 좋기 때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로키 산맥을 넘기 위
해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후지어 패스에 오르는 순간 절정의 감격 같은 것을 기대
했다. 하지만 그런 강렬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그냥 마
음이 편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부터 페달을 밟는 게 즐거워졌다.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 됐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것은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와 속도에 압도돼 좌절하기 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한 바퀴마
다 의미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미국 횡단은 엄청
난 성취가 아니다. 자전거타기는 긴 거리를 달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페달로 밟은 몇 미터의 거
리에도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삶의 한 방법이다." _본문 중에서
이상,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의 책소개였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