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신앙(대산교회)(일기) 23-39, 혼자 있는 시간
신영아 원장님을 뵈었을 때 이야기 나눴다. 두 달 전과 달라진 지원이 있다면 사는 곳 근처에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편의점이 있는데 거의 매일 오전 오후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차 타고 가서 걸어오거나, 걸어가서 차 타고 돌아오고 있다고 말이다. 2킬로가 조금 못 되는 거리를 30분 정도 걸려 걷는다. 그래서 지난번보다 조금 더 그을린 건강한 피부 톤을 갖게 되었다.
여쭈면 가고 싶다고 표현할 때도 있고, 자주는 먼저 찾아와서 가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같이 걸어서 다녀오고 싶은지, 혼자 걷고 싶은지 물으면 분명하게 혼자 걷고 싶다고 표현한다. 그때 당신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신영아 원장님께서는 “그럴 거예요. 시설이라는 곳이 가진 한계가 있죠. 민정 씨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할 수 있겠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하셨다. 앞으로도 김민정 씨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해 도우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대화를 통해 다시금 김민정 씨의 삶을 곱씹는다.
걸어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간식을 먹기도 하지만,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집에 가서 먹겠다고 할 때도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땀 흘려 다녀와서 나의 집에서 내가 먹고 싶은 그 때에 편히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손에 쥔 과자를 보고서 이웃분들이 다가와 나눠달라고 한다. 불편했을 것이다. 나눠 먹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날도 있을 테니. 과자 하나 원하는 때에 나의 집에서 편히 먹지 못하는 불편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살펴 돕는다고 해도 누군가의 시선을 벗어나 무언가를 편히 누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 시설이라는 공간이 가진 한계이자 시설에 사는 사람의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원하는 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실로 간절히 원하는 것일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삶이 24시간 이어지는 곳이다. 사회사업으로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세상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이 촘촘히 이어지는 곳이다.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나만의 시간, 내가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사회사업 못지않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사회사업을 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사회사업만, 그러니까 일부만을 돕는 것이 아니듯, 시설의 일은 일상적으로 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인 만큼 나의 일을 사회사업에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요즘은 이런 순간들에 마음이 머문다. 이런 것도 살펴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평소에는 교회에 가서 헌금과 기도를 도울 때 “김민정 씨 제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마저 하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곁에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했다.
“김민정 씨, 요즘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시죠? 기도하는 순간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 곁에 있으면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감정을 삼키고, 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 마음껏 기도하고 나오세요. 제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기도, 오히려 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김민정 씨가 믿는 하나님께 열어 보이고 위로와 응원받고, 그 힘으로 또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오세요. 편히.”
조용히 예배당 문을 닫고 신발을 신고 나왔다. 김민정 씨는 곧바로 따라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당사자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돕는다고 하지만 너무 가까워져서는 안 될 이유. 안다 싶어도 그 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서지연
처음엔 걸어가서 편의점을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차를 탔어요. 때로는 반대의 경우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걸어가고, 다시 걸어옵니다. 차에 타지 않겠다는 뜻을 언젠가 말씀하셨고, 지금은 오가는 그 길이 참 편안해 보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최희정
시설의 환경, 한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더욱 간절합니다. ‘내 일상, 내 계획’과 ‘나의 공간과 나의 시간’, 삶에 꼭 필요한 조건들이죠. 노말라이제이션에 이런 내용들이 일부 언급됩니다. 여느 사람에게는 Normal한! 김민정 씨의 처지와 형편을 헤아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월평
첫댓글 저의 지원이 때로는, 어쩌면 대부분이 간섭 아닌 간섭이 될까봐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에 선생님의 기록을 보며 그 마음을 잘 다듬어볼 수 있겠어요. 항상 유념하겠습니다.
입주자만의 공간. 그래서 한덕연 선생님이 분산을 이야기하셨죠. 활동의 분산, 공간의 분산. 요즘엔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