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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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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마태오의제자 추천 2 조회 243 15.06.24 04:5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2015. 6. 24. 수)(루카 1,57-66.80)


<요한의 탄생과 메시아의 강생>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서 한 말을 보면,

겉으로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입니다(루카 1,12-17.19).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는 사실상 메시아 강생 예고라는 것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믿지 못해서 말을 못하게 되었던 즈카르야는

요한의 할례식 때 말을 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데(루카 1,64),

아마도 그 찬미를 기록한 것이 '즈카르야의 노래'일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를 보면,

세례자 요한이 하게 될 일을 예언하는 내용도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 주신 일과

메시아의 인류 구원을 찬미하는 노래입니다(루카 1,67-79).


이런 내용들은 모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단순히 나중에 예언자가 될 아기의 탄생이 아니라

메시아의 일을 준비할 일꾼의 탄생이고,

메시아 강생의 서막과도 같은 일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 점에서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은

예수님의 성탄절의 전야제와 같은 날이 되고,

우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경축하는 것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신 일을 경축하는 일이 됩니다.


즈카르야가 아기의 탄생을 보고 미래의 행복과 평화를 찬미한다는 점에서

구약시대 '노아'의 탄생이 연상됩니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라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창세 5,29)."


라멕의 말은 즈카르야의 노래의 후반부에 있는 예언과 비슷합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6-79)."


라멕의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 라는 말은

즈카르야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이라는 말과 연결되고,

'위로' 라는 말은 '용서, 구원, 자비, 평화' 라는 말과 연결되고,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이라는 말은 '죄, 어둠, 죽음'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라멕의 말과 즈카르야의 노래는,

하느님은 사람들을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노아의 탄생은, 대홍수로 전멸 당할 위기에 놓여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방주를 만들 사람을 보내주신 '자비'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만 구원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죄와 죽음으로 멸망당할 상황에 놓여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주신 '자비'이고,

요한의 탄생은, 사람들을 회개시켜서 구세주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일꾼을

미리 보내주신 '자비'입니다.

이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인 일입니다.

그 구원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할 일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에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라는 구절이 특별히 눈에 뜨입니다.

이 구절에서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이 연상됩니다.

동방박사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메시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다는 말을 했는데(마태 2,2),

이 말은 메시아의 탄생을 증언하는 말과 같고,

사람들을 메시아에게로 인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마태 2,3),

그들 가운데에는 메시아를 보러 간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별'을(빛을) 증언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6-7)."

요한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31)."


요한의 말은 "나를 보지 말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즈카르야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요한의 탄생이 아니라 메시아의 강생을 찬미한 것도

사람들에게 요한이 아니라 그 뒤에 오시는 메시아를 보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요한만 보고 메시아를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을 때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함께 기뻐했습니다(루카 1,58).

(함께 기뻐했다는 말은 축하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엘리사벳이 받은 은총만 보고 자기들이 받은 은총은 보지 못했는데,

자기들이 얼마나 큰 은총을 받았는지 알았더라면 아마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루카 7,16)." 라고 말하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천여 년 전에 잠깐 활동하다가 순교한 옛날 예언자이지만,

그가 선포하고 증언한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우리는 항상 회개하면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잘 걸어가야 합니다.

요한이 말한 '주님의 길'은

당시에는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위한 길'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우리를 앞장서 가시는 주님을 잘 따라가기 위한 길'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주님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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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6.24 05:43

    첫댓글 아멘! 신부님 말씀 감사합니다.

  • 15.06.24 10:25

    아멘. 주님의 길...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6.25 12:06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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